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제 68호 (1997년 03월 25일)

'축소지향 기조실' 만들어라

기사입력 2006.09.04 오전 11:59

재벌 그룹내의 총괄조직인 기획조정실 또는 비서실등 명칭의 차이는 있지만 이 조직들을 그룹내 「청와대」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재벌그룹의 기조실은 사업방향을 결정하고 인력과 자금을 총괄운영하는 핵심부서이다. 기조실의 존폐에 대한 논의를 떠나서 기조실이없어진다면 지금과 같은 그룹 총괄경영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된다.우리사회에서 재벌기업내의 기조실에 대해 국민들이 인식할수 있는것은 대부분 좋지않은 사건을 통해서이다. 95년 노태우 대통령 비자금 사건이나 최근의 한보철강 부도로 인한 한보사태에서 보여지듯이 비자금 조성이 여기서 이뤄졌다. 계열사별로 얼마씩 만들어내라고 지시하면 쉽게 뭉텅이돈을 마련할 수 있었다. 기조실 임원의 월급을 포함해 모든 운영비는 매출액과 순이익 등을 감안해 계열사에서 추렴한다.국민들에게 비춰지는 부정적 시각과 반대로 재벌기업의 회장의 입장에서 보면 매우 유용한 없어서는 안될 조직이다. 대통령의 비서실처럼 그룹 안팎의 모든 정보가 집결되고 충성심으로 무장된 직원들이 지시를 일사불란하게 처리한다. 계열사들도 기조실 결정은 회장의 의지가 담겨 있는 것으로 간주해 최우선 순위로 집행한다.

기조실이 그룹내 「청와대」라면 30대그룹기조실장회의는 재계의「정치국」이다. 93년 3월 김영삼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전경련 조직만으로는 김영삼 정부의 재벌정책에 대처하기 힘든 상황이라 판단하고 최종현회장이 30대그룹기조실장회의를 출범시킨 것이다.5, 6공 때까지만 해도 정부의 재벌규제가 조금이라도 수위가 높아진다고 판단되면 전경련이 취한 대책은 두가지였다.하나는 노태우 전대통령 비자금 사건에서 밝혀진 것처럼 재계가 청와대에 적절한 규모의 정치자금을 제공함으로써 재벌규제 움직임을사전에 차단했다. 또 하나는 정부의 경기대책이나 산업정책이 재계의 입장에 반하는 것이면 자체 부서가 마련한 각종 논리를 통해 정부 정책을 바꾸는데 주력했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들어 위와 같은 두가지가 통하지 않을 것같다는상황판단하에 만들어진 것이다. 93년 이 회의의 목표는 김영삼 정부의 재벌 소유구조를 개편하는 것을 막아내는데 있었다.그러나 30대그룹기조실회의는 재벌에 대한 소유구조 개편과 같은극단적인 재벌정책을 펴지 않으리라고 확신한 95년에 들어서는 거의 열리지 않았지만 94년까지 월정기적으로 열렸다.그러나 95년말 노태우 대통령의 비자금 정국을 맞아 「재벌망국론」이 휩쓸었다. 정치권과 재계간의 음성적인 정치자금수수가 재벌의 전근대적인 소유구조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은 누구나가 다 아는판국에 언제 재벌의 소유구조를 개편하는 조치가 취해질지 모를 상황이 온 것이다. 30대그룹기조실장회의는 열리지 않았다. 그만큼재벌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았기 때문이다.

작년들어 올 것이 왔다. 청와대 박세일 수석이 중심이 되어 노사관계 개혁을 추진하고 나선 것이다. 박세일수석의 구상은 노동계의요구를 대폭 수용하는 방향이라는 정보를 입수한 것이다. 그후 노사관계개혁위원회가 구성되고 재계의 대표주자로 경총을 내세웠다.전경련은 노태우 비자금사건으로 재벌에 대한 국민여론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직접 나설 수 없었다. 그러나 역부족이었다.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96년 상반기 예상보다 경제가 나빠지고 하반기들어 각종 경제지표가 어려워지자 30대그룹기조실장회의는 경제위기론을 유포하면서 일제히 반격에 나섰다. 노동관계법의 개정은 혼전에 혼전을 거듭한 끝에 재계의 승리로 돌아갔다.

◆ 기조실장회의, 재벌 소유구조 개편 막는 방편

기조실의 위상에 관한 논의는 과거에도 몇차례 있었다. 93년 김영삼 정부 출범에 맞춰 재벌그룹들은 기조실 등 총괄조직을 축소하는작업에 나섰다. 김영삼정부의 재벌정책은 재벌의 힘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는 예상을 감안해 재벌그룹들이 자발적으로 축소에 나선 것이다. 그리고 95년 노태우 대통령 비자금 사건때 축소움직임이 있었다.문민정부 들어서 재벌의 기조실 축소논의는 급변하는 국내·외 경영환경에 대응하기 위해서 조직을 보다 합리화하고 간소화하는 방향으로 개편하기보다는 오너 독점 선단식 운영체제의 폐해가 지적되면서 시선이 기조실로 쏠려 가시적으로 기조실이 해체되면 상당한 변화가 초래돼 총수들의 수족이 잘리기 때문에 재벌들이 기조실해체라는 태풍을 피해가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재벌들이 정치적인 위기에서 국민여론과 정부의 시선이 좋지 않을때 이를 모면하기 위해 기조실을 일시적으로 축소하든지 아니면 협력 중소기업을 육성하겠다든지 사회봉사를 강화하겠다는 등 재벌의이미지 제고를 위한 방편에 다름 아니다. 오히려 올해들어 기아그룹에서는 그동안 종합조정실이 그룹 기획조정실로 개편되면서 인원도 대폭 확대시켰다.

그러나 이제 기조실의 위상에 관한 논의는 보다 다른 차원에서 검토되어야 한다. 거시적으로는 시대가 변했고 미시적으로 보면 국내경제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러한 국내외의 여건을 정확히 반영하여기조실의 위상이 재검토되어야하며 이는 재벌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검토와 일맥상통하는 이야기이다.

◆ 현재의 경제위기는 ‘저효율-고비용’ 구조

거시적 차원에서 검토를 해보면 소련 동구권의 몰락으로 현재의 세계는 WTO시대를 맞이하여 무한경쟁의 시대에 돌입했다. 자본과 기술과 자원이 과학의 발달에 힘입어 어디든지 이익이 있는 곳이면이동이 가능한 시대이다.과거의 공급자가 일방적으로 소비자의 이해와 관계없이 똑같은 상품만 많이 생산하면 팔리던 시대가 지났다. 소비자의 개성을 반영한 다품종소량생산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소비자의 개성을 무시한대량생산체제를 지향했던 소련과 동구권의 몰락은 이를 대표하고있다. 이러한 시대에 기업은 급변하는 소비자의 욕구를 따라가기위해서는 덩치큰 기업구조로는 힘들게 되어 있다. 작은 것이 아름다운 시대가 온것이다.또한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가 처한 현재의 경제위기를「고비용-저효율 구조」라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상 고비용보다는 오히려 저효율이 문제이다. 고비용의 구조를 개선하기는 단기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고임금이라고 해서 임금을 삭감할 수도 없다. 정말 고임금 때문에 기업을 할 수 없었다면 기업들이 노사협상에서 임금을 올리지 않았을 것이다.그러나 지금까지 몇년 동안을 보면 정부나 재계에서 임금가이드라인을 설정하면 대부분 형식적으로는 가이드라인을 지키고 이면계약을 통해서 임금을 인상시켰다. 그만큼 절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어려워지니까 임금을 문제삼는 것이다. 지대도 일본에 비해서는 우리가 낮은 편이다. 일본은 높은지대에도 불구하고 높은 생산성을유지했다. 현재의 어려움은 오히려 저효율-고비용이라고 봐야 한다.

우리경제가 이지경까지 오게된 것은 저효율때문이다. 총수 1인이혼자서 수많은 계열회사를 독점적으로 소유경영함으로써 오는 경제력의 재벌로의 과도한 집중에서 온 것이다. 이번 한보사건은 이를여실히 증명했다. 총수들이 주주총회나 이사회의 승인도 없이 마음대로 막대한 규모의 돈을 계열회사로부터 빼내 비자금을 조성하고정·관계에 로비를 했다.이러한 총수 1인체제에서는 총수의 의중이 중요하지 창의력과 전문성을 갖는 유능한 경영인력이 설자리는 없다. 더욱이 조직자체도경직되어 국제화·개방화 시대의 급변하는 경제환경에 적응할 수없다. 재벌의 소유·경영 구조가 지금까지의 성장에는 유리했을지모르지만 앞으로는 기업의 효율성을 저해하는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경제의 저효율을 낳았다.

이제까지 재벌 그룹내에서 우월적 지위를 누리면서 그룹총수에게사조직처럼 충성한 재벌의 기조실은 「회장 1인의 사적이해」와 「기업의 구성원전체의 공적이해」를 구분할 수가 없게 되어 있다.총수가 그룹계열사에서 아무런 직책을 맡지 않고도 전횡을 할 수있는 도구가 된 것이 기조실이었다. 소액주주나 기업과 회장의 이익이 상충될 경우 처리결과는 뻔할 수밖에 없었다.기조실 재무팀은 회사의 재무관리와 총수의 재산관리를 함께 맡았다. 기조실이 있는 한 전문경영인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기업의 효율화를 꾀할 수 없다.더구나 회장이 바로 아래 참모들의 「인의 장막」에 갇혀 현장의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회장의 입맛에 맞는 말만 하는 임직원들의등에 업히면 그룹의 특정 부문 또는 전체가 활력을 잃게 된다. 물론 기조실은 인력배치와 자금운용 투자결정 등을 효율적으로 이뤄지게 하는 시너지 효과가 없는 것도 아니다.그러나 내부거래, 문어발식 확장, 비자금의 조성과 정·관계의 로비 등을 가능하게 해 결과적으로 전체 경영능력을 떨어뜨리는 점이분명하다.따라서 재벌그룹의 기조실은 급변하는 국내·외 경영환경에 대응하고 합리화하고 간소화하기 위해서 대폭 축소되어야 하며, 30대그룹기조실장회의는 없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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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06-09-04 11: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