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지 않으면 망한다.」 21세기를 코앞에 두고 국내 대기업들사이에서는 경영혁신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시점은 대략 90년초부터이다. 미래의 예측불가능한 경영환경에 맞서 초우량기업으로거듭나기 위해서는 현재의 경영패러다임으로써는 생존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경영혁신의 초점은 기회선점에 맞춰져 있다. 변화에 적응하느냐,못하느냐는 문제보다는 누가 먼저 미래의 변화를 감지, 기회를 선점하느냐가 생존을 좌우할 것으로 대기업들은 인식하고 있다. 이에따라 대기업들은 「신경영」(삼성) 「가치경영」(현대) 「정도경영」(LG) 등 21세기 비전을 담은 경영이념을 내걸고 구체적인 생존전략마련에 나서고 있다. 한편에서는 몸집을 줄이고 경영유연성을 추구하는가 하면 또 한편에서는 21세기 유망업종을 찾는 작업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중이다.경영혁신작업은 재벌중에서는 아무래도 삼성그룹이 한발 앞서 나가고 있다. 삼성그룹은 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이건희회장주재로 사장단회의를 열어 「신경영」선포식을 갖고 대대적인 경영혁신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질위주의 경영,고객만족도의 극대화,세계화추구 등이 신경영의 요체로 지난 3년동안 가시적인 효과를 거둔 것으로 그룹내에서는 자평하고 있다.반도체의 호황에 힘입은 것이지만 그룹매출이 80조로 2배 증가하고계열사통폐합작업을 통해 사업구조를 재구축,자동차 정밀화학 유통등 신규업종에 진출한 것이 구체적인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삼성그룹은 이와함께 품질과 서비스에 대한 개념이 부족한 사회풍토에서고객만족도경영을 펼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제반제도 미비·추진과정상 문제 해결해야그동안의 성과를 바탕으로 삼성그룹은 이달부터 소그룹별로 신경영2기 선포식을 잇달아 가지면서 경영혁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이회장은 지난 4월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그룹전략회의를 주재, 그룹경영 전반에 팽배해 있는 버블(거품)을 해소하라고 지시했다. 이와함께 최고경영자들은 21세기를 앞두고 혁신 정보 지식 국제감각등으로 무장해 행동위주의 스피디한 경영을 펼쳐나갈 것을 강력히주문했다.최근 몇년간의 반도체 호황에 편승한 방만한 그룹운영으로는 자칫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 이회장의 인식이다. 이회장의 이같은 방침에 따라 삼성그룹은 사각지대, 정신적 거품현상, 누수현상등이 ‘신경영’을 막는 3대 장애요소로 규정하고 소그룹별로 이에대한 대책마련에 분주하다.삼성그룹 회장비서실 관계자는 『신경영 1기가 제도등 하드웨어에관련된 개혁이었다면 2기는 소프트웨어 개혁에 무게가 실려있다』고 말했다.양적팽창을 지양하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경영혁신 작업도 활발히 추진되고 있다. 현대그룹이 이 경우에 해당된다. 현대그룹은 정몽구회장이 그룹회장에 선임된 것을 계기로 그룹 경영이념을 「가치경영」으로 정하고 제도정비 등을 서두르고 있다. 사외이사제 도입은 그 시작이다. 21세기에는 오너독단에 의한 경영방식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것으로 보고 사외이사제를 도입(현대정보기술, 금강기획, 현대상사)했다. 이 제도를 통해 경영의 투명성을 확보, 그룹이미지를 제고해 나간다는 것이다. 다른 그룹에 비해 총수형제들의경영참여가 많은 경영특성도 사외이사제도 도입을 촉발한 요인이다.현대그룹의 기술중시도 21세기를 대비한 경영대책이다. 21세기 무한경쟁시대에는 기술우위만이 살길이라고 판단,그룹사로는 처음으로 「기술의 날」을 제정해 시행하고 있다.「정도경영」을 경영이념으로 제시한 LG그룹은 올해 3월 「도약2005」선포식을 갖고 경영전반에 걸쳐 개혁작업을 추진중이다. 「도약 2005」계획은 오는 2005년까지 매출 3백조원을 달성하고 업종별 최고의 수익률을 확보,경영의 질과 양에서 1등을 실현한다는 것이 골자이다.이런 차원에서 LG그룹은 앞으로 업종의 전략적 철수 및 진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1위를 못하는 사업은 과감히 철수하는한편 21세기 유망업종에 대해서는 그룹역량을 집중해 나간다는 것이다. 이미 1위를 뺏긴 TV에서 철수하고 정보통신사업진출을 위해총력전을 펴고 있는 것이 이같은 LG의 경영흐름을 반영한다. 구본무회장은 취임이후 기회가 있을 때마다 21세기 초우량기업으로거듭나기 위해서는 경영전반에 걸쳐 제2의 혁신을 단행해야 한다며현장위주의 경영, 해외경영활동에 발벗고 나서고 있다.대우그룹은 「세계경영」을 경영혁신의 기본모토로 삼고 있다.◆ 새로운 몸집부풀리기도 문제세계경영의 기본축은 김우중회장이다. 김회장은 그룹경영권을 전문경영인들에게 맡기고 해외사업거점마련에 동분서주하고 있다. 대우는 「세계경영」 2000년의 결실을 위해 해외 현지법인 6백개를 포함해 1천여개의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인력 또한 25만명으로 늘릴계획이다.국내 대기업들은 무한경쟁이 예견되는 21세기를 코앞에 두고 이처럼 다양하게 경영혁신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학계 및 재계에서는 혁신을 지원하기 위한 제반제도의 미비, 추진과정상의 문제점등을 들어 대기업의 경영혁신에 다소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서울대 신유근교수는 본지가 마련한 「한국적 경영의 모색」 심포지엄 주제발표를 통해 『대기업의 경영혁신은 기업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무차별적인 제도도입, 상황에 안맞는 급진적 제도가 선호되는 경향이 있다』며 경영혁신은 총수들의 뒤흔들기식이 아닌내부구성원의 공감대형성을 통해 추진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도전적인 기업문화에서는 전면적인 혁신이 가능하지만 보수적인 우리기업문화풍토에서는 혁신이 내부반발로 이어질 가능성이있다고 신교수는 진단한다.경영혁신 내용중 오너독단경영에 대한 개선책이 없는 것도 문제다.대기업들은 21세기 경영혁신의 요체라고 할 수 있는 소유와 경영분리에 대해서는 이렇다할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그 대안으로 전문경영인에 의한 자율경영체제 강화를 모색하고 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오너독단경영에 대한 비판 희석용일 뿐이라는 것이 재계안팎의 분위기이다. 알맹이가 빠진 셈이다.새로운 몸집부풀리기도 대기업의 경영혁신을 빛바래게 하는 요인이다. 대기업들은 일면에서는 계열사를 통폐합해 몸집을 줄이면서도새로운 업종에 진출,중소기업들과의 마찰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심지어는 위장계열사를 두었다가 정부에 발각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대기업 경영혁신이 양면성을 띠고 있다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재계관계자들은 경영혁신이 국민들로부터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이런 부분에 대한 보다 분명한 입장표명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