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자동차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국내 완성업체들의 전략에 최근들어 변화의 조짐이 일고 있다. 한국에서 수출된 부품을 현지에서 조립해 완성차를 판매하는 「소극적인 방식」에서 탈피, 요즘에는 현지에 직접 진출해 완성차공장을 가동하는 「적극적인 자세」로 전환하고 있어서다.KD방식은 자동차를 여러 부품으로 나눠 수출하고 현지에서는 부품들을 단순 조립하는 생산형태, 로봇인간을 예로 설명하면 머리와팔 다리 몸통을 분리해 수출하고 현지에서는 각 신체부분들을 다시짜집기 해 로봇인간을 생산하는 방법이다.현대 기아 대우 등 완성차 3사들이 그동안 KD방식에 의존해 왔던이유는 간단하다. 대규모 자본투자 없이도 현지에 손쉽게 진출할수 있다는 이점 때문이었다. 해외에 투자할 돈도 없고 후발메이커로서 해외거점을 빠른 시일내에 구축해야 하는 국내 업체들로서는KD방식이 유일한 해결책이었다는 얘기다.그러나 국내메이커들의 이같은 전략은 최근들어 직접진출 형태로급선회하고 있다. 현지 파트너와 합작으로 완성차 공장을 지어 그곳에서 자동차를 생산, 판매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현지 직접진출의 신호탄은 작년 11월 현대의 터키공장 착공식이었다는 게 업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터키공장은 생산규모나 투자비면에서 캐나다 브루몽 공장이후 현대가 해외에 건설하는 최대규모의 사업이라는 점에서 업계의 관심을 끌었다.92년 대선이후 해외투자를 거의 하지 못하는 바람에 해외투자에서기아 대우에 열세를 보였던 현대입장에선 해외 적극 공략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었고 그 첫 사례가 터키공장이었다고 현대자동차의 한임원은 설명했다.해외 직접진출은 터키공장을 시발로 현대의 인도 베트남진출, 기아의 인도네시아 국민차사업참여 등 굵직굵직한 프로젝트만봐도 그렇다. 현대의 인도프로젝트는 100% 단독투자인데다 현대가 해외진출의 성공여부를 가름하는 주력사업이기도 하다. 기아의 인도네시아진출은 일본메이커들이 20년간 아성을 쌓아온 동남아에서 일본을물리치고 사업권을 따냈다는 점에서 한국자동차산업의 한획을 긋는「대사건」으로 기록될 만하다.국내 완성차업체들이 아시아공략을 이처럼 적극화하게된 배경은 두가지로 볼 수 있다. 우선 아시아 각국 정부들이 자국의 자동차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해외메이커들의 KD수출을 점차 규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서다.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의 경우 BBC(역내부품이행률)등의 규정을 통해 현지부품조달비율이 50%를 넘는 업체에한해 역내 부품 관세를 50% 감면해 주고 있다. 아세안 각국에 진출하는 외국메이커들로 하여금 현재 부품및 완성차업체들에 기술을이전토록 유도하겠다는 전략이다. 그렇다 보니 KD방식으로는 현지에 발을 들여놓기조차 어렵게 된 셈이다.두번째 요인은 「아시아 승부론」이다. 아시아 승부론은 아시아 자동차시장을 장악하는 메이커들이 앞으로 세계자동차 산업을 이끌고그렇지 못한 업체들은 쓰러지거나 아니면 「로컬 메이커」(LocalMaker)로 전락한다는 의미다. 트로트만 포드자동차회장이 『2010년께 아시아시장은 세계최대의 자동차 시장으로 부상할 것이기 때문에 아시아 시장을 누가 주도하느냐가 승부의 관건』이라고 밝힌 것도 이같은 논리를 뒷받침하고 있다. 게다가 선진메이커들은 너나없이 아시아진출을 가속화하는 추세다.이에반해 한국산 자동차의 구미 유럽시장 수출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선진메이커간 생존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한국업체들의아시아진출은 일종의 「대안없는 선택」으로 작용하고 있고 진출도화급을 다투는 중대사안이 돼버린 셈이다.이같은 요인은 국내업체들의 투자규모가 예전에 비할수 없을 정도로 「거대화」 되고 있는 점만봐도 알 수 있다. 작년초까지만 해도국내업체들의 아시아지역 진출은 투자비가 기껏해야 몇 천만달러,생산규모도 연간 1만대수준이 고작이었다. 그러던 것이 요즘에는공장하나 짓는데 11억달러, 생산규모도 적으면 5만대, 큰 경우는20만대까지 확대되고 있다. 시쳇말로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식으로 국내 업체들이 「모험」을 벌이고 있는 것도 아시아시장의중요성을 그만큼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물론 국내업체들이 「친구따라 강남가는 식」으로 대책없이 아시아시장에 뛰어들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예컨대 국내메이커들도 「아시아카」 개발계획에 본격적으로 착수하고 있다.아시아카는 아시아 소비자들의 취향에 맞게 차를 개발해 아시아지역에만 파는 것으로 「월드카」와 대비되는 개념이다. 일본 혼다자동차가 아시아카인 「시티」(City)를 개발, 지난 4월 태국에서 시판에 들어간 것을 필두로 도요타의 「AFC」, 닛산 미쓰비시의 아시아상용차, GM 포드 크라이슬러등 미국 「빅 3」의 아시아카 등 선진메이커마다 아시아카 개발계획을 경쟁적으로 발표한 바 있다.국내업체중에는 현대가 액센트를 기본모델로 한 아시아카 개발을구체적으로 추진중이다. 이 차는 액센트의 내장재를 값싼 부품으로바꾸는 것은 물론 동남아국가에서 불필요한 히터 열선등 각종 사양품목을 없앤 모델이라고 보면 된다. 일본메이커들이 현지에서 생산한 각종 부품들을 적용하고 외관도 바꿔 선보이고 있는 모델과 비교할 때 액센트는 엄밀한 의미에서 아시아카라기 보다는 「저가차」에 가깝다고 할 수있다.그러나 현대측은 『액센트의 품질과 디자인이 구체적으로 경쟁력을갖추고 있기 때문에 사양조정만으로도 선진메이커들의 아시아카와의 경쟁에서 승산이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현대는 이 모델을 태국에서 먼저 선보인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으로 판매망을 넓힌다는 계획이나 언제 동남아시장에 투입할지는 아직 결정하지 못한 상태다.인도네시아에서 「티모르」라는 브랜드로 호평을 얻고 있는 기아세피아는 현지 국민차로 선정된만큼 아시아카수준을 한단계 뛰어넘은 모델로 볼 수 있다. 국민차는 세제상 각종 혜택이 부여되기 때문에 일단 선정만 되면 일정 물량이상의 판매는 보장되는데다 아시아카 개발에 따른 비용절감과 위험부담을 줄일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그렇다면 국내 완성차업체들간에 아시아시장 공략을 위한 전략상의차이점은 무엇일까. 업체별 전략은 아시아진출 시기와 깊은 관련이있다.국내 업체중 아시아에 가장 먼저 진출한 메이커는 기아자동차다.현대가 미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던 포니 엑셀을 무기로 80년대 후반 북미시장 공략에 적극 나섰던 시기에 기아는 아시아시장에눈을 돌렸다.89년 대만과 필리핀에 프라이드(현지브랜드 페스티바) KD공장 건설을 시작으로 90년대초에는 KD생산거점을 이란 파키스탄으로 확대해나갔다. 그러다 올해초 인도네시아 국민차사업자로 선정됨으로써기아의 아시아공략은 6년만에 최대의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이에반해 현대와 대우가 아시아진출을 본격화한 것은 작년부터라고할 수 있다. 물론 그 이전부터 필리핀 이란 파키스탄등 일부국가에KD공장을 짓기는 했지만 생산규모가 대부분 1만대이하 수준이어서중요도가 높은 편은 아니다. 두 업체는 대우가 인도, 현대가 터키에 각각 대규모 생산공장을 건설하면서 아시아진출을 가속화하기시작했다.이렇게 볼때 기아가 지속적이면서 한발짝씩 나아가는 「점진형」방식이었다면 현대와 대우는 단기간에 대규모공장을 건설하는 「속전속결형」 전략이라고 봐도 좋을 것 같다.그러면서 완성차 3사는 공통적으로 인도 인도네시아 중국을 중요시하고 있다. 현시점에서 현대는 인도와 인도네시아를 아시아전략의「2대거점」으로, 기아는 인도네시아, 대우는 인도와 중국을 각각거점지역으로 삼고 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2000년께에는 어느업체가 중국에 진출하느냐에 따라 각사의 전략에 상당한 변화가 있을 것이 틀림없다.●인도대우 도요타지분 인수, 현대 자족형 회사 육성인도시장은 대우가 선점한 가운데 현대가 시장개척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 양상이다. 대우는 지난해 말께 10만대를 웃도는 계약실적을 올린 씨에로를 무기로 인도에서 대대적인 마케팅전략을 전개하고 있다.대우 현지법인은 일본 도요타지분을 인수한후 대우지분이 51%에 달하고 있어 대우가 실질적인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다. 대우는 이 공장에서 씨에로모델을 올해 5만대 생산하고 98년까지 10억달러를 투자, 승용차 생산공장을 10만대규모로 늘리고 2000년에는 16만대로확장한다는 계획이다.현대의 인도거점은 뉴델리 남부의 마두라스지역이다. 오는 12월 현지공장 착공식을 가진후 98년부터 생산가동에 들어갈 예정이다. 생산규모는 98년까지 액센트 쏘나타 등 연간 승용차 10만대, 2000년에는 그 규모를 20만대로 늘린다는 계획. 여기에 투자될 비용만도11억달러에 이른다. 게다가 인도공장은 현지파트너가 없는 현대의단독투자다.현대가 해외공장건설 역사상 최대규모의 자본을 인도에 투입키로한 것은 인도를 「제2생산기지」로 육성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어서다. 본사에서는 자본금만 대고 그 이후에는 독자적으로 살림을꾸리는 「독립재산제」로 운영된다는 게 현대측 설명이다. 따라서일정기간이 지나면 인도 증시에 상장, 현지에서 자본을 조달하는이른바 「자족형」회사로 키워나간다는 방침이다.기아자동차는 인도에 진출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으나 현지파트너를 선정하지 못한 상태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그러나 국내 완성차업체들의 이같은 적극적인 자세에도 불구, 인도자동차시장의 전망은 단기적으로 불투명한 상황이다. 인구수에 비해 시장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데다 장애요인이 한두가지가 아니라는 게 업계의 분석. 세계적인 분석기관인 DRI는 2000년 인도의 자동차 내수시장은 91만대, 2005년께는 1백26만대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이러한 시장잠재성에비해 승용·상용차를 포함, 45만대수준(94년기준)에 불과한 내수시장을 놓고 GM 포드 스즈키 피아트 폴크스바겐등 20여개 외국업체들이 경쟁을 벌이고 있다. 또 도로등 인프라의 후진성, 전력공급부족, 낮은 생산성, 높은 임금인상률, 과다한세금등 각종 제약요인들이 상존하고 있는 실정이다.게다가 현지 경차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스즈키의 「마루티」모델에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이 높아 초기 시장진입이 쉽지 않다는 게 현지진출업체들의 공통적인 시각이다. 대우가 초기에 10만대물량의계약실적을 올린이후 최근 신규고객 확보에 애를 먹고있는 것도 「마루티」의 영향이 워낙 거세기 때문이다.●인도네시아기아 국민차사업권 따내 20년 일본아성 몰락인도네시아시장 공략은 현대가 작년 7월 엘란트라를 출시하면서 불붙기 시작했다. 비록 연간 생산량이 5천대미만으로 규모면에서 크지 않으나 현지 반응이 좋은 편이어서 최근에는 액센트를 투입했다.한국메이커의 등장은 그러나 기아가 국민차사업권을 따내면서 인도네시아 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기아로서는 세피아가 국민차로 선정됨으로써 인도네시아 내수시장은 물론이고 동남아지역을 뚫기 위한 거점을 마련한 셈이지만 일본메이커들 입장에선 치명타였다. 한 일본 신문의 표현대로 20년간 쌓아온 공든 탑이일시에 무너진 것은 자명해졌다.최근 일본이 정부까지 나서 인도네시아정부의 국민차사업결정을WTO(세계무역기구)에 제소한 것은 제2 국민차사업권 선정에서 자국업체에 유리한 입지를 마련하기 위한 고육책이라는 게 국내업계의분석이다.현대도 제2국민차사업자로 선정되기 위해 현재 일본업체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오는 99년이후 2차국민차사업자로 선정되면 인도네시아가 인도에 이은 제2아시아 거점기지로 부상하고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거점이 중국등 다른 지역으로 이전될 가능성이높기 때문이다.이에 반해 대우자동차는 「현상유지」의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고있다. 일본세가 워낙 강한데다 기아가 파란을 일으킴으로써 판매확대가 쉽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듯 하다.인도네시아시장은 42만대(95년기준)에 이르는 내수시장중 승용차판매 비중이 10%정도에 불과하다. 때문에 일부에서는 상용차시장 진출을 주장하고 있으나 도요타 다이하츠 등 일본메이커들이 상용차시장을 완전 장악하고 있어 이 또한 여의치않은 실정이다.●기타국태국시장 일본 90% 잠식, 현대 터키 기지 주목일본과 한국을 제외한 아시아 최대의 자동차시장은 태국이다. 80년대 중반까지만해도 10만대 규모에 불과했던 태국시장은 작년 58만대규모로 급성장했다. 그러나 태국시장은 일본메이커들이 90%이상을 잠식하고 있어 벤츠와 BMW등 일부 구미메이커를 제외한 나머지선진업체들도 적자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태국에선 현대가 지난 93년 하반기부터 현지에서 엑셀을 생산하고있으나 연간 생산량이 3천대에도 못미칠 정도로 판매에 어려움을겪고 있다.중국은 2005년 이후 거대시장으로 급부상할 게 확실시된다는 점에서 업체마다 눈독을 들이고 있으나 사업권 허가여부는 「오리무중」일 정도로 어려운 실정, 대우는 국내업체중 최초로 작년 8월 계림에 연산 2천5백대규모의 대형버스공장을 완공, 현재 가동중에 있으나 이는 향후 승용차사업권을 따내기 위한 일종의 「맛보기」에불과하다. 대우뿐 아니라 현대 기아도 승용차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선진메이커에 못지않게 로비를 펼치고 있으나 중국정부측에서 「묵묵부답」 상태라는 것. 얼마전 강택민 주석이 현대 울산공장을 방문해 현대의 자동차생산시설을 칭찬하고 돌아간 적이 있다.그 후 현대그룹에서 정몽구 회장이 북경에서 강주석을 만나 승용차사업권을 허가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강주석은 아무런 답변이 없었다는 후문이다.현대의 터키공장은 서유럽 및 동유럽시장을 겨냥한 「전진기지」라는 점에서 주목을 얻고 있다. 터키공장은 내년 하반기부터 가동에들어가 액센트와 그레이스를 2002년까지 연간 12만대를 생산할 예정인데 이중 절반 가량을 서유럽과 동유럽시장에 수출할 계획이다.한국메이커들의 아시아공략은 최근들어 규모면에서 대형화되고 있고 지역별로 차등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다.특히 경영진들이 아시아진출에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은한국 자동차산업의 미래가 결코 어둡지 않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그러나 해결해야 할 과제도 한두 가지가 아닌 것도 분명하다. 우선현지시장에서 뿌리를 내리느냐의 여부는 진출과 전혀 별개의 사안이다. 성공여부는 결국 동남아시장을 20년 이상 장악해온 일본메이커들의 「틈바구니」를 어떻게 비집고 들어가느냐는 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판매가격뿐만 아니라 품질 디자인 애프터서비스 부품의 적시조달등 여러 측면에서 일본메이커와 동등한 수준의 경쟁력을 하루빨리 갖춰야 한다.둘째 모델다양화에 주력해야 한다는 점이다. 일본업체들의 경우 경차에서부터 소형 중형 대형승용차 상용 트럭까지 다양한 모델로 동남아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현실에서 소형승용차모델 한가지로 일본업체와 싸우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지적이다.업체마다 1백만대 생산체제를 구축한 현 시점에서는 양적 확대가아니라 질적으로 다양한 모델을 생산 판매하는 전략으로 전환돼야한다는 의미다.한국자동차업체의 앞날은 아시아시장에 뿌리를 내리느냐의 여부에달려있다는데 이의를 제기하는 업체는 거의 없다. 취향이 우리와비슷하고 한국과 경제협력관계가 갈수록 밀접해질 수밖에 없는 자동차산업도 「운명공동체」적인 중요성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