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의 한국 교민사회는 참으로 독특한 사회다. 미국이나 남미심지어는 이웃나라인 호주교민사회와는 판이한 풍속도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대부분의 교민들이 특정계층의사람들로 국한되어 있다는 점이다. 일단 한국의 이민자들은 외형적으로는 뉴질랜드정부가 인정한 하이퀄리티 즉 고급인력들이다. 대학을 졸업해야 되고 전공과 관련된 분야에서 꾸준히 일을 했었어야하며 재산도 어느 정도 있어야 하는 등의 조건을 충족시킨 사람들이다. 물론 이민자중에는 돈이 많은 투자이민자들도 있지만 이들의비중은 그리 높지 않다. 이러다보니 이런 까다로운 심사를 받고 이곳에 온 사람들에게서 쉽게 공통분모를 찾아 낼 수가 있다.우선 뉴질랜드교민사회에는 전직이 「사」자 돌림이 많다. 의사,약사, 한의사, 수의사, 목사, 박사, 회계사, 조종사등 전문인력들이 쉽게 눈에 띈다. 다음으로는 대기업의 간부급출신들이다. 현대삼성 대우 LG 등 재벌기업의 과장에서부터 임원을 역임한 사람들이상당수를 차지한다. 포항제철, 대한항공등 특정기업의 출신들만도회사당 수십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컴퓨터, 전자전기, 건축 등 주로 기술분야의 전문인들이다. 이처럼 엔지니어 계통의 이민자들이 많은 것은 뉴질랜드정부가 이민을 허가할 때 문과계보다 이과계를 우대한데 따른 것이다. 반면 문과계 출신들로는유달리 금융기관 출신들이 많다. 은행 증권사 단자사 등 전직금융인들이 많이 몰려 있다. 또한 이들의 연령층은 30대중반에서 40대초반에 집중된다. 이들의 재산도 대부분은 한국에서 아파트 한채정도 지니고 자가용을 굴린 중산층의 생활을 했기 때문에 낯선 이국땅에서 서로가 쉽게 동류의식을 느낄 수 있다.주로 지난 70년대 대학을 다닌 이들은 특정대학별로도 어렵지 않게분류된다. 그리고 자연스러이 고교동창으로도 묶일 수 있고 아니면부인들의 학교로도 선후배관계가 엮어진다. 뉴질랜드교민사회가 아직은 신생사회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런 모임들이 한국민의 병폐인편가르기의식이라는 부작용보다는 서로 의지하고 정보를 주고 받을수 있는 만남의 장으로 활용되곤 한다.이밖에도 한국교민들의 주거지역이 생활환경 학교 가격대 등 특정조건을 감안해 일정지역으로 몰리는 경우가 많아 오다가다 쉽게 마주치곤 한다. 아니면 한국상품점 교회 영어학교에서 또는 골프장이나 낚시터에서 서로 인사를 나누는 경우가 자주 있게 된다. 흔한말로 한다리 건너면 모두가 알만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 이 곳 교민사회이다.이들은 또다른 공통점도 지니고 있다. 성격적으로 보면 내성적인성격이 강한 사람들이고 관상학적으로 보면 강골형보다는 왠지 모르게 부드러운 인상을 주는 사람들이 많다. 이른바 남산골 샌님 같은 스타일의 사람들이 몰려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현상을 두고 주변에서는 한국사회와 같은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견디지 못했던 사람들이 모인 곳이 뉴질랜드교민사회라며 웃어 넘기곤 한다. 초록은동색이라듯이 이들은 서로 어울리기가 쉬운 반면 어떤 이들은 사람만나기를 꺼리며 외딴 곳으로 떨어져 한국교민이라는 티조차 안내며 은둔 생활을 하기도 한다.◆ “미래불확실한 한국 피해 이민왔다”그러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뉴질랜드를 향한 이민행렬이 끊이질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교민들의 이민 사유를 보면 외면적으로는 단순하다. 보다 나은 삶의 질을 위해서거나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서라는 대의명분을 내건다. 그러나 속사정을 보면 나름대로 이민을결심하게 된 동기들이 있다. 오랫동안 해외지사에서 생활하다 보니한국생활에 도저히 적응할 자신이 없다거나 새벽잠 설치고 출근해저녁별 보고 퇴근하는 생활에 지쳤다거나 기업체에서 승진의 길이막혔다거나 명예퇴직을 강요당한 경우등 나름대로 속사정들이 다있다. 이중에는 뒷거래를 하지않으면 일이 제대로 추진되지 않는몰염치한 사회에 염증을 냈다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정반대로 갖다주는 뇌물을 받지 않으려는 자신을 오히려 백안시하려는 주변의따가운 눈총을 견딜수 없어 이민행을 결심했다는 사람들도 있다.이밖에도 공부는 뒷전에 두고 말썽만 부리는 못난 자식들의 손을붙잡고 또는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다소 부자유스러운 아이의미래를 위해 왔다는 사람들도 있다. 중소기업을 하다가 다 들어먹고 줄행랑치듯 온 기업인, 결혼이 파탄지경에 이르렀지만 새땅에서새롭게 출발하자고 다짐한 부부, 한국에서 불의의 사고로 가족들을잃고 그 땅이 보기 싫어 떠나온 사람등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코질랜드(코리아와 뉴질랜드의 합성어)의 사회를 이루어 간다. 그러나이들에게는 어찌보면 뉴질랜드가 좋아서라기 보다는 미래의 불확실성과 각종 재난으로 얼룩져 있는 한국사회를 피해 온 피난이민의성격이 더 강하다고 하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이 곳 교민사회의 또다른 풍속도는 한국에서 오는 손님치레가 잦다는 것이다. 그동안 미국이나 남미등에 이민을 가면 가족이나 친지들이 새 땅에 정착할 때까지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하겠냐며 당분간은 찾아가지도 않고 오히려 고국에서 격려해 주는 것이 일반적인현상이었다.그러나 신생 뉴질랜드교민사회에는 그런 상식들이 통하지를 않는다. 한국에서부터 상당수의 친지 친구들이 이민자 가정을 찾고 있는 것이다. 방학기간동안 특히 뉴질랜드가 최근 한국민의 관광선호국으로 떠올라 관광을 왔다가 며칠간 주저앉는 손님들도 많지만 이민 온 자식들을 찾아온 노인부모들, 자녀들에게 현지 영어연수나골프 승마등 다양한 레저활동을 경험시키겠다며 찾아온 친지의 가족들, 이민오기 전에 현지답사를 하겠다며 연줄 연줄로 찾아 온 사람들이 여행성수기를 만난 이맘때 쯤이면 웬만한 교민 가정에는 한둘씩 있게 마련이다. 심지어는 신규 이민자가 한국에서 선박으로부친 이민짐을 풀기도 전에 손님을 맞는 사례도 있는 실정이다. 이같은 신조류는 교민들이 아직까지는 적극적인 생업에 종사하는 것보다는 집에서 소일하는 경우가 많아 손님맞이가 용이하고 방문객들 역시 크게 부담들을 느끼지 않는데에 따른 것이다.이민을 오면 대부분은 고국에서 갖고 있던 자신의 신분이 한단계아래로 떨어진다고 한다. 낯선 나라에 와 한국에서의 사회적 지위를 누리기가 쉽지는 않을 것은 당연한 이치겠지만 처음부터 고급인력들이 몰린 뉴질랜드에서는 신분하락현상이 더욱 두드러진다.◆ 교민, 신분하락현상 두드러져교민들의 전직과 현직을 비교해보면 이같은 사실이 확연히 드러난다. 모텔 카운터를 보는 의사,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는 박사, 세탁소에서 빨래감을 돌리는 그룹이사, 자동차윤활유통 갈아주는 항공엔진정비사, 고장난 전기제품을 고쳐주는 반도체설계사, 잔디를 깎는 대기업 기획부장, 집을 소개하는 방송사 PD, 광관버스로 한국관광객을 안내해주는 중소무역업체 사장, 한국식 구멍가게에서 잔돈을 매일 매일 세고 있는 학교교사, 주류판매점의 문학 박사 등 학교에서 축적한 자신의 경력과 학식. 그리고 명예와 전혀 어울리지않는 일을 하는 교민들이 많이 몰려 있는 곳도 코질랜드사회의 특징 중의 하나이다.교민들중에 자원봉사자들이 많은 것도 다른나라 이민사회와 다른새로운 모습이다. 한국에서 축적한 재주들은 많고 적극적인 밥벌이를 하는 경우가 적다보니 일단은 자기의 지식과 경험을 살려 사회에 무료로 봉사하는 경우가 많다. 몇푼의 돈보다는 보람을 찾자는교민들이 제법 있다는 것이다.올해초 문을 연 오클랜드한국학교에 30명에 달하는 교직 경력자들이 자원해 거의 무보수로 교민자녀들에게 한국문화를 가르치고 있으며 지난 10월 28일에 열린 한인의 날 행사에서도 한국정부나 외부기관의 특별한 지원없이 한인회를 중심으로한 자원봉사자들이 양국역사상 처음으로 오클랜드의 최대 번화가인 퀸스트리트를 따라대규모의 시가행진을 개최, 현지 신문이나 TV로부터 격찬을 받는등의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또 아직까지 뉴질랜드인에게는 6.25전쟁을 겪은 나라로만 비치는 한국을 올바로 알리기 위해 이 곳의 공공도서관과 각 학교에 한국을 소개하는 최신자료들을 구해 배포하는가 하면 다민족 국가인 키위(뉴질랜드사람)사회의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한국전통가락과 춤을 소개하는데 땀을 흘리는 교민등 티안나는 애국자가 많은 것도 코질랜드사회가 갖고 있는 특성중의 하나다.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만그만한 계층의 사람들이 거기다 특정연령대의 사람들이 집중적으로 어울려 살고 있어 공통분모를 쉽게 찾아낼수 있는 뉴질랜드교민사회의 앞날을 내다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다른 어떤 나라의 교민사회보다 단합이 잘 된 멋진 공동체를만들어 나갈 것인지 아니면 한국에서 한창 잘나갔다는 과거 전력들만 내세우며 오히려 분열상만을 가속화시킬 것인지 지켜볼 뿐이다.다만 상식이 통할 수 있는 사람들이 주로 모여 있다는 자부심에 대부분의 교민들은 코질랜더의 앞날에 자신감을 갖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