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데믹 시대 고객 사로잡는 오프라인 공간들
공간 브랜딩을 위한 ‘브랜드 C·P·R’ 전략 3요소
“경험되지 않은 제품은 구매되기 어렵다.” 마케팅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필립 코틀러가 남긴 말이다. 브랜드가 고객에게 인식되고 그 이미지가 브랜드의 성장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인상 깊은 경험이 필수적으로 수반돼야 한다는 뜻이다.
코로나19 사태 종식 이후 진행된 영국 트렌드 정보 업체 스타일러스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 소비자의 34%가 온라인 전용 브랜드에 불신을 갖고 있고 미국 Z세대 중 81%에 달하는 소비자들은 오프라인 매장을 통해 새로운 제품을 접한다고 답변했다.
소매 매출의 45.3%가 디지털 거래인 중국이란 메가 마켓을 제외하면 오프라인 리테일의 비율이 전체 영업 활동의 87.5%를 차지하며 여전히 오프라인 공간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온라인의 편리함을 뒤로한 채 다시 오프라인의 세계로 발길을 돌리는 소비자들에게 브랜드 공간은 몰입이 있는 경험을 제공하고 각 브랜드만의 정체성과 메시지를 전달하는 창구가 된다.
그렇다면 브랜드는 이곳에 무엇을 담아야 소비자들을 팬으로, 지속적인 소통의 대상으로 이어 갈 수 있을까. 성공적인 공간 브랜딩을 위한 3가지 요소인 ‘브랜드 C·P·R(Contents·People·inteRaction)’을 사례와 함께 알아보자.
2만여 개 스니커즈로 도시에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은 ‘MTZ BLOK 70’
나이키는 스포츠 강국 세르비아의 수도이자 7000년의 깊은 역사를 지닌 도시 베오그라드에 새로운 레크리에이션 파크 ‘MTZ 블록(BLOK) 70’를 오픈했다.
나이키가 2020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지속 가능성 이니셔티브 ‘무브 투 제로(Move to Zero)’의 일환이다. 베오그라드 지역 사회에서 기증받은 2만여 개의 운동화를 활용해 업사이클링 농구장과 운동장을 구축한 이 프로젝트의 결과물은 단순한 동네 공원이나 놀이터가 아니다.
세르비아 출신의 전설적인 농구 선수들이 키워 온 스포츠 정신에 지속 가능성이란 이니셔티브를 입혀 지역 주민 모두가 자유롭게 스포츠를 즐기면서도 기후 위기 등 지속 가능성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이 프로젝트의 비주얼 디자인을 맡은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어셉트&프로그레스는 뉴 베오그라드의 지역 사회를 기념하기 위해 맞춤형 세르비아 문자를 코트 마크에 통합하고 이를 나이키의 MTZ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한 시각적 언어로 발전시켰다.
주목할 점은 시에서 제공받은 기존 피트니스 장비와 공원의 기구들에 대담한 네온 색상을 적용해 블록 70의 전체적인 분위기에 활력을 불어넣은 것이다. 지표면의 그래픽 디자인 요소로는 스포츠 활동에 종종 활용되는 줄무늬의 경고 표시가 네온 컬러로 구현됐는데, 이는 MTZ 이니셔티브의 핵심이기도 한 기후 변화와 세계 기후 위기의 긴급성에 대한 환기이기도 하다.
나이키는 이곳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했을까. 첫째, 지역에 이어져 온 스포츠 정신(Contents)이다. 스포츠 강국으로서 이어 온 이 정신을 나이키는 농구 코트와 놀이 공간이라는 콘텐츠의 바탕으로 활용해 공간을 채워 냈다.
둘째는 사람(People)이다. 이 열린 공간들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모이도록 해 잊혀 가던 공원을 새로운 레크리에이션 파크로 변모시켰다.
셋째, 시민과 시민, 소비자와 나이키 사이의 상호작용(inteRaction)이다. 이곳은 지역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커뮤니티를 이뤄 소통하고 나이키가 세상에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기능적으로 또 시각적으로 발산하는 공간이다.
즉 MTZ 블록 70를 통해 나이키가 구현하고자 한 것은 단순한 놀이 공간이 아닌 지역 사회의 새로운 에너지원이자 나이키의 메시지와 철학을 전하는 생생한 경험이다.
베를리너들이 새로운 서브 컬처를 찾아 모여드는 ‘PLATTE BERLIN’
현재 베를린에서 가장 핫한 지역인 미테지구, 그중에서도 젊은 에너지가 빠르게 모여들고 다시 확산되는 공간이 있다. 패션 브랜드 PLATTE BERLIN의 매장이다.
2021년 오픈한 이 공간은 베를린의 로컬 패션 브랜드와 디자이너들의 제품들을 기반으로 한 편집숍이다. 자신들만의 업사이클링 의류 레이블과 함께 지역의 신진 디자이너들을 지원하고 육성하는 인큐베이터의 역할을 해 오고 있다. 단순한 의류 매장을 넘어 패션과 이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서브 컬처가 공존하는 문화 공간으로 지속적으로 확장되고 있다.
공간의 구성을 살펴보면 다양한 로컬 브랜드의 의류들이 디스플레이된 벽 뒤에는 4가지 타입의 촬영 스튜디오가 자리 잡고 있다.
자신의 작품을 촬영할 공간이나 장비가 부족한 아마추어 디자이너들에게 새롭게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이 돼 주는 이 스튜디오들은 그들의 독특한 개성만큼이나 차별화된 콘셉트를 지니고 있다. 신선한 공간 구성을 바탕으로 이 매장에 사람들이 모여드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사람들의 관심사와 취향을 관통하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PLATTE 웹사이트의 캘린더 탭은 매주, 매시간이 흥미로운 주제들로 꽉 들어차 있다. 업계 종사자뿐만 아니라 패션에 관심 있는 모든 사람이라면 참여할 수 있는 정기적인 네트워킹 행사부터 각 분야의 아티스트들과 함께하는 워크숍과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강연까지 PLATTE BERLIN 매장은 언제나 새로운 에너지와 아이디어가 합쳐지고 나눠지며 이전에는 없던 또 다른 문화들을 생성해 가고 있다.
스타일러스에 따르면 유럽의 젊은 소비자 중 70%는 쇼핑이 곧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PLATTE는 자신들의 제품을 앞세우기보다 브랜드가 제공하고자 하는 경험을 누려야 할 주체, 사람(People)에 먼저 집중한다.
그들이 나누고자 하는 혹은 궁금해하는 콘텐츠(Contents)를 토크쇼·파티·강연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낸다. 이렇게 자기만의 공간에서 자신만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일어나는 다양한 상호작용(inteRaction)은 브랜드만의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내고 다양한 서브 컬처를 갈구하는 베를리너들을 모여들게 한다.
성공적인 공간 브랜딩의 핵심이 되는 브랜드 C·P·R은 단순히 브랜드의 재활성화나 리브랜딩에 관한 용어가 아니다. 본래 CPR은 심장에 전해지는 힘을 통해 혈액을 온몸으로 전달하는 행위를 뜻하는 의학 용어지만 인터브랜드는 이를 공간 브랜딩에 빗대 정의하고자 한다.
전략적인 움직임을 바탕으로 공간을 채우는 ‘콘텐츠’를 기획하고→그곳에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모여들게 해→사람과 사람, 소비자와 브랜드 간의 ‘상호작용’을 이뤄 내도록 하는 것 그리고 마침내 브랜드가 전파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시장과 소비자의 마음에까지 닿는 것이 인터브랜드가 새롭게 정의하는 브랜드 C·P·R이다.
브랜드 C·P·R은 브랜드에게는 첫 박동이 시작되는 한 줌의 호흡이 되고 수많은 브랜드가 발신하는 정보와 메시지로 지친 고객들에게는 신선하고도 새로운 자극이 된다. 공간 브랜딩으로 도약을 꿈꾸는 모든 브랜드가 꼭 기억해야 할 이 시대의 전략이다.
인터브랜드 한국법인 이예지 책임 디자이너·권기태 선임 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