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녀가 아이를 낳아도 할말이 있다고 한다. 비록 죄는 지었지만 나름대로 피치못할 사정이 있다는 이야기다. 기업의 부도도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지금까지 우리 경제계에서는 수많은 기업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부도라는 치명상을 입은 뒤 공중분해되거나 주인이 바뀌는 운명을 맞았다. 90년초 우리 경제가 구조조정기에 들어갔을때는 기업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연이어 무너지는 「부도도미노」현상이 빚어지기도 했다. 원고 수출부진 고임금 인력난 등이 부도기업인들이 말하는 외부원인들이다.물론 잘나가던 회사가 부도라는 치명상을 입고 좌초하기까지에는이런 외부적인 요인도 작용했다. 그러나 우리 기업의 부도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아무리 번영한 문명도 내부에서부터 붕괴되듯 과욕과 경영오판에 의해서 스스로 몰락한 기업들이 허다하다.금융계 관계자들은 분수를 모르는 무리한 사업다각화, 과잉설비투자, 부동산에 대한 무모한 집착, 내부관리능력의 부재,지나친 정경유착, 2세경영자의 방만 경영 및 족벌경영등이 부도기업의 일반화된 유형이라고 제시한다. 80년대 중반이후 좌초한 기업들을 분석해보면 십중팔구는 이 틀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잘나가는 요즘 기업경영자들이 타산지석으로 삼을 대목이다.◆ 무리한 사업확장 및 다각화모래성 예고하는 문어발식 확장부도기업의 가장 전형적인 유형은 무리한 사업확장 및 다각화이다.지금까지 우리 기업들은 주력사업분야에서 어느정도 힘이 비축되면왕성한 문어발확장을 꾀했다. 신흥대기업들이 다 이런 전철을 밟았다. 그러나 극히 일부를 제외하곤 대부분 침몰했다.재계의 다크호스로 급부상하던 덕산그룹의 몰락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89년 어머니로부터 한국고로시멘트를 넘겨받아 경영일선에 나선 덕산 박성섭회장은 10년이 안되는 기간에 계열사를 무려 24개로늘리는 수완을 발휘했다. 업종도 시멘트관련에서 90년이후 중공업유화 제약 언론 건설 등으로 다양화했다. 이과정에서 덕산은 부채가 1천여억원에 달해 누구도 인수하기를 꺼렸던 무등건설을 50억원의 프리미엄을 얹어주고 인수하는 과욕을 부렸다. 심지어는 레미콘회사를 인수할때는 경쟁업체를 따돌리기 위해 원매가보다 높은 가격으로 치고 들어가는 수법을 동원한 것으로 알려졌다.부실기업을 인수하고 회사를 잇달아 신설하면서 덕산은 신흥대기업으로서의 면모는 갖추었으나 영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한마디로 모래성에 지나지 않았다. 무등건설이 첫 번째로 부도위기를 맞는 것을 계기로 덕산은 결국 공중분해되는 비운을 맞이했다. 내실없는단기간의 사업팽창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준 셈이다. 덕산의 몰락은 전남 광주지역과 충북지역 경제에 엄청난 주름살을 안겨주었다.이외에도 의류업체인 논노, 광학기기업체인 아남정밀,섬유 및 모피업체인 대도상사와 기온물산,식품업체인 털보네식품등이 무리한 사업다각화를 꾀하다 재계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과잉설비투자자금고정화=자금압박과잉설비투자에 의한 좌초도 빼놓을 수 없는 부도유형이다.대부분기업경영자들은 초창기 구멍가게에서 창업을 했다.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면 공장부지를 사들이고 설비투자를 늘린다. 중소기업경영자들이 이런 습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사옥 공장 기계설비등 설비투자에 돈을 들이다 보면 자금이 고정화돼 자금압박으로 곧바로이어지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문틀 및 도어전문제작업체인 삼익목재가 이 경우에 해당한다.원목을 가공하는 제재업으로 첫 출발한 삼익목재는 80년 이탈리아 가구사와 기술제휴를 맺어 2차 목재가공업체로 나름대로 기반을 다져나갔다. 이 회사는 86년 「패릴리 도어」가 아파트건설붐을 타고 히트를 치면서 승승장구했다. 1백만불수출탑을 수상하는등 어느새 삼익목재는 동종업계에서 선두를 달렸다. 힘을 얻은 이 회사는 91년도어 공장을 증축(1천3백70평)하고 수입기계를 도입하는등 공장자동화를 서둘렀다.설비투자에 투자된 돈은 70억원에 달했다. 이것이불행의 씨앗이었다.자동화설비후 매출이 급신장하는등 한때 경영이 호조세를 타기 시작했다.그러나 이것은 반짝세에 불과했다. 매출채권이 계속 늘어나고 설비투자에 따른 자금압박이 서서히 가시화되기 시작했던 것.담보적금만으로 매달 1억2천만원씩 불입해야하는등 갈수록 자금압박이 계속됐고 급기야는 종업원의 급료도 제때에 지불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결국 이회사는 설비투자에 따른 자금난을 이겨내지 못하고 부도를냈다. 다행히 이 회사는 법정관리에 들어간뒤 유석기사장을 비롯한전 종업원이 똘똘뭉쳐 재기에 안간힘을 써 정상궤도진입을 눈앞에두고 있다. 중국에 대한 과대한 시설투자가 원인이 돼 도산한 한국벨트, 과도한 기술개발비를 이겨내지 못하고 침몰한 남일금속등이과잉설비투자로 인한 부도유형이다.업계에서 선두를 차지하기 위해앞뒤가리지 않고 설비투자를 하는 기업의 장래가 어떻게 되는지를이들 기업은 잘 증명하고 있다.◆ 막대한 부동산 보유회사의 덜미 잡는 '애물단지'그 다음 부도유형은 땅으로 일어선 기업 땅으로 망한다는 사실을입증이라도 하듯 막대한 부동산보유가 끝내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한경우다.지난해이후 부도도미노현상을 보이고 있는 건설업체가 대부분 이에해당된다.부동산으로 일어섰다 부동산 때문에 부도를 낸 회사의 대표적인 케이스는 우성건설. 우성건설은 주택건설붐을 타고 일약 30대그룹에진입하는 저력을 보이다 올해 1월 좌초하는 비운을 맞았다. 이 지경에 이르게 된데는 무리한 사업다각화, 부동산경기의 퇴조에 따른아파트의 미분양사태도 원인이지만 그 내부를 들여다 보면 과다 부동산보유가 회사를 회생불능 상태로 몰고 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시각이다.부도당시 이 회사는 부산우동 8천2백여평,대전태평동 4만9천여평등모두 1조5천억원(시가기준) 상당의 부동산을 보유한 것으로 추산됐다. 은행부채 9천9백억원을 탕감하고도 남는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부동산은 자금난을 덜기 위해 팔려고 내놓아도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았고 결국은 회사의 덜미를 잡는 애물단지가 돼버렸다. 컨설팅전문가들은 『기업경영에 있어서 부동산만능시대는 이미 지나갔다』며 앞으로 경영자들은 부동산보다는 운전자금의 유동성확보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법정관리중 부도를 낸 논노의 경우도 결국 보유부동산이 팔리지 않아 회생에 실패한 사례다.◆ 2세경영인의 저돌적 공격경영앞뒤 안가리고 추진하다 백기2세경영인의 저돌적 공격경영으로 인한 몰락도 심심찮게 목격된다.대구 하나백화점 인켈 삼도물산 등이 이 유형에 속한다. 하나백화점 김영찬사장은 지난 93년 부친으로부터 회사경영권을 물려받자마자 백화점왕국을 꿈꾸며 저돌적으로 사업영역을 확대했다. 경북 칠곡지점, 대구 범물점, 효성점 등 1년만에 3개분점을 신설했다. 지난 94년에는 부도로 쓰러진 경북 구미시 다모아백화점을 3백10억원에 인수하는등 앞뒤 안가리는 저돌경영을 하다 결국 자금난에 봉착, 백기를 들고 말았다. 해태그룹으로 주인이 바뀐 오디오전문업체 인켈도 비슷한 경우다. 인켈 조석구사장은 부친으로부터 경영대권을 이어받은 뒤 문화사업등 엉뚱한 부문에 신경을 쓰다 비운을맞았다.◆ 정경유착정치 '불가근불가원' 철칙 지켜라대부분 기업경영자들은 정치와 「불가근 불가원」을 철칙으로 삼고있다.그러나 이 원칙을 지키지 않고 밀착하다 스스로 쇠락의 길로접어든 기업도 상당수 된다.이른바 정경유착에 따른 부도이다.이런 유형의 부도회사로는 장복건설 한양 라이프그룹 등이 거론된다. 이들 기업은 5,6공시절에 성장세를 타다 문민정부들어 동시에사라진 것이 특징이다.장복건설은 군출신으로 하나회멤버였던 배명국전의원이 지난 78년설립한 토목건설업체로 5,6공시절 신군부와의 인연을 바탕삼아 성장세를 탔다. 이 회사는 84년부터 87년까지 수의계약으로 총 7건에2백47억원에 달하는 정부발주공사를 따냈는데 이는 당시 정치권과인연이 크게 작용했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문민정부가 들어선 93년 부도를 내고 좌초했다.한양은 거액의 정치자금을 매개로 기사회생을 노리다 공중분해됐다. 이 회사 배종렬전회장은 「로비천재」로 불릴만큼 정치권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유명하다.결국 그는 5,6공비자금사건이불거지면서 「그때 그사람」들과 재판정에 서는 운명을 맞았다.◆ 기타흑자부도-돌발적 환경변화도 주의이밖에 재무관리등 관리행정의 난맥상으로 인해 흑자부도를 내 주인이 바뀌는 경우(삼보지질)와 단교조치등 돌발적인 환경변화로 타의에 의해 좌초(광림기계)한 경우도 우리 기업부도사에서는 발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