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제 68호 (1997년 03월 25일)

'군계일학' 샐러리맨 신화 창조

지난해 노태우씨 비자금사건이 불거져 나와 내로라하는 재벌그룹총수들이 검찰청사에 줄줄이 출두했을 때 『비서실장(기획조정실장또는 경영기획실장)들이 결국 모든 수습을 할 것』이라는게 D그룹비서실 한 관계자의 말이었다. 그의 말처럼 비자금사건에서 몇몇그룹비서실장들이 회장과는 무관하게 자신의 책임아래 비자금을 노태우씨에게 건네줬다며 모든 책임을 감당했다. 이런 비서실장들의「견마지로」에 대해 샐러리맨으로서 그룹총수의 각별한 신임을 받는 비서실장의 결초보은이라는 반응과 십자가를 대신 졌다는 동정이 엇갈리기도 했다.유사시 재벌총수를 대신하는 자리인 비서실장. 그들은 거대기업군을 오너 또는 2∼3세 총수가 지배하는 재벌이란 독특한 기업풍토아래 전문경영인으로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사람들이다. 그만큼 능력이란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존재들이다. 그들의 재산은 혈통이 아니라 능력이다. 그래서 비서실장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재벌총수들이 흔히 성공의 원동력이었다고 말하는 「맨손」을 충실히받쳐온 「머리」라는 표현이 어울린다.「선단」으로 일컬어지는 수십개의 기업들을 이끌어온 조타수로서항상 세인의 주목을 받는 존재이자 샐러리맨들에게는 언젠가 오르고싶은 꿈의 정상인 비서실장. 「기업의 심장」이라는 비서실을 이끄는 비서실장은 그래서 재벌총수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존재가 됐다. 그만큼 신임이 두터운 「충복」만이 가능한 자리다.특히 현대 삼성 LG 대우 선경 등 5대 재벌그룹의 경우 비서실장의능력에 따라 그룹의 명암이 달라졌다는 말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비서실장의 자리는 비중이 크다. 그만큼 재계의 역사는 비서실장의역사와 흐름을 같이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재벌그룹 가운데 비서실장하면 가장 먼저 쳐주는 그룹은 삼성그룹.「관리하면 삼성」이라는 말에 걸맞게 재계에서 최초로 비서실을만들었다. 특히 「삼성그룹 비서실장」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바로8대 소병해실장이다. 제일제당 공채 8기로 무려 13년간 비서실장으로 근무하면서 고 이병철회장을 그림자처럼 보필, 「2인자」라는말까지 들었던 최장수비서실장이다.계열사는 물론 국내와 일본을 비롯한 외국의 정세와 기술동향 등을앉아서 손금보듯했다는 고 이병철회장의 경영신화를 뒷받침해온 인물로 이전회장의 사망후 3남의 그룹승계에 따른 갈등을 절묘하게처리했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 맨손 떠받쳐 온 ‘머리’들

그러나 탈상후 비서실의 독주에 따른 잡음과 함께 자율경영을 강조한 이건희회장의 혁신적인 경영스타일에 부대끼면서 전격적으로 그자리에서 물러났다. 그후 미국에서 경영관련 학문을 연수하고 삼성생명고문 미주전자부회장 삼성신용카드상담역 등 경영일선과 거리를 두다가 지난 95년 삼성카드의 부회장으로 다시 복귀했다. 이때나온 말이 「돌아온 장고」. 「독일병정」이란 사내별명처럼 기억력과 계수에 밝은 완벽주의자로 「조직과 인맥에 남달리 강점을 많이 가진 관리형 실장」이란 게 그룹내의 평이다.7대 비서실장을 지낸 송세창 현나산그룹부회장의 경우 삼성그룹의모기업인 제일모직의 공채1기 출신으로 입사동기들보다 승진이 늦었으나 비서실장 발탁후 승승장구한 인물. 비서실장 취임후 첫 감사대상으로 자신이 몸담았던 제일모직을 도마에 올려 일에 관한 한「칼」같은 사람이란 평을 듣기도 했다. 지난 91년에는 삼성에서나와 개인사업체를 운영하기도 했으며 교보문고회장을 역임했다.『강력한 추진력을 갖춘 비서실장으로 삼성그룹의 양적 팽창기를주도한 비서실장』이라는 것이 그룹 관계자의 말이다.삼성의 공채 6기 선두주자로 10대 비서실장을 지낸 이수빈삼성생명회장도 당시 이건희회장이 추진하는 개혁의 와중에 비서실장취임2년여만에 퇴진했다가 95년에 화려하게 롤백했다. 이건희회장의 서울사대부고 4년 선배로 37세에 제일모직사장에 오를만큼 일찍부터경영수완을 보였다. 제일모직을 시작으로 제일합섬·제당 등 삼성그룹의 3대 모태기업은 물론 항공·생명의 사장을 두루 거친, 삼성그룹이 내세우는 『간판급 전문경영인으로 삼성생명사장재직시 삼성생명을 그룹내 선두기업으로 키우는 경영능력을 보였다』는게 그룹내 평이다. 특히 고 이병철회장이 인정한 자금(경리)통으로 유명하다.

11대 비서실장을 지낸 현명관 현삼성물산부회장의 경우 행시 4회를거쳐 공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비공채출신의 비서실장이었다.인사관리에 관해 「순혈주의」를 고집하는 삼성그룹에서는 예외에속하는 인사였다. 그는 감사원생활을 박차고 일본유학을 갔다가 전주제지(현 한솔제지)에 입사하면서 삼성과 인연을 맺었다. 93년 삼성건설사장재직시 구포열차사건을 무난히 처리하면서 위기관리능력을 인정받아 그해 비서실장으로 발탁됐다. 웃을 때는 천진난만한동안이지만 『업무의 완벽주의를 지향하는 스타일로 실무형 비서실장이었다』는 평. 신라호텔사장 재직시 화장실점검으로 하루일과를시작한 것과 고르바초프 방한 때 완벽한 서비스를 제공한 일은 지금도 현부회장을 말할때면 으레 따라 다닌다.

◆ 선경 손길승 재계 최장수 실장

막강한 삼성그룹의 비서실장에 뒤질세라 맞수 현대그룹 기획조정실장의 면면도 만만찮다. 현대그룹 기조실장중 가장 먼저 입에 오르는 인물은 이현태 현 석유화학 상임고문. 흔히 「삼성=소병해, 현대=이현태」로 비교되기도 하는 이고문은 2대실장으로 취임, 약12년동안 정주영 현 명예회장을 보좌하면서 현대그룹의 80년대를이끌어온 명참모이자 전문경영인. 풍한방직 경리부장을 지내다71년 현대에 스카웃돼 현대중공업과 성장을 함께 했으며 83년 라이프그룹에서 인수한 동방화재를 만년하위에서 당시 손보업계 2위로끌어올리기도 했다. 정명예회장의 정치참여때에는 현대와 국민당의교량역할을 담당했다가 92년 그룹의 대정부관계를 고려해 기조실장직을 떠났다.기조실장재직시 진두지휘한 현대그룹의 석유화학참여가 과잉중복투자라는 일부의 우려를 말끔히 씻어내고 오히려 동남아시장을 개척해 내수일변도의 석유화학산업을 수출산업으로 격상시켰다는게 업계의 말이다. 공인회계사 뺨칠 정도로 경리와 자금 등 계수에 밝고쾌도난마식의 의사결정능력과 강력한 추진력으로 그룹내에서 「컴퓨도저(컴퓨터에 불도저를 합성한 말)」라는 닉네임으로 불리기도한다.

그러나 그런 이미지가 강성으로 비쳐지고 언론과의 접촉을 피해 소탈·솔직한 성품에도 불구하고 기자들사이에서는 한때 「크레믈린」으로 불리기도.현대그룹의 역대 기조실장중 빼놓을 수 없는 또 한사람이 바로 심현영 현 (주)청구부회장. 63년 현대건설의 공채 1기로 입사해 현대중공업 인천제철 현대산업개발 현대정유 등을 두루 거친 「현대맨」.적자투성이였던 인천제철을 흑자기반에 올려놓는 한편 현대그룹 최초의 해외건설현장이었던 베트남과 방콕 괌 등에서 쌓은 현장경험을 바탕으로 만신창이였던 현대산업개발을 흑자의 국내최고 아파트건설업체로 만드는 등 뛰어난 경영수완을 발휘하기도 했다. 『서민적이며 온화한 성품으로 치밀하면서도 합리적인 전문경영인』이란게 재계의 평이다.삼성에 이어 두번째로 기조실(현회장실)을 만든 LG그룹의 기조실은현구본무회장이 기조실에서 경영수업을 받았을 정도로 그룹내에서위상이 높다. 역대 비서실장중 가장 두드러진 인물은 3대 기조실사장을 지낸 이헌조 현LG인화원 회장과 5·7대를 역임한 변규칠 LG상사회장 겸 그룹부회장. LG그룹의 「좌청룡 우백호」에 해당하는 인물들이다.

이회장은 LG그룹의 모태인 락희화학(현 LG화학)의 창업주역중 한사람인 이연두 전락희화학부사장의 아들이자 초대 기조실장이며 창업멤버인 허준구 현LG전선명예회장의 이종조카. 57년 락희화학에 공채 1기로 입사해 금성사(현 LG전자)에서만 뼈가 굵었다. 금성사설립초기 판매과장으로 국산라디오 1호와 선풍기를 직접 들고 골목골목을 누비던 「1호 세일즈맨시절」을 자랑스러워한다는 이회장은삼성전자의 강진구회장과 함께 한국전자산업의 산 증인으로 꼽힌다.

기조실사장재직시 그룹의 장기전략 수립, 「인간 기술 미래」란 경영슬로건, 그룹로고, 그룹사보 발간, 반도체·유통·광고업과 같은신규사업 진출 등이 그의 손을 거치면서 빚어진 것들이다. 89년 금성사의 극심한 노사분규를 원만히 타결하면서 노경(勞經)개념을 그룹에 전파하는 등 노사문제의 능력을 인정받아 지난해 비오너회장으로는 처음으로 경총회장자리를 제의받기도 했다. 50년대 락희화학에서 만들어 어린이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훌라후프가건강에 해롭다는 기사를 낸 신문사의 편집국에 직접 훌라후프를 가져가 돌려보이며 「뭐가 해롭냐」고 반문했을 정도로 저돌적인 면도 있다. 「가장 학구적인 전문경영인, 사리분별이 정확한 논리와검소하고 강인하며 인도주의적인 경영스타일을 가진 경영인」이란게 그룹내부의 평이다.두번에 걸쳐 LG그룹내에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를 역임한변규칠그룹부회장은 그룹내에서 외국기업과의 합작등 대외업무를도맡아 처리해온 일급브레인중의 브레인으로 통하는 전문경영인.63년 락희화학의 공채출신으로 호남정유창설멤버로 참여했으며 그룹초창기에 법제업무와 대정부업무에서 활약이 두드러졌다.특히 선대 구자경회장체제의 마지막 비서실사장으로 신임 구본무회장의 경영권승계를 총괄했으며 지금은 경영후견인역할을 담당하고있다. 지난해 구회장이 우량업체의 인수합병을 통한 초우량기업을목표로 한 공격경영인 「도약 2005」를 천명한 후 M&A의 노하우를얻기 위해 미국으로 출국해 그의 행보가 구회장의 경영목표를 이루는 관건이 될 것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외국기업인들과 오래 교유해온 덕인지 경영기법이 상당히 서구적이라는 평을 들으며 직원들에게 책임과 자주관리의 자율경영을 강조한다고. 골프후 바로 테니스게임을 가질 정도로 강인한 체력을 갖고 있으며 전형적인 참모형으로 밖으로 나서길 꺼려 「쌍둥이빌딩속에 감춰진 진주」라는 말을 듣는다.

◆ 비서실장 능력 따라 그룹 명암 달라져

창업자인 최종건회장의 사망후 최종현회장이 취임하면서 경영기획실이 만들어진 선경그룹의 경우 「명참모장」으로 꼽히는 손길승경영기획실장 겸 한국이동통신부회장이 한눈에 두드러진다. 78년부터 경영기획실장을 맡아 최회장의 그림자로 일해온 재계 최장수기획실장이다. 65년 「최회장의 경영철학에 반해」선경직물(현선경)에 입사했다는 손부회장은 자신이 전도사역을 담당한 「선경경영관리체계」덕에 그룹에 자율경영체계가 확립돼 그룹총수의 간섭을 가장 덜 받는 기획실장이자 전문경영인으로 다른그룹기조실장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실제로 『최종현회장이 직원들앞에서 「동지」라고 표현할 정도로 신임이 깊다』는 것이 그룹관계자의 말이다.삼성비서실을 상대로 해 「다윗이 골리앗을 무너뜨렸다」는 말과함께 선경그룹이 수직계열화를 이루는 계기가 된 유공인수를 비롯해 워커힐호텔 한국이동통신 선경증권 등 굵직굵직한 기업의 인수합병을 진두지휘했다.

일을 통해서 스트레스를 푼다는 손부회장은 간혹 새벽에 부하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업무를 물어보는 경우가 많을 정도로 일에 몰두하는 스타일. 임원들 가운데 유일하게 골프를 치지 않던 고집을 꺾고 최근 골프를 배우기 시작했으며 그룹내 심신수련법인 단전호흡으로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71년 대연각호텔화재때 당시 경리과장으로 경리부직원들과 불길이 남아있는 건물에 가장 먼저 도착해 회사금고가 무사한지 확인했다는 일화가 그룹내에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다. ROTC 1기로 각계에 지인이 많은 마당발로 비상하고 치밀한 기획력이 단연 돋보인다는게 재계의 평이다.

「세계경영」을 펼치는 대우그룹의 기관차를 이끄는 기관사인 회장비서실장 가운데 홍성부 현(주)신한회장, (주)대우 무역사장과 부회장을 지낸 이경훈 현(주)대우 미주법인장이 손꼽힌다.홍성부회장은 김우중회장의 경기고 졸업동창으로 서울대 건축과를나와 금성방직 태평방직 등 면방업계에서 근무했다. 73년 쌍용양회근무중 김회장의 권유로 대우와 연을 맺은 홍회장은 입사 10년만인83년 기조실장직에 오르는 능력을 보였다. 고교재학중 핸드볼선수를 지냈으며 대학에서는 건축설계현상공모전에 여러번 입상한 경력도 갖고 있다.

현재 대우그룹의 상징인 대우센터의 설계시공을 담당한 것으로 알려진 홍회장은 다혈질이고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면서도 꼬치꼬치 캐묻고 따지는 치밀함이 대단했다는게 그룹관계자의 귀띔이다. 93년조직개편때 (주)대우 개발부문과 동우개발의 힐튼호텔사장을 끝으로 대우를 떠나 지금은 중견건설업체인 (주)신한의 회장으로 있다.지난해 노태우비자금사건으로 언론의 조명을 받은 이경훈미주법인장은 대우그룹내에서 첫손꼽히는 국제통이자 금융통. 서울대 화공과를 졸업하고 한국은행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75년 산업은행의 외환전문가로 이름을 날리던 중 종합금융업진출을 모색하던 김우중회장에게 스카웃됐다. 김회장의 경기고 2년 선배로 회장비서실장 당시 김우중회장 다음으로 해외출장이 많은 것으로 유명했다.(주)대우 해외건설부문을 책임지고 있을 때 현장근로자들과 함께새벽 5시에 기상해 아침체조를 하고 밤늦게까지 운동을 했을 정도로 강인한 체력의 소유자로 자신도 일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부지런함으로 이름이 높다.한국은행을 거쳐 대우에 입사해 금융부문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이며 두번에 걸쳐 비서실장을 지낸 최명걸 현 삼신올스테이트회장은적극적이며 판단력이 뛰어난 학구적 비서실장이었다는 게 그룹내부의 평이다. 지금 「삶과 꿈」이란 출판사를 운영하는 김용원사장은신문사 편집국장과 논설위원을 거쳐 대우에 입사, 대우전자사장 대우경제연구소 회장 등을 거친 색다른 경력을 가진 비서실장으로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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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06-09-04 11: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