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의 지도자는 기본적으로 사안을 판단하고 정책을 선택하는 자리다. 태평성대가 아닌 이상 현대 사회에서는 끊임없이 갈등과 이해 조정의 필요성이 발생하고 그때마다 보스는 「선택 및 결정」이라는 권한이자 의무 앞에 놓이게 된다. 따라서 현상황을 정확히 인식하고 각종 영향요소들간의 상충관계를 면밀히 검토하며 각 대안선택에 따른 파급효과 등을 종합 판단해 최선의 정책을 결정하는것은 톱의 일과다. 미국의 한 여론 조사결과 일상에서 가장 많이선택이라는 의사결정을 해야하는 직업으로 운동경기 감독, 프로 도박사 등을 제치고 미국 대통령이 뽑혔다는 것은 이를 뒷받침하는단적인 증거다.그러나 보스 혼자 세상만사를 다 알고 정책을 선택하기란 불가능하다. 비서, 참모, 혹은 브레인이라고 불리는 보좌진들은 그래서 필요하다. 이들은 보스가 판단하는데 도움이 되는 정황 분석, 통계수치, 전례, 상대측 전략, 대응방안 등은 물론 심지어 민심 동향에이르기까지 동원 가능한 모든 참고자료를 지원한다.조직의 흥과 쇠는 물론 직접적으로는 보스의 역량과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얼마나 유능한 참모진을 확보할 수 있으며 실제 확보하고 있느냐도 조직의 진운을 가름하는 결정적 요소라고 할 수 있다.세종대왕대가 조선조 최고의 흥륭기로 기록될 수 있었던 이유는 보스의 탁월함에 덧붙여 당대 최일류의 브레인들이 포진했었기 때문이다. 유비가 본인의 불민함 및 세불리에도 불구하고 위 오나라에장기간 맞설 수 있었던 것 역시 역사상 최고의 참모로 꼽히는 제갈공명 덕택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방은 성격상 결함이 적지 않았지만 사람을 끄는 능력은 뛰어나 한신과 장량, 영포와 팽월등 초일류의 막료를 끌어들임으로써 천하를 통일할 수 있었다.참모 역할의 중요성은 정계나 재계나 다를게 없다. 한국의 현대사에서도 어렵지 않게 확인된다. 이승만 정권 시절부터 문민정부에이르기까지, 비서진들이 보스의 눈과 귀와 머리가 되어 헌신적인보필을 한 시기와 그렇지 못한 시기는 극명히 대비되는 결과를 빚었다.◆ 두 조직직제 완전 닮은 꼴김영삼대통령의 정책미스나 정태수 한보그룹 총회장의 실패는 이런참모의 역할과 중요성을 웅변해 준다.「Administration(국가경영)」과 「Business Administration(기업경영)」의 영어 표현에서 보듯 기업 경영도 국가 경영과 다를 리없다. 삼성 현대 등 재벌 기업의 비서실 직제는 대통령 비서실 직제를 그대로 옮겨왔다고 할 정도로 기능 분류나 업무에서 거의 동일하다.단적인 예를 들면 재벌 비서실은 곧 청와대 비서실이고 계열사 사장들은 각 부처(장관)다. 각 계열사의 업무 현황을 모니터해 이를그룹 총수에게 올리는 비서실 팀장들이나 각 부처의 업무를 파악해대통령에게 보고하는 청와대 수석 비서관이나 기본 업무에 있어서는 차이점을 발견하기 힘들다. 계급 문제와 관련해서도 장관으로구성된 내각과 장·차관급 수석 비서관으로 구성된 「내각 VS 수석비서관」관계, 최소한 사장급인 계열사 대표이사와 통상 전무·상무급인 비서실 팀장간의 「대표이사 vs 팀장」관계도 정확히 대응한다. 비서실은 직급에서 밀리지만 대 각료나 대표이사 관계에서는동등 내지 우월한 지위를 갖는다. 비서실은 보스와 가깝게 있기 때문이다. 「세도는 보스와의 물리적 거리에 비례한다」는 것은 양의동서를 막론한 진리다.두 비서실은 또 보스가 직접 지시한 사항이나 총수의 이름으로 시행해야할 일을 담당하기도 한다. 예컨대 사법개혁이나 교육개혁,노동개혁, 세계화 추진 등 「대통령의 업적으로 남는 작업」은 비서실이 직접 손을 댄다. 마찬가지로 재계에서도 질경영이니 가치경영이니하는 그룹 차원의 경영혁신 운동, 종합적 조망이 필요한 대형 프로젝트들은 비서실이 나선다. 내각이나 계열사가 일상 업무에젖어 보스의 이미지를 제고시킬만한 아이디어를 내지 못할 때, 참신한 기획안을 짜내는 것 역시 비서실 차지다.◆ 보스 불민하면 참모라도 뛰어나야재계에서는 정부에 대한 로비도 한다. 굳이 비유하자면 대통령 비서실에서의 외교안보 수석실이다. 그밖에 대통령 집안이나 총수 가족 관리, 보스 집안 살림챙기기 등을 모두 비서실에서 하는 것도완전 닮은 꼴이다.그러나 양 비서실간에는 공통점 못지 않게 차이점도 적지 않다. 차이의 원천은 「임기」다. 대통령은 임기가 있지만 재벌 총수는 「영원」하다. 특히 레임덕 현상이 시작되는 임기말이 되면 대통령비서실의 분위기는 변화한다. 반면 재벌 총수는 평생 보스이므로대통령 비서실같은 현상은 최소한 표면적으로는 나타나지 않는다.비서실 직원 또한 돌아갈 곳이 있는 부처 파견 공무원으로 구성되어 있느냐, 언제까지나 보스와 무관할 수 없는 회사원이냐에 따라큰 차이가 난다. 가령 비서관들은 대통령에게 『노』라고 말할 수있고 또 그렇게 해야할 때가 있지만 기업에서는 『노』라고 말하기가 매우 어렵다. 모 그룹 회장단 회의에서 프로젝트의 문제점을 지적했다가 『그런말 하라고 그 자리에 앉혀놨냐』라는 말 한마디에발언 임원은 바로 고개를 숙이고 말았던 적이 있었다. 총수가 자동차 사업을 추진하겠다는데 반대 의견을 낼 강심장은 없다.국가 경쟁력과 기업 경쟁력이 세계적 화두가 된 지금 시점에서 대통령과 재벌 총수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그에 수반해 비서진들의 책무나 중요성 또한 상당한 무게를 지닐 수밖에 없다. 경쟁력강화가 논의될 때마다 등장하는 행정 조직의 개편이나 규제 완화,경영 혁신 등은 사실은 브레인들의 역량 여하에 따라 작품성과 완성도가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보스로 하여금 그것을 실천하도록설득하고 확신을 심어주는 것이 바로 보좌진의 임무인 것이다. 대통령이나 그룹 총수가 「오판」으로 「오도」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자리는 지근거리에 있는 보좌진뿐이라해도 지나치지 않다.새는 깃들 곳을 안다고 한다. 역으로 좋은 깃들 곳에는 새들이 모이게 마련이다. 유능한 보스와 탁월한 보필자들은 결코 분리될 수없는 동전의 양면이다. 최악의 경우 설사 보스가 영민치못하더라도참모만큼은 뛰어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그 조직은 늘상누란의 위험속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것은 정치든 기업분야든 모든 조직관리에 적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