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하 장교에게 자신의 빨래와 택배까지 시키는 등 업무와 관계없는 일로 부려 먹은 직속상관이 징계를 받았다.
춘천지법 행정1부(김병철 부장판사)는 ㄱ씨가 육군 모 사단장을 상대로 낸 근신처분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했다고 22일 밝혔다.
포병대장을 맡은 대위 ㄱ씨는 2020년 1∼5월 부하 장교 ㄴ씨에게 장난을 빙자해 주먹으로 10여 차례 때렸다.
또 2019년 12월 중순 저녁께 야근 중인 ㄴ씨에게 "내 차 방전될까 봐 시동 켜놓았으니까 새벽에 시동 꺼"라고 시켰고, 보름여 뒤에는 전투복 등이 담긴 세탁망을 건네며 "당직 때 내 빨래해놔"라고 지시했다.
2020년 7월 전투복과 아내의 짐을 택배로 보내라고 시키는가 하면, 저녁에 숙소에서 쉬고 있던 ㄴ씨에게 중국집에서 양장피와 소주를 사 오라는 심부름을 시켰다.
ㄱ씨의 부당한 지시는 지속됐다.
2020년 1∼3월 ㄴ씨가 거부 의사를 밝혔음에도 음주 회식에 동석을 강요하면서 "포대장이 하자면 다 하는 거다. 나 때는 술상 봐오라고 하면 안주하고 다 세팅해서 갔다"며 10여회에 걸쳐 참여시켰다.
이 일로 '근신 7일' 징계받은 ㄱ씨는 징계 항고를 제기했으나 기각되자 행정소송을 냈다.
ㄱ씨는 법정에서 "폭행한 적이 없고, 차량 시동을 끄도록 지시하거나 개인 세탁을 지시한 적도 없으며, 택배 부탁을 자발적으로 들어준 것일 뿐 강요하거나 부당하게 지시한 것이 아니다"고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재판부는 부대 내 동료들이 ㄱ씨가 ㄴ씨를 폭행하는 이야기를 병사들로부터 전해 들었거나 직접 목격했다는 진술을 토대로 폭행한 사실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비위행위의 발생 경위와 내용, 지속성, 피해자가 처해있던 상황, 반응 등에 비추어 볼 비행의 정도를 결코 가볍게 평가할 수 없음에도 가벼운 징계처분을 받았다"며 징계처분은 적법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어 "계급이 낮은 다른 군인에게 폭행, 사적 지시 등을 하는 것은 장병들의 사기를 저하하고 군 기피 현상을 유발해 국방력 저하라는 심각한 문제를 초래한다"며 "이 사건 처분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기강 확립과 선진 병영 문화 정착 등의 공익이 원고가 입게 될 불이익에 비하여 작다고 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한편, ㄱ씨는 근신 7일 징계와 같은 사유로 보직해임 징계까지 받았다. 이에 불복해 포병여단장을 상대로도 행정소송을 냈으나 1심에서 패소해 항소심에서 또다시 징계처분의 적법성을 두고 다투고 있다.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