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가 곧 기회」란 말이 있다. 세상만사가 아무리 고달프고 난처한 처지일지라도 거기에는 꼭 역전의 실마리가 담겨있다는 뜻이다. 위기(危機)란 말 자체가 위험하다는 위(危)와 성공의 기회를뜻하는 기(機)의 합성어이다. 국내 경제는 지금 불황이란 위기를맞고 있다. 판매부진으로 재고가 쌓이고 명예퇴직 등의 찬바람속에서 소비심리는 꽁꽁 얼어붙었다. 돈이 벌리지 않으니 다시 투자가위축되는 악순환의 조짐도 보인다. 기업도 소비자도 불황이란 추운겨울이 어서 지나가기만을 바랄 뿐이다.호황기에는 대량생산과 사세확장에 몰두하다가도 불황이 닥치면 당장 비용절감부터 서두르는게 기업의 생리다. 기업마다 당장 광고비교통비 교제비 등 이른바 3K비용의 절감에 나서고 있는게 현실이다. 하지만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게 마케터들의 역할이다. 기업경영에 있어 마케팅만큼 순망치한(脣亡齒寒)이란 말이 잘 어울리는부문도 드물다. 평소에는 입술의 고마움을 모르다가 입술이 없어진뒤에야 이빨이 시린 것을 안다는 말처럼 불경기야말로 마케터들이자신의 진가를 뽐낼 수 있는 승부처가 되는 셈이다.불황기의 마케팅은 한마디로 「경쟁사의 활동이 위축되는 불황기에광고 등 마케팅자원을 집중적으로 투입하면 작은 투자로도 최대한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말로 요약된다.너도나도 광고경쟁에뛰어드는 호황기에는 웬만한 광고공세로는 티도 안난다. 그러나 기업활동이 극도로 위축되는 불황기에 조금만 노력을 더한다면 쉽사리 소비자의 눈길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불황은2위기업이 1위기업을 따라잡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찬스이기도 하다.겨울이 끝나면 봄이 오는 것처럼 불황때 시장점유율이나 브랜드로열티를 높이기 위한 투자를 해 놓아야 호경기때도 계속 잘나갈 수있다는 연구도 나와 있다. 지난 90년대 초반의 불경기 속에서도 적극적인 마케팅을 구사함으로써 매출액을 크게 늘렸던 대우전자의전략은 불황기 마케팅의 모범적인 사례로 평가되고 있다.◆ 대우전자 92년 매출액 35% 증가가전3사의 판매경쟁이 치열하던 당시 대우전자의 시장점유율은 삼성전자나 LG전자보다 한참 뒤처져 있었다. 경쟁사에 비해 기업이미지가 안좋은데다 품질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감도 낮았기 때문이었다. 상황이 역전된 것은 배순훈 현회장(당시는 사장)이 취임하면서부터다. 배회장은 취임과 함께 대우전자가 제2의 창업을 한다는마음으로 다시 뛸 것을 강조했다. 불황으로 경쟁사가 광고비를 줄이는 추세였는데도 대우전자는 90년 1백20억원, 91년 2백20억원,92년 2백51억원 등 3년에 걸쳐 20~30%씩 광고비를 늘리는 대공세를취했다.광고캠페인의 첫 주제는 「신대우가족」. 단란한 가족의 일상생활을 소재로 삼아 생활 속의 동반자로서 대우전자에 대한 친근감과호감도를 한껏 높였다. 후속 광고로는 주력제품이던 공기방울세탁기의 개발과정을 시청자들에게 직접 보여줌으로써 대우전자의 기술개발노력을 차근차근 설득해 나갔다. 이러한 캠페인은 후에 배사장이 직접 광고에 출연하여 주가를 높였던 「탱크주의」광고로 이어지게 된다.대우전자는 그결과 92년 전년동기보다 35% 증가한 3천6백28억원의내수판매실적을 올렸으며 비로소 가전3사란 말에 걸맞는 덩치를 가질 수 있었다. 특히 광고비를 집중투입한 공기방울세탁기는 전년보다 시장점유율이 두배로 늘어나는 성과를 거뒀다.대우전자의 성공사례에서 주목되는 것은 새로운 마케팅전략이 광범위한 소비자조사를 바탕으로 세워졌다는 것이다. 당시만해도 가전업체의 시장조사란 것은 대리점주 등 영업망을 통해 얻어지는 현장감이 위주였다. 대우전자는 원론에서부터 다시 출발했다.전국적인 소비자조사를 통해 가전제품의 구매가 「기업이미지」와「품질이미지」에 크게 좌우된다는 것을 알아내고 이를 마케팅전략에 적극 도입했다. 불황기에는 기업PR광고 보다는 임팩트가 강한제품광고에 집중해야 한다는게 일반적인 이론이지만 대우전자는 이를 무시했다. 가장 취약하고 핵심적인 부문에 힘을 집중한다는 마케팅의 원칙을 더 중시한 것이다.외국에서도 불황기 마케팅의 사례는 찾아볼 수 있다. 80년대 일본도요타자동차가 전개한 코로나자동차의 마케팅전략이 그것이다.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코로나자동차는 닛산의 블루버드와 더불어일본의 패밀리카시장을 주도했다. 그러나 76년 혼다의 어코드를 비롯, 새로운 스타일의 자동차가 이 시장에 뛰어들면서 도요타는 강력한 위협을 받게 됐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일본열도를 불경기가강타했다.도요타는 시장 수성을 위해 신형 코로나를 개발했지만 주타깃인30대층이 코로나시리즈를 외면하는 위기를 맞았다. 신형 코로나는뛰어난 기능을 갖추고 있었다. 문제는 제품이미지였다. 코로나의기존 이미지는 「싸고 실용적」이라는 것이었지만 젊은세대에게 이말은 곧 「재미가 없는 차」로 통했다. 도요타는 신제품의 이미지를 시대와 세대를 초월한 좋은 자동차로 정하고 샐러리맨의 코믹한일상생활을 다룬 독특한 광고전략으로 젊은층의 공감대를 넓혀나갔다. 그 결과 목표치보다 훨씬 많은 판매대수를 기록할 수 있었다.미국의 생활용품업체인 P&G 역시 혹독한 대공황시절 경쟁사들이 앞다투어 광고비를 삭감하고 있을 때에 오히려 주력제품인 아이보리비누의 광고를 강화하는 정면승부로 매출액을 2배로 늘리는 대성공을 거뒀다. 공황이 끝나자 경쟁사들도 본격적인 광고공세를 재개했지만 불황기때 쌓아놓은 P&G의 아성을 함락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불황기에 성공한 기업들은 대부분 광고마케팅을 단순한 비용이 아니라 기업의 매출과 이익을 보장해주는 장기적인 투자로 인식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당장의 광고비 삭감은 자금난에 시달리는경영자를 순간적으로 위로해 줄 수는 있지만 조만간 매출 및 시장점유율 감소라는 고통으로 돌아오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호황기처럼 무턱대고 마케팅자원을 투입할 수는 없는게 기업들의 고민이다.불황기에는 광고마케팅전략도 달라져야 한다.다음은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불황기 마케팅의 기본원칙들이다. 시장에 따라 산업에 따라 이러한 원칙들을 적절히 혼합하여 소비자의구매를 지속시키면서도 브랜드로열티를 유지해 나가는게 전략의 핵심이다.◆시장을 세분화하고 이를 집중 공략하라= 전반적인 소주시장의 침체속에서도 고급소주의 돌풍을 일으킨 참나무통 맑은소주와 김삿갓등은 어디에나 틈새시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불황일수록 성장하는 세분시장을 찾아내고 이곳에 집중적인 광고를 함으로써 새로운 수요를 창출해야 한다.◆소비자를 설득하라= 불황기에는 소비자의 구매도 신중해진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해오던 소비를 줄이지는 않는다. 소비자들은 다만지불한 돈에 걸맞는 상품가치(Value per Money)를 원하는 합리적인자세로 돌아섰을 뿐이다. 불황기에는 제품설명을 위한 광고카피가길어지거나 제품을 사용해본 사람이 등장,제품의 효용성을 강조하는 증언식 광고가 늘어나는 것도 소비자에게 상품가치를 적극적으로 설득하기 위해서다.◆소비자와 직접 만나라= 불황기에 평범한 광고는 사치이다. 소비자의 관심을 끌 수 있도록 독창성있고 차별화된 광고가 중요하다.광고의 내용에 제품을 주문할 수 있는 전화번호를 넣어 수시로 소비자의 반응을 체크할 수 있는 직접반응광고 등도 유용하다. 아울러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광고외에 소비자에게 직접 강한 판촉임팩트를 가할 수 있는 세일즈프로모션 등을 강화한다. 애경산업이 실시했던 미시모델선발대회,이랜드의 브렌따노 배낭여행 등이대표적인 예다.◆시장조사를 적극 활용하라= 소비자들이 진짜로 무엇을 원하는가에 대해 항상 촉각을 곤두세우라. 불황기에는 최소의 마케팅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거두는게 중요하므로 마케팅자원이 제대로 활용되고 있는가 점점할 필요성도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