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발 경제 쓰나미...업종별 영향은

자동차 및 IT 위안화 원화 동반 약세 수혜...'유커' 관련 업종 타격 심각할 수도

<지난 8월 초 중국이 위안화 가치를 대폭 끌어내리면서 세계경제에 충격을 줬다. 중국의 선택은 특히 ‘시기’가 미묘했다. 지난 10년간 무제한의 돈 풀기를 감행했던 미국이 9월 금리 인상으로 달러화를 거둬들이기 시작할 것이라는 예상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은 글로벌 경제를 이끄는 G2의 파워게임이 시작됐다고 설명한다. 그렇지 않아도 지지부진한 한국 경제의 앞날은 이제 어떻게 될까. 신환율 전쟁의 산업별 영향을 꼼꼼히 짚어본다.>

중국 정부가 8월 11일부터 13일까지 3일간 위안화 환율을 약 4.66%나 끌어내렸다. 중국의 갑작스러운 위안화 평가절하를 놓고 국제 금융시장이 ‘발작’ 증상을 나타냈다. 전 세계 언론 매체의 헤드라인에는 일제히 ‘환율 전쟁(Currency War)’이 들어찼다. 이번 중국의 전격 평가절하 단행은 전례 없는 수준에다 예상하지 못한 것이기에 시장은 더 예민하게 반응했다. 미국 금리 인상이 임박한 상황에다 신흥국 통화가 요동치는 상황이어서 더 그랬다.
시장에서는 중국이 성장세 둔화에 맞서 위안화 가치를 일방적으로 떨어뜨리기 시작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위안화 가치를 낮추면 수출 경기를 부양할 수 있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세계 각국은 경쟁적으로 자국의 통화가치를 떨어뜨리는 환율 전쟁을 벌였다.
하지만 지금 당장 중국의 위안화 절하를 놓고 ‘환율 전쟁 2라운드’라고 결론 내리는 것은 섣부르다. 전쟁은 누가 개시했든 상대방 국가가 참전해야 성립되는 것인데 다른 나라들이 대응에 나설지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의 위안화 절하 후 의외로 국제통화기금(IMF)은 시장 환율에 맞춰 정책 환율을 조정한다는 중국의 ‘공식적 입장’에 “환영할 만한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미국 정부도 중국 정부의 설명을 정면으로 공격하지는 않는 모습이다. 미국 재무부는 “(시장 개입인지, 시장 친화적 조치인지) 판단하긴 이르다”며 코멘트를 유보했다. 이 같은 재무부의 코멘트는 지난 4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위안화에 대해 “상당히 저평가됐다”고 공격했던 것과는 크게 달라진 것이다.


위안화, 달러 대비 현재보다 5% 더 빠질 수도
이에 대해 한 국책연구소 연구원은 “위안화 절하에 대해 중국과 미국 간 교감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는 “미국 경제가 회복되고는 있지만 유로존이 어려운 상황에서 중국의 경기 둔화가 가속화되면 세계경제가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 있기 때문에 미국이 위안화 절하라는 특단의 수단을 동원해 경기를 떠받치려는 중국을 ‘양해’해 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종합하면 결국 세계경제의 회복을 염두에 두고 당분간 위안화 약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위안화가 어느 수준까지 하락할지 알기 어렵지만 최소 5%에서 10% 수준의 절하를 예상한다”며 “위안화 환율의 1일 변동 폭 확대를 계획하고 있는 것도 중국 통화 당국의 추가 절하 의지로 해석된다”고 설명했다.
이제 한국도 계산기를 두드려 봐야 할 때가 됐다. 최근 몇 년간 지지부진하던 한국 경제는 요즘 상황이 더 나빠졌다. 글로벌 거시경제 지표 분석 기관인 트레이딩 이코노믹스는 8월 20일 올해 세계 각국의 2분기 성장률을 공개했다. 한국의 2분기 성장률은 0.3%에 그쳐 지난해 4분기(0.3%)에 이어 금융 위기 국면이던 2009년 1분기(0.1%) 이후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위안화 약세에 따른 새로운 변수까지 등장한 것이다.
물론 위안화 절하가 장기적으로 국내 수출 기업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국내 주요 대기업 생산 기지가 대부분이 중국에 자리하고 있어 위안화 환율 조정이 내수 진작이나 수출 증대로 이어진다면 국내 진출 기업 또한 환율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해석이다. 2013년 기준 국내 대중국 수출 중 중간재 수출 비율은 73.2%로 추산된다. 즉 중국 수출 증가는 한국의 대중국 중간재 수출을 견인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다.
원화 역시 평가 절하된 위안화에 동조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긍정적 요인으로 꼽힌다. 실제로 중국이 위안화를 절하한 지난 8월 11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5.9원 급등했고 2차 조치가 이뤄진 12일에는 1190원대로 급등하며 3년 10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상재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원·달러 환율이 위안·달러 환율과 동조돼 원·위안 환율이 큰 폭으로 하락하지 않는다면 위안화 환율 하락이 우리 수출에 미치는 영향은 긍정적으로 전환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되면 환율 혜택을 본 업종은 상당한 수혜가 예상된다. 곽병열 현대증권 애널리스트는 “원화 약세 수혜주 및 중국 현지 생산 체제를 갖춘 자동차·정보기술(IT) 업종의 수혜를 예상한다”고 말했다.
최근 중국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는 자동차 업계는 위안화 평가절하를 오히려 반기는 분위기다. 성장률이 둔화된 중국 차 시장에 훈풍이 불 것으로 보이면서 중국에 진출한 완성차 업체들의 판매 실적이 개선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중국의 경기 부진과 토종 업체의 저가 공세에 대응하기 위해 인센티브를 늘리고 차 값을 깎고 있는 상황”이라며 “경기 활성화까지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중·장기적으로 판매를 늘릴 수 있는 호재인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대표적 자동차주인 현대차는 위안화 평가절하 이벤트가 시작된 지난 8월 11일부터 13일까지 3.30% 올랐다. 기아차도 같은 기간 5.02% 상승했다. 박정우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위안화 약세로 원·달러 환율이 동반 상승함에 따라 원화 약세 모멘텀을 확보할 수 있고 엔화의 추가 약세도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돼 자동차 업종이 수혜주로 부각됐다”고 설명했다.


원화 약세 때는 오히려 기회
의류 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OEM) 관련 업종의 수혜도 예상된다. 의류 OEM 제품은 주로 미국으로 수출돼 매출도 달러로 인식된다. 따라서 위안화 평가절하에 따른 원·달러 환율 동반 상승은 관련 업종의 실적을 높이는 데 긍정적이다.
IT 부문은 부정적 요인과 긍정적 요인이 상존하는 업종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완제품은 부정적, 부품은 긍정적이다. 유진투자증권은 TV·스마트폰·가전 등 선진국 시장에서 중국과 경쟁 중인 제품을 보유한 한국 IT 업체들은 위협 요인이 있다고 분석했다. 화웨이를 중심으로 한 중국 스마트폰 업체와 하이얼 등을 중심으로 한 TV 및 가전 업체들의 경쟁력이 부각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는 원화가 위안화와 함께 하락한다면 부정적 요인은 확실히 완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중국 완성품 업체들의 수출이 증가하면 핵심 부품을 공급하는 국내 IT 부품 업체들은 긍정적 효과를 보일 것으로 기대된다. 반도체·액정표시장치(LCD)·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을 공급하는 SK하이닉스·LG디스플레이·LG이노텍·삼성전기 등의 기업이 여기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번 조치로 중국의 경기가 활성화되면서 수출 규모 자체가 늘어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는 만큼 당분간 글로벌 시장에서 저렴한 가격을 내세우는 중국 토종 업체들과의 경쟁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다.
특히 화장품·면세점·항공 등 유커(중국인 관광객)와 관련된 소비재 업체들은 울상인 분위기다. 중국인들의 해외 소비가 국내 소비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중국 소비주이자 화장품 대장주인 아모레퍼시픽은 지난 8월 11일부터 13일까지 주가가 9.19% 빠지며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여행주도 중국인 여행객 감소 우려감에 일제히 하락세를 보였고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항공주도 약세를 면치 못하고 하락세를 기록했다. 위안화 약세에 따라 피해가 예상되는 업종으로는 이 밖에 중국 매출과 로열티 비중이 높은 업종인 음식료와 게임주 등이 꼽힌다.
물론 산업 전반에 대해 좀 더 비관적인 분석도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긍정적 요인은 점차 약화되는 반면 부정적 요인은 더 강화되고 있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즉 중국의 중간재 자급률이 높아져 위안화 평가절하에 따른 중국 수출 개선이 한국 수출을 견인하는 플러스 효과가 예전에 비해 반감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무역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2014년 기준 한국과 중국 간의 수출 경합도는 0.35다. 한국과 일본의 수출 경합도인 0.52에 비해서는 현저히 낮지만 2010년(0.29)과 비교하면 4년 만에 0.06이 높아졌다. 이치훈 국제금융센터 중국팀장은 “중국이 제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제조 2025’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한국 부품 소재 산업의 대중 경쟁력 우위가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다”며 “위안화 절하로 중국 경기가 살아나도 한국 수출이 예전만큼 늘어날지는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제조업 전반 흔들린다’ 비관론도
정유·화학 및 조선 등은 당장은 피해가 없지만 장기화되면 심각한 피해가 있을 수 있다. 중국의 기록적인 위안화 평가절하 자체가 중국 경기 침체의 심각성을 보여주고 있어 중국발 글로벌 수요 위축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위안화 가치가 하락하면 달러화가 강세를 보일 수 있어 국제 유가 하락을 부채질할 수 있다. 가뜩이나 최근 과잉공급 문제가 심각해져 국제 유가가 40달러 선까지 떨어졌는데 달러마저 강세를 보인다면 하반기 배럴당 30달러 선까지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LG화학 등 국내 석유화학 기업 역시 장기적 시각에서는 걱정이다. 위안화 평가절하에도 중국의 경기 부양책이 효과를 보지 못한다면 타격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정유 업계 관계자는 “원유 도입 등은 대부분이 달러로 결제하기 때문에 제품 가격 등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한다”면서도 “위안화 평가절하에 따라 중국의 수요 위축이 지속되면 시장도 악화되고 정제 마진 등이 떨어지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조선 및 철강 업체들은 규모에 따라 희비가 갈린다. 두 업종 모두 포스코와 현대제철,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 등 대기업들은 중국 업체들과 다른 제품들을 생산하고 있는 덕에 큰 우려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중소 철강 회사들과 중소형 조선사들은 이번 위안화 평가절하로 심한 타격을 받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포스코 등 대형 철강사들은 이미 저가 중국산 제품들에 범용 제품 시장의 대부분을 내준 상태에서 위안화 평가절하로 점유율을 더 빼앗길 게 없다는 판단이다. 범용 제품을 포기한 만큼 자동차 강판 등 고부가 제품군에서 확실히 입지를 굳히는 계기로 만들 것이라는 생각이다.
현대중공업 등 대형 조선사는 초대형 컨테이너선 위주여서 중국과 직접 경쟁하는 선종이 적고 기술과 품질에서 높은 평가로 받고 있어 위안화 평가절하로 원화 환율이 계속 오르면 실적 개선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두 업종의 중소형 업체들은 주력 생산품이 중국 제품들과 겹치기 때문에 가뜩이나 중국산 저가 제품에 시장점유율을 빼앗기고 있는데 위안화마저 약세를 보여 빼앗긴 점유율을 회복하기가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돋보기> 직격탄 맞은 동남아…달러 강세에 위안화 약세까지
미국 기준 금리 인상 전망에 바람 앞의 등불 신세이던 동남아가 이번에는 중국의 기습적인 위안화 평가절하 조치의 된서리까지 맞고 있다. 위안화 약세로 수출 경쟁력을 강화한 중국의 거센 저가 공세가 예상되고 달러화 강세에 예상 밖의 위안화 약세가 맞물리며 불어난 채무도 부담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위안화 절하의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보이는 곳은 베트남 철강 산업이다. 중국 경제 침체로 현지 수요가 줄어들자 베트남으로 수출처를 전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위안화 절하가 이어지면 영향은 더 커질 전망이다. 올 1~7월 베트남 철강 수입액은 작년 동기 대비 15% 늘었다. 베트남 이외에도 인도네시아 국영 철강 회사 크라카타우 스틸도 중국 상품 유입을 경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인도네시아 정부가 수입 규제를 강화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위안화 가치 하락으로 동남아 국가의 대중국 수출에도 역풍이 불 수 있다. 수출에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이는 기업으로는 말레이시아 팜유 업체 시메다비와 태국 최대 석탄 기업 반푸가 거론된다. 시메다비는 말레이시아 정부 계통의 유력 대기업이지만 환율 변동과 팜유 시세에 실적이 좌우되기 쉽다. 태국 반푸는 석탄 매출의 약 20%를 중국에서 거두고 있다. 회사는 위안화 평가절하가 단기적으로 불리해질 것이라고 인정했다. 하지만 중국 경제가 다시 상승곡선을 그리면 수요가 증가할 것이란 기대도 나타냈다.
위안화 평가절하로 아시아 각국 통화가 하락하며 상대적인 달러 강세가 이어진다면 달러 부채를 안고 있는 기업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전망도 나온다. 현지 통화로 환산된 상환액이 커지면서 실적 성장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통신 업체 XL액시아타는 지난 8월 14일 6월 말 기준 보유하고 있는 15억5500만 달러(약 1조8400억 원)의 부채 일부를 루피아로 상환하겠다고 밝혔다. 향후 3~6개월간 환율 위험성을 대폭 줄이겠다는 것이다. 달러 부채가 많은 항공 산업도 위험성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태국 타이항공은 지난 4~6월 결산에서 36억7900만 바트(약 1230억 원)의 환차손을 계상했다. 필리핀 기업 미구엘도 최근 페소 약세로 11억 페소(약 281억 원) 상당의 환차손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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