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에 주인이 없어 은행들이 갈길을 못찾고 갈팡질팡한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주인이 없다보니 책임경영을 할 줄도 모르고 정치권이나 관계의 압력에 쉽게 굴복하는 한편 불쌍한 서민들 울리는일을 서슴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런 류(類)의 주장은 마치 주인만존재하면 금방 경쟁력도 생기고 생산성도 향상되며 서민들 가슴에박힌 못을 뺄 수 있을 것처럼 들린다.웃기는 일이다. 「무주공산」이 문제라면 은행 이외의 금융기관중주인이 있다는 일부 생명보험이나 손해보험사들의 불량한 재무상태나 부실징후는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그 회사들은 제대로 된 주인이 있는데도 왜 국제경쟁력이 취약한 것인가. 언론에서는 금융과 관련된 사건만 터지면 「은행두드리기」에 열을올린다. 속사정을 알지 못하는 중소기업인 근로자 상인 시민들은은행을 아주 안좋게 여기며 술자리 안주감으로 삼는다. 특히 은행에 가서 소액대출이라도 받으려다 거절당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은행이라는 곳은 아주 기분 나쁜 곳이다. 그러나 은행이용을 생활화하여 자신의 신용을 쌓은 사람이거나 직업이 확실하거나 성실한 인간성을 인정받고 있는 사람이라면 소액대출을 거절당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본다. 원리원칙대로라면대출이라는 것을 무슨 특혜로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잘못인 것이다.좀 더 솔직하게 얘기해보자. 하늘같이만 여겨지던 은행장들은 최근의 한보사건을 겪으면서 무엇 때문에 그렇게 약하고 꼴 사나운 모습을 보이는지 모르겠다. 대출을 해주는 과정에서 정치권이나 관계의 압력을 받았으면 받았다고 솔직하게 왜 못밝히는지, 돈을 먹었으면 먹었다고 왜 사과하지 못하는지 정말 답답하고 한심하다. 은행장이란 자리에 너무 연연한 탓일까. 「은행장」은 양심선언도 할줄 모르는 인간들의 대명사가 돼 버렸다. 약한 사람에게는 엄청 강한 힘을 발휘하면서 강한 사람에게는 자신이 구속되면서까지 약한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은행장이란 자리처럼 비쳐지고 있다.정부에서 금리를 낮추라고 하면 경영손실을 감수하면서 반발 한번못하고 금리를 낮춰야 되는 문민 민주주의의 현실, 금융자율화가되면 금융위기를 감당 못할 것이라면서 정부의 눈치나 살펴야 되는현실, 이런 은행의 현실들이 너무 서글프다.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 가장 많이 사용된 말중의 하나가 개혁일것이다. 금융기관에 개혁은 자율권을 주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말로만 엄청난 자율권을 주었다. 차라리 자율권을 주겠다는 말이나 하지 않으면 밉지나 않을 것이다. 「은행이라는 곳은영리성보다 공공성을 우선으로 해야 하니까 정부규제를 할 수밖에없다」고 말하면 낫겠다.싫든 좋든 규제를 해왔고 일정부분 규제란 업무를 담당해왔던 정부부서에서 규제완화를 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은행원들의 정서는 부정적이다. 개가 싸울 때도 자기집 앞이면 50점은 따고 들어간다는데 우리네 형국은 개목을 기둥에 붙들어 매놓고 외국개와 싸움을 시키는 식이다.금융개혁위원회는 무엇인가. 언제 위원회가 없어서 금융개혁이 되지 않은게 아니다. 위원회 만들어서 개혁이 된다면 대통령 직속의검찰개혁위원회나 언론개혁위원회같은 것을 만들어야 할 판이다.재경원산하의 금융산업발전심의위원회는 뭐 하는 곳이고, 이번의금개위는 또 무엇인가. 뿌리를 보려고 하지 않고 잎과 줄기만 보면서 이러쿵 저러쿵 하는 것같아 안타깝다. 여하튼 금개위가 목표하는 바가 수요자중심의 개혁이라고 하는데 억지로 금리나 내리라하고 부도위험이 뻔히 보이는 기업에 대출이나 하라고 하는 개혁이면그만 두는게 백번 낫다.금융개혁은 금융인의 손에 맡겨야 한다. 금개위나 정부는 금융기관으로 하여금 자율경영을 할 수 있게만 해주면 된다. 금융기관들로하여금 공정한 게임을 할 수 있게만 해주면 된다. 금융기관들에 임금을 동결하라거나 인원을 감축하라고 말하지 않아도 공정한 룰 속에서 경쟁이 심화되다보면 그같은 필요성을 저절로 느낄 것이다.합병의 필요성도 스스로 깨우칠 것이다. 시장경제원리에 맡겨 자유경쟁을 보장한다면 수요자를 위한 개혁도 저절로 이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