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수지 악화와 경제성장의 둔화로 골머리를 앓을 경우 정책당국자들은 흔히 환율인하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실제로 많은 나라들이 이 길을 택했다. 이 글에서는 정책수단으로서의 환율하락의 문제점을 살펴보고 효율적인 정책이 되기 위하여 갖추어야 할 여건에대하여 알아보기로 하자.이제는 환율이 만인의 관심사가 되었다. 무역을 하는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겨울에 호주로 휴양을 가는 노부부도 환율에 무관하지 않다. 동남아로 신혼여행을 떠나는 신혼부부나 자식을 외국대학에 보내놓고 있는 부모도 환율의 변동에 신경을 쓴다. 이처럼환율은 우리의 일상생활에 깊숙히 들어와 있다. 그러나 우리가 환율에 관해 알고 있는 지식은 보잘 것 없다. 그것도 상당한 부분이왜곡되어 있다.가장 보편적인 오해는 강력한 통화 그 자체가 추구하여야 할 정책목표라고 인식되어 있다는 점이다. 통화가 강하면 경제도 강하다는식의 논리이다. 그러나 환율은 정책목표가 아니라 정책수단인 것이다. 그것도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것 보다 훨씬 제한된 수단에불과하다. 많은 사람들은 환율을 낮추면 수출이 늘고 생산이 촉진되어 고용이 증대할 것으로 생각한다. 반면에 오히려 물가상승만초래할 뿐 실질 경제활동에는 하등의 도움도 주지 못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진실은 이 양극단의 중간 어디쯤인가에 있을 터이다.◆ 국내생산품 인상·인플레이션 유발결론부터 말하면 환율인하는 특정한 여건하에서는 유효한 정책수단이 될 수 있으나 손쉽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고정환율체제하에서 환율의 변동은 절상 또는 절하라는 표현을 쓴다. 유럽의 현 환율제도나 멕시코가 1994년 12월까지 채택했던 방식은 고정환율제라고 할 수 있다. 그 당시 멕시코는 페소를 미국의달러화에 연동시켰었다. 반면에 변동환율을 택하고 있는 경우에는환율이 오른다 또는 내린다고 한다. 물론 환율이 오른다 또는 절상되었다는 것은 외국통화로 표시되는 자국통화의 가격이 비싸졌다는뜻이다.따라서 환율이란 화폐의 가격이라고 바꿔 말할 수 있다. 이 가격은다른 어떠한 가격보다도 중요한 개념이다. 환율이란 가격은 국내재화와 외국재화의 상대가격을 결정한다. 이 기능때문에 무역수지 적자의 해결책으로 환율을 낮추자는 주장이 대두되는 것이다. 달러가약세로 돌아서면 해외시장에서 미국제품의 경쟁력은 높아지는 반면미국이 수입하는 외국제품의 가격은 비싸지게 된다. 수출은 증가하고 수입은 감소할 것이다.과연 그러할까. 동일한 교역재의 두 나라에서의 가격은 동일하다는것이 구매력 등가이론이다. 현실적으로 다른 통화를 사용하기 때문에 가격의 동일성은 환율을 매개로 하여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어느 상품이 미국에서는 1달러, 일본에서는 1백엔이라고 하자. 이 때의 환율을 1:100이라 하고 달러의 환율이 1:50으로 떨어지면 그 상품의 미국내 가격은 2달러가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환율의 하락은실질환율에 지속적인 영향을 주지 못한다. 메실질환율이란 명목환율에 물가변동을 감안한 환율을 말한다.? 실질환율에 변동이 없으면 무역이나 생산에도 영향을 주지 못한다. 바꿔 말하면 환율을 떨어뜨린다 해도 명목환율의 반등이나 물가상승으로 실질환율은 구매력 등가수준으로 되돌아 간다는 것이다.환율의 하락은 수입가격을 올릴 뿐만 아니라 결국은 수입품과 경쟁관계에 있는 국내생산재화의 가격인상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임금인상이 뒤따른다. 임금인상은 다시 물가를끌어 올린다.장기적인 관점에서 이 이론은 그 타당성이 입증되어 있다. <표1 designtimesp=20623>은지난 20여년간의 미국의 주요 교역상대국의 환율과 물가의 변화를보여주고 있다. y축은 상대국가에서의 달러환율의 등락을 나타낸다. 1은 환율의 변화가 없는 경우, 2는 상대국 통화의 환율이 절반으로 떨어진 것을, 1이하는 달러가 상대적으로 약해져 있는 상황을나타낸다. x축은 미국의 물가상승률 대비 해당국의 상대 물가상승률을 표시한다. 역시 우측으로 갈수록 물가가 미국에 비해 많이 오른 것을 표시한다.이 표를 보면 미국과 교역 상대국의 환율변동은 물가변동률 차이로상쇄되어 실질환율은 별로 변화가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환율하락률이 클수록 물가상승률도 높다.결국 명목환율의 변화는 대외경쟁력에 지속적인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결론이다. 당연한 일이다. 만약 환율인하가 기적의 묘법이라면 2차대전이후 거의 지속적으로 파운드의 가치가 하락해온 영국의 경제는 지금쯤은 대단히 발전해 있을 것이다. 이제 환율인하는장기적으로 물가상승에 의해 상쇄된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그러면장기적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의 기간을 말하는 것일까. 환율인하가정책수단으로서 어떠한 효능을 갖는가 하는 질문의 답은 바로 여기에 있다.경상수지적자로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나라가 있다고 하자.논의의 편의상 자본과 노동은 완전고용 상태에 있다고 가정한다.실업은 자연실업률 수준으로 지극히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고 물가는 안정되어 있다. 이 나라에서 생산되는 재화는 교역재와 비교역재로 대별할 수 있다. 이러한 경우 무역적자를 축소하기 위하여 택할 수 있는 정책으로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첫째는 수요억제정책이다. 금융및 재정정책의 긴축을 통해 국내수요를 감소시키는 것이다. 수요가 억제되면 수입이 감소되어 무역적자는 줄어든다. 그러나 국내에서 생산되는 비교역재의 수요도 동시에 줄어든다. 실업이 증가한다.이렇게 되면 긴축정책의 의미가 없어진다. 여기에서 교역재에 비해비교역재의 가격을 상대적으로 낮출 필요성이 대두된다. 교역재의가격이 상대적으로 높으면 기업은 생산자원을 수익성이 나은 수출부문으로 돌리기 때문이다. 상대가격의 변화를 일으키는 방법은 무엇인가. 원론적으로 말하면 긴축정책이 실시되면 실업이 증가하므로 임금이 떨어져 비교역재의 가격은 낮아진다.그러나 이 과정은 시간이 걸린다. 환율인하가 필요한 대목이 바로여기이다. 환율인하는 이 과정에 소요되는 시간을 단축하는 기능을수행한다. 환율이 하락하면 수출품의 가격은 자국화폐기준으로 높아지는 효과를 가져온다. 수출의 수익성이 개선되는 것이다. 수출부문으로 생산자원이 이동하고 고용이 늘어난다. 경제전체로 보면비교역재에 대한 수요감소로 발생한 여유자원을 수출부문에 투입하게 되므로 수출은 늘고 실업의 증가는 억제된다.◆ 이탈리아 스웨덴 등 환율인하후 경제 개선여기서 유의할 점은 경제가 완전가동 상태에 있는 상황에서는 환율인하만으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해외부채가만성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황이다. 모든 자원이 투입되어 있으므로 생산은 확대되지 않는다. 물가상승이환율인하 초기에 일시적으로 제고된 경쟁력을 깎아 먹는다. 따라서환율인하는 국내수요 억제정책과 병행하여 실시하여야 한다. 그래야 수출의 증가가 가능하다.다시 정리하면 환율인하가 효과적인 정책수단이 될 수 있는지 여부는 다음의 두가지에 달려있다.첫째는 명목물가와 명목임금이 얼마나 탄력적인가 하는 것이다. 탄력적이라고 하면 변수에 변화가 있으면 거기에 순리적으로 반응한다는 뜻이다. 만약 명목물가와 명목임금이 충분히 탄력적이라면 긴축정책시 물가와 임금은 자동적으로 하락한다. 따라서 환율을 인하하지 않아도 실질환율은 떨어지게 된다. 해외구매자의 입장에서 보면 명목환율은 낮아지지 않았으나 가격이 하락하였으므로 수입가격이 감소하여 실질적으로 환율하락의 혜택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둘째는 실질임금이 얼마나 탄력적인가 하는 문제이다. 환율이 인하되면 수입재화의 가격이 올라가므로 임금은 실질적으로 감소된다.근로자들이 이 실질소득의 감소를 받아들이고 실질임금이 떨어진상태가 유지되어야 환율인하의 기대효과가 나타난다.임금이 물가와 연동되어 있거나 노조의 힘이 강하여 실질임금의 탄력성이 없다면 환율인하는 물가상승-임금인상의 악순환을 빚을 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환율인하는 아무 의미가 없다. 실질환율을 낮추지도 못하면서 만성적인 인플레이션을 초래할 위험만 커진다.1970년대와 1980년대의 중남미국가들이 좋은 예이다. 임금-물가 연동제가 보편화되어 있었다. 환율을 인하하여도 1년 이내에 물가는더 높이 뛰어 환율인하의 의미는 상실되고 만성적인 인플레이션에시달리는 결과만 가져왔다. 아르헨티나 등 일부국가가 고정환율제로 돌아선 것도 물가상승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한 것이었다.따라서 환율인하가 정책도구로서 필요하고도 효과적이려면 명목임금과 명목물가가 떨어질 수 있어야 하며 실질임금은 하방경직적이아니어야 한다. 적어도 어느 기간동안은 그래야 한다. 이 두가지조건이 충족된다는 전제하에서만 환율인하는 일정기간 동안 실질환율의 인하와 상대가격의 변화를 통해 소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것이다. 환율인하는 결코 고통이 없는 처방이 아닌 것이다. 반복하건대 환율인하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려면 첫째, 재정및 금융정책상 긴축을 동시에 실시하여야 하며 둘째, 실질임금이 떨어져야 한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지 않고 환율인하를 정책수단으로 채택하면실패할 것은 불문가지이다.환율인하의 효과는 경제규모에 따라 다르다. 환율인하의 성패는 실질환율이 같이 떨어지느냐 여부에 달려있다는 것은 이미 설명한 바와 같다. 이 점에 있어서 경제규모가 클 수록 유리하다. 서구의 경우 평균적으로 수입은 국내총생산의 거의 30%에 달한다.벨기에는65%나 된다. 반면에 미국에서는 수입이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2%에 불과하다. 유럽에서 수입제품의 가격이 오르면 그만큼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임금인상 요구가 드셀 것은뻔 한 일이다. 미국의 경제학자들이 환율인하를 중요한 정책도구로보고 있는 배경도 나변에 있는 것이 아니다. 반면에 유럽인들이 통화연합하의 고정환율제를 선호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환율인하를 둘러싸고 미국과 유럽의 시각이 크게 다른 또 하나의요인으로는 임금의 탄력성을 들 수 있다. 지난 10여년간 미국에서는 실질임금이 감소되어 왔다. 유럽은 전통적으로 노조가 강하다.강력한 노조를 등에 엎고 중앙집행부가 단일대표로 임금협상을 한다. 결국 임금은 물가를 따라잡게 된다. 이 두가지 요인으로 유럽보다는 미국에서 환율인하의 효과가 큰 것이다.<표2 designtimesp=20636>는 지난 20년간의 미국과 영국의 환율 추이를 보여주고 있다.미국의 경우는 명목환율의 변동이 실질환율을 큰 폭으로 움직여왔음을 알 수 있다. 괴리가 없다. 파운드의 움직임은 대조적이다. 명목환율은 지속적으로 떨어져온데 반해 실질환율은 오히려 높아지거나 변화가 없다. 물가상승으로 환율인하의 효과가 씻겨 버린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수출경쟁력이 개선될 소지가 없다.그러나 최근의 유럽의 몇가지 상황은 유럽에서도 환율인하가 강력한 정책수단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어 우리의 관심을 끈다.지난 1992년 9월 유럽 환율조정기구 위기 이후 이탈리아 리라는30% 하락하였다. 파운드와 스웨덴의 크로나도 약 20% 정도 떨어졌다. 환율하락의 결과 이 세 나라는 모두 경제가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유럽의 여타 국가에 비해 성장률이 높아졌다. 경상수지 적자도 감소하였다. 반면에 물가상승률은 낮은 수준을 유지하였다.◆ 유휴자원 없을때 역효과환율인하는 어떠한 경우에도 실보다 득이 큰 것인가.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기 전에 이 세나라의 경제사정을 보다 면밀히 살펴 보기로 하자. 첫째 1992년에 이 세나라는 공통적으로 유휴능력을 갖고있었다. 수출부문으로의 전용이 가능했다. 위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경제에 유휴자원이 없을 경우에는 환율인하는 오히려 역효과를가져온다. 그 당시 영국 이탈리아 스웨덴은 똑같이 불황의 늪에 빠져 있었다.높은 실업률로 임금은 바닥세였다. 역시 우리의 결론은 이 경우에도 유효함을 알 수 있다. 현재 이 나라들은 유휴자원이 크게 줄어있다. 임금인상 요구가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다.둘째로 그 당시의 환율하락은 대폭적이었다. 구매력 등가수준에 비해 저평가되어 있었다. 외환 투자가 늘게 되고 이자율은 떨어졌다.과거에는 환율하락의 위험때문에 투자가들은 머뭇거렸다. 이자율을높여 투자를 유인 할 수밖에 없었다. 이 위험이 없어졌기 때문에이자율이 하락한 것이다. 만약 환율하락의 폭이 작았다면 결과는달랐을 것이다. 투자가들은 향후 환율이 추가적으로 떨어질 것으로예상하고 더 높은 이자율을 요구했을 것이기 때문이다.세번째로는 환율인하 후에 재정긴축을 시행했다는 점이다. 영국의재정적자는 1993년의 국내총생산 대비 8%에서 1995년에 5%로 줄어들었다. 스웨덴은 13%에서 7%로 개선되었다.통화의 평가절하만으로는 무역수지적자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것을 미국은 생생하게 보여 주고 있다. 달러화는 무역상대국의 평균환율 기준으로 1985년 이후 40%나 떨어졌다. 엔이나 마르크에대하여는 60%나 하락하였다. 그러나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여전히 엄청난 규모이다. 일본은 엔화 강세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를 유지하고 있다.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개선되지 않은 이유중 하나는 환율변동의효과가 상대물가 변동으로 상쇄되었다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1985년 이후 미국의 도매물가지수는 21% 상승하였다. 일본은16% 하락하였다. 엔화 강세가 디플레이션을 유발시켰던 것이다.미국 경상수지 적자의 근본적 이유는 투자에 비해 저축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 점은 개선의 조짐이 보이지 않고 있다. 재정적자는1990년대에 들어서서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역시 엄청난 규모이다. 가계저축은 지난 10년 사이에 3분의 1로 떨어졌다. 1995년에는소득의 4.5%에 지나지 않는다.1980년대 중반에는 달러가 크게 고평가되어 있었다. 환율인하를 통해 미국제품의 경쟁력을 제고할 필요가 있었다.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미국경제는 유휴자원의 여유가 별로 없다.무역수지를 줄이기 위해 환율인하를 무기로 쓰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미국의 무역수지적자를 해소하는 유일한 길은 저축을 늘리고재정적자를 없애는 것 뿐이다. 달러화의 하락은 책임있는 재정정책의 대안이 될 수 없다.메A much devalued theory? Jan. 20, 1996. ⓒThe Economist,Lond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