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제 68호 (1997년 03월 25일)

"가장 안전한 암호체계 개발이 목표"

기사입력 2006.09.04 오전 11:59

『국내의 암호화 기술이 외국과 경쟁할수 있는 수준으로 올라가기전에 외국의 암호기술이 국내에 밀려들어오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이제 6개월에서 1년정도의 격차만 따라 붙으면 세계 최첨단 수준으로 따라 잡을수 있는데….』데이콤종합연구소의 권도균 선임연구원(35)은 국내에서 손꼽히는암호전문가이다. 그는 국내기술로도 충분한 것을 대기업들이 소중한 외화를 싸들고 미국의 선발업체들에 줄대려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보면 분통이 터진다. 『넷스케이프가 오늘날처럼 세계적인 기업이 될수 있었던 것은 웹열풍이 불기 시작할 때 우수한 브라우저를개발, 공급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정보보호시장이 형성되는중입니다. 초기에 시장을 선점해야 합니다. 국내 대기업들의 경영진들이 이미 보유하고 있는 기술력과 인재를 활용하려 하지 않고무조건 외국제품만 사다 파는 습관을 버리지 않는한 영원히 외국제품에 의존하는 2류국가에 머물수밖에 없습니다.』

◆ 세계수준의 전자지불시스템 개발

권도균씨가 보안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데이콤모자이크를 개발하면서부터였다. 데이콤이 한글판 브라우저를 개발하면서미국 스파이글래스사의 모자이크를 라이선스하기로 결정했다. 권도균씨가 모자이크의 한글화를 맡게 됐다. 그런데 보안부분만은 한글화할 수 없었다. 미국의 수출금지법에 걸려 브라우저의 보안부분을국내에 들여올수 없었기 때문이다.『아예 보안부분을 자체적으로 개발해 한글판 모자이크에 붙이려했습니다. 하지만 업무외에 추가로 해야하는 일이어서 마무리 짓지는 못했습니다. 』이후 권도균씨는 전자지불시스템개발을 맡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보안에 대한 연구를 할수 있게 됐다. 지난해에는 미국에서 개발한전자화폐인 사이버캐시사 수준의 전자지불시스템을 개발했다.『미국이 암호기술 수출을 통제한다고 해서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이미 공개된 암호화알고리즘으로 암호제품을 만들어내는 것은 크게 어려운 작업이 아닙니다. 웹브라우저의 경우 보안모듈을플러그인 형태로 만들어 사용하면 인터넷에서의 보안문제를 해결할수 있습니다.』

권도균씨는 웹브라우저에서 보안모듈을 플러그인으로 사용할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놓고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다.『미국이나 한국이나 기술은 비슷합니다. 다만 자금과 조직력이 처질 뿐입니다. 인터넷을 통해 기술정보가 빠르게 유통되기 때문에기껏해야 기술력의 차이는 6개월에 불과합니다.』실제로 많은 프로그래머들은 국내 기술이 그다지 떨어져 있다고 보지 않는다. 어떤면에서는 오히려 미국보다 앞서있다고 자부하기도한다. 인터넷을 통해 주고 받는 질문과 답변을 통해 이미 해결한문제나 비슷한 문제로 고민하기도 하는 모습을 종종 보기 때문이다.『한국기업과 미국기업의 격차는 아이디어를 실행하는 능력의 차이에서 옵니다. 아이디어를 구상한 뒤 미국업체는 곧바로 제품으로만들어 내는 힘이 있습니다. 뉴스그룹이나 메일링리스트에 아이디어가 나타나면 보통 3개월 후에 미국의 벤처기업들은 그 아이디어를 실현한 제품을 상품으로 만들어 냅니다.』그러나 권도균씨는 이와 정반대의 경험을 했다. 『94년 인터넷에서음성을 실시간으로 압축하고 푸는 기술을 이용해 인터넷라디오프로그램을 제안했지만 기안단계에서 현실성이 없다며 거부됐습니다.물론 시기가 이르긴 했습니다. 그러나 그후 똑같은 아이디어를 활용, 미국에서는 「리얼오디오」가 나왔고 이스라엘에서는 「인터넷폰」이 나왔습니다.』

한글 검색엔진에서 「권도균」이란 이름 석자를 입력하면 4백여건의 문서가 검색될 정도로 그는 인터넷에서는 널리 알려진 명사다.인터넷에서 WSP(Web Security and Payment)메일링 리스트를 운영하며 국내외의 웹을 통한 전자상거래의 정보보호기술과 지불시스템에대한 정보유통에 앞장서고 있기 때문이다. 「마당」이란 웹BBS를운영하며 그동안 발표하고 모아둔 전자지불과 암호기술관련 자료를누구나 볼수 있게 공개해 놓고 있다. 지난해에는 현대정보기술 등과 함께 전자상거래협회를 구성, 운영중에 있고 올해는 전자상거래인증센터를 구축하는게 목표다.『인터넷은 제 삶을 바꿔놓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데이콤이라는 통신회사에 들어와 초창기부터 인터넷에 접한게 행운이었죠.데이콤내에서도 연구소에서만 인터넷을 사용할수 있었습니다. 전용선을 이용한 것이긴 했지만 지금에 비교하면 대단히 느렸습니다.키보드의 A를 누르면 5초후에야 화면에 A가 뜰 정도였습니다.』

◆ 인터넷으로 첨단기술 빨리 흡수

그래도 인터넷의 위력은 대단했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마다 인터넷 덕을 톡톡히 봤다. 개발하고자 하는 프로그램을 인터넷으로 미리 찾아 들어가면 이미 소스코드와 함께 공개된 것들이 많았다.『인터넷을 이용하지 않았더라면 10명의 전문인력이 6개월동안 작업해야 했을 일들이었습니다. 덕분에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중복투자를 피할수 있었습니다. 남는 시간에는 정말로 새로운 것을 연구하고 개발하는데 집중할수 있었습니다.』 권도균씨가 인생의 승부를 인터넷에 걸기로 마음먹은 것은 웹을 접하면서부터다.『93년 첫 웹브라우저인 모자이크를 보는 순간 「바로 이거다」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우스로 화면의 특정부분을 가리키고 클릭만 하면 찾고 싶은 정보를 자유롭게 찾을수 있고 그림과 같은 멀티미디어데이터를 자유자재로 활용할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전자우편을 통해 친분을 다져온 김기태 김용운 이강찬씨 등과 함께웹의 보급에 힘썼다. 「웹포럼」 이란 메일링리스트(관심분야가 같은 사람들끼리 전자우편을 주고 받는 시스템)를 개설, 정보를 주고받으며 우의를 다져나갔다. 인터넷열풍이 불기 시작한 95년에는 「웹코리아」를 구성, 본격적으로 국내에 웹의 보급에 나섰다. 웹코리아는 국내 인터넷기술을 한권에 집약한 「가자, 웹의 세계로」란책을 간행하기도 했다.

『「가자, 웹의 세계로」는 우연한 기회에 간행하게 됐습니다.94년 11월 한 회원이 외국 워크숍에 참가하면서 웹브라우저인 넷스케이프의 매뉴얼을 구해왔습니다. 이 소식이 메일링리스트를 통해알려지자 30여명의 회원이 복사하겠다고 나섰죠. 그런데 어느 한분이 「남들보다 앞장서서 지적재산권을 보호해야 할 사람들이 무슨짓들이냐」며 질책하자 매뉴얼을 복제하겠다던 움직임이 멈칫했습니다.』외국서적을 복사하느니 아예 웹에 대한 책을 새로 만들어내기로 했다. 웹에 대해 제대로 정리된 책이 없어 보급에 어려움이 많았기때문이다.『사실 매뉴얼을 보니 별게 아니었거든요. 당시 우리들이 갖고 있는 지식과 노하우로도 더 좋은 책을 만들수 있다고생각했습니다.』한국내의 웹기술을 집약한 책을 만들기로 결심하고필진등을 모집했다. 초판은 95년 1월 인터넷을 통해서만 보급하다많은 사람들이 찾자 같은해 10월 책으로도 출간했다.가장 안전한 것으로 알려진 암호체계를 개발한 미국의 RSA와 같은회사가 국내에서도 나오길 바라는게 암호전문가 권도균씨의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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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06-09-04 11: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