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계의 표정이 밝지 않다.한해장사를 마무리하고 내년도 사업계획을 확정해야 할 12월 한달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백화점을 비롯한 각유통업체들이 거의 모두 초조와 고민에 잠겨있다.서민가계의 돈씀씀이와 최근접의 관계에 놓인 유통업계의 움직임은실물경기의 동향을 가늠하는 안테나나 다름없다. 이중에서도 현대소비생활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한 백화점들의 일거수일투족은 실물경기의 흐름뿐 아니라 전체유통업계의 「속내」를 비춰주는 거울이될수 있다.이같은 관점에서 본다면 한해결산을 앞둔 백화점들의 성적표는 유통업계의 금년수확과 내년농사를 점칠수 있는 바로미터로 보기에별무리가 없다.백화점들은 지난 5일부터 10일까지 닷새간 치른 임시바겐세일에서대다수의 업체가 기대를 크게 웃도는 호성적을 올렸다.그러나 세일을 끝낸 백화점관계자들의 표정엔 함박웃음보다는 안도의 한숨이 더짙게 자리잡고 있다.사실 백화점업계의 시계에는 잿빛색깔이 짙어지고 있다. 올연초부터 알게 모르게 내리막길을 걸어온 매출증가세와 별 기대를 걸 수없는 연말경기등이 백화점업계를 에워싼 짙은 안개의 주요인이다.비자금파문이후 눈에 띄게 식어버린 소비자들의 구매열기도 단기적이긴 하지만 백화점들의 성장에너지를 갉아먹는 걸림돌로 작용하고있다. 백화점업계는 3개월마다 치르는 바겐세일의 전년대비 매출신장률이 올들어 지난 1월의 겨울세일 이후 줄곧 하강곡선을 그리고있어 두통을 앓고 있다.국내최대업체인 롯데만 봐도 1월 세일에서 35%에 달했던 신장률이4월 28%로 낮아졌으며 그나마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의 여파로 기간이 반토막(5일)으로 줄었던 7월 세일에서는 25%로 미끄러지는 곤욕을 치러야했다. 상품력과 지명도에서 타업체의 추종을 불허하는 롯데가 이지경이고 보면 연간매출이 2천억원도 안되는 군소백화점들의 속사정은 긴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다.백화점들은 7월장사가 90년이후 최악의 성적에 머문데 그치지 않고연중 최고의 대목인 추석행사에서도 추석이 예년보다 크게 앞당겨지고 수해가 겹친 탓에 죽을 쑤어야 했다.이같은 사정을 반영, 신세계백화점부설 한국유통산업연구소(소장이동훈)는 백화점업계의 올추정매출이 11조5천6백억원으로 지난해보다 24.4%늘어나는데 그칠 것이며 내년에는 신장률이 13.4%로 주저앉을 것으로 최근 전망했다.지난해 30.1%에 달했던 전년대비 매출신장률이 올해는 소폭 감소하지만 내년에는 더 큰폭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분석이다.지난 7월의 반토막세일을 보전하기 위해 임시방편으로 치러진 이달초의 세일은 세일후 영업과 내년1월의 정기세일에까지 찬물을 끼얹어 연말연시대목이 「최악의 부진」을 면치 못할지도 모른다는게업계의 솔직한 고백이다.백화점뿐 아니라 모든 유통업체는 이같은 내부악재외에도 내년부터는 유통시장 전면개방이라는 대형외생변수의 부담을 극복해야 하는과제를 안고 있다.소매업부문에 대한 외국인투자의 장벽이 완전히 없어짐에 따라 외국업체들은 매장면적과 매장수에 대한 지금까지의 제한을 걷어젖히고 국내업계에 대해 정면승부를 걸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이동훈소장은 「내년은 외국업체의 진출러시, 국내대자본들의 유통업신규참여및 행정규제완화등의 조치로 유통시장 지각변동이 불가피하다」며 「경기하강이 몰고올 영업환경악화 속에서 업체간의 생존경쟁은 더욱 불을 뿜을 것」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