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침체기 다가오는 ‘줍줍’의 기회, 지방으로 눈 돌려라[혼돈 속 길을 찾다⑤]

부산 해운대 일대 주거단지 모습 사진=한국경제신문

온갖 변수가 등장한 2024년 말 비상계엄으로 사회적 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부동산 시장은 조용한 숨 고르기를 이어가고 있다. 8월 시작된 금융기관의 주택담보대출 제한과 뒤이은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2단계 시행으로 자금줄이 막힌데 이어 내란 사태가 터졌기 때문이다. 혼란해진 정국과 침체한 내수경기 등은 수요자들이 지갑을 닫게 하는 원인이다.

각종 악재에도 불구하고 새해를 기다리는 주택시장 지표들은 상승의 불씨를 제공하고 있다. 우려했던 물량 부족 현상이 2025년부터 본격화한다.

다만 2024년 ‘상고하저’와 달리 2025년 ‘상저하고’ 움직임이 예상된다. 올해까지는 ‘주거 선호 양극화’로 서울 핵심지 ‘똘똘한 한 채’ 가격이 올랐지만 내년에는 대출규제를 피해간 저렴한 아파트나 오피스텔이 주목받을 수 있다.

일부 전문가는 조심스럽게 지방 부동산의 ‘바닥’을 점치며 투자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보기도 한다. 일명 ‘부동산 사이클’이 전처럼 반복된다면 최근 공급이 부족했던 지방부터 살아날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이다. 강남도 휘청, 매수자 우위 시작

올해 주택시장에선 ‘지역 양극화’ 현상이 확고히 자리를 잡았다. 미분양에 신음하는 지방과 달리 강남 등 서울 주요 지역 아파트는 전고가를 경신하기도 했다. 그 결과 2023년까지도 집값 하락을 우려하며 버티던 실수요자조차 올해에는 불안감에 대거 매수에 나서기도 했다.

그런데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주간 아파트 매매수급동향에 따르면 연말로 갈수록 아파트를 매수하는 것보다 매도하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서울은 물론 강남 또한 예외가 아니다.

한국부동산 매매수급지수는 100을 기준으로 100보다 낮으면 시장에 매수인보다 매도인이 많아 물건을 골라 살 수 있는 일명 ‘매수인 우위 시장’으로 친다. 100보다 높으면 매매수요가 매도하려는 물량보다 많은 ‘매도인 우위 시장’이다.

전국 매매수급지수는 올해 내내 100을 밑돌았다. 지방의 부동산 불황 탓이다. 지방 주택시장은 올해 내내 팔 사람은 많은 상태에서 살 사람이 부족한 상태를 지나갔다. 그런데 최근 서울 아파트 매매수급지수까지 점차 떨어지더니 12월 들어 강남까지 100 아래로 내려간 것이다.

서울은 11월 2주(11월 18일) 100.3을 기록한 뒤 11월 3주부터 100선이 깨졌다. 강남으로만 좁혀보면 이보다 늦은 11월 마지막 주(11월 25일)까지 100.5를 나타냈으나 일주일 뒤인 12월 첫 주(12월 2일) 99.8로 더 가파르게 떨어졌다.

거래량도 줄었다. 서울 아파트 매매 거래량은 7월 9518건이 성사되며 2021년 하반기 이래 최고치를 찍었으나 10월 4000건으로 반토막이 났다. 거래가 잠기며 매매가격 상승률도 낮아지는 추세다. 올림픽파크포레온(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 입주를 맞은 강동구 주간 매매가격지수(12월 첫 주)는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올해 주택시세 상승을 주도하던 서울 핵심지역 집값이 가파르게 오르면서 시장에 피로감이 쌓였다는 분석이다. 대출규제 탓도 있다. 2023년부터 초고가 아파트(15억원 초과)에 대한 대출규제 완화가 이 같은 아파트 가격을 올리는 원인으로 지목됐는데, 은행권이 주담대의 문을 닫으면서 달아오르던 시장에 찬물을 끼얹은 격이다. 혼돈 속 부족한 입주물량

이 같은 현상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두 차례에 걸친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에도 주담대 금리는 당장 떨어지지 않고 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준금리를 내려도 실제 대출금리의 인하가 수반되지 않으면 민간에서의 체감효과, 특히 주택구매 등에서는 가시적인 영향을 미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비상계엄 선포 이후 정국이 혼란해지면서 시장침체는 몇 달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강남구 소재 A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대출규제 이후 감소한 매수 문의가 최근에는 끊긴 상황”이라며 “시세보다 수억씩 저렴한 분양에만 관심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새해부터 급감할 입주 물량은 서서히 상승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입주 물량은 매매뿐 아니라 전월세 시세에도 영향을 미친다. 수년간 이어진 부동산 규제와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기 등으로 분양 가구수가 줄면서 내년부터 입주 물량 감소가 본격화한다.

12월 11일 기준 프롭티어, KB부동산 집계에 따르면 올해 상하반기 각각 17만 건을 넘기며 총 630개 단지, 34만4593가구를 기록했던 아파트 입주 가구수는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감소한다. 2025년은 올해보다 10만여 가구 줄어든 24만7536가구, 2026년에는 다시 10만여 가구 더 감소한 15만5434가구가 입주할 예정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대선 공약대로 내년에 Fed가 기준금리를 추가 인하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결국 국내 주담대 금리에도 점차 그 여파가 두드러질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정부가 내년 7월 스트레스 DSR 3단계를 시행할 계획이라 대출한도 증가 효과가 커질지는 미지수다. DSR은 대출의 이자와 원금을 합산해 차주의 소득 대비 상환능력을 평가하는 규제 방식인데, 스트레스 DSR 3단계는 모든 금융권 대출에 가산금리를 적용해 대출한도가 대폭 줄어든다.

동시에 정부는 대출 규제를 피해갈 수 있는 신생아 특례대출의 소득 요건을 완화(부부합산 연 2억5000만원)하고 청년 주택드림대출을 도입하는 등 젊은 실수요자 대상 정책 대출을 확대한다. 이에 따라 신생아 특례대출 대상인 9억원 이하 주택에 수요가 집중될 수 있다. 지방 시장 바닥 올까
일각에선 움츠린 매수심리로 인해 실거주할 물량이 부족해도 매매가격이 대폭 상승하기 어렵다고 전망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매수 수요가 임차수요로 적체되면서 전월세가가 오를 가능성도 있다. 올해 전국 전세가율(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 비율)도 완만하게 상승하고 있다. 전세 끼고 집을 사는 갭투자 여건이 점차 좋아지고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갭’이 계속 줄면 전세를 살던 실수요자도 매매를 결심하게 되기 쉽다.

특히 매매가격이 오랫동안 정체된 지방에선 더하다. 9월 기준 광주광역시 전세가율은 70%를 기록했고 울산 69.4%, 충북과 충남이 각각 67.9%, 67.3%로 높은 편이다.

최근 지방 광역시도의 아파트 매매 거래량은 증가세로 전환되던 중이었다. 부산광역시 실거래량은 9월 2280건에서 10월 3019건으로 32.4% 늘었다. 광주, 대전, 대구도 마찬가지다. 저렴한 매물 위주로 거래돼 아직 가격은 상승 전환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분양시장도 점차 나아지는 분위기다. 11월 대전에서 공급한 ‘힐스테이트 도안리버파크 2차’는 1·2순위 청약에서 1만3649개 청약신청이 접수돼 평균 11.3대 1 경쟁률을 기록했다.

이 때문에 ‘지방 부동산 바닥론’이 제기되기도 한다. 지난 금융위기 직후엔 미분양 사태가 발생했던 대구 등 지방광역시에 장기적으로 공급이 줄면서 지방부터 상승기가 시작됐다.

조영광 대우건설 부동산 빅데이터 연구원은 “내년에 투자할 부동산 ‘원 픽’을 꼽자면 각종 부동산 규제를 피할 수 있는 지방”이라며 “공급부족이 본격화하는 내년 바닥을 칠 가능성이 높고 빠르면 2026년부터 상승세가 본격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조 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화석연료 부흥책에 따라 에너지 운반선 발주가 늘면 거제나 창원 경기가 살아나며 부동산으로 온기가 퍼질 수 있을 것”이라며 “원룸형 오피스텔 등 월세를 받는 수익형 부동산도 베이비붐 세대 은퇴 후 수요가 늘 수는 있지만 가격이 상승하기는 어렵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민보름 기자 br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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