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손님들이 통 선거얘기를 않습니다. 옛날 같으면 선거를앞둔 이맘때면 손님들의 화제가 정치일색이었는데 말입니다. 왜 그러죠.』 택시기사가 불쑥 건넨 이 말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대개 선거철이 되면 장미빛 청사진들이 제시되고 더 밝은 미래를보장하는 듯한 감칠맛 나는 얘기들로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곤 했다.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스트레스를 푸는 돌파구 역할을 했음에틀림없다. 아마도 그 기사의 반문은 요즘 정치가 그러한 역할마저못다하고 있다는 점을 꼬집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정치얘기로 들뜨지 않고서도 풍요로운 마음으로 잘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그렇다면 지금 우리 증시의 시침은 과연 몇시를 가리키고 있을까.아무래도 한밤중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지난 1년여동안 우리경제는 호황을 구가하면서 아시아 여러 나라에비해 우리기업들의 주가는 상당히 저평가됐다는 분석들이 터져나왔지만 정작 주가는 비틀거리기만 했다.올해 들어서도 경기연착륙(soft landing)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았지만 전반적인 실물경기 동향을 뜯어보면 경기급랭이 아닌 연착륙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그럼에도 주가는 기업들의 영업실적호전 추세에 따라가기는 커녕 뒷걸음질을 쳤다.종합주가지수는 급기야 지난 13일 838.87을 기록, 우리 증시의시계바늘을 2년3개월전인 93년12월 수준으로 되돌려 놓았다. 이는심리적 지지선으로 여겨졌던 840선이 무너진만큼 투자가들의 충격은 컸다. 기대했던 증시부양책이 기다리고 또 기다려도 나오지 않자 실망매물이 쏟아져 나온 결과라 할 수 있다. 물론 증안기금의개입 효과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려 있긴하다. 「증시 떠받치기」에 나설 경우 증권사 등의 기관들이 대기매물을 내놓을 것이 뻔한까닭에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논의다. 결국 「밑빠진 독에 물 붓기」에 그칠텐데 뭣하러 증시에 개입하느냐는 식이었다.어쨌든 주가 속락으로 제일 답답했던 기관은 증권사였다. 증권사들은 지난 14일 팔을 걷어붙이고 「증안기금이여, 제발 주식을 좀 사다오」라는 주문을 냈다. 긴급 사장단회의를 갖고 증안기금이 개입하더라도 우리는 팔지 않을테니 들어와 달라는 결의에 찬 건의를한 것이다.가장 자율적인 시장이어야 할 주식시장에서 증권사들이 증안기금이활동할 동안에는 팔지 않겠다는 조건을 붙이는 것도 우스운 일일뿐더러 정부나 투자가나 여차하면 증안기금에 눈길을 보내는 일도 정상은 아니라고 해야겠다. 그것도 선거를 눈앞에 둔 시점에서 말이다.이같은 비정상적인 상황은 각 기관들이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에서 초래된 것이라는데 「아픔」이 있다. 우선 증권사들은 무려 자기자본의 60%까지 주식에 손댈 수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없다. 대부분의 증권사들이 한도껏 주식을 사들여 주가가 떨어질땐 아무리 전망이 밝아보이는 주식이 있어도 사들이지 못하는 형편이 지속됐다. 오히려 조금만 주가가 떨어져도 평가손을 내기 일쑤다. 외국의 주요 증권사들은 투자위험이 높은 위험자산인 주식에대한 투자는 자기자본의 10%정도로 제한하고 있으며 많아야 15%수준에 그치는 점을 곱씹어볼 대목이다.은행은 은행대로 지난 93년 하반기부터 1년반동안 공격적인 주식매수에 나선 결과 지금은 증권사와 마찬가지로 무더기 평가손에 시달리는 형편이다. 투신사들도 그동안 자의반 타의반으로 떠안은 「부실주」로 인한 평가손으로 가위눌린 상황이다. 한마디로 장기안정적인 투자로 장세를 안정시킨다는 기관투자가의 역할을 해낼 만한기관다운 기관이 거의 없다는 말이다.선진국들의 친목회라고 불리는 OECD에 가입하는 마당에 이대로는안된다. 구각을 깨는 아픔이 없이 증시의 새틀을 짤 수는 없다. 진정 우리증시를 선진증시로 이끌어 가려면 주식시장의 밑바탕이 되어야할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해야 할 것이다.증안기금만 하더라도 인위적으로 급조된 시한부 인생이다. 이제 시한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시장개입여부를 운운하기에 앞서 구체적인 해산절차를 밝히는 것이 순서다. 어차피 지금 증안기금이주식을 사들이더라도 그 약효는 얼마 못갈 것이라는 관측이 팽배한상황이다. 단기 약발에 그칠 것이 분명한 부양책에 매달리는 당국의 증권정책은 그야말로 「언발에 오줌누기」에 지나지 않는다.증권사의 투신업 진출을 골자로 하는 최근의 증권산업 개편방안도「떡 하나 더 주기」식이 아니라 선진 증시에 걸맞는 증권산업을육성하기 위한 장기 포석의 하나여야 한다.차선을 따라 올곧게 달리는 택시기사마냥 합리적인 투자판단으로신명나게 주식투자를 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할 것이다. 정부에서 외치는 「나라 바로세우기」도 그나라 경제의 거울이라고 불리는 주식시장을 바로세우지 않고선 공염불에 그칠 것이라는 점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