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이 아니라 감성을 판다.」올해로 창립 15년째는 맞는 풍연물산의 사업철학이다. 옷을 제조,판매하는 의류회사임에도 불구하고 풍연물산은 의류회사로 불리기를 거부한다. 『우리는 패션업체로 불리길 바란다. 소비자에게 단순한 옷이 아니라 감성과 유행을 전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김윤수상무)패션메이커라는 자부심은 풍연물산을 이끌어온 원동력이다. 스스로패션을 이끄는 주체라고 생각하기에 양적 성장은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시장에서 유행을 선도하는 주자로 앞서나가는 것이풍연의 목표다. 스스로 패션메이커라고 생각하기에 패션 이외의 분야에는 눈도 돌리지 않는다. 오직 패션 하나에 전문성을 걸고 있다. 김상무는 『우리는 좁고 깊은 기업이고 싶다』며 패션이라는한 우물만 판다는 기업의 신념을 전달했다.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와 겨루는 패션전문기업이 풍연이 꿈꾸는 현재이자 미래다.◆ 부산의 작은 양장점서 국내 32위 의류업체로이런 이유때문에 풍연은 수입브랜드를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다.모두 개발한 브랜드다. 매출액 기준으로 50위권에 드는의류업체(풍연은 95년 매출액으로 32위) 대부분이 한두개씩은 수입브랜드를 갖고 있다는 점에 비춰볼 때 이례적인 일이다. 김상무는『외국의 유명 브랜드를 수입할 경우 그 브랜드의 디자인과 스타일등을 따라야 하는데 이것은 스스로 패션을 창조, 소비자에게 감성을 판매한다는 우리의 기업철학과 맞지 않다』고 수입브랜드가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패션만을 고집하는 장인정신을 바탕으로 풍연은 90년대 들어 매년30% 내외의 매출액 성장률을 기록했다. 불황이었던 지난해에는8.7% 성장에 그쳤지만 35억원의 경상이익을 낼 수 있었다. 『전문성에 승부를 걸었기에 불황에 강한 기업 체질을 갖게됐다』고 심경섭 경영기획실 이사는 소개한다.풍연물산이 설립된 해는 83년. 그러나 풍연물산의 역사는 74년으로거슬러 올라간다. 김정은(48) 풍연물산 사장이 부산에 「줄리앙」이라는 의상실을 세우고 패션 비즈니스에 뛰어든 해가 74년이기 때문이다. 당시 줄리앙 의상실은 70년대에 거리에서 흔히 볼수 있었던 작은 양장점에 불과했다. 이 작은 의상실을 경영하던 김사장은83년에 서울에 입성했다. 본격적으로 패션사업을 펼쳐야 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래서 설립한게 풍연물산이다.김사장은 자신이 경영하던 의상실 이름에서 딴 줄리앙이란 이름으로 여성복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줄리앙이 기성복으로 세상에 첫선을 보였을 때 줄리앙은 상당한 호응을 불러 일으켰다고 심이사는밝힌다. 당시로서는 이탈리아나 프랑스의 옷처럼 상당히 서구적이고 세련됐다는 평을 들었다는 것이다. 이 줄리앙이 오늘날 풍연물산을 존재하게 한 일등공신이 됐다. 지금까지도 줄리앙은 매년 백화점 바이어들이 선정하는 최고의 미시브랜드(20대후반∼30대의 젊은 신세대 주부 및 독신여성을 주소비자층으로 하는 브랜드)로 뽑히고 있다.물론 탄탄한 성장을 계속해온 풍연이지만 풍연에도 고비는 있었다.최고의 고비는 85년에 제2 브랜드로 「몽띠꼴」을 시장에 처음 내놓았을 때다. 몽띠꼴의 소비자층과 특징이 불분명해 시장에서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했다. 시장을 새로 개척하는 것이 아니라 줄리앙의 고객을 잡아먹는 꼴이었다. 한 회사의 주 브랜드가 서로 제살을깎아먹는 전형적인 예였다. 몽띠꼴을 줄리앙과 차별화하고 명확한특징을 부여하는데 거의 3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심이사는 『이 때에 패션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브랜드와 차별화되는 뚜렷한 컨셉(특징)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한다.94년에 제 3 브랜드인 이디엄을 내놓았을 때는 몽띠꼴 브랜드에서저질렀던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었다. 세 번째 브랜드인 이디엄이 몽띠꼴이 나온지 거의 9년만에 탄생한 이유도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준비에 준비를 거듭했기 때문이다. 심이사는 『함부로 브랜드를 개발, 시장에 내놓으면 브랜드 성격이 불분명해서 같은 회사 브랜드끼리 경쟁하게 된다』고 말했다. 또 『의류사업에서방만한 브랜드 운영은 방만한 경영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라고덧붙였다. 많은 의류회사들이 뚜렷하고 분명한 특징없는 브랜드를무리해서 시장에 내놓다가 결국 실패를 경험한다는 지적이다.여성패션은 개성이 뚜렷하기 때문에 한 브랜드가 시장에서 독점적인 지위에 오를 수가 없다.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옷은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류시장에는 공략할만한 틈새가 많다. 이말은 다르게 해석하면 한 브랜드가 올릴 수 있는 매출액에는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이런 패션 사업의 특징 때문에 의류회사가 매출액을 올리기 위해서는 새로운 브랜드를 개발, 새로운 시장과 고객을 개척해야 한다. 여기에 함정이 있다. 의류회사가 다른 공산품제조업체처럼 일정한 성장률을 계속 유지하고 양적 팽창을 계속하기 위해 브랜드를 마구 내놓을 때가 위험하다. 새 브랜드라고 반드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회사의 기존 브랜드 고객까지 흩어질 위험성이 크다. 심이사가 계속 브랜드 컨셉을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김상무도 『의류회사가 안정적으로 사업하려면 고정고객을 많이 거느린 브랜드를 키워야 한다』며 『신규 고객 창출은 반복적으로 의류를 사주는 고정고객이 확보된 후에야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다』고 말한다.풍연물산은 현재 줄리앙 몽띠꼴 이디엄 세가지 브랜드를 운영하고있다. 줄리앙은 미시브랜드, 몽띠꼴은 아이비리그 대학생 분위기가나는 영국풍의 베이직 정장 브랜드, 이디엄은 약간 파격적이고 진보적인 분위기의 캐릭터브랜드를 지향하고 있다. 풍연은 광고 마케팅활동도 철저히 브랜드 이미지를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해서한다. 대표적인 예로 TV광고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무차별적인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TV광고는 브랜드의 성격을 알리는데 효과적이지 않다는 이유 때문이다.다른 의류업체에 비해 신중하고 보수적으로 보이는 풍연의 특징은김사장의 캐릭터에서 나온다. 풍연 직원들은 김사장의 성격을 묻는질문에 「청교도적이고 도덕적」이라고 대답한다. 여자로서 배경도없이 양장점 주인에서 국내 32위의 의류업체 사장으로 성공할 수있었던 것은 김사장의 성실한 경영스타일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부족한 것 극복하는 과정에서 힘이 생긴다’김사장은 한성대학에서 미술을 전공, 처음에 디자이너로 의상실을운영하다 의류업체로 사업을 키운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패션 하나만 바라보며 살아온 탓인지 김사장은 아직 독신이다. 디자이너 출신으로 조직을 구성하고 시스템을 갖춘 본격적인 패션 비즈니스로성공한 김사장과 같은 예는 우리 의류업계에서 드문 사례다.김사장은 사업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원인을 묻는 말에 이렇게 대답한다. 『돈이든 사람이든 시스템이든 언제나 무엇인가가 부족했다. 풍연의 역사는 그 부족한 것을 극복하는 과정이었다. 부족한것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불황과 어려움에도 튼튼하게 버틸 수 있는힘을 얻게 됐다.』치열한 경쟁상황에서도 풍연이 의연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지막으로 김상무에게 중소기업으로서 겪는 어려움에 대해질문했다. 김상무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우리는 패션전문기업이라 한 번도 딴데 눈을 돌리지 않았다. 그래서 부동산이 없다. 이익이 생기면 사업에 재투자하느라 부동산 투자에 쓸 돈도 없었다.그런데 전문성에 돈을 쓴게 오히려 사업을 키우는데 방해가 된다.은행에 돈을 빌리려고 하면 우리가 순익이 얼마 남았고 재정이 이렇게 탄탄하고 건전하다는 것을 설명해도 담보가 없으니 한계가 많다. 담보 많아도 부도나는 회사가 많다. 신용으로 대출을 받을 수있다면 어느 업체에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공정한 룰만 마련된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있다는 호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