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금융계는 작년말 대책회의를 연이어 갖는 등 부산을 떨었다.외국에서 날아든 일방적인 통보를 받고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은행들은 다른 기관들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면서 나름대로의 전략을 짜느라 분주히 움직였다. 금융계에 파문을일으킨 이 사건은 세계적인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사가 국내은행들에 대해 신용평가방침을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이 발단이 됐다. 무디스사는 지난해말 중소기업은행 대구은행 등 6개은행에 대해 신용평가를 실시하겠다고 통보한데 이어 주택 한미 경기은행 등 3개은행에 대해서도 신용평가방침을 통보해온 것. 투자자 보호를 위해무료로 신용평가를 해줄테니 자료에 협조해달라는 통보였다. 은행측에서 자료를 제공하지 않으면 그동안 자체적으로 확보한 공개자료등을 바탕으로 신용등급을 결정, 발표하겠다는 으름장도 곁들였다. 이같은 반강제적인 신용평가권고에 국내은행들은 울며겨자먹기식으로 굴복하고 말았다. 은행들은 주요임직원들을 파견나온 연구원들과의 인터뷰에 응하도록 하면서 경영전략 자기자본비율 유지계획 자산의 건전성에 관한 자료들을 제공하였다. 무디스의 신용평가를 거부할 경우 국제금융시장에서 부정적으로 인식돼 피해를 볼 수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최근 국가경제력이 커지고 금융시장이 완전개방을 앞두면서 세계적인 신용평가회사들이 국내신용평가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이들 선진국 신용평가회사들은 국제자금시장에서의 영향력을 앞세워경제의 근간인 금융산업에 대한 신용평가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들은 신용평가를 금융시장 완전개방시 진출을 위한 기초적인 사전작업으로 여기고 있다. 신용평가시 방대한 자료를 손쉽게 얻을 수있는데다 경영내용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신용평가회사들이 신용평가사업 이외에도 경영컨설팅 사업타당성검토 등 다양한 사업을 벌일 수 있는 것도 신용평가가 갖는 무한한잠재력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있다.신용평가제도는 유가증권을 발행하는 기업이 전문신용평가기관으로부터 자신의 신용도(원리금의 적기상환 가능성)에 대해 평가를 받고 신용평가기관이 부여한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기호화된 신용평가결과를 유가증권 투자자에게 공시하는 제도를 말한다. 이 제도를통해 기업에는 신용도에 부합된 적절한 직접자금조달 기회를, 금융기관에는 자금중개 및 여신지원을 위한 객관적 판단정보를, 투자자에게는 투자의사결정에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투자정보를 제공한다. 즉 자율적이고 효율적인 자금배분을 촉진하여 자본시장의 발전을 도모하는데 신용평가의 역할은 절대적이란 얘기다.그러나 국내 신용평가기관들의 평가활동은 극히 제한돼있어 이러한신용평가의 순기능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내자본시장이 성숙하지 못한데다 신용평가에 대한 기업들의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국내자본시장은 관치금융관행의 지속등으로 금리자유화가 제대로 진전되지 않아 신용등급에 따른 금리차등화를 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국내기업들도 금리차등화 등 신용평가제도의 효과를 만끽하지 못함에 따라 신용평가를 번거로운 절차로 인식하기도 한다.◆ 내년부터는 외국사 단독진출도 가능국내 신용평가회사들의 평가대상도 기업어음 무보증회사채 해외증권에 국한돼 있다. 기업어음의 경우 연간 매출액 1백억원 이상이거나 전년중 기업어음 할인평잔이 50억원 이상인 업체가 기업어음을발행할 때 연 1회 , 결산 이후 6개월이내에 신용등급평가를 받도록의무화하고 있을 뿐이다. 선진국들과는 달리 담보채권과 카드 리스할부 등 특수채에 대한 신용평가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현재 국내 신용평가 시장규모는 평가수수료 기준으로 연간 70억원.무보증사채 발행이 피크를 이뤘던 지난 94년을 고비로 점차 줄어들고 있다. 최근 2~3년 동안 신용평가회사들의 평가등급이 좋았던 덕산 우성 건영등 대기업들이 도산하자 기관투자가들이 신용평가회사들의 평가를 바탕으로 발행되는 무보증회사채의 매수를 꺼리고 있다. 한국 대한 국민 등 투신사들은 무보증채를 살 때 임원진의 결재를 받도록 해 무보증채 인수를 사실상 중단했다. 이에 대해 한국신용평가의 김대선 부장은 『신용등급은 지급불능상태에 빠질 확률을 나타내는 것으로 지급불능기업과 정상기업을 구분하는 절대적인잣대는 아니다. 평가회사가 부여한 부도발생률을 적용하여 금리스프레드를 운용한다면 대손위험을 금리스프레드로 보전할 수 있을것』이라고 반박한다.또한 한국보증보험 대한보증보험 등이 수입증대를 위해 수수료를대폭 내린 것도 신용평가시장의 위축을 초래하고 있다. 지난해말보증보험회사들은 보증수수료를 발행액의 0.3%에서 0.1%로 내려 신용평가회사들의 수수료인 0.1% 수준에 맞춤에 따라 기업들이 무보증채권 발행을 꺼려하고 있다.한국신용정보의 오광휘 부장은 『신용도 높은 대기업이 신용도 낮은 보증보험사의 보증을 받아 회사채를 발행하는 것은 국내금융시장의 왜곡현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못박았다. 이같은 국내 신용평가시장의 취약한 구조에서 외국 신용평가기관들의 국내진출이 이뤄질 경우 국내신용평가사들은 물론 국내금융계 및 기업들에도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국내산업계 전반의 정확한 실상이 외국기관이나 기업들에 유출됨으로써 외국의 영향력이 한층강화될 수 있는 것이다. 현재도 정부는 외국평가회사들에 대해 사무소설치와 함께 10%의 지분참여를 허용하고 있는데 시장이 개방되는 내년부터는 외국신용평가기관의 단독진출도 가능해진다.한국기업평가의 허영욱부장은 『무디스와 S&P가 새로운 시장 개척을 위해 한국 인도네시아 등 소위 이머징마켓으로 떠오르는 곳의금융기관들을 공략하고 있다. 또한 일본 등 현지에 사무소를 개설하거나 자회사를 설립, 이들 지역에 적극 진출하고 있음을 감안할때 채권시장의 확대동향을 지켜본뒤 국내에 직접 진출할 가능성도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