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체 인사담당자들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취업시즌을 맞아필요한 인재를 찾기 위해서다. 특히 신입사원 채용을 맡고 있는 직원들의 움직임은 전에 없이 분주하다. 일년 농사의 성패가 11월과12월 단 두 달 사이에 결정되기 때문이다. 일년 가운데 가장 바쁜「농번기」를 맞고 있는 셈이다.인사부 직원들의 진땀나는 행보 뒤에는 어찌 보면 행복한 고민이서려있는 것이 사실이다. 지원자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최근 원서접수를 끝낸 주요 대그룹 공채의 경우 경쟁율이 무려 20대 1이나된다. 진로그룹은 1백50대 1이라는 엄청난 경쟁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사정은 중견기업이나 중소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수십명을 뽑는채용시험에 수백~수천명이 몰리기 일쑤다. 전체적으로 필요한 인력에 비해 취업을 원하는 구직자가 너무 많은 까닭이다. 그러나 정작인사부 사람들은 그리 만족스럽지는 못하다는 눈치다. 지원자만 많지 데려다가 당장 효과적으로 쓸만한 인재는 그리 많지 않다는 불만스런 표정이 역력하다. 그런 까닭에 요즘 채용 담당 직원들은 능력있는 우수한 인재를 잡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정기 공채를통해 신입사원을 선발하는 것과는 별도로 특채 형식으로 우수한 인력을 데려오기 위해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이다.◆ 진로그룹 경쟁률 1백50대 1또 최상위권 그룹에 비해 지명도가 떨어지는 중견그룹들은 근본적으로 명문대 출신이 지원을 꺼려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좋은대학을 나올수록 이름이 번듯한 기업에 지원하는 까닭에 인재확보에 애를 먹고 있는 것. 물론 명문대 출신이 반드시 일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기업들은 이들이 수적으로 아주 적을 경우 인력수급의 구색을 맞추기가 어려워 문제가 많다고 토로한다. 중위권그룹에 속하는 한일그룹의 경우 지난해 전체 신입사원 가운데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3개 명문대 출신은 고작 10%에 불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한보그룹도 3개 명문대 출신이 10% 정도에 머물렀다. 이에 따라 중하위권 그룹들은 지난해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방침 아래 채용시기를 조절하는 등 갖가지 묘안을 짜내고 있다. 벽산그룹의 경우 채용시기를 내년 1월쯤으로 미뤄놓고 있다. 거대 그룹과 정면대결을 해봤자 별로 득이 될 것이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삭줍기로 실익을 챙기자는 생각이다. 한일그룹도 최근 인사부 직원 전원이 동원돼 명문대 출신의 지원을 유도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기업들이 우수한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가장 흔히 쓰는 방법은 산학장학생 제도다. 학부생이나 대학원생 가운데 꼭 필요한 학생에한해 장학금을 주고 미리 잡아놓는다. 대개 졸업할 때까지 드는 학비를 전액 대주는 조건이다. 주로 학부생은 3학년, 대학원생은 입학하면서부터 대상이 된다. 액수로 치면 졸업할 때까지 2년간 학부생에게는 6백여만원, 대학원생에게는 8백만원쯤 지급한다. 또 기업에 따라서는 학생들에게 학비보조비 명목으로 매달 일정액의 돈을주기도 한다. 대략 월 30~40만원 수준이다. 대상은 주로 공과대학의 일부 학과에 집중된다. 특히 전자전산 관련 학과의 경우는 최고인기다. LG전자는 해마다 50여명 안팎의 전자공학 전공 학생을 산학장학생으로 선발한다. 삼성전자와 현대전자, 대우전자도 해마다수십명의 학부 및 대학원생들을 뽑아 산학장학생 자격을 준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다른 첨단업종 기업들도 우수인재를 데려오기위해 입도선매에 적극 나서고 있다. 국내 기업들의 투자가 활발한지역과 관련이 있는 어문학과에도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근베트남어와 인도어 전공자들이 우대받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베트남 진출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는 LG그룹과 미원그룹은 지역전문가육성 차원에서 얼마전 한국외대 베트남어과 학생을 산학장학생으로선발하기도 했다.이에 따라 일부 기업들은 명문대 인기학과 학생들을 놓고 치열한쟁탈전을 벌이기도 한다. 대표적인 공략 대상 가운데 하나가 포항공대다. 포항공대의 졸업생 수는 보통 2백80여명 선이다. 입학생수는 3백명이 정원이지만 군입대 등의 휴학으로 졸업생수는 거기서20여명쯤 빠진다. 더구나 졸업예정자 가운데 70%인 2백여명이 대학원에 진학하므로 실질적인 취업희망자는 50~60명에 지나지 않는다.결국 이들을 놓고 현대, 삼성, LG 등 국내 굴지의 기업들 사이에치열한 스카우트전이 펼쳐진다. 설립자이자 재단 후원기업인 포철조차 일년에 5~6명 밖에 데려가지 못할 정도로 탐내는 업체들이 많다. 포항공대 학생과의 한 관계자는 『취업희망자들 모두 9월 이전에 입사가 결정됐다』고 설명한다. 그는 또 『최근 기업들이 추천서를 무더기로 보내 처치하기 곤란할 정도로 쌓여있다』고 말한다.서울대나 연고대, 한국과학기술원의 전자전산 관련 학과도 학생이없어 못보낼 정도로 기업체의 주문(?)이 밀려든다. 대부분의 취업희망 학생들의 진로가 이미 10월 이전에 결정됐을 정도다. LG전자인사복지팀의 한 관계자는 『꼭 필요한 인재를 뽑기가 쉽지 않다』며 『특히 연구개발직의 경우는 경쟁이 치열해 해마다 필요인력의70%밖에 데려오지 못한다』고 설명한다.우수인재 확보 차원에서 아예 캠퍼스를 찾아나서는 기업들도 적잖다. 취업시즌을 맞아 실무자들이 기업설명회 등의 명목으로 대학을방문, 학생 유치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LG 동아 두산 코오롱 등30여개 그룹이 이미 주요 대학을 돌며 개별적으로 홍보활동을 벌였다. 매킨지 등 외국회사들도 별도의 행사를 가졌다. 특히 우수인재에 목말라 있는 농어촌진흥공사와 신공항건설공단, 무역투자진흥공사 등 정부투자기관들도 이례적으로 특별팀을 만들어 대학가를 순례했다. 이들 공사들은 주로 정부투자기관의 장래성과 안정성에 대해 집중적으로 홍보했다.그런가 하면 좀더 적극적인 기업들도 있다. 인사부 소속 직원을 해당 대학에 파견, 맨투맨식으로 우수학생을 끌어오는 밀크로드시스템(Milkroad System)을 도입하고 있는 것. 학생들이 찾아오기를 기다리기보다 아예 모셔오기 위해 대학 캠퍼스를 방문, 일대일로 접촉하는 것이다. 밀크로드시스템은 미국 기업들이 많이 이용하는 방법으로 손수레를 이용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우유를 파는 데서 유래했다.현대백화점의 경우 지난 9월 중순 일부 대학을 상대로 직원을 파견, 현장에서 원서를 나눠주고 지원서를 받아왔다. 또 동부화재 제일제당 LG신용카드 등도 대학을 직접 방문해 졸업예정 학생들과 접촉해 관심을 끌었다. 이들 회사들은 대부분 회사 근처 커피숍이나카페에 본부를 차리고 학생들에게 회사를 적극 홍보하는 한편 원서를 나눠줬다. 특히 해당 대학에그 대학출신 직원을 파견, 후배들을포섭(?)해오는 역할을 맡기고 있다.◆ 해외 우수인력 유치작전도 치열각 기업들은 지구촌 시대를 반영하듯 해외에 나가 있는 유학생이나교포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재확보에도 적극적이다. 지금 시점에서라이벌 기업에 밀리면 만사 끝장이라는 비장감마저 감돈다. 그만큼기업들 입장에서는 인재확보에 사활을 걸다시피하고 있는 것이다.LG그룹은 지난 3~4월 두 달 동안 미국 전역을 돌며 해외 우수인력유치작전을 폈다. 현지의 교포나 유학생들에게 세계적인 메이커로서의 기업이미지를 심어주는 동시에 입사 이후의 비전에 대해서도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그리고 최근 다시 직원들을 현지에 파견, 채용을 위한 면접을 실시했다. LG그룹은 지원자 가운데 능력이 뛰어나다고 판단되는 사람을 뽑아 국내로 불러들인 후 연구개발 관련업무를 맡길 예정이다. 또 삼성그룹은 미주 유럽 일본 지역의 3군데로 나누어 해외공채를 실시중이다. 한국 국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간단한 입사시험을 치러 선발한다. 역시 선발된 사람에 대해서는 귀국시켜 국내에서 근무하게 할 방침이다.인재유치를 위한 기업들의 활발한 움직임에 대해 일부에서는 비판의 목소리도 들린다. 특별채용이 특정대학 위주로 이루어지고 있어형평성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각 기업들은 산학장학생 등의 추천원서를 몇몇 명문대에만 배부하고 있다. 국내 굴지의 모 그룹의 경우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포항공대 한국과학기술원등 상위 5개 대학에만 산학장학생 추천원서를 뿌리는 것으로 확인됐다. 상황이 이쯤 되자 우선 채용에서 제외된 대학 관계자나 학생들은 불만이 적지 않다. 특히 지명도가 떨어지는 대학에 다니거나지방대에 재학중인 학생들의 상대적인 박탈감은 극에 달한 모습이다. D대 사회학과 졸업반인 이모군은 『추천서는 고사하고 원서 구하기도 만만치 않다며 기업들이 일부 대학의 학생들만 선호하는 것같아 씁쓸하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