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에서 쓰는 후드는 음식을 조리할 때 나는 냄새를 밖으로 뽑아주는 역할을 한다.레인지후드중 쿠치나라는 브랜드가 있다. 보통 큰 평수의 아파트나고급빌라 등에 설치된 이 브랜드의 제품은 작동하는지 안하는지를모를 정도로 소음이 적고 강력한 배출력을 자랑한다. 게다가 디자인까지 미려, 이탈리아 제품으로 오해하기 십상이다.한강상사에서 만드는 이 제품은 국내 고급품시장을 거의 독식하고있다. 가격이 보통제품보다 3배에서 최고 8배나 비싼데도 품질과디자인을 중시하는 건축업체나 토털시스템업체들이 이 제품을 선호하고 있어서이다.한강상사의 이수문사장(49)은 창업한지 불과 10년도 안돼 고급제품시장을 석권했고 외산을 완전히 몰아냈다. 뿐만 아니라 5년내 세계최고수준의 레인지후드업체로 도약한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이씨는 과학적인 방법에 의해 창업해 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현대종합상사에서 특판담당이사로 근무하던 그가 독립을 결심한 것은 지난 88년. 불혹의 나이인 40에 접어들자 이젠 내사업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됐다.경기고 서울대 건축공학과를 나온뒤 보루네오가구에서 3년, 한샘에서 10년 그리고 현대종합목재에서 3년 등 도합 16년의 직장생활을하는 동안 생산 영업 수출 디자인분야를 두루 거쳐 기업에 관한 일이라면 어느 정도 자신감도 생겼던 터였다.그러면 어떤 사업을 할 것인가. 곰곰이 생각하다가 나름대로 원칙을 정했다. 어떤 사업을 하든지 1등을 할수 있는 분야를 찾자. 그리고 대기업이 뛰어들 수 없는 분야를 파고들자.노하우를 최대한 살리기위해 그동안 해온 분야와 연관된 것을 토대로 하되 기존 업체들이 많이 하고 있는 가구제조업은 하지 말자.이렇게 생각을 모아 찾아낸 아이템이 레인지후드였다. 이른바 틈새상품을 찾아낸 것이다.◆ 과학적 방법으로 창업 틈새시장 공략창업당시 이 분야에는 국내업체 10여개사가 생산을 하고 있었다.하지만 가격경쟁에만 몰두하다보니 기술개발에 신경을 쓸 겨를이없었다. 품질수준이 낮아 외산이 독무대를 이루고 있었다.레인지후드는 생활수준이 향상되고 주거환경이 개선되면 한집에 한대씩 사용하는 필수품으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큰 유망품목이었다.89년 파주에 공장을 착공, 90년에 완공했다. 제품생산을 위해 목표를 설정했다. 성능은 독일수준, 디자인은 이탈리아수준, 관리는 일본수준으로 세웠다. 아무리 국내시장에서 가격경쟁이 심하다해도절대 가격으로 승부를 걸지 않고 품질로 싸운다는 전략을 수립했다.제품은 독일보쉬사 것을 벤치마킹했다. 보쉬사는 창업초기 3년동안일부 제품을 수입판매한 것을 계기로 친숙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가 초창기 보쉬사 제품을 취급한 것은 어차피 제조업은 초창기 3년동안은 이익을 남기기 어려워 이 기간중 먹고 살기 위한것이었다. 또 한가지 중요한 이유는 수입판매를 통해 최고 기술력을 가진 업체와 유대를 강화하고 기술을 습득할수 있는 기반을 잡자는 복합적인 의미도 갖고 있었다.생산제품을 테스트한 결과 국내제품의 단점인 흡입력이 약하고 소음이 큰 결점을 상당부분 극복할수 있었다.제품이 훌륭하다고 판매가 절로 되는 것은 아니다. 이사장은 세일즈맨으로 뛰기 시작했다. 값이 비싸다보니 선뜻 취급하려는 사람도없었다. 부엌가구대리점을 쫓아 다니며 한대씩만 진열해줄 것을 간청했다.또 부엌가구업체들을 찾아다니며 대리점에 전시해 잘팔리면 취급하고 안팔리면 그만둬도 좋다고 제의했다. 부엌가구업체로선 밑져야본전인 셈이었다.이 레인지후드가 진열된뒤 건설업체들이 보인 반응은 대단한 것이었다. 고급제품은 독일이나 이탈리아에서 들여다 사용해 왔는데 국산이 이처럼 괜찮게 나오는질 몰랐다는게 주된 의견이었다.수입품보다 낫다는 반응도 많았다. 하지만 이씨는 결코 품질에 자만하지 않았다. 일부 부품은 독일제를 그대로 쓰는게 마음에 걸렸다. 특히 핵심부품인 소형모터의 국산화가 그에겐 소망으로 자리잡았다. 부가가치가 가장 큰 부품인데다 이 부분의 성능이 개선돼야진정한 세계 제1로 도약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하지만 자체 인력으로는 모터를 국산화할 엄두를 낼수 없었다. 이때 생각해낸 것이 산학협동이었다. 대학을 비롯해 여러군데를 다닌그는 실망감만 맛봤다.소형모터는 생각만큼 쉬운 프로젝트가 아닌데다 레인지후드만을 위해 개발한다는 것은 노력의 낭비라는게 그들의 주장이었다.그럼에도 이사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한국과학기술원을 찾아가 연구원들을 설득해 1년6개월 동안의 공동작업 끝에 국산화에 성공했다. 이로써 그는 수입제품인 1모터방식의 레인지후드 대신 2모터 방식의 제품을 개발할 수 있었다. 2모터방식은 후드의 흡입력을높여 냄새를 훨씬 빨리 제거하는 것은 물론 각종 분진을 걸러주는능력이 뛰어났다. 그러면서도 소음은 적었다.디자인은 성능 못지 않게 중요한 요인. 그는 홍익대 조형대학 교수로 재직중인 양영완교수를 고문으로 초빙해 미적감각이 뛰어난 후드의 디자인을 의뢰했다. 이같은 노력끝에 매출은 뜀박질하기 시작했다. 창업 초기 20억원에서 30억원에 머물던 매출은 96년 1백89억원으로 늘었고 올해는 2백75억원을 바라보고 있다.내년엔 4백억원, 99년엔 5백40억원으로 잡고 있다. 연평균 40%에서50%에 달하는 급성장인 셈이다. 이같은 신장에는 한샘을 비롯한 부엌가구업체들의 적극적인 협력이 큰 힘이 된 것은 물론이다.이사장은 몇가지 독특한 경영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첫째는 종업원들에게 사장이 누군지 알필요가 없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그는 1년에 단한차례 종업원을 모아놓고 조회를 한다. 여기서 하는 말은 매년 똑같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제가 이수문입니다. 이 회사의최종책임자입니다. 제가 부탁하는 것은 여러분들은 사장이 누군지모른채 생활을 해달라는 것입니다. 생산담당은 생산에, 영업담당은영업에, 자금담당은 자금에만 신경을 써 주십시오.』그의 지론은 각자가 할일을 할 때 회사가 가장 잘돌아간다는 것이며 회사가 잘되면 누구보다 종업원들에게 좋다는 것을 주지시켜주고 있다. 둘째 권한을 대폭 담당자들에게 이양하고 있다. 심지어대형거래의 납품단가도 직접 현업의 담당자에게 일임한다.◆ 내년 매출 400억, 99년 540억원 목표이같이 권한을 아래로 넘기는 것은 사장이 할일은 매일매일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의 뒤처리가 아니라 3년 앞을 내다보고 어떻게 경영환경이 변할지를 연구하고 대안을 마련하는 일이라는 점을 확신하고 있어서이다. 그는 해마다 3년내지 5년앞 회사의 비전을 제시하고 이 목표에 맞춰 각자가 나름대로 목표를 세워 매진해줄 것을당부한다.그가 세운 3년 뒤의 목표는 세계 제일의 레인지후드업체로 성장하는 것이며 이같은 목표를 한강상사의 모든 종업원은 이미 가슴속에새기고 있다. 뿐만 아니라 레인지후드의 세계시장 제패를 위해 홍익대 양교수를 비롯, 친분이 있는 많은 사람들이 그를 주위에서 돕고 있어 한강상사가 순항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또 그의 폭넓은 교우관계는 둥글둥글하면서도 일상생활에서 유머를 잃지않는 낙천적인 성격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