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권시장이 열린 이래 주식투자의 한가운데는 항상 증권사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초창기 구멍가게같은 증권사들이 난립할 때에도 그랬고 매머드급의 대형사로 발돋움한 지금은 더욱 주목을 받곤한다. 그래서 증권사는 요즘도 기관투자가들중에서 단타매매가 가장 성행하는 곳으로 지목된다.과거엔 특정 주식을 집중적으로 매집해 주가를 끌어올리는 책동전에 앞장서는 등 무분별한 투자행위로 지탄을 받기도 했지만 이제는이래저래 발목이 묶인 상태다. 우선 증권사는 고객자금을 끌어들여투자할 수 있는 수단이 거의 없다. 자기 회사돈으로 투자해야 한다. 물론 주식이나 채권 등을 사고 팔 수 있다. 바로 「상품주식」과 「상품채권」이다.증권사들이 상품주식을 보유할 수 있는 한도가 처음 묶인 것은 지난 86년 7월 8일. 소유한도를 자기자본의 80%로 제한한 것이다. 투자위험이 높은 자산인 주식을 무작정 사들여 증권사 경영이 파탄에이르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뜻에서였다. 반면 최소한 일정한 이자가 보장되는 채권에 대해선 아직도 제한이 없다.이같은 소유한도는 87년 1월에 60%로 축소된데 이어 87년 4월엔40%로 더욱 줄어들었다. 또 증권사들의 덩치가 한창 커질 무렵이던87년 12월 9일 60%로 다시 늘어나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이들상품주식을 움직이는 주체는 증권사 주식부의 펀드매니저들.상품주식 운용이 부자유스런 것은 이러한 한도제한 때문만은 아니다. 지난 90년 담보부족계좌를 일제히 정리하던 「깡통사건」때는정책적으로 이들 주식을 끌어안아야 했고 정부에서 순매수를 강화하라는 지시가 떨어지면 어거지로라도 사들여야 했다. 결과는 엄청난 평가손. 이때문에 손해보고 한꺼번에 팔아치울 수도 없어 전전긍긍하고 있는게 현재의 모습이다. 그렇다고 선진국에서와 같은 「블록 트레이딩」이 허용되는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는 장내집중매매제도를 채택하고 있어 증권사들이 자유롭게 여타 기관들의 거래를 중개시킬 수 있는 기능도 없는 상황이라는 얘기다. 장외에서의악성 거래를 막아보자는 뜻이지만 그 결과 증권사들의 수익구조는위탁수수료 수입에 대한 의존도가 자연히 높아질 수밖에 없게 됐다.위탁수수료 수입에 의존한다는 것은 그만큼 시황에 따른 수익의 변동이 심하다는 말이기도 하다.다른 기관에 비교한 증권사의 위치도 많이 바뀌었다. 지난 80년대나 90년대 초반까지만해도 증권사는 그런대로 기관의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던 것이 90년 5월 증시안정기금이 생기고 같은해 10월의깡통사건을 계기로 차츰 기관으로서의 역할이 약화되어 왔다. 증권사는 빠지고 투신 보험 증안기금이 「기관 트로이카」를 형성한 것이다.92년 증시가 외국인들에게 개방되면서 또 한차례 변화를 맞았다.외국인들이 탐욕스런 매수의욕을 불태우는 동안에도 증권사들은 매도에 치중했다. 그동안 평가손이 많던 종목을 중심으로 외국인들에게 고가에 넘기는 전략을 구사했다고나 할까.지난 92~93년 2년간 1조원정도씩을 순매도했던 증권사들은 지난해엔 1조5천억원으로 매도규모를 더욱 늘렸다. 투신업에 진출하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고 오는 5월에 개설되는 주가지수 선물시장에 참여하기 위한 사전 가지치기 작업이었던 셈이다.이 과정에서 증권사들은 선물지수인 KOSPI200에 편입된 종목을 중심으로 한 포트폴리오 재편에 나섰다. 대신에 선물지수에서 제외된종목이나 우량주가 아닌 부실종목 등을 대거 처분했다. 매도대상엔평가손이 큰 종목인 저가 대형주들이 많이 포함됐다. 이와함께 경기가 꺾였다는 판단에 따라 경기선도주인 블루칩(대형우량주)들도매도대열에 동참했다.증권사별로는 역시 신영증권이 돋보인다. 상품주식 한도가 자기자본의 60%인데도 불구하고 이 회사는 평소 40%선의 안정적인 운용을했기 때문에 작년의 어려운 시황속에서도 흑자를 구가하고 있다.또 최근 몇년사이 과감히 평가손 종목을 털어낸 한신증권도 대형사로는 유일하게 흑자를 유지했다.이밖에 일부 대형 증권사들은 새해들어 경기관련주를 중심으로 물량축소에 나섰고 중형 증권사들도 규모는 축소했지만 적극적인 매매로 평가손 감축에 안간힘을 쓰고 있는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