김대식 교수 ‘내 머릿속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을 하면서 살아간다. 점심 메뉴를 결정하는 사소한 일에서부터 때로는 회사의 미래 전략을 결정하는 중대한 일까지. 어쩌면 우리의 인생은 이 같은 ‘선택의 합집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당신의 선택이 뇌가 만들어 낸 착각의 산물이라면 어떨까. 우리의 뇌를 이해한다는 건 그래서 중요하다. 바로 이 ‘착각’을 제대로 알아야, 더 현명한 선택이 가능해질 테니 말이다.
[BOOK WE ATTEND] “뇌가 일으키는 착시현상 착각 매뉴얼’로 극복하세요”
‘나는 과연 누구인가’, ‘왜 나 자신과의 약속은 지키기 어려운 것일까’, ‘인간은 왜 권력에 집착할까’. 과학자의 질문이라기보다는 마치 철학자나 심리학자의 질문에 더 가까워 보인다. 30년간 뇌 과학을 전공한 김대식 카이스트 교수의 저서 ‘내 머릿속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에는 이처럼 인간을 향한 호기심이 쉴 새 없이 쏟아진다.

재밌는 건 이 질문에 대해 답을 찾아가는 방법이다. 김 교수는 이 책에서 과학은 딱딱할 것이란 편견을 과감히 깨부순다. ‘우리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뇌의 작동 원리를 과학적으로 명쾌하게 풀어내면서도 다양한 철학과 심리학의 사례를 들어 이해를 돕는다. 실제로 김 교수는 유년 시절부터 독일에서 공부하며 다름슈타트공과대학 학부 과정에서 심리학과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 이후 독일의 막스플랑크 뇌과학연구소에서 석사와 박사 과정을 밟으며 본격적으로 뇌과학 연구에 뛰어들었다. 그가 이 책에서 과학과 인문학을 자유자재로 넘나들 수 있었던 데는 이같은 배경이 뒷받침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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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에는 컴퓨터와 심리학을 전공했는데 왜 ‘인간의 뇌’에 관심을 갖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학부 시절부터 제 목표는 ‘인공지능’을 만드는 것입니다. 물론 현재도 수많은 정보를 기억하고 처리하는 약한 인공지능(weak AI)은 상당한 수준에 올라와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처럼 독립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강한 인공지능(strong AI)까지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해 보입니다. 비행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새가 어떻게 하늘을 나는지 그 원리를 연구해야 하잖아요. 마찬가지로 인공지능을 만들려면 사람의 뇌가 어떻게 생각을 만드는지 원리를 연구할 필요가 있었던 거죠.”


실제로 뇌과학을 공부해 보니 어땠나요. 생각의 원리를 밝혀내는 게 가능한가요.
“아직도 저는 막스플랑크 뇌과학연구소에서 뇌를 처음 해부한 날을 기억합니다. 사람의 뇌라는 게 1.5kg짜리 쪼글쪼글한 고깃덩어리였거든요. 그런데 이 고깃덩어리가 없으면 ‘나는 나’일 수 없잖습니까. 뇌가 없으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감정을 갖지도 못하고, 결국 ‘나’라는 자아도 사라지는 거니까요. 뇌과학자의 입장에서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은 거의 모두가 착시현상일 뿐입니다. 뇌에서 이뤄지는 물리적 현상과 머리에서 받아들이고 느끼는 생각은 그만큼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얘기죠. 결국은 몸과 마음의 문제인데,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될지 아무도 모르는 겁니다. 저는 이 문제가 해결돼야 진정한 의미의 인공지능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정년퇴직 전날 진정한 인공지능을 완성하고 아무도 모르게 떠나는 게 목표입니다.(웃음)”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이 모두 ‘뇌의 착각’이라면, 과연 이 착각을 깨닫는 게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건가요.
“우리의 뇌는 무언가 올바른 판단을 돕는 신체기관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의 잘못된 선택을 ‘정당화’하는 기관이라는 게 더 맞는 표현일 겁니다. 그런데 이 같은 뇌의 착각은 어느 정도 인간에게 꼭 필요한 것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고향에 가면 이유 없이 마음이 편안해진다든지 또 누군가의 목소리나 외모에 이유 없이 호감을 느낀다든지 하는 게 대표적인 뇌의 착각인데, 저는 이런 착각은 그냥 받아들이며 살라고 말합니다. 다만 문제가 되는 건 따로 있습니다. 바로 나의 착각으로 인해 내가 살고 있는 사회에 큰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입니다. 내가 백인이어서 흑인은 백인보다 멍청하다고 생각한다면, 이런 착각은 위험하죠. 기업 최고경영자(CEO)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업 CEO가 뇌의 착각에 속아 잘못된 선택을 내린다고 생각해 보세요. 당장 기업의 경영이 흔들릴 수 있고 직원들의 생계가 위협받을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기업 CEO나 리더들이 흔히 하는 뇌의 착각은 무엇인가요.
“이와 관련된 실험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한 실험에서 100명의 면접관을 무작위로 50명씩 A와 B로 나누고 신입사원 한 명의 가상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두 그룹의 면접에 들어간 신입사원은 동일 인물이었고, 각 그룹의 면접관들이 할 수 있는 질문과 그에 대한 대답은 동일하게 설정됐습니다. 단 유일한 차이가 있다면, A면접관들은 인터뷰 전 우연히 무거운 짐을 들도록 했고, B면접관들은 가벼운 짐을 들게 한 겁니다. 그렇다면 이 두 집단의 신입사원에 대한 평가는 같아야 합니다. 그런데 A는 부정적인 평가를 내린 반면, B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습니다. 결국 A는 자신의 몸이 불편했기 때문에 신입사원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뇌에서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저 신입사원은 마음에 들지 않아’라는 그럴싸한 이유를 만들었던 겁니다. 아주 간단하게 말해, 만약 당신이 CEO와 같은 리더의 자리에 있다면 몸이 아플 때는 가능한 판단을 유보하는 게 나을 수 있다는 겁니다.”


CEO들의 건강관리가 중요한 이유네요. 또 다른 착각은 무엇이 있을까요.
“‘긍정적 편향’이라는 게 있습니다. 지금 제 앞에 컵이 하나 놓여 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이 컵의 가격을 매겨 달라고 합니다. 그럼 대략 1만 원 정도 나온다고 칩시다. 그런데 똑같은 컵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묻습니다. ‘이 컵 너한테 줄게. 가격이 얼마나 될 것 같니?’ 그러면 사람들은 대부분 1만 원보다 더 비싼 값을 댑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 물건’, ‘나 자신’에 대해서는 객관적인 시선보다 더 높은 가치로 평가하고 있다는 겁니다. 기업 CEO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쉬운 예를 들자면, 기업의 인수·합병(M&A)을 추진하고 있는 CEO는 특히 이같은 뇌의 착각에서 냉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기업의 가치를 객관적인 시장의 평가보다 훨씬 높게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합리적인 거래를 방해할 수 있거든요. 그렇다고 우리가 뇌의 착시에 안 빠질 수는 없습니다. 뇌라는 하드웨어 자체가 ‘팔이 안으로 굽도록’ 설계가 돼 있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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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의 착각이 어쩔 수 없다면 이에 대처할 방법이 있나요.
“늘 강조하는 건 CEO와 같은 리더라면 자신의 상황에 따라 이를 적절히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만약 기업의 CEO가 무언가 새로운 행동을 취해야 할 때면 ‘근거 없는 자신감’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계획하는 단계이거나 위험관리를 할 때는 ‘지금 내가 하는 생각의 반 이상이 착시’라는 걸 알고 있는 게 도움이 된다는 겁니다. 이때 ‘착각 매뉴얼’을 만들어 두는 것이 유용할 수 있습니다. 예전 페르시아 황제들은, 만약 자신이 술에 취해서 명령을 내리면 다음 날 신하들이 꼭 자신에게 되묻게끔 했다고 합니다. 술에 취해 판단력이 흐려지는 상황을 대비해 방어 체제를 만들어 놓은 거죠. 기업의 CEO들도 이 같은 시스템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신제품을 출시하는데 아무리 객관적으로 살펴봐도 한 80점 정도는 될 것 같다고 해 봅시다. 그럼 여기서 뇌의 착각에 의해 부풀려진 20점 정도는 자동으로 점수에서 차감하게끔 매뉴얼을 만들어 놓는 거죠.”


‘착각 매뉴얼’이라면 사람마다 똑같이 적용할 수 있는 건가요.
“아닙니다. 제가 간단하게 예를 들긴 했지만, 사실 사람마다 이 같은 착각에 빠지는 경우는 수십 가지가 넘습니다. 또 어떤 착각에 더 쉽고 깊게 빠진다든지 하는 성향도 제각각이고요. 만약 누군가 당신에게 1만 원을 줘요. 그러면 행복감이 올라가겠죠. 그런데 반대로 누군가 당신에게 1만 원을 뺏어가요. 그러면 당신은 앞의 경우보다 훨씬 더 큰 아픔을 느끼게 돼 있습니다. 이게 왜 그러냐면, 우리 뇌 안에는 전두엽 앞쪽에 가치를 계산하는 영역이 있어요. 이 녀석은 쉴 새 없이 회계사처럼 계산기를 두드리는데 문제는 여기서 계산이 다 틀린다는 거예요. 우리의 뇌는 매우 이기적이기 때문에 ‘나의 것’을 잃는 걸 훨씬 더 큰 가치로 계산한다는 거죠. 이처럼 ‘내 것’을 ‘남의 것’보다 훨씬 높게 평가하는 건 공통된 현상이지만, ‘얼마나 높게’ 평가하는지는 각자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는 겁니다. 어떻게 보면 이는 사람마다 뇌가 모두 다르게 생겼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현상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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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뇌는 모두 다르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성공한 사람들의 뇌는 따로 있나요.
“불공평하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그렇습니다. 스티브 잡스나 워런 버핏, 모차르트와 같은 천재들은 말하자면 유전적 돌연변이입니다. 매우 단순하게 설명하자면, 인간의 창의력이란 우리 뇌에 생각하는 길이 많을수록 높아지는데 이 사람들은 선천적으로 평균보다 더 많은 생각의 길을 갖고 태어난 거죠. 그런데 중요한 건 이겁니다. 이들과 같은 천재는 전체 인구의 1%도 안 돼요. 이 1%의 천재들은 어떤 환경에서도 성공을 하겠죠. 그렇다고 성공한 사람들이 모두 천재라는 건 아닙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경우는 조건이 좋으면 뇌 역시도 좋게 발전하고, 조건이 나쁘면 또 부정적인 영향을 받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성공을 위해 본받아야 할 사람들은 어쩌면 스티브 잡스 같은 천재들이 아닙니다. 평범하지만 노력을 통해 성공을 이뤄낸 노력형 인재를 따라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는 거죠.”


평범한 사람이 성공하기 위한 ‘좋은 조건’은 어떻게 만들 수 있는 건가요.
“그 답이 결국은 앞서 언급했던 매뉴얼입니다. 자신의 뇌의 한계를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뇌에도 물리적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에 어떤 능력을 계발한다고 하더라도 그 한계가 분명히 존재할 수밖에 없거든요.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실패할 수 있는 용기입니다. 뇌과학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남보다 먼저 실패를 경험할수록, 남보다 먼저 성공할’ 확률이 높습니다. 행동경제학자인 대니얼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이라는 책을 보면 인간의 생각에는 두 가지 시스템이 있다고 해요. ‘빠른 생각’과 ‘느린 생각’인데, 뇌과학으로 이를 풀어내자면 빠른 생각은 직접 몸으로 체득한 정보들이고 느린 생각은 그 이후에 추가적으로 얻게 되는 정보들인 거죠. 그런데 뇌라는 녀석은 늘 선착순으로 승자가 결정돼요. 자전거 잘 타는 법과 관련된 책을 아무리 많이 읽어 봤자, 직접 자전거를 타고 한 번 넘어지는 것이 더 빨리 뇌에 습득되는 것과 같은 원리죠. 결국 우리의 뇌는 ‘몸으로 배운다’는 겁니다. 실패도 마찬가지예요. 혹시 모를 실패를 대비해서, 아무리 많은 책을 읽고 준비를 해 봤자 실패한 상황을 몸으로 한번 겪어내는 게 가장 빨리, 많이 배울 수 있는 길이라는 겁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성공적 실패’라는 전제조건이 뒷받침돼야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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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적 실패’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세요.
“우리의 뇌에는 ‘결정적 시기’라는 게 있습니다. 사실 인간의 뇌는 처음 태어났을 때 큰 얼개만 완성돼 있을 뿐이에요. 그런데 ‘결정적 시기’를 지나면서 환경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뇌의 영역은 발달하는 반면, 그렇지 않은 영역은 퇴화해요. 이 시기를 지나면 뇌가 굳어지기 때문에 사실상 훈련을 통해 뇌를 변하게 하는 건 어렵다고 볼 수 있죠. 뇌과학적으로 실패는 ‘더 빨리’하는 게 좋다고 했는데 그것 역시 이와 관계가 있어요. 이미 뇌가 딱딱하게 굳어지기 전에, 실패를 경험해야 최대한 뇌의 착각을 줄이면서도 더 빨리 습득할 수 있다는 겁니다. 특히 작은 실패를 여러 번 반복하는 것이 크게 한 번 실패하는 것보다 학습 효과가 좋기도 하고요. 저는 기업에서도 이 ‘성공적 실패’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연수원에서 직원들을 훈련시킬때 시뮬레이션을 통해 다양한 실패를 몸으로 익히도록 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갑자기 제품의 오더가 모두 취소되는 상황이나 서비스 전산 시스템에 마비가 오는 상황 등을 설정하는 거죠.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우주비행사들을 어떻게 훈련하는지를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겁니다. 우주에서 맞닥뜨릴 수 있는 모든 최악의 상황을 시뮬레이션을 통해 몸으로 익히잖아요. 위기 상황에서 뇌는 더욱 착각에 휘둘리기 쉬우니까 뇌를 믿지 말고 몸으로 익힌 매뉴얼을 믿는 게 잘못된 결정을 줄일 수 있다는 겁니다.”


이정흔 기자 verdad@hankyung.com│사진 서범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