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호 IBK투자증권 대표

지난 8월 취임한 신성호(59) IBK투자증권 대표는 리서치센터장 출신 전문경영인이다. 대우증권 투자전략부장, 동부증권 리서치센터장, 우리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 등 리서치 분야에서만 30년 가까이 몸 담아온 신 대표가 강소 증권사인 IBK투자증권의 새로운 구원투수가 될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SPECIAL INTERVIEW] “입소문으로 찾는 맛집 같은 증권사 만들겠다”
“음식이 맛있다고 소문나면 산골짜기까지 차를 타고 물어물어 찾아가지 않습니까. 기껏 갔는데 가격이 비싸기만 하고 맛이 없으면 바가지 썼다는 생각에 두 번 다시는 찾지 않죠. IBK투자증권 역시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해 손님들이 입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증권사로 만들겠습니다.”

신성호 IBK투자증권 대표의 의지는 결연했다. 오늘날 위기의 증권 업계를 ‘먹을 것 없는 맛집’에 비유하는 등 쓴소리도 서슴지 않았다. 신 대표는 1984년부터 1997년까지 ‘증권가의 인재사관학교’라 불리는 대우경제연구소에서 혹독한 트레이닝을 견디며 리서치 전문가가 됐다. 오늘날 저금리 기조 속에서 증권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일선에 있는 영업맨들이 다양한 분야에 걸쳐 깊이 있는 지식으로 무장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하는 것도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한 것일 터. 그가 ‘사장님’이 아닌 ‘선생님’을 자처할 정도로 직원들의 교육과 공부에 매달리는 이유는 궁극적으로 수익률을 높여 고객 만족도를 최상으로 끌어올리기 위함이다. 지난 10월 1일 서울 여의도 IBK투자증권 집무실에서 취임 2개월 차에 접어든 신 대표를 만났다.


전반적으로 증권 업계가 어려운 상황 속에서 취임을 하셨습니다.
“증권사의 상황이 많이 좋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기존 증권사 수익의 주요 기반이 브로커리지(주식 위탁매매)였다면 최근에는 많은 증권사들이 종합금융사로 탈바꿈하고 있습니다. 금융업체 간 칸막이가 점점 사라지고 있죠. 개인 대상 리테일(소매금융)뿐 아니라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파이낸싱어드바이저(FA)로 변신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고 보고 IBK투자증권 역시 이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합니다. 자산관리가 점차 종합 라이프 플랜의 개념으로 진화하는 시대에는 리서치가 중심이 돼 모든 부서가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전반적으로 아직 준비가 덜 돼 있다는 점이 다소 부담스럽습니다.”


준비가 안 돼 있다는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일선에서 고객을 만나는 영업맨들의 금융이나 경제, 산업 전반에 걸친 지식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예컨대 난제에 부딪혔을 때 그것을 풀 수 있는 수학공식은 알고 있지만 응용할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집니다. 이는 결국 회사의 실적 문제로 이어지죠. 증권사는 고위험 상품을 다룸에도 불구하고 판매 수수료가 보험 수수료나 은행의 예대마진에 비해 낮은 편입니다. 그런데 이것도 말이 ‘협의 수수료’지 실제론 ‘할인 수수료’나 마찬가지예요. 영업맨들이 지식과 컨설팅 능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눈앞의 영업계수를 늘리는 데만 집중하다 보니 ‘알아서’ 수수료를 낮추는 일이 빚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고객들이 증권사를 외면하는 계기가 됐죠. 현장에서 고객을 응대하는 증권맨이라면 경제, 금융, 기업 등에 대한 지식이 해박해야 합니다. 1~2년, 5~10년 뒤 장기적인 변화를 내다보고 나름대로 의견과 투자 철학을 정립해야 하죠. 위험 요인과 금리 변동을 분석하고 플러스알파(+α) 수익을 예측해 그걸로 개인, 기업, 기관에 접근해야 합니다.”
[SPECIAL INTERVIEW] “입소문으로 찾는 맛집 같은 증권사 만들겠다”
회사 측의 책임도 있지 않나요. 적잖은 투자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가장 중요한 게 교육이에요. 지금 금융사들은 직원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를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기껏해야 교과서에 나와 있는 내용을 익히게 하죠. 참 안타깝습니다. 교육이라는 게 단기적으로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에요. 성과를 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하루라도 빨리 영업맨들의 재교육이 이뤄져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교육이 이뤄져야 할까요.
“제가 1998년 7월부터 1999년까지 대우증권 올림픽지점에 지점장으로 있었어요. 당시 전국 98개 대우증권 지점 중 95위였는데 새로 출발한 지점 2개, 사이버지점 1개를 제외하면 완벽한 꼴찌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상황을 낙관적으로 봤습니다. 더 이상 떨어질 데가 없잖습니까. 그 지점에 1년 6개월을 있었는데, 나중엔 최상위 지점으로 올라섰죠. 지점에 나가서 처음 한 게 직원들 교육이었습니다. 직접 가르쳤어요. 리서치센터장들이 공유하는 데이터를 가지고 와서 직원들과 분석하고 토론했죠. 실적보다는 고객 수익률을 높이라고 압박을 주면서 밤 10~11시까지 붙잡아 놓고 공부시켰습니다. 야간 자율학습인 셈이었죠. 휴가도 못 쓰게 하고 토요일에도 나오라고 했더니 직원들 반발이 거셌습니다. 그때 제가 말했습니다. ‘고객은 네가 최선을 다하다가 (돈을) 깨먹었는지 아닌지 귀신같이 알아챈다’며 ‘그러니 오로지 고객만을 생각하라’고요. 그렇게 독촉했더니 6개월 만에 서서히 실적이 개선되고, 고객들도 저절로 찾아오더군요.”


역시 리서치센터 출신 최고경영자(CEO)답습니다.
“리서치 자료들을 바탕으로 한 영업은 실제로 고객 신뢰를 돕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어드바이스가 확실히 다르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습니다. 다른 지점장들이 우수 직원을 외부에서 영입해 오겠다고 할 때 저는 ‘우수 영업사원이 왜 변두리에 있는 우리 지점에 오겠냐’며 ‘직접 우수 직원을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그게 저의 경영 방침이었죠.”


IBK투자증권으로 오신 이후에도 거의 임직원 인사를 안 한 것으로 압니다.
“영업직은 대부분 그대로입니다. 여기에서도 오자마자 (후배들에게) 미션을 주었습니다. 내년 봄까지 이만큼 실적을 올리지 않으면 곤란하다고 협박도 했고요.(웃음) 영업이란 고객이 나를 필요하게 만드는 것이지 술 사주고 밥 사주는 게 아닙니다. 고객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본질을 헷갈리면 안 돼요. 고객의 성공을 바탕으로 내가 커가는 것입니다. 특히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는 0.1% 수익률에도 고객들이 왔다 갔다 합니다. 수익률 관리가 안 되니까 그들에게 술 사주고 밥 사주며 ‘커버’하는 건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습니다. 제가 아는 증권사 직원 중에 관리 자산만 3000억 원이 넘는 친구가 있어요. 수익률이 시장보다 항상 높으니까 그 친구 고객들은 ‘돈 찾아가라’고 할까 봐 외려 겁을 냅니다. 고객이 술을 사주고 밥 사줍니다.”


회사 얘기를 좀 해볼까요. IBK투자증권의 현안은 무엇입니까.
“올 들어 웰스매지니먼트(WM)와 투자은행(IB) 양 사업 부문 간 내부 시너지를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그 일환으로 지난달 IB영업 기능을 강조한 구로기업금융지점을 개설했으며, 유망 중소기업 벤처투자유치 합동설명회를 정기적으로 개최하고 있습니다. 또 중소기업 최고경영자를 대상으로 IB를 활용한 중소기업 자금조달 해법 핸드북도 발간하고요. 몇 년 동안 지점 쪽에 손실이 컸고 자본 잠식의 우려도 있었지만 다행히 전임 대표가 위기를 잘 넘겨주었습니다. 조강래 전 IBK투자증권 대표의 재임 기간인 2012 회계연도(2012년 4월~2013년 3월)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지요.”


말씀처럼 올해 2분기 영업이익이 35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3.8% 증가했습니다. 당기순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57.9% 증가했고요.
“조 전 대표가 기반을 많이 닦아 놓아 고맙게 생각합니다. 전임자가 친구였기 때문에 자신의 임기 동안 잘 된 부분과 놓친 부분, 앞으로 제가 이뤄나가야 할 부분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보통은 기업에서 CEO가 이임할 때 후임자가 전임자를 견제하거나 업적을 무시하는 경우가 많고 그 부분에서 큰 혼란이 빚어집니다. 그런 것은 옳지 않아요.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합니다. 저는 여전히 부족한 직원 교육이나 회사 자본 증식 등에 집중해 나갈 계획입니다.”
[SPECIAL INTERVIEW] “입소문으로 찾는 맛집 같은 증권사 만들겠다”
33년 업력의 투자 전략 및 리서치 전문가이신데요, 취임 후 다른 증권사 CEO들이 긴장하지 않나요.
“그렇게 평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제가 이만큼 성장해온 것은 혹독하게 공부하고 운도 따라준 덕분이지요. 제가 일선에서 일하던 1980~1990년대는 세계적으로 경제 상황이 좋은 시절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처럼 상황이 나빠도 투자의 대상은 늘 있기 마련입니다.”


증권가에서 ‘인재사관학교’로 불리는 대우경제연구소 출신이시죠. 김영호 트러스톤자산운용 대표, 김석중 현대인베스트먼트자산운용 사장, 윤재현 파레토투자자문 대표, 정유신 한국벤처투자 사장 등 당시 인맥들이 현재 금융권에서 맹활약하고 있습니다.
“연구소 시절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굉장히 열심히 했습니다. 1년 중 추석, 설날 당일 외에는 쉬지 못했고, 야근이라면 보통 새벽 2~3시 퇴근이 기본이었죠. 다음 날 아침 8시에 출근했고요. 단순 학술 연구를 넘어 실물경제를 지향한 연구를 했습니다. 그때 사내 토론 문화가 굉장히 활발했는데, 회의에 들어가면 소장부터 사원까지 계급 떼고 논리로 맞붙었어요. 그렇게 피 터지게 공부했기 때문에 지금 현직에서 대우경제연구소 출신들이 승승장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힘들었지만 무척 소중한 기회였어요. 그 시절의 장점들만 뽑아서 지금 IBK투자증권 경영에 접목하고 싶은 바람이 있습니다.”


요즘도 대우경제연구소 출신들이 모임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기억에 남는 분들이 있다면요.
“현직에서 떠난 분들도 많아요. 다들 대표이사를 맡고 있어 바쁘니 요즘엔 연말에 송년회 정도 합니다. 당시에 사람들을 가장 폭넓게 수용했던 사람이 이철순 와이즈에프엔 대표인데, 지금도 우리 모임의 구심점 역할을 하죠. 이한구 새누리당 의원도 대우경제연구소 출신인데 독하게 공부하기로 유명했습니다. 김창희 대우증권 전 사장도 카리스마가 아주 철철 넘쳤어요.”


증권가에 몸담으며 많은 CEO들을 보셨을 텐데요, 대표님은 어떤 CEO가 되고 싶습니까.
“냉혹한 정글 같은 조직에서는 자신이 힘들 때 도와주는 사람을 가장 믿고 따르게 되지요. 금융업에 있어서는 당장 자신의 영업 기반을 늘려주는 사람이 고맙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판단력을 키워주는 사람이 가장 고맙습니다. 일회성으로 ‘자금을 끌어다가 너한테 줄게’ 하는 것은 그 순간에는 좋지만 지속적이지 못합니다. 불특정다수에게 해줄 수도 없고요. 결국 CEO는 직원들이 프라이빗뱅커(PB)로서 지식 기반을 갖출 수 있도록 지속적인 도움을 주는 방법밖엔 없습니다. 누구든 사장실에 찾아와 스스럼없이 물어볼 수 있는 회사 분위기를 만들고 싶습니다. 우리 회사에는 금융, 세제와 관련된 학습동아리들이 있습니다. 몇 명씩 불러 제가 오전 6시 30분 정도부터 3시간씩 강의를 하고, 그들이 직접 리서치 자료를 작성해보게 한 뒤 발표를 시킵니다. 저녁에 특별한 일이 없으면 함께 소주잔도 기울입니다. 앞으로는 직원들의 지식을 채워주기 위한 라이브러리도 만들려고 합니다.”


굉장히 세심한 편이신 듯합니다.
“아닙니다. 저는 큰 틀에서 방향만 제시할 뿐입니다. 사장이 세세한 것까지 일일이 챙기면 직원들은 ‘열중쉬어’를 합니다. 어떤 일이 생기면 사장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거죠. 요즘 증권사들의 상황이 녹록지 않습니다만 그중에서 IBK투자증권을 믿고 찾는 브랜드로 만들어내는 것이 제 역할이자 소명입니다. 직원을 교육시키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고객 만족을 위한 것이지요. ‘여기에 오면 그래도 다른 데보다 나은 컨설팅을 받는다’ 이렇게 생각하도록 만들고자 합니다. 사람과 상품이 좋으면 고객은 저절로 찾아옵니다. 미래에셋증권이나 트러스톤자산운용도 입소문으로 성장해온 회사잖아요. 결국 음식이 맛있으니 손님들이 찾아오는 것이죠. 금융 역시 맛있는 음식과 수준 높은 점원, 최상의 서비스가 삼위일체를 이루어야 합니다.”
신성호 대표는… 1956년 충남 논산 출생으로 충남고, 고려대 통계학과 학사·석사를 마쳤다. 대우증권 투자전략부장과 동부증권 리서치센터장, 한국금융투자협회 경영전략본부장, 우리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 우리선물 대표 등을 역임한 증권 업계 ‘리서치 통’으로 통한다.
신성호 대표는… 1956년 충남 논산 출생으로 충남고, 고려대 통계학과 학사·석사를 마쳤다. 대우증권 투자전략부장과 동부증권 리서치센터장, 한국금융투자협회 경영전략본부장, 우리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 우리선물 대표 등을 역임한 증권 업계 ‘리서치 통’으로 통한다.
대담 신규섭 차장│정리 이윤경 기자 ramji@hankyung.com│사진 서범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