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제 68호 (1997년 03월 25일)

'총구'…모든 길 비서실로 통한다

「대기업의 청와대비서실」. 종합기획실, 비서실, 경영기획실, 회장실등 명칭은 다르지만 대기업의 기조실을 재계에서는 이렇게 부른다. 청와대비서실이 엘리트관료들이 포진, 다양한 정보를 수집해대통령의 인사 및 정책결정에 반영할 수 있도록 참모조직으로서 역할을 한다면 대기업의 기조실역할 또한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대기업 기조실은 인사 재무 감사팀 등 핵심부서를 두고 계열사 경영전반에 대해 어느 대기업 할 것없이 막강파워를 과시한다. 계열사의 경영실적을 일일이 챙겨 연말임원급인사에 반영한다. 새로운업종 진출을 모색할때면 정부정책의 방향, 진출에 따른 파급효과및 국민의 반응, 자금조달계획 등을 조사해 총수에 보고하는 등 야전사령부로서의 역할도 수행한다.기조실의 역할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총수의 금고지기로서 자금관리역할도 담당한다. 문민정부들어 그 실체가 여실히 드러났지만비자금을 조성, 총수가 정치권 등에 로비를 할수 있도록 한 곳도대기업의 기조실이었다. 총수의 아들 및 형제등 로열패밀리의 관리도 기조실의 몫이다. 지난 94년이후 경영권을 승계한 2~3세들은 기업에 따라 다소 다르지만 기조실에 근무하면서 「제왕학」을 배워대부분 경영일선에 나섰다. 좋게보면 경영관제탑이요 나쁘게 보면총수의 「안기부」나 「기무사」 같은 조직이 바로 기조실이라 할수 있다.

이렇듯 야누스의 두 얼굴을 가지고 있는 기조실이 우리 대기업에처음 등장한 것은 지난 50년대말. 삼성그룹은 대기업으로는 처음으로 59년 비서실을 만들었다. 이후 럭키금성그룹(현 LG그룹)이 삼성그룹의 비서실과 같은 기획조정실을 설립했으며 선경그룹(74년),대우그룹(76년), 현대그룹(79년), 효성그룹(81년)등이 잇따랐다.기조실은 기업마다 설립시기와 명칭은 비록 다르지만 유사점이 있다. 경제가 고속성장을 시작할 무렵 설립돼 재벌신화의 모태역할을했다는 점이다. 삼성그룹의 경우 비서실 설립당시 계열사는 삼성물산, 제일제당, 제일모직 3개사에 불과했다. 그러나 비서실 설립이후 안국화재보험(현삼성화재), 동방생명보험(현삼성생명), 신세계백화점, 중앙개발, 전주제지등 계열사는 8개사로 늘어났다. 이로써삼성그룹은 그룹으로서의 면모를 비로소 갖추게 됐다. 이렇게 되기까지에는 삼성그룹 이병철선대회장의 앞을 내다보는 경영혜안이 크게 작용을 했지만 비서실 또한 싱크탱크로서 역할도 컸다는 것이대체적인 시각이다.

◆ 재벌신화의 모태역할 수행

LG그룹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삼성그룹에 이어 68년 회장 직속기구로 기획조정실을 설치, 활발한 사업다각화를 펼쳤다. 금성통신,럭키개발을 설립한데 이어 70년대들어범한화재해상보험(현LG화재)등 3개사를 잇달아 설립, 계열기업군을늘렸다. 설립당시는 산업구조가 다각화되는 시기로 서울본사와 지방에 분산돼 있는 각 계열사를 통합관리하기 위해 기조실을 설립하게 됐다고 LG그룹사사는 전하고 있다.선경그룹 경영기획실은 비록 설립은 삼성, LG그룹에 다소 뒤졌지만이들 그룹의 비서실과 기획조정실에 버금가는 드라마틱한 역할을수행, 눈길을 끈다. 80년 재계의 관심을 모았던 유공인수가 바로그것이다. 당시 정부가 유공의 민영화방침을 발표하자 삼성등 내로라하는 그룹들이 군침을 삼켰는데 선경은 손길승실장을 중심으로한경영기획실이 중심이 돼 유공을 전격인수, 재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유공인수를 계기로 선경은 석유에서 섬유에 이르는 수직계열화를이루는 한편 재계 랭킹 5위로 성큼 뛰어올랐다. 선경경영기획실은90년대 중반 한국이동통신인수에도 핵심적인 역할을 해 그룹중심축을 정보통신사업쪽으로 돌리는데도 일익을 담당했다.이들 그룹과는 달리 현대그룹은 그룹사로 면모를 갖춘 뒤 종합기획실을 설립했다. 계열기업이 늘어나면서 이에따른 통합조직이 필요했던 것이다. 삼성, LG, 선경그룹의 기조실이 그룹성장의 견인차였다면 현대그룹의 종합기획실은 계열사경영의 조타실역할에 보다 무게가 실려있는 셈이다. 그룹규모에 비해 근무인원이 적고 조직 또한 단출한 것이 현대그룹 종기실의 특징이다.

대기업기조실은 이처럼 오늘의 그룹으로 성장하기까지 핵심역할을한만큼 권한 또한 막강하다. 총수의 분신으로서 무소불위의 권력을휘두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계열사에 경영상태를 일일이파악, 총수에게 보고해 임원급인사에 반영토록 한다. 또한 그룹의자금흐름을 꿰뚫고 있어 필요한 곳에 자금이 집중되도록 하는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 이렇다 보니 기조실과 계열사와의 관계는 수평적이 아닌 상명하복식이 되고 권력은 자연히 기조실로 쏠려 기업의 파워엘리트집단이 됐다.대기업기조실위상에 변화의 바람이 불어닥친 것은 문민정부출범이후이다. 6공당시 김종인 청와대경제수석이 대기업들이 말을 잘 듣지 않자 한때 재벌길들이기 차원에서 기조실축소내지는 폐지를 추진했으나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문민정부들어서는사정이 달랐다. 92년 대선에 정주영현대그룹명예회장이 출마한 것이 결정적인 이유였다. 김영삼대통령은 당시 대선에서 정현대명예회장의 대통령선거출마를 「돈으로 정치권력을 사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와중에서 재벌의 거대선단식운영의 폐단이 쟁점으로 부상했다.

◆ 총수 금고지기·로열패밀리 관리까지

김대통령은 기업의 정치권력화와 거대선단식운영의 창구는 다름아닌 대기업의 기조실이라고 단정하고 이에대한 메스를 가하고 나섰다. 이 작업은 문민정부가 개혁을 표방하면서 국민들의 공감을 얻었고 대기업으로서는 이 회오리를 피해 낮은 포복을 할 수밖에 없었다.한이헌 경제수석이 등장하면서 「재벌길들이기」가 본격화됐다. 이 과정에서 기조실축소내지 폐지종용 압력이 노골적으로 가해진 것으로 알려졌다.이에따라 대기업들은 문민정부출범이후 기조실에 대한 대대적인 변신을 서둘렀다. 조직 및 인원을 슬림화해 소수정예주의로 나가고운영 또한 중앙집권식에서 계열사에 권한을 대폭 위임하는 분권식으로 전환했다.이렇게 변신을 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내부요인도 크게 작용했다. 외형이 이미 커질대로 커진 상태에서 기조실이 일일이 경영에관여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었고 계열사 나름대로 급변하는 경영환경에 순발력있게 대응하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모든 대기업들이 기조실의 슬림화를 추진하면서 「자율경영확대」를 주된 이유로내세운 것은 이와 무관치 않다.

삼성그룹이 발빠른 변신을 꾀했다. 91년 비서실 축소작업에 들어갔던 삼성그룹은 94년 실장-차장-팀장으로 돼 있던 비서실조직을 차장제를 폐지, 실장-팀장제로 슬림화했다. 이어 지난해에는 8개팀으로 돼 있던 조직을 보좌역실, 홍보팀, 신경영추진팀등 3개팀을 흡수통합해 모두 5개팀으로 개편하고 인원 또한 2백명에서 1백30명으로 대폭 줄여 나머지는 소속사로 원대복귀시켰다. 그룹측이 밝힌비서실개편의 주된 이유는 그룹경영의 집중화를 지양하고 권한을대폭 계열사로 이양, 질위주의 내실경영확대였다.대우그룹 또한 92년이후 두차례의 조직개편을 통해 13부 9개팀으로된 기조실조직을 8개팀으로 축소한데 이어 95년에는 명칭을 아예회장비서실로 바꾸었다. 기조실이 갖고 있던 권한은 계열사회장제를 도입, 대부분 계열사로 넘겼다. LG그룹 또한 90년 자율경영을표방하면서 기획조정실을 회장실로 바꾸고 업무 또한 조정역할로축소했다. 조직자체가 단순했던 현대그룹은 정몽구회장취임이후 일부기구개편을 단행했다. 기존 재무 1, 2팀을 재무팀으로 통합하는한편 재무3팀은 경영분석팀으로, 재무4팀은 투자기획팀으로 명칭을변경했다.

이같은 변화와 함께 대기업의 기조실은 21세기를 앞두고 또다른 위상변화를 꾀하고 있다. 계열사의 단순한 경영업적평가에서 탈피해그룹의 21세기 장기전략마련 및 추진, 선진경영기법도입, 국제적인프로젝트추진 등이 그것이다. 선경그룹의 경우 경영기획실이 장기발전계획수립 및 미국 등 외국의 선진경영기법을 도입해 토착화하는 창구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고 LG그룹이 회장실에 해외사업팀과 M&A팀을 두고 있는 것이 좋은 예다. 대기업기조실이 21세기 무한경쟁시대를 맞아 「경영관제탑」로서 새로운 위상정립에 나서고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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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06-09-04 11: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