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제 68호 (1997년 03월 25일)

특수도료분야 최정상에 '우뚝'

기사입력 2006.09.04 오전 11:59

이병서 한국특수화학 사장은 두가지 측면에서 관심을 모으는 기업인이다. 지난 30년동안 오로지 특수도료분야에만 매달려 이 분야에서 국내외 어느기업도 넘보지 못할 뚜렷한 업적을 일궈냈다. 또 한가지는 중소기업살리기에 몸을 던져 뛰는 사람이다. 사재를 털어중소기업세계화연구회를 조직해 중소기업의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등 다른 기업인들로서는 좀처럼 하기 어려운 일에 발벗고 나서고있다. 중소기업 관련 정책을 입안하고 시행하는 관료나 기관장들이취임후 우선적으로 그를 초빙해 의견을 경청하는 것은 여느 중소기업인의 주장과는 달리 풍부한 경험에 이론적인 배경이 뒷받침되고있어서이다.

지난 80년대초 미국의 하버드비즈니스스쿨 학생들이 하나의 중소기업 성공사례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이날의 주제는 「The Korea Special Chemical Company:A Study of Corporate GrowthThrough Technical Innovation」이었다. 「기술혁신으로 성장한 기업-한국특수화학」의 사례였다.이름이 별로 알려지지 않은 조그만 중소기업, 그것도 미국이 아닌한국기업의 성공사례를 놓고 세계적인 경영학의 명문인 하버드비즈니스스쿨에서 깊이있는 사례연구를 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다.그만큼 논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것만은 분명하다. 연구의 초점은 어떻게 한국의 작은 기업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미국의 품질검사를 통과하고 관공서납품자격을 획득해 미국시장개척에 성공했는지와 이사장의 경영철학 등이다. 이 사례에 등장한 한국특수화학은이사장이 지난 68년 설립한 도료전문업체, 바로 그 회사다.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코오롱에서 승승장구하던 이사장이 경영진의 간곡한 만류를 뿌리치고 독립한 것은 젊은 시절에 내사업을 하지 않으면 영원히 못할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일단 직장을 나온그는 제조업이 기업가로서 보람이 있다고 판단, 제조업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 한국기업 성공사례 연구대상

전자 섬유 페인트등 수십가지 업종을 분석한 결과 이중 페인트가비교적 소자본으로 시작할 수 있다고 판단, 10명의 인원으로 서울성동구에서 간판을 내걸었다. 우선 기술적으로 가장 간단하고 시장성도 있다고 판단한 일반 실수요자용 페인트를 백마표라는 브랜드로 생산해 팔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업이 그리 쉽진 않았다. 1년동안 열심히 뛴끝에 결산을 해보니 무려 2천만원의 빚만 걸머쥐고 말았다. 품질은 안좋았고 어렵게 판 제품의 수금은 늦어 자금회전이잘 안됐다. 창업 1년만에 회사는 중대한 위기를 맞았다. 과연 회사를 계속해야 할 것인지를 놓고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밤에는 잠을 못이뤄 한숨으로 날을 지새웠다. 왜 좋은 직장을 박차고 나왔는지 후회도 막심했다. 사정도 모른채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의 모습을 보고 다시 한번 시작해 보기로 했다. 이제는 경쟁이 치열한 일반페인트 대신 남들이 잘 뛰어들 수 없는 특수 페인트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이래서 개발해낸 것이 도로용페인트였다. 도로용 페인트는 잘 벗겨지지 않아야 할 뿐 아니라 한 여름의 뙤약볕이나 추운겨울에도 물성이 변하지 않아야 하는 등 매우 까다로운 제품이었다. 또 당시엔 도로용 페인트를 대부분 수입해다 쓰는 때였다. 개발에 성공한뒤 수차례의 낙방끝에 도로공사의 품질테스트에 합격했다. 주문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일반도로에서부터 고속도로에 이르기까지 한국특수화학제품으로 중앙선과 차선표시가 이뤄졌다. 회사의 매출과 수익증대 재무구조개선에 효자노릇을 한 것은 당연하다.인천근교의 5천여평의 부지에 번듯한 새 공장으로 이전한 것도 도로용 페인트 덕분이었다.

해외시장개척에 관심을 돌리기 시작한 것은 하와이 동서문화센터에서 있은 워크숍에 참석하면서부터다. 워크숍기간중 현지 페인트시장을 조사한 결과 자신이 섰다. 현지 교포를 대리인으로 위촉하고도로페인트 입찰에 관한 하와이주정부의 연방명세서와 지침서를 입수하고 곧이어 납품자격을 받기 위한 도로페인트 견본을 하와이주정부에 송부했다. 첫 테스트엔 불합격이었다. 2년동안 현지 규격에맞춰 품질을 개량한 끝에 하와이주정부로부터 입찰자격을 따냈다.우리나라 페인트업체 사상 첫번째로 미국의 관공서 납품규격에 합격한 것이다.수출에 자신감을 얻은 이사장은 이후 자동차용 페인트 LPG실린더용페인트 캔코팅용 페인트등 특수도료를 속속 개발하며 이란 파키스탄 등지로 시장을 넓혀갔다.80년대 후반엔 캔코팅용 페인트를 사용해 직접 고급 금속인쇄에도나서기 시작했다.

해외에 기술의 우수성이 알려지면서 기술수출이나 합작에 대한 문의가 크게 늘면서 올상반기중엔 중국 상해지역의 업체와 도로용 페인트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키로 했으며 대련지역엔 동북피아노 공장과 합작으로 피아노용 대규모 도료공장도 건설키로 했다. 까다롭기로 이름난 일본시장에 대한 수출도 시작했다.한국특수화학의 성공은 전문화와 기술혁신 서비스제일정신에서 비롯된다. 지난 30년동안 오로지 특수 페인트 생산에만 정진해왔고끊임없는 기술혁신을 위해 직원들을 과감하게 영국 등 기술선진국에 보내 기술훈련을 시켜왔다. 일본인 기술자를 공장장으로 영입하기도 했다. 정밀화학인 페인트의 특성상 기술개발이 무엇보다 중요해서이다. 또 고객의 요구를 충족시킬수 있는 철저한 서비스체제를갖추고 있다.

◆ 기술우수성 알려져 일본까지 수출

페인트잉크조합이사장으로 업계를 이끌고 있는 이사장은 기업경영못지 않게 중소기업 살리기에 몸을 던지고 있는 기업인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그가 개인 재산으로 중소기업세계화연구회를 운영하는 것도 그중의 한 예이다. 중세연은 그동안 여러차례 모임을 가지면서 중소기업의 자금과 인력문제, 경쟁력문제, 세계화문제 등을폭넓게 토의하며 갖가지 대안을 마련, 정부에 건의해왔다.그는 경제학서적 탐독이 취미일만큼 경제분야의 책을 섭렵하고 있으며 이를 토대로 외국의 사례등 폭넓은 중소기업 회생방안을 제시하기도 한다. 경제관료들이 그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주장이 강력한 설득력을 갖고 있어서이다. 그의 주장 한 예로는 다음과같은 것이 있다. 정부가 중소기업정책을 총괄하는 기관으로 중소기업청을 만들었으면 이에 걸맞는 권한을 부여해 미국의 중소기업청(SBA)처럼 실질적인 일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하라는 것이다. 또중소기업이 겪는 3난(자금난 인력난 기술난)을 타개할 수 있도록대출금상환연기, 긴급자금지원, 기술투자공제제도확대, 중소제조업체종사자에 대한 병역의무면제, 단체수의계약확대 등의 다양하면서도 세부적인 대책을 제시한다.

그는 「국가와 민족의 번영은 제조업으로부터 나온다」고 굳게 믿는다. 인간이 부를 누리고 평화롭게 살려면 생산을 많이 해야하며부가 창출돼야 분배가 이뤄지고 모든게 풍족해진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의 원천은 바로 제조업이라는 것이다. 정부와 각계각층이사상 최악의 어려움에 처한 중소제조업체를 살리는데 온힘을 쏟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당사의 허락 없이 본 글과 사진의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입력일시 : 2006-09-04 11: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