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의 무게중심, 부동산과 주식시장 사이에서[마은성의 경제 돋보기]
입력 2025-07-28 06:29:01
수정 2025-07-28 06:29:01
자금흐름 기업 아닌 부동산에 편중된 한국경제
일관된 부동산 규제·책임경영 동반돼야 ‘벨류업’ 가능할 것
한국 경제의 자본 배분 구조는 오랜 시간 동안 부동산 중심의 자산 편중에 바탕을 뒀다. 우리나라 전체 가계 자산의 70~80%가 부동산에 집중돼 있으며 이는 선진국 평균의 두 배에 달하는 높은 수준이다. 문제는 이처럼 자금이 주택시장에 과도하게 쏠리는 구조가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주택가격이 오르면 자산가치에 대한 기대가 수요를 자극하고, 이에 따라 가계대출이 급증한다. 금융기관 입장에선 부동산을 담보로 한 대출이 위험은 낮고 회수 가능성은 높기 때문에 수익성과 불확실성을 따져야 하는 기업대출보다 훨씬 선호한다.
그 결과 은행 자금은 점차 생산적인 부문에서 이탈해 부동산시장으로 집중되는 경향이 고착화하고 있다. 최근 한 연구에 따르면 주택가격 상승이 기업의 설비투자를 위축시키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자본이 생산적 부문이 아닌 비생산적 자산에 묶일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자원 배분 왜곡의 사례다.
자본 흐름의 왜곡은 한국의 주식시장이 장기간 정체된 현상과도 밀접하게 연결된다. 자본이 혁신과 일자리를 창출해야 할 기업 부문으로 유입되지 않고, 상대적으로 안전한 부동산 자산에 몰린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는 단순한 평가절하가 아니라 자본 배분의 왜곡과 성장 기대의 실종이 빚어낸 구조적 정체 현상이다.
물론 주식시장 정체의 원인이 부동산 자금 쏠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부 기업의 낮은 성장성과 부족한 혁신 역량, 미흡한 지배구조 등도 자본시장의 매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자본이 위험을 감수하며 생산적인 부문으로 흐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 같은 흐름이 지속되면 기업의 내재 가치는 성장할 수 없고 시장에 대한 신뢰도 함께 약화한다. 결국 이는 주식시장 위축을 구조적으로 심화시키는 요인이 된다.
이런 배경 속에서 현 정부가 가계대출을 억제하고 주식시장 활성화를 유도하며, 주택시장으로의 자금 쏠림을 완화하려는 정책적 신호를 보낸 것은 긍정적인 변화라 할 수 있다. 더불어 최근 국회를 통과한 상법 개정안은 자본시장의 체질 개선을 위한 의미 있는 제도적 기반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과 제도가 일시적 효과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장기적 기대 형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주식시장 활성화는 단순한 지수 상승이 아니라 기업의 실질적인 생산성과 수익성이 향상되고 그 가치가 시장에 신뢰 있게 반영되는 구조를 정착시키는 데 있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 일관성, 기업의 책임 있는 경영, 투자자의 장기적 관점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 그래야만 주식시장의 ‘밸류업(Value-Up)’은 구호가 아니라 실현 가능한 결과가 된다.
아울러 부동산정책의 일관성 역시 자본의 효율적 배분을 위한 중요한 조건이다. 주택시장 억제 신호와 대출 완화 등 상충된 정책이 반복되면 시장은 혼란에 빠지고 자본은 다시 단기 수익 추구로 쏠릴 수 있다. 특히 주택은 가계 자산의 핵심이기 때문에 정책의 방향성과 지속성이 시장의 기대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부동산정책이 정치적 고려나 단기 처방에 흔들리지 않고 일관성을 유지할 때 부동산시장의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이 높아지고, 자본이 보다 생산적인 부문으로 흘러갈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다.
결국 자본이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효율적으로 배분될 때 주택시장과 주식시장 모두 건전한 구조 속에서 제 기능을 다할 수 있다. 주택은 안정적 자산으로서 가계의 금융 기반을 지탱하고 주식시장은 기업의 성장과 혁신을 반영하는 자본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 이번 상법 개정과 정부의 정책 기조 변화가 이러한 균형 있는 전환의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마은성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