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특검’이 속도를 내고 있다. ‘집사 게이트’니 ‘법사 게이트’니 용어부터가 특검답다. 해외도피, 무속, 비밀의 방, 십상시, 한국은행 관봉권 등 드라마적 흥행 요소도 두루 갖췄다. 관련된 기업도 상당수다. 스스로 ‘집사 게이트’라고 명명한 특검은 관련 기업 총수들을 소환하고 있다. 기업들은 ‘곤욕’ 그 자체다. ‘적법한 투자였다’고 항변하지만 귀담아듣는 이는 거의 없다. ‘최순실 게이트’를 경험한 기업들로선 속이 타 들어갈 만하다.
금융회사도 빠지지 않는다. 한국증권금융, 키움증권 등은 이미 집사 게이트에 이름을 올렸다. 일부 은행계 금융그룹은 (건진)법사 게이트에도 연루된 걸로 소문이 났다. 2023년 회장 선임을 앞두고 희망자가 김건희 여사와 가까운 걸로 알려진 건진법사 전성배 씨 에게 줄을 댔다는 게 골자다. 실제 줄을 댔는지, 결과는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소문은 수그러들지 않는다. 이뿐만 아니다. 비슷한 시기 다른 금융그룹 회장 자리를 노리던 사람은 이른바 ‘김건희 십상시’로 소문난 대통령실 비서관을 통해 로비를 했다는 얘기도 나돈다.
은행계 금융그룹은 KT 및 포스코와 함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최고경영자(CEO) 선임을 둘러싸고 몸살을 앓는다. 뚜렷한 주인이 없다 보니 정부와 정권실세의 입김이 작용할 여지가 크다. CEO를 노리는 사람들은 새 정부 실세에 줄을 대기도 하고 라이벌을 음해하는 마타도어를 흘리기도 한다. 2024년 초 포스코 사외이사의 외유출장설이 갑자기 불거진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대형 금융그룹은 말할 것도 없다. 이명박 정부 시절 ‘금융 4대 천황’으로 불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강만수 산은금융 회장, 김승유 하나금융 회장, 이팔성 우리금융 회장, 어윤대 KB금융 회장 등이다. 모두 이명박 대통령과 친분이 두터웠다. 강 회장은 이명박 정부 초대 기재부 장관을 지냈다. 김 회장과 이 회장, 어 회장은 이 대통령과 고려대 동문이다. 이 중 김 회장은 정부 출범 전부터 회장으로 재임하고 있었다. 나머지 3명은 정부 출범 후 취임해 낙하산 논란이 거셌다. 특히 엄연한 민간 금융회사인 KB금융에 교수 출신인 어윤대 회장이 선임되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자 상황은 바뀌었다. 강 회장과 이 회장은 임기를 남겨놓고 사퇴했다. 어 회장도 임기 만료 후 퇴진했다. 이들 자리를 이른바 서금회(박 대통령의 모교인 서강대 출신 금융인 모임)가 메웠다. 홍기택 산업은행 회장, 이덕훈 수출입은행장, 이광구 우리은행장 등 서강대 출신들이 약진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선 금융권에 대한 정부 간섭이 상대적으로 덜했다. 그러자 당시 회장들이 3연임은 물론 4연임을 시도하는 등 자기들만의 아성을 구축하는 부작용이 생겼다. 윤석열 정부 들어 일부 인사들이 이 틈을 비집고 들며 실세를 찾아 나선 것으로 보인다.
관심은 이재명 정부에서는 어떨까 하는 점이다. 은행계 금융그룹 회장 중 내년 3월 임기가 끝나는 사람은 진옥동 신한금융 회장,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 빈대인 BNK금융 회장 등 3명(양종희 KB금융 회장은 내년 11월)이다. 이들의 연임 여부는 사외이사들로 구성된 회추위(회장후보추천위원회)가 결정한다. 형식적으론 그렇다. 하지만 또 어떤 사람이 새 정부 실세를 등에 업고 회추위에 압력을 넣을지 모른다. 그렇게 되면 금융그룹 지배구조는 또 후퇴한다. 그 자신과 후견인도 정권교체 후 ‘xx 게이트’에 연루돼 곤욕을 치를 수 있다. 법사 게이트에서도 배울 건 배워야 한다.
하영춘 한경비즈니스 편집인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