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금리인하를 망설이냐면”…이창용 한은 총재, 작심 발언의 이유는

[비즈니스 포커스 1-3]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8월 27일 최근 한은의 금리 동결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진 것과 관련해 “왜 금리인하를 망설여야 할 만큼 높은 가계부채와 수도권 부동산 가격과 같은 구조적 문제에 빠지게 됐는지에 대한 성찰은 부족해 보인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로부터 “금리 결정은 금통위의 고유 권한이지만 내수 진작 측면에서 보면 아쉬움이 있다” 등의 비판이 나온데 대해 정면반박한 것으로 보인다.

이 총재는 이날 오후 서울대에서 열린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한은 공동 심포지엄’ 폐회사에서 “구조적인 제약을 계산하지 않고 단기적으로 고통을 줄이는 방향으로 통화 재정 정책을 수행한다면 부동산과 가계부채 문제는 지난 20년과 똑같이 계속해서 나빠지는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라며 정부와의 거시 건전성 정책 공조뿐 아니라 문제의 근저에 있는 입시 경쟁과 수도권 집중과 같은 구조적 문제 개혁을 해야할 때라고 말했다. 다음은 이 총재의 폐회사 주요 발언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앞줄 왼쪽부터 넷째)가 8월 27일 서울 신림동 서울대학교 우석경제관에서 열린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한국은행 공동 심포지엄’에서 지역균형발전 정책과 교육정책의 패러다임 변화에 대한 발표 내용을 경청하고 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한국은행은 통화정책을 담당하는 기관이지만 최근에는 국가의 싱크탱크로서 우리가 직면한 장기 과제들을 연구하고 대응 방안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오늘은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저출생 문제의 중요한 원인으로 여겨지는 수도권 집중과 입시 문제를 어떻게 완화할 수 있는지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한국은행이 장기 구조 개혁에 관심을 두는 것은 저희가 단기적으로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도 이 장기 문제가 무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들이 지난 수십 년간 누적되면서 이제는 통화정책과 재정정책 같은 정부의 단기 거시경제 정책에도 그 선택을 제약하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생각합니다.

지난주(8월 22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는 기준금리를 현 수준인 3.5%로 유지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어렵고 많은 토론을 통해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저희가 금리인하를 너무 늦게 할 경우 내수 회복이 지연되면서 성장 모멘텀이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했지만 현 상황에서는 금리인하가 부동산 가격을 상승시키고, 그로 인해 가계부채가 크게 늘어나며 변동성을 확대시키고 외환시장에도 영향을 줄 위험이 크기 때문에 이번에는 금리를 동결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안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금통위 결정이 있은 이후에 당연히 이것이 옳은 결정이었는지 여러 군데서 갑론을박이 있었고, 저는 그 의견들이 다 타당하며, 저희가 주어진 의견을 다시 한번 검토하면서 미래 결정을 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그 결정이 내려졌는지 아니었는지에 대한 논쟁에 집중하기보다 왜 우리가 이 결정을 하게 되었는지, 왜 금리인하를 망설여야 할 만큼 가계부채와 수도권 부동산이라는 늪에 빠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성찰은 부족한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04년 57% 수준에서 2021년까지 거의 20년 동안 모든 정부에서 지속적으로 상승해 왔습니다. 과거에도 가계부채가 어느 수준 이상으로 상승하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경기가 어려워지면 자신의 정부 임기 내에서는 가계부채를 줄이기 위한 노력보다는 다음 정부로 미루는 것이 더 편한 선택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한 정부만이 그 이유가 아닙니다. 이렇게 가계부채를 조정하려 하면 국민들이 고통을 수반하게 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데, 그에 대한 반감이 크기 때문에 그냥 하지 말자는 요구에 부응한 것이 어쩌면 무리 없는 정책 결정이었을 것입니다.

부동산 가격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지금 고민하고 있는 것은 왜 우리나라의 수도권 부동산 가격은 어떤 정책을 해도 떨어지지 않고, 조금만 외부 충격이 있으면 급격히 상승하는 구조가 형성되었나 하는 문제입니다.

이번 사례에서도 5월까지 저희가 자료를 볼 때 서울 부동산 가격이 크게 올라간다는 신호를 보지 못했는데 6월 이후로 급격히 상승하는 패턴이 다시 일어났습니다.

저는 이런 것이 수도권 부동산, 특히 강남 부동산에 대해서 항상 초과 수요가 상시 잠재해 있는 구조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그런 수요의 근저에는 입시 경쟁이 깊게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입시 경쟁이 치열해지고 사교육이 중요해지다 보니 자녀가 학교 갈 나이가 되면 서울로, 또 강남으로 이사하려 하고 주택 구입이 어려우면 전세라도 해서 학원을 다니려고 합니다. 그 후 그 자녀들이 대학에 입학하고 나면 또 다음 세대가 똑같은 목적으로 진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런 초과 수요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아무리 보유세 등 세제나 다른 정책으로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려 해도 집주인의 입장에서는 전셋값을 인상해 일부를 전가하면 그뿐이기 때문에 이 문제는 해결이 어렵고, 또 자녀가 대학에 진학한 이후에는 부모가 관심을 갖지도 않습니다.

교육열에서 파생된 끝없는 수요가 강남 부동산 불패의 신화를 고착시키고,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가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의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구조적인 제약을 고려하지 않고 단기적으로 고통을 줄이는 방향으로 통화 및 재정정책을 수행한다면 부동산과 가계부채 문제는 지난 20년과 똑같이 계속해서 나빠지는 악순환이 계속될 것입니다.

이번 금통위의 결정은 한 번쯤은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사실에 대한 경각심을 주고 이번 정부가 지난 20년의 추세를 처음으로 바꿔 주는 정부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와의 거시 건전성 정책 공조뿐만 아니라 문제의 근저에 있는 입시 경쟁과 수도권 집중 같은 구조적 문제의 개혁도 동반돼야 할 것입니다.

서양 속담에 “해가 날 때 지붕을 고쳐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경제가 좋을 때 가만히 있지 말고 어려운 구조조정을 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되돌아보면 수십 년간 증가해 온 가계부채, 반복되는 부동산 문제, 미진한 연금 및 노동개혁 등을 볼 때 우리는 해가 났을 때에도 구조조정하기보다는 손쉬운 재정과 통화정책을 통해 임시방편으로 위기를 모면하고 고통이 수반되는 구조조정은 미뤄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안타까운 점은 이제 우리에게는 해가 날 때를 기다려 구조적 개혁을 추진할 여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전 세계 최상위 수준으로 높아진 가계부채가 계속해서 증가했다가는 수요 부족으로 인해 경제 성장률이 낮아지는 수준을 넘어 그보다 더 높아지면 장기적으로 금융위기가 오지 않을 것이라는 장담을 하기 어렵습니다.

높아진 수도권 부동산 가격도 국민들 간의 위화감, 나아가 사회적 갈등을 초래하는 수준이 되었습니다. 특히 이런 부동산 거품이 터졌을 때 생길 수 있는 경제위기로 인해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게 될 가능성도 고려해야 합니다.

지금은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태풍만 아니라면 날씨가 흐려도 지붕을 고쳐야 하는, 즉 단기 경제정책과 함께 구조개혁도 고통이 따르더라도 함께 추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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