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그룹의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업종전문화그룹인 기아그룹은 삼성자동차의 자동차산업구조조정보고서 유출파문으로 한차례 홍역을 치른데 이어 최근에는 자금난 악화로 경영권이위기를 맞고 있다.이에따라 기아그룹은 노사가 한몸이 돼 위기타개에 나서고 있다.김선홍회장은 강경식부총리를 방문, 자금난에 따른 정부의 지원을부탁한데 이어 계열사 임직원들은 제2금융권 관계자들을 대상으로자구대책을 설명하고 정상적인 금융거래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기아그룹의 모기업으로 강성노조로 소문난 기아자동차노조도 조합원찬반투표를 실시, 올해 임금협상안을 회사에 일임했다.지난해에 설비투자가 거의 마무리돼 올해부터는 자금순환에 별문제가 없을 것으로 판단되던 기아그룹이 급작스런 자금난에 몰린 것은외부 금융환경변화가 가장 큰 요인이다. 한보사태가 터진 뒤 금융기관들은 믿을만한 기업이 아니면 신규대출을 거의 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종금사등 제2금융권은 대출금회수에 들어가 기업들의 자금사정은 일시에 악화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내수 판매율 작년 비해 급격히 감소기아그룹이라고 이런 금융환경의 변화에 예외는 아니었다. 제2금융권이 일시에 자금회수에 들어가 위기상황이 초래됐다. 실제로제2금융권은 지난 4,5월 두달동안 4천2백여억원을 기아그룹으로부터 회수해갔다. 정상적인 기업이라고 하더라도 이렇게 일시에 자금이 회수되면 우리나라에서 버틸수 있는 기업은 하나도 없을 것이라는 기아의 반응은 당시의 심정을 잘 대변해 준다.물론 제2금융권이 자금회수에 들어간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는것이 증권가의 시각이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광주시에 소재한 아시아자동차의 모협력업체 부도설이 올해초 나돌았다는 것이다. 이것이 아시아자동차와 기아자동차의 자금난으로 확산되면서 제2금융권이 태도를 돌변, 융통어음에 대해 기한연장을 해주지 않고 자금회수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물론 이같은 증권업계의 시각에 대해 기아그룹은 터무니없는 음해성루머일 뿐이라고 일축한다.굳이 기아그룹의 설명을 듣지 않더라도 자금난에 따른 경영위기는제2금융권의 일시적 자금회수가 근본원인이다. 그러나 기아그룹의내부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먼저 계열사의 과다설비투자에 따른 금융비용부담이 그룹전체의 경영압박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철강압연제품을 생산하는 기아특수강의 경우 약 1조억원을 들여 올해초 완공했으나 경영상태는 말이아니다. 95년에 2천20억원의 매출고를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적자는무려 7백7억원에 달하고 있다. 이같은 기아특수강의 사정은 96년에도 지속돼 적자액은 8백95억원으로 늘어났다.주력계열사의 하나인 기산은 지난해에 6백72억원, 아시아자동차는2백94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이로인해 기아특수강등 3개사는 현재의 경영상태가 개선되지 않는한 기아그룹의 경영위기 진원지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이와함께 지난해이후 가시화된 국내자동차 내수경기 침체도 기아그룹의 경영압박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모기업인 기아자동차는95년말 크레도스를 생산하는 아산2공장 완공을 계기로 사실상 설비투자를 마무리했다. 마케팅능력을 보완해 차만 열심히 팔면 됐다.그러나 국내 자동차 내수시장은 기아자동차의 이런 기대를 저버리고 침체상태로 빠져들었다. 이같은 와중에 경쟁사인 대우자동차가라노스, 누비라, 레간자 등 3개모델을 내놓고 대추격전에 나서면서기아자동차의 내수시장 점유율은 급감하기 시작했다. 올 5월말 현재 잠정집계된 기아자동차의 판매대수는 13만3천여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30.2%가 감소한 것으로 알려졌다.기아자동차는 비록 내수시장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지만 수출은 선전을 하고 있다. 수출은 올 5월말 기준으로 13만5천여대를기록,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내수시장과는 반대로 41.2%가 늘어났다.수출증가가 곧바로 수익과 직결이 되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한데 기아의 고민이 있다. 국내 자동차업체들은 대부분 수출물량은 저가로이익을 거의 남기지 못하고 있다. 저가수출에 따른 손실보전은 대부분 내수시장판매를 통해 충당하고 있다. 이에따라 내수시장에서잘버텨주어야 경영수익성을 맞출수 있는 것이 국내자동차업계의 현실이다.그런데 기아자동차는 올해들어 내수시장 점유율이 떨어져 빠듯한자금사정이 더욱 어렵게 됐다. 현대, 대우자동차의 경우 자금사정이 악화되더라도 경영이 좋은 다른 계열사의 도움을 받을수 있으나기아그룹은 그럴 형편이 못된다. 기아그룹의 최근 자금난은 이런내외부 경영여건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빚어졌다고 할수 있다.이에따라 기아그룹은 자구책을 마련, 경영위기타개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기아자동차 2천명등 모두 3천2백50명의 인원을 감원하고기산의 속리산부지등 그룹계열사가 보유하고 있는 7천9백50억원어치의 부동산을 매각키로 했다. 이와함께 경비축소를 통해5천7백80억원을 절감할 방침이다.◆ 독단경영에 따른 관리 비효율 개선돼야그룹사업구조조정을 통한 경영합리화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기아자동차영업부분과 기아자동차서비스를 통합, 기아자판을 설립해 전문화와 슬림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한편 유사사업부문 계열회사간 통합도 적극적으로 추진할 방침이다. 적자사업부문은 과감히정리, 군살을 제거할 계획이다.재계관계자들은 기아그룹이 비록 제2금융권의 일시적 자금회수로경영위기를 맞고 있지만 자구책이 잘 추진된다면 최악의 상황은 맞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기술력이 우수하고부채비율(4백27.1%)또한 대우,쌍용자동차보다 그리 높지 않다는 점이 이런 낙관적인 전망을 가능케 한다.그러나 자구책추진에도 불구하고 기아의 앞날을 어둡게 하는 요인도 있다. 기아그룹은 소유와 경영이 분리돼 전문경영인에 의해 운영되는 대표적인 회사지만 이것이 기아호의 행로에 암적인 요소로작용할 소지가 다분히 있다. 재계관계자들은 『기아그룹의 경영을살펴보면 전문경영인에 의한 독단경영및 관리의 비효율성도 만만찮다』며 이것을 과감히 제거하는 노력을 병행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재계 일각에서는 김선홍회장의 일인 경영이 장기화되면서 주요 핵심라인에 김회장에게 충성하는 임원들만 포진, 다양한 의견개진이 이뤄지지 않는 것이 관리 비효율성의 가장 큰 요인이라는 시각도 제기되고 있다. 제2금융권을 대상으로한 기아그룹의 자구책설명시 이런 문제점은 지적됐다. 이런 측면에서 관리의 비효율성을혁파하는 노력이야 말로 기아의 장래를 좌우할 가장 큰 변수가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