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이체 텔레콤(DT)을 설명하려면 본의 아니게 최상급 표현을 많이 쓰게 된다. 독일 사람들로부터 비웃음을 가장 많이 사는 기업이도이체 텔레콤이다. 도이체 텔레콤은 유럽에서 전화교환원을 가장많이 고용하고 있는 통신회사다. 전세계적으로 도쿄전력(東京電力)다음으로 부채가 많은 기업이기도 하다. 이 독일회사는 또 초고속 전화망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고객들의 서비스신청엔 느림보 대응을 하기로 유명하다. 도이체 텔레콤은 11월 18일 민영화조치의하나로 독일 역사상 최대 규모의 공모주 청약에 나선다. 세계 역사상으로는 일본의 NTT에 이어 공모주 청약규모가 큰 것으로 기록될것이다.도이체 텔레콤의 민영화는 독일의 기업문화를 바꿀 수 있는 계기를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84년도 브리티시 텔레콤(BT)이 민영화될 당시 못지않은 파급효과를 미칠 수 있다. 현재 독일의 자본주의는 악순환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독일은 서방선진5개국 가운데 주식에 대한 국민들의 혐오감이 가장 두드러지는 나라다. 독일인구의 5%만이 주식투자를 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그비율은 25%에 이른다. 주식에 대한 독일국민들의 부정적인 자세는독일 경제사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독일인들은 전후 두차례의 화폐개혁을 경험하면서 극단적인 리스크 회피형으로 변했다. 여기에 독일 대기업들의 주식 수익률도 형편없이 낮았다. 주식투자수익률이 독일국채나 담보부채권의 수익률보다도 낮은 사례가 비일비재한 것이 현실이다.독일에서는 주식투자수익률이 낮다보니 주식투자붐이 조성될 수 없었고 주식시장에 활기가 없다보니 다시 주식투자수익률이 별 볼일없어지는 악순환이 이어져왔다. 독일국민들의 저축액은 주로 은행을 통한 대출형태로 기업들에 흘러들어갈 뿐이지 주식투자로 연결되는 신탁상품 등으로는 몰리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독일의 기업체사장들은 주주들에게 잘보이기 위해 단기적으로 영업실적을 올리는충격요법을 동원할 필요가 없다.근래들어 독일의 기업 문화가 조금씩 변화해온 것은 사실이다. 독일 기업에 투자하는 외국인들의 숫자가 급증추세를 나타내고 있다.독일의 대표적인 대기업그룹인 다임러 벤츠의 위르겐 슈렘프회장처럼 독일재계 정서로 볼때 특이한 경영자도 출현하고 있다. 슈렘프회장은 기업경영에서 주주들의 이익이 우선돼야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독일내에서는 보기 드문 최고경영자다. 미국계 투자은행인 골드만 삭스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독일 경영자들이 마음만 먹는다면주식투자수익률이 2~3%포인트정도 높아질 수 있는 여력은 충분하다.◆ 독일 주식투자 문화 정착시킬 수 있는 마지막 기회도이체 텔레콤의 지분 20%가 성공적으로 매각된다면 독일에서 주식투자 바람이 일어날 수도 있다. 주식바람이 불면 독일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루프트한자 지분 36%의 매각등 후속 정부지분 처리작업이 순조롭게 풀릴 것으로 기대된다. 도이체방크의 롤프 보로어부장은 도이체 텔레콤의 민영화를 『독일에 주식투자 문화를 뿌리 내리게 만들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말했다.도이체 텔레콤의 공모주 청약이 성공할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선수많은 변수를 고려해야 되겠지만 최근 도이체 텔레콤의 이사진은주식수가 5억만주인 공모주 청약대상 신주의 발행가가 주당25~30마르크(16~20달러)대에서 결정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는1년전에 예상한 발행가인 35~40마르크대보다 한단계 하향조정된 것이지만 도이체 텔레콤측의 예상가를 기준으로 주식매각이 이뤄진다고 해도 공모주청약은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물론 공모주청약을 통해 증시에 상장될 도이체 텔레콤주(株)가 장기적으로 주주들에게 높은 투자수익률을 선사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일이다.도이체 텔레콤의 론 좀머사장은 올들어 개혁을 강조해왔다. 직원들이 관공서 민원실의 공무원 쯤으로 착각하고 관료주의 행동을 해왔다고 지적하며 각성할 것을 촉구했다. 좀머 사장의 개혁추진에 힘입어 이 회사의 서비스질이 예전보다 눈에띄게 향상된 것은 사실이다. 공휴일에도 전화선 보수반이 움직이는 일이 흔해졌고 공중전화부스 설치도 활발해졌다. 도이체 텔레콤은 T-온라인같은 새로운서비스도 선보였다. 이 온라인 서비스는 현재 독일에서 제일 인기가 높은 인터넷 서비스가 됐다.도이체 텔레콤의 공모주를 매입할 새 주주들은 이 회사의 엄청난자산가치 혜택을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도이체 텔레콤은 독일에서두번째로 영업망이 큰 이동전화사업을 운영하고 있고 독일 최대의케이블TV망도 보유하고 있다. 또 독일내 통신요금이 비교적 높게책정돼온 덕택에 수익성도 높은 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도이체텔레콤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3백40억마르크를 기록했다.좀머사장은 또 도이체 텔레콤의 글로벌 원(Global One) 참여를적극적으로 추진해왔다. 글로벌 원은 프랑스텔레콤과 미국의 장거리전화회사인 스프린트 등이 참가하는 세계적인 통신서비스협력체다.그러나 도이체 텔레콤은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는 회사다. 무려 1천억마르크에 달하는 부채를 지고 있다. 구동독의 전화망을최신식으로 교체하는데만 5백억마르크에 이르는 엄청난 자금이 소요됐기 때문이다. 이 동독지역 전화망개량 프로젝트는 경제논리가아닌 정치논리로 추진됐던 사업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좀머 사장의 개혁노력에도 불구하고 도이체 텔레콤의 근무자 수가 다른 나라와 비교할때 아직도 과잉상태라는 점이다. 도이체 텔레콤의 경우근로자 1인당 할당된 전화회선이 1백84선이다. 이에반해 미국의 지역전화회사인 벨전화의 경우 할당 회선이 2백75선이나 된다. 오는2000년까지 20만~30만명 정도의 인원감축이 단행돼야만 가장 효율적인 적정인력이 되며 이같은 인원감축에는 감원대상 1인당 10만마르크의 비용이 들어가는 것으로 계산돼 있다.◆ 도이체 텔레콤, 자유경쟁체제 대비 공격경영할 때도이체 텔레콤의 지난해 매출액은 6백60억마르크이며 이 가운데5백10억마르크가 국내 일반전화사업으로 벌어들인 것이다. 이런 수입구조도 멀지 않아 변화될 전망이다. 오는 98년부터유럽연합(EU)의 통신산업은 완전한 자유경쟁체제가 된다. 경쟁체제로 이행한다는 것은 도이체 텔레콤으로서는 회사의 사활을 걸고뭔가 새로운 전략을 구사해야 하는 절박한 입장에 처한다는 뜻이된다. 물론 서비스공급업체와 정반대로 전화서비스를 받는 일반가정및 법인고객들은 경쟁체제 덕분에 달콤한 과실을 맛볼 수 있다.독일의 시내전화료는 미국내의 최장거리전화료와 비슷할 정도로 비싸다. 독일의 장거리전화료와 국제전화요금도 독점으로 인해 과도하게 높게 책정돼 있는 실정이다.이같은 독일의 통신사업독점을 깨기 위해 이미 4개의 컨소시엄이구성돼 사업계획을 구체화하고 있다. 도이체 텔레콤측에서 볼때 미국의 AT&T와 독일의 엔지니어링그룹인 만네스만이 연합한 컨소시엄이 현재로서는 가장 위협적인 존재다. 만네스만은 독일의 제2 이동통신사업자로 선정돼 도이체 텔레콤에 도전장을 낸 그룹이다.도이체 텔레콤은 좀머 사장의 지휘아래 일반전화사업 시장을 잠식당하지 않도록 한층 더 공격적인 경영을 펼쳐야할 시기에 직면했다. 정부당국과 통신산업 참여기업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의식해전화 사용이 많은 법인고객에 대한 전화요금을 40%정도 할인하는가격파괴를 시도할 방침이다. 여기에 도이체 텔레콤은 「중개상」의 도전을 받고 있다. 외국의 값싼 통신서비스망을 도입해 국내에서 이른바 콜 백 서비스를 하는 일종의 중개 통신업자들이 독일에서도 출현한 것이다. 텔레패스포트와 USA글로벌링크 등 2개사가 내년중 사업시행을 목표로 독일내의 장거리전화 콜 백서비스 계획을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USA글로벌링크의 경우 독일에 새 전화교환기를 설치하기 위해 1억달러 정도를 투자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독일사람들이 콜 백서비스를 활용해 이웃 나라를 경유해 시외전화를 걸면 도이체 텔레콤의 피크타임 요금보다 싸게 통화를 할수 있다고 한다.중개 통신업자와 신규사업자및 기존의 통신망확대 등으로 인해 독일의 장거리 전화망은 멀지 않아 공급과잉 상태를 보일 수 있다.그러나 시내전화와 관련해서는 신규사업자들은 반드시 도이체 텔레콤의 라인과 접속을 해야만 서비스공급이 가능하다. 교과서적으로말하면 도이체 텔레콤은 정부당국이 책정해준 가격에 따라 신규 사업자들이 어느 정도 규모의 라인망을 임대하든 상관해서는 안된다.불행하게도 독일에서는 신규 사업자들의 접속과 관련된 규정이 아직까지도 애매모호하게 돼있다. 예를들어 관련규정은 도이체 텔레콤이 접속을 거부할 수 있는 몇가지 조항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 판단기준이 명백하지 않다. 더 곤란한 점은 전화접속 쌍방이 접속조건상의 의견충돌로 합의를 못볼 경우 할수 없이 규제감독기관이 명령권을 행사해야 되는데 명령권을 행사할 감독원들이 선임조차 돼있지 않다는 현실이다. 경과조치로 연방체신통신부가 명령권을 행사하게끔 돼있으나 연방부처는 경쟁체제 통신시장에 대해선 행정경험이 전무하다. 도이체 텔레콤의 입장을 옹호하기에 바쁜 독일의정치인들도 변화를 싫어한다. 신규사업자들의 대정부 로비를 담당하고 있는 컨설팅회사인 VTM의 스테판 슈바르츠는 『정치인들은 마치 공룡처럼 행동하고 있다』며 불평을 늘어놓았다.그렇지만 영업환경이 언제까지나 도이체 텔레콤의 희망사항대로 바뀌지 않고 현재대로 영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독일정부가 아닌EU집행위가 신규사업자들에게 희망을 줄 것으로 보인다. EU집행위는 도이체 텔레콤이 대(對)법인고객 전화요금을 할인키로 결정하자 독일정부보다 더 좋아했다. 미국같은 외국의 통신시장 개방압력도 독일 통신산업의 미래를 좌우할 만한 변수로 부상했다. FCC(미국연방통신위원회)는 독일의 통신시장 개방이 미흡하다는 이유를들어 도이체 텔레콤이 끼어있는 국제통신서비스망인 글로벌 원의사업확대에 제동을 걸고 있다.다시말해 도이체 텔레콤에대한 독일정부의 우호적인 태도가 당분간이어질 수 있을지는 몰라도 영원하게 지속될 수는 없다. 현실을 외면할 수 없는 독일 정치인들이 국민들에게 보다 싼 통신서비스를제공하기 위해서는 시장을 개방하고 독점체제를 청산하는 것외에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주장을 적극 지지해야될 시기가 도래하는 것도 시간문제다. 이런 변화가 독일 자본주의의 앞날은 말할 것 없고도이체 텔레콤 새 주주들의 호주머니 사정에도 영향을 줄게 뻔하다.◆ 폴크스바겐 사례보다 공모주청약 성공 가능성 높아도이체 텔레콤은 성공적인 공모주청약을 위해 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 공모주 청약을 준비하는 이벤트엔 돈을 아끼지 않고 있다. 8천5백만마르크를 투입해 제작한 광고를 통해 코미디언들과 이름깨나 난 투자상담사들은 도이체 텔레콤주식의 장점을 연일노래하고 있다. 공모주 물량이 대규모이다보니 독일의 개인 주식투자자들에게 돌아가는 주식도 엄청나다. 도이체 텔레콤이 상장되면이 단 한종목이 프랑크푸르트주식시장에서 차지하는 주가지수구성비가 5%나 된다. 따라서 기관투자가들도 포트폴리오관리등을 위해도이체 텔레콤주를 일정량 반드시 보유해야 된다.도이체 텔레콤의 상장추진작업이 현 시점까지는 그런대로 매끄럽게진행돼온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미국정부와 EU집행위의 통신시장개방 압력만 일시적으로 잠잠해지고 주가지수만 안정세를 유지해준다면 신주공모청약을 예약한 독일의 3백만 예비주주들은 도이체텔레콤 신주를 매입할 것이다. 『독일정부와 금융계는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도이체 텔레콤의 공모주 청약이 일단은 성공하도록 만들것』이라는 것이 독일 증권가의 공통된 견해다.사실 도이체 텔레콤의 배후에는 공모주 청약의 성공을 보장해줄 수있는 강력한 지원세력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이같은 정부와 은행의 연합이 공모주 광고에서 암시하려고 노력하는 안전투자를 보장해 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도이체 텔레콤이 상장회사가 된다고 해서 경영효율이 저절로 높아진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공모주를 통해 조달할 자금 1백50억마르크는 이 회사의 엄청난 부채를 줄이는데에는 기여할 것이다. 상장회사가 된다고 해서 도이체 텔레콤의 약점이 치유되는 것이 아니라는 지적이다.투자은행인 BZW는 노골적으로 도이체 텔레콤의 공모주청약을 진정한 민영화라기 보다는 자산을 담보로 한 자금조달 방편에 가깝다고폄하할 정도다. 문제는 좀머 사장의 경영이 도이체 텔레콤의 비용절감으로 효과를 발휘할지 여부에 달려있다. 이 독일회사가 고비용벽을 깨지 못한다면 공모주청약에도 불구하고 BT처럼 효율적인 민영화체제로 전환하는데에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자동차메이커 폴크스바겐이 주식을 상장한 지난 60년 당시 독일에서는 주식투자붐이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가 조성됐고 높은 수익을기대한 개인투자자들이 폴크스바겐의 공모주 청약에 몰려들었다.그러나 폴크스바겐의 공모주는 상장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발행가 이하로 폭락했다. 소액투자자들은 겁을 집어먹고 배정받은 주식을 투매했다. 결과론적인 얘기가 됐지만 그 당시의 소액투자자들이 발행가 이하로 떨어지는 폭락사태에서도 장기보유를 고집했다면 짭짤하게 투자수익을 올렸을 것이다. 어쨌든 폴크스바겐의 실패사례는 독일국민들이 주식투자를 부정적으로 보게 만들었다.지난번의 폴크스바겐과 비교하면 도이체 텔레콤의 경우엔 공모주청약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휠씬 크다. 그래서 독일 자본주의의 새시대를 여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런 낙관에도 불구하고 정부당국이 얼마나 신규사업자들의 손목을잡아두느냐에 미래가 달려있는 독점기업이 더 나은 국민생활 운운하는 공모주청약 광고를 내보내는 것은 뭔가 개운치 않은 여운을남긴다.「Launching Deutsche Telekom」 Oct. 26th, 1996The Economist, Lond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