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회사가 땅을 판다는 게 사실 좀 창피한 일 아닙니까.』 최근장안동에 갖고있던 약 9백37평의 땅을 팔려고 내놓은 선경건설 한관계자의 말이다. 이 땅은 지난 96년에 구입한 것으로 땅에 들어간돈만도 평당 2천만원씩, 모두 2백억원에 이른다. 상권도 장안동 사거리를 끼고 있어 금싸라기땅으로 꼽히는 곳이다. 이런 땅을 팔려고 내놓은 이유는 한가지. 『예전에는 땅을 깔고 있으면 돈이 됐지만 이제는 빚더미』라는 것이다. 여러번에 걸쳐 직접 개발을 시도했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유야무야된데다 금융비용이 만만찮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경건설측은 이 땅을 시가보다도 싼값인 약 1백60억원에 팔려고 내놓았다. 그나마 팔리지 않아 다시 20억원을 내렸으나 아직도 매수자가 나서질 않고 있다. 물론 『개발담당부서에서는아직도 개발하면 괜찮은 땅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경영진의 의사는 부동산자산의 매각으로 금융비용을 줄이고 재무구조개선을 이루자는 분위기였다』는 것이 개발사업팀 정철만과장의 설명이다.「땅에 말뚝만 박아놓아도 돈이 된다」는 시절이 있었다. 땅으로대표되는 「부동산=돈」이라는 신화가 굳건히 버티던 시대였다. 부동산으로 일확천금을 꿈꾸는 개인은 물론 각 기업들도 돈이 될만한「좋은 땅」을 확보하느라 눈을 부릅뜨기도 했다. 기업이 몸체를부풀리는데 부동산만큼 손쉽고 필요한 게 없을 뿐더러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땅값이 올라 투자비용을 뽑고도 남는다는 기대심리도 작용했다. 때문에 각 기업들은 부동산만을 전문으로 담당하는 부서를설치하기도 했으며 부동산담당은 항상 노른자위자리로 통하기까지했다.◆ 성업공사 매각물도 급증 - 건설업체도 투자 꺼려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변했다. 부동산이 기업의 발목을 잡는 「애물단지」로 변했다. 기업들이 큰돈을 들여 부동산에 투자했지만90년대 들어 부동산시장의 침체가 계속된데다 최근의 경기불황이겹치면서 부동산은 기업의 목줄을 죄는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다. 기업경영에 있어 안전장치 역할을 하던 부동산이 족쇄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덩달아 각 기업들은 보유부동산을 매각하거나 부동산매입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얼마전 두산그룹은 영등포 OB공장부지를 당초의 자체개발방침을 바꿔 매각, 자금조달에 활용해 지금은 구조조정에 성과를 올렸다는 게 업계의 평이다. 현대목재도 지난 4월 부동산자산 매각을 발표했다. 그러나 삼미 한보 한신공영 등 부도가났거나 진로 대농 등 경영위기에 몰린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아직까지 밖으로 드러난 기업들의 부동산 매각사례는 그리 많지 않다.일단 부동산 매각사실이 알려지면 금융권에서 즉각 대출금회수에들어가 자금사정이 순식간에 악화되거나 매수희망자가 가격을 후려쳐 거래가 깨지는 경우가 왕왕 발생하기 때문이다.하지만 지난 4월말까지 성업공사에 은행들이 매각을 의뢰한 담보부동산만도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82%나 증가한9천9백69억원(감정평가액 기준)에 이르는 사실에서 알수 있듯 기업들의 부동산매각은 꾸준히 늘고 있다.부동산매각 뿐만이 아니다. 「싸면 무조건 사두고 보자」는 기업들의 부동산투자관도 변했다. 될수 있으면 부동산투자를 자제하는 분위기가 재계에 퍼지고 있다.삼성생명 개발사업본부장인 노희식전무는 『기업들이 과다한 금융비용 때문에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땅을 파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노전무는 또 『기업들로서도 땅을 사놓고 1년이내에 착공을 하지 않으면 비업무용부동산으로 묶이는데다 최근 부동산경기가 냉각돼 급하지 않으면 사지 않으려는 분위기』라고 말했다.대우그룹의 경우 최근에 김우중회장이 부동산투자에 대한 이점이없을 것이라며 부동산투자를 최소화할 것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땅으로 먹고사는 건설업체들도 부동산투자를 꺼리고 있다.극동건설 건축영업팀의 부동산담당인 이범렬차장은 『요즘 건설업체들이 부동산매입을 전년도에 비해 절반이하로 줄이는 분위기』라고 업계사정을 전했다. 『건설회사들의 재무구조가 좋지않은데다경기불황으로 분양실적도 부진해지면서 새로운 사업을 자제하는 분위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차장의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