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넬로 쿠치넬리, 자연에서 영감 얻어 우아·세련·편안함 추구[류서영의 명품 이야기]
입력 2024-11-12 10:17:18
수정 2024-11-12 10:17:31
류서영의 명품이야기=브루넬로 쿠치넬리①
한 럭셔리 매거진에서 2024년 3월 업계 관계자 200명을 대상으로 국내 럭셔리 산업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다. 그 결과 현재 럭셔리 시장에서 가장 영향력 높다고 생각하는 연령층은 30대가 43%로 1위, 40대가 37%로 2위, 20대가 13%로 3위, 50대가 5%로 4위를 각각 나타냈다. 반면 현재 럭셔리 시장에서 가장 구매력이 높다고 생각하는 연령층은 40대가 53%로 1위, 30대가 28%로 2위, 50대가 15%로 3위, 20대가 3%로 4위로 나타났다.
브랜드 선호도 조사에서는 역사와 전통을 중요시 여겼으나 실제 구매에서는 디자인이 으뜸으로 꼽혔다. 가장 럭셔리하다고 생각하는 패션 브랜드 1위는 에르메스, 2위는 샤넬, 3위는 로로피아나, 4위는 디올, 5위는 루이비통, 6위는 브루넬로 쿠치넬리가 차지했다. 조용한 럭셔리와 함께 우아함과 편안한 이미지의 로로피아나와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로고 플레이를 하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다른 명품브랜드에 비해 역사가 그리 길지 않다.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이탈리아의 명품 패션 브랜드로 1978년에 설립되었다. 이 브랜드는 창립자 브루넬로 쿠치넬리+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으며 이탈리아 움브리아 지역의 솔로메오 성에서 시작되었다.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24살 때 스포츠웨어 회사에서 모델로 고용되면서 패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는 항상 멋진 옷을 입고, 패션 잡지를 읽었으며, 최신 트렌드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 이런 식으로 그는 점차 미래로 나아갔고 25살 때 현대적인 스타일에 맞춰 여성만을 위한 컬러 캐시미어 스웨터를 만들고 싶어했다.
비싸지만 과하지 않은 ‘절대적 사치’
결국 그것은 매우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나타났다. 그는 이탈리아 장인 정신과 수작업 기술을 반영한 고품질 의류를 생산하기로 마음먹었다. 확실히 비싸지만 과하지 않은 품목으로 ‘절대적인 사치’라는 명분 아래 디자인했다. 그는 특별한 것을 하려면 평생의 꿈인 하나의 프로젝트에 집중해야 한다고 믿었다. 브루넬로 쿠치넬리 브랜드의 디자인은 우아하고 세련된 동시에 편안함을 추구하며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색상과 질감을 특징으로 한다.
브루넬로 쿠치넬리의 캐시미어 색상에 대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염색 공장에 가서 처음으로 알레시오를 만났다. 알레시오는 당시 캐시미어 염색의 가장 위대한 전문가 중 한 명이었다.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그에게 여성용 캐시미어 스웨터 여섯 개를 가져왔고 너무 밝지 않은 여섯 가지 다른 색상으로 염색해 달라고 부탁했다. 처음에 그의 날카로운 대답은 “이런 색상으로 캐시미어를 염색하는 건 미친 짓”이라고 했다.
오전 내내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그를 설득하려고 애썼고 부탁한 대로 해달라고 간청했다. 결국 그에게서 “한번 해 봅시다. 하지만 결과는 보장할 수 없어요”라는 답을 얻었다. “이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다”고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회고했다.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페데리카와 결혼해서 솔로메오에 있는 그녀의 집에서 살았다. 당시 페루자 교외에 있던 작은 공장을 새로운 본사로 이전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고 솔로메오를 떠올렸다. 이 작고 오래된 마을이 이렇게 황폐해지고 방치되는 것을 참을 수 없었고 어느 날 본능적으로 탑과 중세 성을 사보려고 생각했다. 그는 오랜 역사의 흔적이 있는 건물들에 매료되었다.
브루넬로 쿠치넬리에게 일어난 일 중에서 삶의 의미를 가장 잘 상징하는 상황 중 하나는 솔로메오 성(사진①) 매수를 위한 협상이었다. 당시 그는 아직 청년이었으나 크고 진지한 노력으로 성주를 설득했다. 성을 온전히 보존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인류의 이익을 위한 장소로 바꾸고 싶어한다는 브루넬로 쿠치넬리의 강한 의지를 이해하고 성주는 성을 팔기로 동의했다. “내 꿈은 그의 꿈이었습니다. 크고 비전적인 꿈이었습니다. 아마도 그는 나에게서 자신이 더 이상 추구할 수 없는 것을 추구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보았을 것입니다. 그는 그것을 추구할 힘이나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그것을 추구할 수 없었고 그는 나를 걱정했습니다.”
중세 솔로메오 성 매입해 본사로
성을 구입함으로써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세 가지 핵심 목표를 달성했다. 첫째, 매력이 넘치는 아름다운 고대 유적지에서 일할 수 있었고, 둘째는 산업 시설이 아닌 기념비적인 건물을 가질 수 있었다. 셋째, 요새와 마을을 복원할 수 있었는데 복원하면 향후 20년 동안 경제적 가치가 크게 상승하고 삶의 질이 향상된다는 것이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작은 마을에서 사는 것을 싫어했다. 경제적, 사회적으로 더 나은 생활 조건을 기대하며 도시로 이주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정반대로 했고, 게다가 회사는 그가 솔로메오 마을에 대한 열정을 품은 만큼 같은 속도로 계속 성장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마을의 재탄생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이것을 회사와 솔로메오를 위한 그의 프로젝트의 시작으로 보았다. 그런 다음 그는 산업과 그 가치에 대한 생각을 어떻게 전달할지 고민했다.
패션 잡지에 게재한 작은 광고는 이탈리아 문화, 마을 생활, 존엄성, 존중, 교육, 친절, 역사적 장소의 보호 가치를 나타내는 주제에 초점을 맞췄다. 그는 1996년 5월 프란치스코회 수사이자 그의 절친한 친구인 괄티에로 신부, 모델 레티치아, 그리고 페루자 근처 몬테리피도의 프란치스코회 수도원에 있는 귀중한 도서관에 있는 몇 권의 고대 책을 보고 있는 그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공개했다. 그는 그 순간의 긍정적인 분위기를 표현하는 아름다운 주제를 생각해냈다. 그 광고에는 ‘우리에게 새로운 휴머니즘이 필요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작은 마을에서 복원 작업이 완료되었다. 주민들의 삶의 질은 향상되었고 중세 성에서 사람들은 즐겁고 친근한 근무 환경에서 일했다.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 근로자 사이에 보수 차이가 없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했고, 장인 기술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평균보다 약간 더 높은 임금을 주는 것이 공평하다고 생각했다. 3개월마다 회의를 열어 일반적인 회사 문제에서 가장 사소한 세부 사항까지 모든 것을 논의했고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모든 측면을 분석했다. 근무는 오전 8시에 시작되었고 누구든 출근이나 퇴근 시간을 기록할 필요가 없었고 5시 30분에 퇴근했다. 이런 것들이 그가 생각하는 공정하고 보편적으로 타당한 개념이었다.
자료 출처: brunellocucinelli com
류서영 여주대 패션산업과 교수
한 럭셔리 매거진에서 2024년 3월 업계 관계자 200명을 대상으로 국내 럭셔리 산업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다. 그 결과 현재 럭셔리 시장에서 가장 영향력 높다고 생각하는 연령층은 30대가 43%로 1위, 40대가 37%로 2위, 20대가 13%로 3위, 50대가 5%로 4위를 각각 나타냈다. 반면 현재 럭셔리 시장에서 가장 구매력이 높다고 생각하는 연령층은 40대가 53%로 1위, 30대가 28%로 2위, 50대가 15%로 3위, 20대가 3%로 4위로 나타났다.
브랜드 선호도 조사에서는 역사와 전통을 중요시 여겼으나 실제 구매에서는 디자인이 으뜸으로 꼽혔다. 가장 럭셔리하다고 생각하는 패션 브랜드 1위는 에르메스, 2위는 샤넬, 3위는 로로피아나, 4위는 디올, 5위는 루이비통, 6위는 브루넬로 쿠치넬리가 차지했다. 조용한 럭셔리와 함께 우아함과 편안한 이미지의 로로피아나와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로고 플레이를 하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다른 명품브랜드에 비해 역사가 그리 길지 않다.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이탈리아의 명품 패션 브랜드로 1978년에 설립되었다. 이 브랜드는 창립자 브루넬로 쿠치넬리+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으며 이탈리아 움브리아 지역의 솔로메오 성에서 시작되었다.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24살 때 스포츠웨어 회사에서 모델로 고용되면서 패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는 항상 멋진 옷을 입고, 패션 잡지를 읽었으며, 최신 트렌드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 이런 식으로 그는 점차 미래로 나아갔고 25살 때 현대적인 스타일에 맞춰 여성만을 위한 컬러 캐시미어 스웨터를 만들고 싶어했다.
비싸지만 과하지 않은 ‘절대적 사치’
결국 그것은 매우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나타났다. 그는 이탈리아 장인 정신과 수작업 기술을 반영한 고품질 의류를 생산하기로 마음먹었다. 확실히 비싸지만 과하지 않은 품목으로 ‘절대적인 사치’라는 명분 아래 디자인했다. 그는 특별한 것을 하려면 평생의 꿈인 하나의 프로젝트에 집중해야 한다고 믿었다. 브루넬로 쿠치넬리 브랜드의 디자인은 우아하고 세련된 동시에 편안함을 추구하며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색상과 질감을 특징으로 한다.
브루넬로 쿠치넬리의 캐시미어 색상에 대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염색 공장에 가서 처음으로 알레시오를 만났다. 알레시오는 당시 캐시미어 염색의 가장 위대한 전문가 중 한 명이었다.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그에게 여성용 캐시미어 스웨터 여섯 개를 가져왔고 너무 밝지 않은 여섯 가지 다른 색상으로 염색해 달라고 부탁했다. 처음에 그의 날카로운 대답은 “이런 색상으로 캐시미어를 염색하는 건 미친 짓”이라고 했다.
오전 내내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그를 설득하려고 애썼고 부탁한 대로 해달라고 간청했다. 결국 그에게서 “한번 해 봅시다. 하지만 결과는 보장할 수 없어요”라는 답을 얻었다. “이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다”고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회고했다.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페데리카와 결혼해서 솔로메오에 있는 그녀의 집에서 살았다. 당시 페루자 교외에 있던 작은 공장을 새로운 본사로 이전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고 솔로메오를 떠올렸다. 이 작고 오래된 마을이 이렇게 황폐해지고 방치되는 것을 참을 수 없었고 어느 날 본능적으로 탑과 중세 성을 사보려고 생각했다. 그는 오랜 역사의 흔적이 있는 건물들에 매료되었다.
브루넬로 쿠치넬리에게 일어난 일 중에서 삶의 의미를 가장 잘 상징하는 상황 중 하나는 솔로메오 성(사진①) 매수를 위한 협상이었다. 당시 그는 아직 청년이었으나 크고 진지한 노력으로 성주를 설득했다. 성을 온전히 보존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인류의 이익을 위한 장소로 바꾸고 싶어한다는 브루넬로 쿠치넬리의 강한 의지를 이해하고 성주는 성을 팔기로 동의했다. “내 꿈은 그의 꿈이었습니다. 크고 비전적인 꿈이었습니다. 아마도 그는 나에게서 자신이 더 이상 추구할 수 없는 것을 추구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보았을 것입니다. 그는 그것을 추구할 힘이나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그것을 추구할 수 없었고 그는 나를 걱정했습니다.”
중세 솔로메오 성 매입해 본사로
성을 구입함으로써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세 가지 핵심 목표를 달성했다. 첫째, 매력이 넘치는 아름다운 고대 유적지에서 일할 수 있었고, 둘째는 산업 시설이 아닌 기념비적인 건물을 가질 수 있었다. 셋째, 요새와 마을을 복원할 수 있었는데 복원하면 향후 20년 동안 경제적 가치가 크게 상승하고 삶의 질이 향상된다는 것이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작은 마을에서 사는 것을 싫어했다. 경제적, 사회적으로 더 나은 생활 조건을 기대하며 도시로 이주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정반대로 했고, 게다가 회사는 그가 솔로메오 마을에 대한 열정을 품은 만큼 같은 속도로 계속 성장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마을의 재탄생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이것을 회사와 솔로메오를 위한 그의 프로젝트의 시작으로 보았다. 그런 다음 그는 산업과 그 가치에 대한 생각을 어떻게 전달할지 고민했다.
패션 잡지에 게재한 작은 광고는 이탈리아 문화, 마을 생활, 존엄성, 존중, 교육, 친절, 역사적 장소의 보호 가치를 나타내는 주제에 초점을 맞췄다. 그는 1996년 5월 프란치스코회 수사이자 그의 절친한 친구인 괄티에로 신부, 모델 레티치아, 그리고 페루자 근처 몬테리피도의 프란치스코회 수도원에 있는 귀중한 도서관에 있는 몇 권의 고대 책을 보고 있는 그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공개했다. 그는 그 순간의 긍정적인 분위기를 표현하는 아름다운 주제를 생각해냈다. 그 광고에는 ‘우리에게 새로운 휴머니즘이 필요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작은 마을에서 복원 작업이 완료되었다. 주민들의 삶의 질은 향상되었고 중세 성에서 사람들은 즐겁고 친근한 근무 환경에서 일했다.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 근로자 사이에 보수 차이가 없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했고, 장인 기술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평균보다 약간 더 높은 임금을 주는 것이 공평하다고 생각했다. 3개월마다 회의를 열어 일반적인 회사 문제에서 가장 사소한 세부 사항까지 모든 것을 논의했고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모든 측면을 분석했다. 근무는 오전 8시에 시작되었고 누구든 출근이나 퇴근 시간을 기록할 필요가 없었고 5시 30분에 퇴근했다. 이런 것들이 그가 생각하는 공정하고 보편적으로 타당한 개념이었다.
자료 출처: brunellocucinelli com
류서영 여주대 패션산업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