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금융권, 재생에너지보다 화석연료에 7배 더 투자
한전·자회사에 55조 집중… 공적금융이 ‘고착화된 구조’ 주도
“정부 목표와 엇박자… 기후금융 체계 재정립 시급”
국내 금융기관이 2024년 한 해 동안 화석연료 부문에 173조 원이 넘는 자금을 투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신·재생에너지 분야에 대한 투자·대출은 24조 원에도 못 미쳤다. 정부가 ‘2040년 석탄화력 전면 폐쇄’와 ‘에너지 전환’을 선언한 가운데, 금융의 흐름은 여전히 과거의 관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KoSIF)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현정 의원실은 16일 공동으로 '2024 화석연료금융 백서'를 발간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금융기관이 보유한 화석연료 관련 금융자산은 173조7000억 원에 달하며, 보험 포함 시 총액은 372조3000억 원에 이른다. 특히 해당 자금의 3분의 1 수준인 55조2000억 원이 한국전력공사와 그 자회사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나, 구조적인 쏠림 현상이 고착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글로벌은 재생에너지로… 한국만 역주행
국내 금융의 화석연료 중심 투자는 국제 흐름과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미국, 유럽연합(EU), 중국 등 주요국은 재생에너지 투자를 대폭 확대하면서, 2024년 기준 전 세계 신·재생에너지 신규 투자 규모는 2조330억달러(2810조원)로, 화석연료 투자(1조198억달러, 1410조원)의 약 1.7배에 달했다.
반면 국내 금융기관의 신규 실행액은 6월 말 기준 화석연료 부문이 32조8000억 원, 신·재생에너지 부문은 4조8000억 원으로 약 7배의 격차를 보였다. 신재생에너지 금융 잔액도 24조5000억 원에 불과해, 화석연료(121조8000억 원)의 5분의 1 수준에 머물렀다.
신재생에너지 투자 감소세도 뚜렷하다. 2023년 기준 신규 실행액은 전년보다 11% 줄며 하락폭이 커졌다. 민간금융이 72.2%(17조7000억 원)를 담당하고 있으나, 절대 규모가 에너지 전환을 견인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평가다. KoSIF는 “전 정부의 비우호적 재생에너지 정책 기조가 금융시장의 신뢰를 저해했다”며 “자금 유입 부족으로 인해 에너지 전환 속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전 중심 석탄금융, 공적금융이 주도
보고서는 국내 화석연료금융 구조의 핵심 문제로 ‘한전 중심의 석탄화력 쏠림’을 지목했다. 양춘승 KoSIF 상임이사는 “국민연금과 산업은행 등 공적금융기관이 중심이 돼 한전에 대한 대규모 석탄금융을 유지하고 있다”며 “이러한 고착화된 구조가 기후리스크를 증폭시키고 있다”고 경고했다.
정부는 2024년 말부터 석탄 투자 제한 기준을 도입했지만, 실효성에는 의문이 제기된다. 해당 기준은 석탄 매출 비중이 50%를 초과하는 기업만 제한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어, 발전 자회사를 지배하는 한전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보고서는 “현행 기준으로는 탈석탄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며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실효성 있는 전략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백서는 현재 금융기관의 ‘탈석탄 선언’이 대부분 신규 사업 중단에만 국한돼 있어, 기존 금융 계약에 대한 관리가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2040년 이후에도 약 11조 원의 석탄금융이 잔존할 수 있어, 정부의 에너지 전환 목표와 충돌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나온다.
김영호 KoSIF 이사장은 “새 정부가 ‘기후정부’를 내세운 만큼, 금융 배출량 감축과 금융감독의 기후리스크 반영을 의무화하는 등 정책적 수단을 적극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현정 의원은 “이번 백서가 보여주듯 신·재생에너지 금융의 흐름은 본격적인 전환 국면에 진입하지 못한 상태”라며 “국회 차원에서도 입법과 예산 등 실질적인 정책 도구로 기후대응 책임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승균 한경ESG 기자 cs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