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에서는 현대그룹의 위상과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가끔 거론된다. 이 이야기는 일본기업인들이 자신들의 경쟁상대라 할수 있는 현대그룹과 삼성그룹 가운데 어느 그룹이 더 상대하기가 버거운지를 자신들의 시각에서 비교분석한 것이다.내용은 이렇다. 일본기업들이 현대그룹과 삼성그룹을 상대로 경쟁을 할 때 삼성그룹보다는 현대그룹이 상대하기가 더 힘들다는 것이다. 삼성그룹은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안전위주, 조직중심의경영문화로 자신들의 경영스타일과 비슷해 상대하기 쉬우나 현대그룹은 그렇지 않다. 현대그룹은 럭비공같아 어디로 튈지 예측이 불가능하고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는 프로젝트를 과감히 추진하거나 따내 일본기업인들을 놀라게 한다. 다른 것은 몰라도 현대그룹의 도전정신과 저돌성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 일본기업인들이 내린 결론이다.물론 이것은 문서화된 것은 아니고 구전으로 회자되고 있는 이야기이지만 일본기업인들이 자신들의 시각에서 국내굴지의 두 그룹을분석해 현대그룹의 실체에 대해 어느정도 감을 잡았다는 점에서 흥미를 끈다.현대그룹의 실체에 대한 흥미있는 또하나 분석은 전세계 30대 주요신문과 잡지사가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월드 미디어 네트워크」에 의해서 제기됐다. 지난 94년12월 월드 미디어 네트워크는 지구촌에서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조직과 인물 1백27개를 선정,발표했는데 현대그룹은 여기서 47번째 파워집단으로 선정됐다.◆ 일본과 경쟁 벌이는 한국경제성장 상징월드미디어 네트워크는 『현대그룹은 자동차 중공업 반도체 건설등 30여개 분야에서 일본과 경쟁을 벌이는 한국경제성장의 상징』이라는 점을 선정이유로 들었다.이 두가지 사례에서 보듯 특유의 저돌성과 도전정신으로 똘똘뭉쳐월드 파워집단으로 성장한 현대그룹이 5월25일 창립 50주년을 맞는다. 현대그룹의 50년은 다른 기업의 50년과는 그 의미가 다르다.현대그룹의 반세기는 한국경제성장과 그 궤도를 같이했을 뿐더러견인차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60년대 건설업체에 불과했던 현대그룹이 성장발판을 마련한 것은70년대 중반. 당시 경제상황은 오일쇼크가 불어닥쳐 말이 아니었다. 제3공화국이 국운을 걸고 추진하던 중화학공업중심의 경제정책은 일대 위기를 맞았다. 풍전등화 그자체였다.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현대그룹은 현대건설을 앞세워 과감히 중동으로 뛰어 들었다.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항만공사등 수많은 난공사를 하면서 건설한국의 위상을 드높인 한편 막대한 오일머니를 벌어들여 경제위기탈출에 큰 기여를 했다. 「밖에서 벌어 안을 살찌우는」현대그룹의경영이념은 여기서부터 시작됐다.「중동건설특수」를 통해 힘을 모은 현대는 국가기간산업인 자동차, 중공업 등에 과감한 투자를 하며 중화학공업육성에 발벗고 나섰다. 먼저 자동차에 투자를 집중했다. 이때가 70년대초반. 현대가자동차에 과감한 투자를 하고 나서자 당시 정부는 현대의 이런 도전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자동차산업의 경우 고도의 장치산업으로 우리 기술력으로 가능하겠느냐는 것.그러나 현대자동차는 이런 우려에 아랑곳하지 않고 미국 포드사와결별을 선언한 뒤 기술자립에 들어갔다. 정주영명예회장의 결단에의해서였다. 현대의 이같은 의지는 76년 최초의 국산모델 승용차인포니로 가시화됐고 현대자동차는 포니신화에 힘입어 잇달아 히트모델을 양산, 오늘날 세계 13위의 자동차업체로 성장했다. 2000년 현대자동차의 목표는 「글로벌 Top 10」이다.기술자립을 통한 현대의 도전정신은 현대중공업으로 이어졌다. 현대건설내에 조선사업부를 설립한 현대는 울산 전하만 백사장에 덜렁 부지만을 확보한채 대형프로젝트수행에 들어갔다.주위의 우려속에 거북선이 그려진 오백원짜리 지폐로 차관도입에성공한 것이나 황량한 전하만 백사장 사진하나로 그리스 선박왕 리바노스로부터 26만t급 유조선 2척을 주문받은 것은 현대 불굴정신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를 계기로 현대중공업은 세계 유명조선소로 성장가도를 달림은 물론 우리나라 중화학공업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현대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반도체, 석유화학등 기간산업에 대한투자를 계속해 우리 기업사에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중후장대형기업구조를 갖추었다. 현대의 사업영역이 내수시장이 아닌 수출시장을 겨냥하고 있는 것도 큰 특징이다. 현대그룹내에는 한계업종이없다해도 큰 무리는 아니다.현대그룹이 창립 50주년을 맞는 지금의 경제기상도는 밝지 못하다.잔뜩 흐린 상태에서 장대비라도 쏟아질 것 같은 상황이다. 불황의여파가 산업현장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으며 우리 경제의 주력인 자동차, 중공업분야는 수출이 안되어 아우성이다. 이대로 가다간제2의 남미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사업구조도 미래 유망산업으로 이동그룹의 모기업인 현대건설이 70년대초반 어려운 경제상황을 뚫기위해 중동으로 나갔던 때와 상황이 엇비슷하다. 이에따라 현대그룹은 그룹의 경영역량을 총동원, 경제난국타개에 뛰어 들었다. 야전사령관은 정몽구회장이다.우선 과감한 해외진출로 「밖에서 벌어 안을 살찌우는」 경영전략에 다시금 나서고 있다. 주력계열사인 현대자동차가 국내 내수 1위에 만족하지 않고 인도 첸나이에 울산공장의 절반규모인 대단위 현지공장을 설립, 아시아시장공략에 나섰다. 자동차신시장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아시아시장을 효율적으로 공략, 2000년대 세계 10대자동차메이커로 진입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착실히 추진하고 있다. 이 계획의 일환으로 현대자동차는 태국 말레이시아 베네수엘라등 지구촌 18곳에 합작 또는 KD방식으로 진출, 선진자동차메이커들과 한판승부를 펼치고 있다.이와함께 현대건설맨들은 신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는 동남아지역에진출, 제2의 중동신화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여의도 4배의 바다를육지로 만드는 싱가포르 창이동부 매립공사, 최대난공사로 일컬어지는 방글라데시 자무나교건설공사, 말레이시아 바쿤수력발전소공사, 리비아 라스나누프석유화학단지공사 등 대형프로젝트를 따내건설한국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다. 현대건설은 2000년대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등지로 사업지역을 확대, 세계 10위 건설업체로 도약을 꿈꾸고 있다. 이밖에 현대중공업, 현대정공, 현대전자등 대부분의 계열사 또한 세계곳곳에 진출, 선진업체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과감한 세계화전략으로 현대그룹은 그룹의 시야를 넓히고 고부가가치화를 실현하는 것과 함께 사업구조의 무게중심이동도 시도하고있다. 중후장대형 사업구조에서 축적된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우주항공, 위성사업,정보통신사업,제철업,금융업등 미래첨단사업에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사업영역간 시너지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소프트한 업종으로 영역을 넓여 나가고 있는 것이다.현대전자가 국제위성통신망구축 컨소시엄인 글로벌스타사업에 참여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사업은 내년까지 모두 18억달러를 투자해 지상 1천4백Km 상공에 48개의 위성을 확보, 서비스한다는 대형프로젝트이다. 현대전자는 데이콤과 함께 한국대표로 참여하고있다.정부로부터 진출불가 판정을 받았던 제철업에 대한 진출도 꾸준히시도하고 있다. 현대그룹이 제철업 진출을 시도하는 것은 철을 재료로 하는 사업이 대부분인만큼 이를 스스로 만들어 경쟁력강화를하기 위해서다. 차기정권에서 이 문제는 어떻게 결론이 날지 모르지만 현대는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삼성그룹에 비해 취약했던 금융업도 올해 국투증권을 인수, 보강했다.창립 50주년을 맞는 시점에 경제가 활력을 잃고 기우뚱하자 현대맨들은 다시 뛰기 시작했다. 과거 반세기동안 일구었던「현대불패(不敗)신화」를 21세기까지 이어가기 위해서다. 이런 현대그룹의 움직임에 국민들의 기대는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