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초반 이후 전반적으로 세계경제의 성장세가 둔화되는 가운데 각국이 물가안정정책을 강화함에 따라 점차 진정되기 시작한인플레이션은 90년대 들어서도 체제전환국과 남미 및 중국 등 일부개도국을 제외하고 하향 안정화되는 추세를 지속했다.특히 지난해에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주요 선진국(G7)의 물가는 지난 60년대 중반이후 약30년만에, 개도국도 70년대 후반이후 약20년만에 가장 낮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체제전환국들의 물가도 상당히안정된 모습을 나타냈다. 이같은 물가안정 현상을 둘러싸고 그 원인 및 배경에 대한 논의가 향후 경제전망 및 정책운영과 맞물려 확산되고 있다.먼저 미국의 경우 지난 94년의 고율성장 이후 95년중에는 상당히높아질 것으로 전망됐던 인플레 압력이 예상과 달리 낮게 나타나고있다. 이러한 물가안정이 지속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 경제전문가및 통화정책당국 등을 중심으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경제구조가기본적으로 바뀌어졌기 때문에 인플레는 더 이상 심각한 위협요인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자연적인 능력(naturalcapacity)이상으로 경기를 부양하려고 하면 수그러들었던 인플레가재연될 수도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사이에 격렬한 논쟁이 일고있다.미국의 자연실업률 수준은 70년대말 이후 대체로 6% 내외로 추정되었으나 94년 하반기 이래로 6% 미만의 실업률이 낮은 인플레율과공존하게 되면서 일부에서는 미국의 자연실업률 수준이 5%대 이하로 낮아진게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이같은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제시되는 설명중 노동인력구조의 변화가 상당히 설득력 있는 주장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테일러 교수는 베이비붐 세대의 노동시장 진입에 따라 비경제활동인구가 감소하는 등 노동인력구조가 변화하는데다 기업의 활발한 구조조정(corporate restructuring)과 미국경제의 수입비중 증대 등으로 근로자들의 임금교섭력이 약화됨에 따라 자연실업률이 하락한 것으로 지적하고 있다. 이런 점들을 들어정치인 노동계 인사 및 기업가들은 인플레가 사라졌다고(inflationis dead) 하면서 과거와 달리 금리인하 및 통화공급 확대를 하더라도 추가적인 인플레 발생 우려없이 경제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는주장을 제기하고 있다.그러나 월스트리트 종사자와 대다수 경제전문가들은 기업구조조정과 경쟁격화 등으로 물가와 임금의 상승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었다는 주장에 대해 여전히 회의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특히 임금인상에 의해 유발된 인플레를 과거지사로 단정하기에는 곤란한 점들이 많다고 반박하고 있다.예컨대 미국 Northwestern대학 고든교수는 90년대초 경제가 점차회복되면서 생산성이 총노동비용 증가율을 상회한 것은 직장 의료보험 등에 대한 기업부담의 경감노력이 강화된데 주로 기인한 것이며 총노동비용이 아닌 임금만을 감안하면 근로자들이 실직 등을 우려해 임금인상 등에 대해 유순해졌다고 주장할 근거는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이에따라 금융계 인사와 대다수 경제학자들은 최근의 물가안정은경제구조 조정에 기인한 것도 있겠지만 보다 더 근본적으로는 그동안 통화량이 안정적으로 관리되어 온 결과이며 향후 물가안정기반을 공고하게 하기 위해서 통화정책은 여전히 신중하게 운용되어야한다는 견해를 표명하고 있다. 미국 연준리(FRB)도 인플레 압력이약화된 현상을 두고 실종자(missing person)라는 표현을 쓰는등 당혹해 하면서도 공식적으로는 자연실업률이 낮아졌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선진국 물가안정 통화증가율 안정에 기인92년 이후 장기간에 걸쳐 경기침체를 겪은 일본은 95년중 소비자물가는 전년비 0.1% 하락해 70년이래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이러한 물가하락은 93년이후 엔화 강세와 더불어 가격파괴 현상이확산됐기 때문이다.즉 소비자들의 합리적인 저가 지향의식이 확대되고 저가 수입제품이 증가하면서 할인양판점(Discount Store)이 저가판매를 무기로매출을 확대한데 대항하기 위해 기존의 대형슈퍼 등도 저가판매를시작함으로써 소매업자간 가격경쟁이 격화되고 이는 결과적으로 물가하락을 촉진했다.한편 이런 물가하락을 두고 기업체를 중심으로 디플레이션을 우려하는 견해가 대두되고 있다. 그러나 일본 경제기획청은 최근 일본의 물가하락이 주로 생산 및 유통부문 효율화의 진전을 반영한 가격파괴로부터 비롯된 점을 감안하면 디플레라고 하기는 곤란하다고비판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본 정부는 현재 진전되고 있는 물가하락의 상당 부분이 생산성 상승에 기인한 것으로 일본경제의고(高)코스트 구조를 시정함과 동시에 소비자들의 실질소득을 증가시킬 수 있기 때문에 향후 규제완화 등을 통해 이러한 물가안정이지속되도록 하는 노력을 강화해야한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영국은 93년 이후 최근까지 지속적으로 실업률이 하락하였음에도불구하고 임금상승률이 안정됨으로써 물가상승 압력이 약화되었다.이를 근거로 80∼90년대 초반까지 8% 정도로 인식됐던 영국의 자연실업률이 낮아졌다는 견해가 제기되면서 지난해 중반 영란은행과영국 재무부는 인플레 전망과 금리정책 방향을 놓고 의견 대립을보인 바 있다.당시 영란은행은 92년 하반기 이후 영국경제의 회복이 빨라지면서현재화되기 시작한 인플레 압력이 파운드화의 약세를 계기로 한층고조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인플레 목표치(2.5%)를 달성하기 위해금리인상을 제안했다. 이에대해 재무부는 영국경기가 정점을 지나조정국면을 보이는 시점에서 금리를 인상하게 되면 경기를 필요이상으로 감속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 금리인상을 반대하고 이를 관철시켰다.그러나 93년 이후 단위노동비용이 완만하나마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 점과 그동안 부진했던 민간소비가 회복되면서 국내수요 압력이가시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들어 물가상승에 대한 경계를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는 강력한 비판이 제기됐다.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최근 세계 각국의 인플레율, 특히 선진국의 물가가 상당히 안정된 모습을 보이게 된 근원적 요인은 90년대 초반이후 선진국의 통화증가율이 크게 낮아진 점을 지적할 수있다. 실제로 선진국과 개도국 모두 90년대 들어 통화증가율이 크게 낮아졌는데 주요 선진국의 연간 통화(M2)증가율은 80년대13.6%였으나 90년대는 8.7%로 낮아졌다. 개도국(NIEs를 포함한16개국) 또한 이 기간중 60.3%에서 44.2%로 떨어졌다.물론 공급측면이나 제도적 요인들도 단기적으로 물가안정에 기여할수 있지만 이런 요인들은 상대가격의 변화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것이다. 물가수준의 지속적 상승을 의미하는 인플레와는 관련이 약한 반면 중장기적으로 물가와 통화량과의 관계는 직접적이며 명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욱이 93년이후 선진국들의 임금상승률이안정된 것은 통화증가율이 떨어지면서 근로자들의 예상인플레가 상당히 낮아진 것을 반영하고 있다.◆ 높은 인플레 개도국, 인플레 퇴치노력 강화 필요특히 20여년만에 가장 낮은 물가상승률을 보이고 있는 영국의 인플레 수속 경험을 보더라도 최근의 물가안정은 직접적인 임금통제와같은 소득정책보다도 안정적인 통화관리에 크게 기인하고 있다.91년말 이후 94년 중반까지 영국의 통화(M4)증가율은 지속적으로6%를 하회했는데 이는 70~90년중 어느해의 통화증가율보다도 낮은수준이다.또 통화정책에 대한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단기적 통화관리가가급적 최대한 장기적인 물가안정 목표와 일관성을 유지하도록 함으로써 인플레 기대심리를 불식하는 것이 긴요하다.미 연준리는 시장참가자의 반응을 사전에 충분히 예측해 통화전략차원에서 선제적(pre-emptive)으로 정책을 운용하는 이른바 전향적통화정책(forward-looking policy)을 성공적으로 운용함으로써 최근 수년간 인플레 기대심리의 급격한 확산에 대해 보다 더 효과적으로 대응해 오고 있다.한편 최근 경제구조의 변화 등으로 인플레 압력이 약화 또는 소멸되었다는 주장은 경기확장정책을 촉구하기 위한 변형된 금융완화압력일 수도 있으므로 중앙은행은 보다 더 확고한 반인플레적 입장을 견지할 필요가 있다.이밖에 최근 세계적인 물가안정 경향에도 불구하고 높은 통화증가율과 임금상승률 등으로 인해 선진국에 비해 높은 인플레율을 유지하고 있는 개도국들은 거시경제 안정화정책을 추구하고 특히 적정통화의 공급 및 절도있는 재정정책의 운용 등 인플레 퇴치를 위한노력을 한층 강화할 필요가 있다. 또 개도국은 시장독과점적 구조를 개선하고 각종 경쟁제한적 규제를 완화 내지는 철폐함으로써 제도적 측면에서 물가불안 요소들을 해소해 나가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