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제 83호 (1997년 07월 08일)

관할권·자존심 '100년 전쟁'

기사입력 2006.09.04 오전 11:59

재정경제원과 한국은행간 관계는 한마디로 「견원지간」이다. 양기관은 때로는 투쟁하고 때로는 협조하면서 금융시장과 금융업계를양분해 통치해왔다. 재경원으로 부처가 통합되기전인 재무부시절에도 사사건건 대립을 일삼아왔다. 마찰의 중심에는 물론 통화신용정책의 주도권다툼이 있었다. 곱게 말해 통화신용정책이지 나쁘게 보면 관할권싸움같은 것이다. 술집을 누가 단속할 것이냐고 한다면관할 세무서 보건소 동사무소까지 줄줄이 내가 먼저라고 손을 들것이다. 당사자들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한국은행과 재경원의 권한 다툼은 실제 금융소비자들인 일반 국민들과는 관계가 없다. 대표적인 논쟁이 금통위의 위상과 한은의 독립성보장 문제이다.지난 16일 정부가 「중앙은행제도와 금융감독체계 개편안」을 발표하자마자 이 논쟁은 다시 가열됐다. 그리고 정부안을 둘러싸고 찬반양론이 극명하게 갈리면서 국론분열조짐까지 일고 있다.

◆ 국민 소외시킨채 ‘세 싸움’ 지속

정작 금융의 최대이용자인 국민들은 철저하게 소외된채. 그러나 이논쟁이 50년 가까이 해묵은 것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드물다.1950년 한국은행법이 제정된 이후 지금까지 다섯차례의 개정과 여덟차례의 개정논의에 핵심적인 자리를 차지한 것이 한은의 위상과감독체계개편에 대한 논란이었다. 따라서 한은법의 연혁을 거슬러오르지 않고는 재경원과 한은의 관계를 바르게 이해할 수 없다.한국은행법이 50년 5월에 국회를 통과하기 전에 법안의 내용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람은 당시 김도연 재무부장관 초청으로 내한한 뉴욕 연방준비은행 국제수지국장인 브룸필드씨였다. 브룸필드씨의 주도로 만들어진 한국은행법안은 초장부터 국무회의에서 격론이벌어졌다. 화폐 금융 외국환에 관한 사무를 재무부장관이 의장이되는 금융통화위원회가 관장할 수 있느냐의 문제였다.이어 국회로 넘어간 법안은 재무부가 관장하고 있던 은행감독기능을 한국은행으로 이관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상당한 논란을 빚었다.그러나 당시 논란은 아직 금융관련법체계가 미비했고 사회전반의민도도 낮아 사실상 이승만 대통령의 교통정리로 원안대로 통과됐다.

정부와 한은이 본격적으로 맞서기 시작한 것은 61년 한은법 1차개정 때부터였다. 당시 재무부는 금융정책에 관한 최종책임의 정부귀속과 한국은행 내부경영에 대한 감독권강화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한은법개정안을 마련했다. 한은측은 금융의 민주화와 중앙은행의정치적 중립성보장을 해친다는 이유로 반대의사를 나타냈지만 당시서슬퍼런 국가재건최고회의는 이를 묵살했다. 재무부와 한은간 갈등은 77년에 4차 개정안 입안작업에서도 재연됐다. 한은으로부터감독기능을 떼내려는 재무부에 맞서 금통위는 반대입장을 분명히했다. 한은은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던 김정렴씨를 설득, 재무부의 방침을 바꿔놓는데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금융을 직할통치하려는 재무부와 그것을 방어하려는 한은의 불신은 더욱 커져갔다.82년 5차개정에서는 한국은행이 정부투자기관예산회계법 적용대상에서 배제돼 한은으로서는 「작은」 숙원을 이루기도 했다.이어 민주화바람이 불기 시작할 무렵인 87년부터는 한은측의 대공세가 시작됐다. 금융의 민주화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확보해야한다는 주장이 급속히 힘을 얻어갔다. 한은 직원들은 잇따라 한은의 헌법기관화내지는 자율성을 보장하라는 성명서를채택하는가 하면 87년 8월 12일 박성상 한은총재는 국회재무위원회에서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보장해줄 것을 공식요구했다.

그러나 재무부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했다. 다음날 사공일 재무부장관은 한은의 헌법기관화에 반대하면서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보장해야한다면 하위관계법의 보완으로도 충분하다는 입장을 나타냈다.대개 이런 식이었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지루한 양상들이 반복됐다.이렇게 보면 재경원과 한은의 대립을 세간에서 「밥그릇 싸움」으로 일갈하는 배경도 능히 짐작이 간다. 통화신용정책이라는 경제공권력을 가져야한다고 주장하는지 가당치도 않다는 반응이다. 나아가 개발경제시대를 이끌어온 것은 경제관료지 한국은행은 아니라는자부심까지 가세했다.

한은이 이번 금융개혁안에 반발하면서 금통위를 내부기관화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한은직원들의 생각은 근본적으로 잘못됐다. 경제권력을 가진 금통위는 당연히 정부조직이어야 하는데 한은이 대체 무슨 자격으로 금통위를 흡수한다는 것인가』라고 반문하고 있다.

재경원은 한은직원들이 되잖은 엘리트의식으로 충만, 집단이기주의를 추구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따라서 재경원의 입장은 한은독립은 정부내에서 이뤄져야 할 부분일 뿐, 정부의 모든 간섭과 규제를 떠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될 경우 입법 사법 행정부에 버금가는 거대한 금융부가 아무런 제한도, 책임도 없이 군림하는 양상을 맞이하게 될 것이란 설명이다.그러나 한은은 기본적으로 재경원관료들을 「규제의 달콤한 맛을잊지못하는」 집단으로 규정하고 있다. 나아가 한은독립을 사사건건 방해함으로써 자신의 통치구역을 넓히려는 기도를 서슴없이 시도하고 있다는 시각이다.

이번에 나온 금융감독기관 통합도 따지고 보면 재경원의 영역확장에 다름 아니라고 비난한다. 금융감독위 위원장에 대한 임명제청권을 재경원장관이 행사할 것임은 불문가지고, 그에 따라 금감위 위원장은 「재경원 마피아」들이 차지할게 뻔하다는 것이다. 금통위만 해도 그렇다. 명목상 중앙은행의 중립적인 통화신용정책을 보장하겠다고 하지만 사실상 정부조직인 금통위 밑에서 한은의 중립적인 시장관리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또 관료들이 통화신용에 관한한 국내 최고의 전문성과 전통을 자랑하는 자신들을 힘으로 누르려는 것은 관료독재의 발상이라고 공박한다.여기에는 기본적으로 정부수립 이후 누적돼온 재무부에 대한피해의식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우리의 요구는 딴 게 아니다. 우리는 재경원으로부터 독립하고싶다. 그 전제만 충족된다면 어떤 책임도 질수 있다』(한은 고위관계자)는 얘기는 재경원에 대한 한은직원들의 정서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양기관의 이같은 대립과 자존심경쟁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지속될것으로 보인다. 현실적인 힘의 우열은 오래전부터 정부쪽의 우위로드러나 있지만 갖가지 이유로 한은측의 입장을 지지해온 정치권과노동계 학계등을 감안할 때 팽팽한 세력균형이 이뤄져있기 때문이다. 결국 쾌도난마식의 개혁을 위해서는 이같은 힘의 균형을 깰수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재로서는 그 명분과 정당한 절차를 확보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문제는 이같은 소모전이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장기화되면서 정부에 대한 불신은 더욱 깊어가고 시장은 눈에 띄게 불안해진다는 점이다. 선진경제진입을 앞두고 총진군해야할 우리 경제가 거시 경제운용의 양대축인 재경원과 한은간 싸움에 내팽개쳐지고있는것이다.그 부작용은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갈 것이 분명한데 어느기관도 책임지지 않을 것 또한 뻔한 사실이다.재경원과 한은의 갈등은이제 양기관의 권력배분이나 입지확보보다는 국민복리차원에서 풀때가 됐다. 그 방법도 이제 국민이 선택할 시기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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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06-09-04 11: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