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버리, 베일리의 젊고 트렌디한 디자인으로 ‘히트’ [류서영의 명품이야기]

‘애수’ 로버트 테일러, ‘카사블랑카’ 험프리 보가트가 입은 트렌치코트, 쓸쓸함 자아내

[류서영의 명품이야기] 버버리 ②

사진=영화 ‘애수’ 에서 로버트 테일러(오른쪽)가 입은 트렌치코트. 출처 영화 ‘애수’


샤넬에 칼 라거펠트, 루이비통에 마크 제이콥스, 구찌에 톰 포드가 있었다면 버버리에는 크리스토퍼 베일리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라거펠트는 샤넬의 전통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해석으로 다양한 제품을 히트시켰고 제이콥스는 루이비통을 재해석하고 유명 아티스트들과 협업하며 150년 전통에 젊음을 불어넣었다. 구찌의 톰 포드는 지루한 구찌 제품에 현대적 감각의 섹시함을 제품에 녹여 냈고 버버리의 베일리는 캐주얼하면서도 영국적인 아이덴티티에 모던함을 더해 젊고 트렌디한 버버리를 탄생시켰다. 이런 결과는 엄청난 매출 신장으로 이어졌다.

베일리가 버버리에 합류하기 이전 버버리는 위기를 맞았다. 영국 왕실로부터 6번에 걸쳐 수출상을 수상하고 왕실의 지정 상인이었던 버버리는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기존의 변화없는 스타일, 비슷한 체크무늬 패턴의 전개, 트렌치코트·재킷 등의 단조로운 상품군은 나이든 사람들이 입는 중후한 이미지의 옷으로 굳어지면서 젊은층들이 외면했다.

또한 브랜드의 대중화 전략으로 소규모 상점 판매를 허용한 결과 명품 이미지 하락과 모조품 양산 등으로 인해 영국의 유명 백화점인 셀프리지(Selfridiges)·하비 니콜스(Harvey Nichols)·해롯(Harrods)에서도 버버리를 취급하지 않는 일이 발생했다.

‘버버리=체크무늬, 트렌치코트’ 등식 과감히 깨

사진=영화 ‘카사블랑카’에서 험프리 보가트(왼쪽)가 입은 버버리의 트렌치코트. 출처 영화 ‘카사블랑카’


위기의식을 느낀 버버리는 1997년 미국 삭스 피프스 백화점의 최고경영자(CEO)였던 로즈마리 브라보를 영입해 브랜드 이미지 개혁을 시도했다. 그녀는 먼저 ‘버버리=체크무늬, 트렌치코트’로 통하는 등식을 과감히 깨뜨리고 1999년 질 샌더의 수석디자이너였던 로베르토 메니체티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영입했다.

그녀는 버버리의 올드한 이미지를 버리고 모던하면서도 럭셔리한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새로운 컬렉션 라인인 버버리 프로섬(Burberry Prorsum, 프로섬은 라틴어로 ‘전진’이라는 의미)을 론칭했다. 또 ‘버버리스(Burberrys)’라는 브랜드 이름을 대문자로 바꾸고 S를 뺀 ‘버버리(BURBERRY)’로 변경했다.

2001년에는 구찌(Gucci)와 도나 카렌(Donna Karen)의 수석디자이너였던 크리스토퍼 베일리가 버버리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됐다. 베일리가 만든 버버리 트렌치코트는 이전의 클래식한 코트가 아니었다. 베일리를 영입하기 전 버버리의 트렌치코트는 체크무늬 위주의 베이지·브라운·네이비·레드·블랙 위주의 클래식한 느낌을 주는 상품이 주류였다. 하지만 베일리는 고유의 버버리 색상을 사용하면서 아이보리·옐로·골드·핑크·블루·그린 등 다양한 색상을 추가로 사용했고 젊은 연령층을 타깃으로 캐주얼한 스타일링과 동시에 트렌드를 접목했다.

그는 기본 버버리 체크에 핑크색을 사용한 캔디 체크무늬를 선보였고 하늘거리고 여성스러운 시폰 드레스에 굵은 체크무늬를 스타일링함으로써 전통과 현대 혹은 전통과 아방가르드가 결합된 영국 패션의 이중 구조를 확실하게 보여줬다. 이와 함께 영국적 펑크 문화에 모던함을 추가해 버버리는 다시 소비자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베일리는 버버리의 전통을 잘 살리면서도 잘게 자른 가죽, 금속 장식, 다양한 색상의 트렌치코트와 폴리염화비닐(PVC) 소재 등 이전의 버버리에서는 사용하지 않았던 새로운 소재를 사용해 실험적이면서 도전적이고 젊은 버버리의 모습을 갖춰 나갔다. 이에 따라 소비자들의 주목을 받았고 시각적 이미지도 강화했으며 시즌별 트렌드에 맞게 현대화 전략을 펼쳐 클래식을 재해석해 크게 성공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베일리는 2009년 버버리의 최고크리에이티브책임자(CCO)가 됐고 2014년 4월부터 버버리의 새로운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올랐다

트렌치코트, 할리우드 주인공 통해 대중화

사진=영화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의 메릴 스트립이 입은 버버리코트. 출처 영화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


트렌치코트는 영화 속 인물들의 독특한 캐릭터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전장에서 입은 트렌치코트는 자연스럽게 할리우드 영화들의 우수 어린 분위기의 남자 주인공 또는 성공한 여성의 이미지를 상징하는 패션 아이템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1949년 개봉된 영화 ‘카사블랑카’에서 주인공 험프리 보가트가 중절모를 쓰고 버버리의 트렌치코트를 입은채 사랑하는 연인 잉그리드 버그만이 비행기에 오른 뒤 한동안 바라보는 명장면은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다. 1952년 개봉된 영화 ‘애수(Waterloo Bridge)’에서 남자 배우 로버트 테일러가 차에서 내려 워털루 다리 난간으로 가 슬픈 사랑의 추억을 회상할 때 입었던 트렌치코트는 쓸쓸한 분위기와 너무나 잘 어울렸다.

1962년 개봉된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는 오드리 헵번이 비 오는 날 고양이를 찾는 장면에서 멋진 트렌치코트를 입고 나와 또 한 번 크게 유행했다. 1980년 개봉된 영화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의 메릴 스트립, 1986년 개봉된 영화 ‘나인 하프 위크’의 킴 베이싱어는 스타일리시한 트렌치코트를 보여줬다.

할리우드 배우들에 의해 대중적인 패션 아이템이 된 트렌치코트는 1950년대 무렵부터 일상복으로 자리 잡았다. 버버리뿐만 아니라 영국 브랜드 런던포그, 아쿠아스큐텀 등의 클래식 브랜드에서 실용적인 스타일의 트렌치코트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1950년대에 접어들면서 벨트로 강조한 허리와 그 아래로 넓게 퍼지는 실루엣으로 변모한 트렌치코트는 1960년대의 미니 열풍을 만나 짧은 길이의 경쾌한 디자인으로 바뀌었다. 1970~1980년대에는 일하는 직장 여성들의 통근용 외투로 도회적인 스타일의 박스형이 주류를 이뤘다. 1990년대 이후부터 여성복에서 트렌치코트는 디테일·소재·컬러에서 다양한 변화를 가져 왔다.

버버리의 창립자인 토마스 버버리는 이렇게 말했다. “영국이 낳은 것은 의회민주주의와 스카치위스키 그리고 버버리 코트다.”
자료참조=burberry.com
류서영 여주대 패션산업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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