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일본에는 명의가 많았다고 한다. 인체를 대상으로 생체실험한731부대에서 복무했던 의사들이 현업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평시같으면 엄두도 못낼 온갖 실험을 다 해보았기 때문에 어느 누구보다도 경험이 풍부했던 것이다. 시행착오를 거쳐 얻은 경험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자산이다. 그러나 경험은 직접 체험하지 않으면 얻을수 없다. 그런 경험을 실제상황이 아닌 가상의 상황을 통해 체득할수 있다면 커다란 이익이 아닐수 없다. 컴퓨터를 이용한 가상현실은 급기야 가상의 경험으로 실제경험을 대신할수 있도록 해주는데 까지 이르렀다.가상현실은 컴퓨터가 만들어낸 인공의 세계에 몰입돼 마치 실제로보고 듣고 만지는 현실감을 체험하는 것을 말한다. 사용자가 특수하게 제작된 안경 장갑 옷 등을 착용하고 컴퓨터가 만들어낸 인공의 세계를 현실감나게 조작하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이제까지 가상현실에서 응용분야는 주로 게임과 군사방면에 국한돼있었다. 근래들어서는 산업분야의 활용도 활발해져 자동차 비행기등을 설계·제작하는데 사용되고 있다.가상현실이 가장 널리 사용되는 곳은 교육분야이다. 미국의 한 작업장에서는 크레인 조작법을 가상현실을 이용해 교육한 결과 교육비용은 물론 사고발생률을 크게 줄였다. 크레인을 제대로 조작하기 위해서는 40시간 가량 교육받아야 한다. 그런데 실제 작업장처럼 꾸민 교육장은 위험할 뿐아니라 설치하고 유지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가상현실 교육장은 몇억원씩 하는 크레인대신 1천만원도안되는 워크스테이션만 있으면 꾸밀수 있다.이외에도 비행기 조종사들의 비행훈련, 자동차운전, 의과대학 해부학교실의 실습등 가상현실의 응용범위는 넓다. 미국의 모토롤라에서는 가상현실로 교육받고 현장에 투입된 사원이 숙련공만큼 생산성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단기간에 숙련된 작업자를 양성하여생산성을 높일수 있을뿐 아니라 훈련비용을 크게 줄인 것이다.◆ 맥도널 더글러스 가상현실로 제작 오류 최소화가상현실은 교육분야뿐 아니라 산업분야에도 적용, 새로운 제품개발의 주기를 단축할수 있다. 예를 들어 제품의 「판매/수주」에가상현실을 이용하면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자유자재로 구현할수있다. 다양해지는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킬수 있는 상품을 즉시출하할수 있다는 의미다. 소비자가 가상현실시스템을 통해 입력한데이터를 제품생산에 적용할수 있기 때문이다.국내에서 적용된 LG-EDS의 「가상현실제품 평가시스템」이 이 경우에 해당한다. 이 시스템은 LG화학의 조립식 욕조개발에 적용됐다.사용자가 전자 카탈로그에서 제공되는 여러 가지 모델중 하나를 선택해 들어가면 사용할 모델의 문앞에 서게된다. 입력장치를 이용해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욕실내부에 들어간것처럼 느끼게 된다.사용자는 욕실내부를 걸어다니며 욕실 구성부품들을 살펴볼수 있다. 만일 구성부품의 재질이나 배치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색상 재질 위치 등을 교체할수 있다.각 구성부품들의 위치 특성 종류 등의 정보는 데이터베이스에 구축돼 있는데 사용자가 구성부품을 바꾸면 데이터베이스의 정보도 자동적으로 변경된다. 변경된 정보는 모든 생산라인으로 전달돼 새모델 개발에 적용한다.가상현실을 본격적으로 산업에 적용한 대표적인 사례는 미국 맥도널 더글러스(지난해 12월 보잉사에 합병)의 F-18전투기신모델(E,F모델) 개발에 사용한 VPD(Virtual ProductDevelopment)이다. 이 회사는 시제품을 실제로 만들지 않고 가상으로 모형전투기를 조립, 제작과정의 오류를 최소화했다. 당시 맥도널 더글러스사가 F-18프로젝트로 입찰을 준비할 때는 의회가 한창방위비용을 줄일 때여서 이같은 방법을 고안해 낸 것이다. 그 결과납품기간을 각 라인별로 20일씩 줄였고 구성부품도 3분의 1이나 절약, 생산비용을 25%나 절감할수 있었다.가상현실을 이용해 시제품을 조립하기 위해서는 제조과정의 통합,데이터표준마련, 통신망구축등 몇가지 전제조건이 있다. 회사내 각부서는 물론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협력업체들을 고속의 통신망으로 연결하고 각 부품의 표준을 마련해야 컴퓨터안에서 가상의 부품을 공유하고 조립할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고속의 통신망이 있어야 한다. A부서에서 설계한 데이터와 B부서에서 설계한 데이터를주고 받을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기존제작시스템에서는 설계과정과 제조과정이 분리돼 있었다. 설계가 완전히 끝나야 제조단계로 넘어가는 식이다. 디자인을 담당한엔지니어가 디자인등을 마치면 제작센터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부품을 만들었다. 각 제작부분에서 부품들을 모두 완성한 뒤에야 조립부서에 모아 최종적으로 시제품을 조립할수 있었다. 만일 조립도중문제가 발생하거나 의문이 생기면 이를 메모지에 적어 설계담당자에게 전달한다. 메모를 전달받은 해당 엔지니어는 문제를 해결하고다시 제조부서와 조립부서로 전달해야 작업이 진행될수 있다. 각각의 설계 제조 조립등의 단계가 분리돼 작업을 진행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제작이 불가능하거나 조립할 수 없는 것들이 나오기도 했다.◆ 고소공포증 치료등에도 사용중한가지 모델을 만들어 내는데 일반적으로 10번 내지 15번의 수정이발생한다. 이때마다 번번이 수백만달러나 하는 모형물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모형물을 실제로 제작하지 않고 가상으로컴퓨터안에서 전투기를 조립, 제작원가를 크게 줄이고자 한 것이다. 가상조립시스템으로 각 부품들을 컴퓨터안에서 전자적으로 합성하면 부품을 실제로 만들어 보지 않고도 제품의 형태 맞춤 기능을 확인할수 있는 것이다.가상현실은 의료분야에도 적용이 활발하다. 미국 바이오메트사는외과의사들이 외상환자를 신속하게 치료할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자기공명장치나 X레이 등으로 환자의 위급한 상태를 측정, 해당 이미지데이터를 수학적 데이터로 전환한다. 이 데이터는 환자에이식할 인공장기를 신속하게 설계하고 해석(설계한대로 제품이 만들어질수 있는지 분석)하는데 사용한다. 환자에게 꼭 맞는 인공장기를 신속하게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가상현실이 의료에 적용된 또 다른 예는 고소공포증의 치료다. 고층빌딩의 꼭대기에 서있거나 옥상의 가장자리를 걷는 상황을 컴퓨터로 연출하고 사용자가 이를 겪게 하면 고소공포증은 간단하게 치료된다는 것이다.가상현실의 궁극적인 목표는 완벽한 가상인간의 「창조」다. 가상인간은 사람이 직접하기 힘든 위험한 작업에서 위력을 발휘한다.자동차 충돌테스트의 경우 가상의 자동차에 가상의 인간을 태워 각종 실험을 할수 있다. 최초의 가상인간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의HMS(Human Modeling and Simulation)센터에서 탄생한 「잭」이다.잭은 인간이 주어진 상황에서 어떻게 대응하는가를 예측하기 위해개발된 소프트웨어인데 실제 인간과 같은 골격구조를 갖추고 있다.가상인간 잭은 꾸준히 개선되면서 말하고 듣고 반응하는 행동양식이 인간의 모습에 가까워지고 있다. 현재 5.9버전까지 개발된 상태다. 잭은 미 캘리포니아 몬트레이에 있는 해군대학원에서 실시한가상의 전투에서 의무병으로 실력을 발휘했다. 이외에도 잭은 교통사고분석에 사용됐고 독성이 강한 폐기물처리작업등 1백여개의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HMS의 노엄 배틀러소장은 『궁극적으로 실제 인간과 같이 듣고 말하고 행동할뿐 아니라 외부환경을 인지할수 있는 능력까지 갖춘 「잭」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