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능 컴퓨터가 나오고 초고속통신망이 깔려도 소프트웨어가 없으면 아무 것도 할수 없다. 프로그래머가 정보화시대의 첨병으로 불리는 까닭이다. 이 때문에 프로그래머 관련학과의 졸업생은 매년10%씩 늘고 있다. 그러나 기업에 필요한 인력은 만성적으로 부족한상태다. 특히 우수한 인재는 더욱 구하기 어렵다. 보다 내실있는프로그래머 양성과정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창의력을 발휘할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중요한 것은 프로그래머의 저변확대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면 할수록 더욱 많은 노하우와 아이디어가 생기고 그만큼 우수한 인재가나올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프로그래머 저변확대의 기반은 PC통신의 공개자료실이다. 공개자료실에는 전문회사가 상용판을 발표하기전에 내놓은 평가판부터 아마추어 프로그래머가 취미삼아 만들어본 것까지 다양하다.최근 참신한 아이디어로 인기를 끌고 있는 「애스크미(ASKME)」는프로그래머 저변확대의 좋은 예다. 경희대 원자력공학과를 나온이성윤씨(28)가 취업을 앞두고 영어실력이 달린다 싶어 만든 프로그램이다.『연습장에 아무리 써도 외워지지 않는 단어를 친구가 물어본 다음에 외운 경험에 착안했습니다.』 영어단어를 연습장에 적듯 컴퓨터에 단어, 뜻, 발음을 입력하면 컴퓨터는 공부한 단어를 되묻는다.만일 답을 틀리게 적으면 벌로 단어와 뜻을 2번 적어야 하는데 이때 입력한 단어와 발음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지겹게 들어야 한다.◆ 공개소프트웨어로 새로운 사업 가능메외운 직후에 망각률이 가장 높다멕(에빙하우스의 망각곡선)는 원리를 이용해 문제를 풀면 잊을만할 때 다시 일깨워주도록 4문제씩2번을 반복하게 만든 기능도 있다. 이성윤씨는 이 프로그램으로 일주일에 1천단어를 암기, 취업시험의 영어과목을 거뜬히 통과했다.한 중학생은 일주일만에 2천단어를 외웠다며 고맙다는 메일을 보내오기도 했다.이성윤씨가 프로그래밍을 시작한 계기는 단순하다. 『문서작성기유틸리티 게임 등을 익히고 보니 남은 것은 프로그래밍이었습니다.프로그래밍언어인 비주얼베이직은 사용이 편리해 배우는데 커다란어려움이 없었습니다.』이씨는 그러나 전공에도 흥미를 갖고 있어 원자력과 프로그래머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공개소프트웨어는 단순한 취미활동을 넘어 새로운 사업의 출발점이되기도 한다. 도스용 통신프로그램의 대명사인 「이야기」로 정보통신업체 큰사람사를 설립한 황태욱 이영상 이종우씨가 대표적이다. 윈도용 통신프로그램인 「창문얘기」개발자 이정욱(27)씨도 비슷한 경우다. 다만 「이야기」가 상업용으로 「변절」한데 비해 「창문얘기」는 계속 공개프로그램(무료)으로 지조를 지킨다는 점이다르다.「창문얘기」를 통해 실력을 인정받은 이씨는 몇군데서 프로그램개발의뢰를 받아놓은 상태다. 모뎀제조업체에서 창문얘기를 자사제품의 번들로 공급하겠다는 제의도 들어왔다. 이정욱씨는 6명의 개발자와 함께 나이렉스란 소프트웨어개발사를 설립했다.이정욱씨는 프로그래밍을 체계적으로 교육받지 않았다. 혼자 책을보고 공부했을 뿐이다. 창문얘기를 개발하게 된 동기도 단순하다.윈도환경에서 도스용 프로그램인 「이야기」의 사용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 1.0판을 공개자료실에 올렸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 이후 꾸준히 기능을 개선하다 2.26판에 여자친구의 목소리로 안내음성을 넣은 후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무려 3만여명이전송받았다. 현재 텔넷 FTP 전자우편등 인터넷접속기능을 보강한4.X판을 준비중이다. 32비트판도 함께 만들어 낼 계획이다.공개소프트웨어와는 성격이 다르지만 쉐어웨어도 프로그래머의 저변확대에 빼놓을수 없다.사무용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박광렬씨(43)는 『일반프로그램과 달리사무용프로그램은 입력데이터의 안정적인 관리를 위해선 책임있는사후지원이 필요하다』며 대부분 쉐어웨어로 공급하고 있다.『새로운 기술의 적용이 상당히 빠른 분야가 소프트웨어입니다. 디스켓에 저장, 포장하고 중간상인 소매상인을 거쳐 최종소비자의 손에 들어가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무시할수 없습니다. 게다가 이런복잡한 과정을 거치다 보면 자연히 판매가가 올라 갈 수밖에 없습니다.』박씨는 소프트웨어산업이 정착하려면 쉐어웨어형태가 소프트웨어의판매형태로 자리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소프트웨어는 일반적인 공산품과 달리 일정 기간 직접 사용해 봐야 필요한 기능과 성능을 확인할수 있기 때문에 정식구입에 앞서시험 사용해 볼 수 있는 쉐어웨어형태가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칭찬만으로 짜릿한 쾌감박광렬씨는 지난 89년 컴퓨터를 처음 접했다. 당시 사무기기 제조판매업체에서 영업을 담당하고 있었다. 하드디스크도 없는 흑백모니터의 XT컴퓨터였지만 업무에 곧바로 적용하고 싶었다. 가장 먼저문서작성기로 고객명단을 정리하고 업무일지를 작성했다. 실력이늘면서 로터스의 매크로기능을 이용, 금전출납부를 만들어 일처리를 했다.『일일이 계산해야 하는 과정을 컴퓨터가 한번에 처리해 주니 너무편리했습니다.』 함께 일하던 동료들에게 사용해보라고 복사해 나눠 주었다. 프로그램을 사용해본 동료들이 감탄하며 칭찬했다. 칭찬에 힘입어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동료들에게 공개했다.본격적으로 프로그램을 작성하기 시작한 것은 쉐어웨어로 만든 2만원짜리 프로그램을 판매하면서부터다. 교회관리프로그램을 하이텔공개자료실에 쉐어웨어로 올렸는데 구매자가 나타났다. 『소프트웨어도 복사기나 팩시밀리처럼 팔리는구나 싶었습니다.』 이때부터박씨의 생활에서 사무기영업비중은 줄면서 프로그램에 매달리는 시간이 늘어났다. 차차 프로그래밍의 끝없는 세계에 빠져들었다.이제까지 「내마음 고객관리」 「3차원 뭐든관리」 등 박광렬씨의사무용프로그램을 구매한 사람은 1천6백여명. 수입은 『봉급생활자보다 조금 더 버는 수준』이라고 귀띔했다.박씨 역시 독학파 프로그래머다. 프로그래머로서는 늦은 35세의 나이였지만 관련서적으로 학습하며 프로그래머동호회 활동에도 열심히 참여했다. 특히 하이텔의 전신인 케텔의 클립데이터(프로그램언어 클리퍼동호회)프로그래머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이때 만난사람들이 정종표 윤빈 정일곤씨.박광렬씨는 꾸준히 올리는 델파이(프로그램언어)강좌의 필명 때문에 하이텔의 클립데이터동호회에서 무림식객으로 통한다.프로그램을 작성하는 일은 외로움과 고통의 시간이다. 뭔가 안풀리는 것 같으면 몸살 난 것처럼 아프다. 그러다가도 어느 순간 문제가 풀리면 『와~』하는 쾌감이 있다. 그러나 가장 큰 쾌감은 사용자의 반응에서 온다. 「훌륭하다」 「멋있다」 「이만한 프로그램이 없다」라는 칭찬을 들을 때면 섹스보다 더한 오르가즘을 느낀다고 한다.공유는 인류가 꿈꿔온 오랜 이상이다. 정치적 혁명을 통해 인위적으로 공유체제를 만들려 했지만 많은 희생을 치르고 역사의 교훈만을 남겼을 뿐이다. 그 공유의 이상이 PC통신의 공개자료실을 통해조금씩 이뤄지고 있다. 밤새워 고민한 끝에 만들어 낸 프로그램을아무런 대가없이 익명의 다중들에 공급한다. 이곳에서 인기 프로그래머는 사업의 발판을 마련한다.인류의 오랜 이상인 공유이상을 실현하는 장으로 자리잡아가는PC통신의 공개자료실이 프로그래머 저변확대의 기반으로 자리잡을지 기대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