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와 바통 터치하는 바이오, 주요 테마는 ‘비만약’[2026 산업대전망 : 바이오]
입력 2025-12-09 07:41:45
수정 2025-12-09 07:41:45
“GLP-1 치료제는 수백만 명의 비만 환자가 관련 위험을 줄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이 말했다. 12월 1일(현지 시간) WHO는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 계열 비만치료제 사용에 대한 최초의 지침을 발표했다. 생활습관 개선 등과 병행할 경우 6개월 이상 장기투여가 가능하다는 내용이다.
전 세계적으로 비만 인구가 10억 명에 달하고 있는 가운데 WHO가 비만을 약물치료가 필요한 만성질환으로 인정하며 치료제 사용을 권장한 것이다. WHO는 비만치료제에 대한 접근성 개선을 위해 공동 조달과 가격 인하, 자발적 라이선싱을 통한 복제약 제조 허용 등이 필요하다고 각국 정부와 기업에 주문하기도 했다.
올해 하반기 AI 서비스 대중화와 그에 따른 반도체, 전력 등의 수혜주가 국내 산업계를 들썩이게 했다면 연말 들어서는 ‘바이오의 시간’이 오고 있다. 현재 비만치료제와 항체약물접합체(ADC)가 이미 검증된 시장을 형성한 가운데 본격적인 제품 출시 및 실적 반영 효과가 기대된다.
특히 2021년 위고비(성분명 세마글루타이드) 첫 출시 이후 비만약 시장이 새로운 분기점에 놓였다. 노보노디스크의 위고비, 일라이릴리(이하 릴리)의 마운자로(터제파타이드)가 양분하던 시장에 새로운 게임체인저들이 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해외에서는 릴리가 개발한 경구용 비만치료제(오르포글리프론)가 연내 FDA 허가신청을 마친 뒤 내년 출시될 전망이다. 국내에서는 하반기에 한미약품이 개발한 최초의 국산 GLP-1 계열 비만약(에페글레나타이드)이 출시되면서 새로운 경쟁구도가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 한미약품의 비만약은 기존 경쟁 제품보다 부작용이 적고 국내 공장(평택 바이오플랜트) 생산을 통해 안정적인 공급이 가능하다.
1개월 지속 펩타이드 주사제 기술을 보유한 바이오텍들도 글로벌 빅파마와 본계약을 앞두고 있다. 1개월 지속 주사제는 현재의 1주 지속 피하주사제에서 내년 경구용에 이은 새로운 플랫폼으로 주목받고 있다. ‘스마트데포’ 플랫폼을 보유한 펩트론과 릴리, 지투지바이오와 베링거인겔하임, 인벤티지랩과 베링거인겔하임 간 본계약 체결이 기대된다.
엄민용 신한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1개월 지속형 비만 치료제 1상 진입이 내년 바이오 산업에서 가장 큰 이벤트로 주목받고 있다”며 “펩트론과 릴리의 기술 검토 기간은 올해 12월 7일까지로 공장 착공과 맞물려 본계약까지 어떤 행보를 보여줄지 가장 기대가 크다”고 분석했다.
비만약에 대한 약가인하 압력 또한 바이오 업계에 호재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빅파마들이 트럼프의 약가 인하 압력에 제품 가격을 내린 것이 중장기적 차원에서 결코 손해가 아니다”라며 “오히려 수요자들의 진입장벽을 낮춰 시장을 성장시킬 수 있으며 경구용 비만약도 약 투여에 대한 심리적 저항을 낮춘다는 측면에서 앞으로 비만약 대중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내년부터 ADC 관련 기업들의 실적 성장 및 신규 기술이전(L/O) 소식도 들려올 것으로 기대된다. 2026년 1분기부터 피하주사제(SC) 플랫폼으로 유명한 알테오젠 실적에 머크로부터 받은 키트루다SC의 판매 마일스톤이 반영될 전망이다. 각각 ADC 링커 기술, 이중항체 기술을 보유한 리가켐바이오, 에이비엘바이오의 주요 임상 결과 및 기술이전 발표도 지속될 것으로 기대된다.
에이비엘바이오는 1분기 담도암 치료제(ABL001)의 임상 2/3상 결과를 발표한 뒤 FDA 가속승인 신청까지 노리고 있으며 미국 캘리포니아에 설립한 ADC 전문 자회사 네옥바이오(NEOK Bio)의 빅파마 매각도 추진한다.
엄민용 애널리스트는 “국내 제약바이오는 더 이상 꿈에 의존하는 산업이 아니다”라며 “저평가 기회 구간으로 판단한다”고 전망했다.
민보름 기자 br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