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이름을 바꾸는데 사상 가장 많은 비용을 들인 성공작이라는평가를 받는 「엑슨(Exxon)」. 미국의 석유왕 록펠러가 뉴저지에「스탠더드 오일」을 세운 것은 1892년. 그러고선 80년이 지난1972년에 「엑슨」이란 상호로 이름표를 바꿔 달았다.이 회사가 상호를 고치게 된데는 특별한 사연이 있었다. 제품을 에소(Esso) 험블(Humble) 엔코(Enco) 등 제각각 다른 이름으로 내놓고 있던 시절이어서 통일된 기업 및 제품 이미지를 만들기가 힘들었던 것이다.새 이름을 찾는 작업은 그야말로 방대했다. 1만개에 달하는 「후보」들중 예선을 거쳐 2백34개를 선정하고 다시 8개로 압축시켰다.언어학자들이 총동원됐다. 본선을 통과한 8개를 놓고 지역별로 골고루 선정된 7천명을 대상으로 인터뷰까지 실시했다. 그러는 동안3년이 흘러가고 가장 발음하기 쉽다는 강점을 등에 업고 「엑슨」이 탄생했다.새 이름을 알리는데는 무려 1백만달러의 광고비가 투입됐다. 뿐만아니다. 2만5천여 주유소 간판을 모두 바꿔야 하고 고속도로 포스트는 물론 2만2천대에 달하는 급유차에 부착된 회사명도 모두 달라졌다. 이같은 막대한 비용과 노력의 결실은 미국 정유시장의 정상을 지키고 미국 5백대 기업중 3위를 차지하는 영광으로 나타났다.이는 통일된 기업이미지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나타내는 단적인 예다. 기업의 이미지는 소비자들의 잠재의식 속에 도사리고 있는 인상이라는 점에 그치지 않는다. 「기업이미지는 바로 그 회사의 상품」으로 인식된다는 얘기다. 그래서 PR(Public Relations)가 중요하다. 성능이 뛰어난 제품이나 기술 경영등이 하나의 「하드웨어」라면 PR는 「소프트웨어」라고 할 수 있다.◆ 대기업, ‘조만간 PR로 이윤 남기자’ 욕심낼 듯그렇다면 우리 기업들의 PR는 어떤 모습일까. 또 앞으로는 어떻게발전해갈 것인가.우리나라의 PR는 미국이나 일본의 모습을 그대로 답습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년전인 지난 70년대만 해도 기업안에서 광고업무를 담당하던 사람들이 광고를 통해 맺은 인연으로 언론매체의기사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정도였다. 당연히 마케팅팀 산하에 홍보과를 두는 시절이었다. 영업차원의 성격이 다분했다. 그러다 80년대 들어선 보다 조직적인 홍보에 대한 필요성이 높아졌다. 우리 경제규모가 커지고 국민소득이 늘어난데 따른 자연스런 변화이기도했다. 영업담당 임원이 주관하던 PR파트도 관리담당 임원의 손으로넘어갔다.줄잡아 80년대 후반엔 또한차례 변화를 맞는다. 단순히 알릴 것은알리고 피할 것은 피한다는 PR에 그치지 않고 「윗사람」의 정책결정 사항에도 무게가 실린 것이다. 특히 재벌 총수의 의중을 반영해야 하는 일이 중요한 업무의 하나로 부각됐다. 우리 재계가 2세 경영체제를 맞이하면서 이같은 최고경영층의 PR는 더욱 중요해졌다.이른바 PI(President Identity)이다. 일본의 사카모토 주토쿠씨가내놓은 PI라는 말은 경영자의 이미지도 기업의 특성에 맞게 조정돼야 한다는 점에 착안하고 있다.그래서 홍보팀도 사장실 직속이나 기획조정실 안에 들어앉게 됐다.재벌그룹들은 각사마다 고유한 홍보조직을 가동하면서도 그룹홍보조직을 별도로 태동시켰다.홍보일선에서의 소총수 기능을 떠나 그룹차원의 홍보전략을 수립하고 총괄 지휘하는 홍보사령탑인 셈이다. 임기응변식의 홍보단계에서 머물지 않고 중장기 홍보전략을 수립하고 장기목표에 걸맞는 홍보수단들을 차근차근 동원해나가는 상황이다. 작년말 우리나라 정·재계를 강타한 비자금 파문의 소용돌이 속에서 기업내 PR담당 요원들이 부산하게 움직였던 것도 이들 그룹홍보사령부의 상황실이다.앞으로 기업들의 PR는 생존수단의 하나로 인식된다. 기업이미지를드높인다는 PR의 기능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다만 차이가 난다면 그동안 홍보업무가 국내에 치중해온데 비해 앞으로는 세계화와 국제화의 물결을 타고 해외홍보를 강화해나갈 것이라는 점이다. 여지껏 생소하게만 들리던 다국적기업이란 말이 우리기업에도 적용되는 때가 왔기 때문이다. 지금도 일부 기업들은해외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앞으로 이같은 움직임은 더욱 확산되어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하기는 어렵지 않은 일이다.이제는 국내에서도 PR는 제4의 경영이라고 불릴 정도다. 미국같은경우 지역담당 부사장이라는 직함을 종종 만나볼 수 있는데 이는다름아닌 PR업무를 주관하는 중역이다.어떤 사업을 새로 시작하거나 꾸려나가는데 있어 홍보는 부수적인 업무가 아니라 기본적으로끼워야만 하는 핵심업무로 등장했다.주먹구구식의 홍보가 아니라 풍부한 조사정보를 바탕으로 홍보에대한 전략기획과 PI업무가 혼연일체가 되도록 치밀하게 꾸며나가야하는 시점이다. 대기업들은 이같은 업무를 수행하다 조만간 PR로장사를 해보자는 욕심을 낼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한마디로「PR대행사」다. 외국에선 이같은 PR대행사가 수없이 많으며 기법도 다양하게 발달되어 있는 실정이다. PR가 하나의 산업으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외국기업, 사후관리문제까지 따진후 ‘노크’물론 우리나라에도 커뮤니케이션즈코리아나 메리트커뮤니케이션즈같은 홍보대행사가 있기는 하지만 주로 외국회사의 국내홍보를 대행하는 정도다. 외국기업들은 한국에 진출하려고 할 때 우리나라사람들의 국민정서까지 충분히 파악한 다음에야 들어오곤 한다. 당장의 매출신장에 얽매이지 않고 나중에 문제를 일으키지나 않을까하는 점까지 세심하게 체크하고서야 노크한다는 얘기다. 물론 PR대행사를 통해서이다.우리나라 주요 재벌들의 전략홍보조직을 들여다보면 대개 20~30명선으로 구성되어 있다. PR담당 임원도 2~3명에 달한다. 물론 회장실 조직에서 떨어져 있는 사내방송팀이라든가 광고전담팀 등 외곽조직을 합치면 어림잡아 80~1백명 정도로 추산된다. 그럼에도 외국대기업의 PR조직에 2백~3백명 가량의 전문요원들이 포진해 있는데비하면 큰 차이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그룹별 특성을 보더라도 그룹홍보팀은 회장의 「거울」이다. 회장의 스타일을 그대로 반영한다는 말이다.가장 극단적인 예는 현대와 삼성. 현대가 중후장대한 「현장 돌파형」이라면 주로 소비제품을 만들어온 삼성은 경박단소의 철저한「조직적 관리형」이다. 현대는 특별한 전략이라기보다는 눈이 내리면 다온 다음에 한꺼번에 화끈하게 쓸어내는 스타일. 삼성은 조직에 충실해 담당임원이 바뀔 때마다 원칙이 흔들리게 될 소지도안고 있지만 어쨌든 사업전략과 관련한 사업홍보의 성향이 강하다.이제는 현대가 반도체부문을 강화하고 삼성이 자동차부문에 뛰어들면서 「적」으로부터 장점을 서로 배우는 단계로 접어들었다.이같은 현대와 삼성의 스타일을 양대축으로 하여 여타 그룹들은 나름대로 PI 고객위주 등을 내세우며 뛰고 있다. 특히 선경의 경우회장의 시야가 워낙 넓어 홍보맨들이 이를 따라가기에 급급하다는평도 듣는다.해외홍보 측면에선 대우가 뉴욕에 본사를 둔 PR대행사인 「힐 앤놀튼」을 축으로 홍보업무를 총괄해온데 이어 4백여개 해외사업장마다 PR매니저를 지정해 「세계경영」을 펼쳐나갈 방침이다. 16쪽의 영문판 팩트북(Fact Book)과 중남미용 4쪽의 스페인어판을 매월4만부씩 발행하고 있으며 조만간 잡지형태의 「PR북」을 발행할 예정이다.삼성도 작년을 해외홍보의 원년으로 삼아 현재 11개국에 11개의PR대행사를 활용하고 있으며 금년중 20개로 확대할 방침이다. 현대등 여타그룹도 해외홍보 다각화에 매진하고 있으며 LG는 궁극적으로 해외현지법인별로 PR를 총괄한다는 구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