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임원은 올스크래치(all scratch)다.』 대형 시중은행장을지냈던 L씨가 「투서」에 연루(?)돼 행장자리를 내놓은 뒤 사석에서 불평을 겸해 한 것으로 전해지는 말이다. 원래 뜻은 골프에서 한팀을 이룬 네명이 점수를 잡아주지 않고(핸디 없이) 경기를한다는 것이다. 내기를 즐기는 골퍼들에게는 익숙하나 일반인들과금융인들에게는 생소한 말이다.◆ 보증없이 돈 빌리기는 하늘의 별따기이런 골프용어가 우리금융의 현주소를 나타내는 「금융용어」로 은행장의 뇌리에 깊게 박힌 사연은 이렇다. 임원만 되면 모두 행장이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경쟁자를 헐뜯는 투서가 난무하고 정치권의 실세에 줄대기 바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끈에 연결된 실력자들의 청탁이나 압력에 약할 수밖에 없다. 은행·증권·보험감독원장 모두와 금융단체장의 대부분이 재정경제원(옛 재무부)출신이라는 사실이 올스크래치를 부채질한다. 행내에서 인기가좀 떨어질지라도 「그분들」에게 잘 보이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행장이 되더라도 언제 어느때 「비리」에 연루돼 그만둘지 모른다.「문민」정부 출범이후 중도에서 명예롭지 못하게 물러난 행장이21명이나 되는게 이를 입증하고 있다. 금융개혁이나 사정이라는 「정의의 칼」이 동원됐지만 중도하차에 고개를 끄덕이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남들 다 하는데 재수없게 걸렸다거나 윗분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는 이유같은 이유가 더 설득력이 있었다. 우리금융의 대명사인 「관치」금융에 「정치」금융이 가세하고 있다는비아냥은 이래서 나온다.우리금융의 부정적 관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담보대출이 그중의 하나다. 부동산이나 보증기관의 보증없이는 돈 한푼 빌리기가하늘의 별따기다. 최근들어 신용대출이 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지난해말 은행의 신용대출 비중이 61.9%로 95년(55.8%)보다 크게 높아져 담보대출이 줄어드는 것처럼 보인다.그러나 이것은 신용대출관행이 정착되고 있는데 따른 긍정적 변화라기 보다는 땅값 안정으로 부동산담보가 인기를 잃어가고 있는데따른 결과물이라는 한계점을 갖고 있다.또 보증기관의 부실화로 지급보증에 대한 신뢰성이 떨어지고 있는것도 신용대출 비중을 끌어올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미국처럼 기술하나로 성공하는 벤처기업이 꽃피지 못하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담보대출관행에 원인이 있다. 세계적인 기술을 아무리 강조해도 「쇠귀에 경읽기」다. 실용화를 위한 자금조달이 어려워 기술은 기술로 끝나는 경우가 적지 않은 실정이다.담보대출관행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은 크게 두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금융기관의 내부문제인 상벌체계에 따른 보신주의다.대출업체가 부도가 나 부실채권이 발생했을 경우 담보가 있는 경우엔 책임을 면할 수 있으나 신용으로 해 준 경우엔 온갖 책임을 뒤집어 쓴다. 한직으로 떠돌기 일쑤고 심하면 해임당하는 경우도 많다. 땅값 하락으로 부동산 담보가치가 대출금액에 미달할 경우에도책임문제는 유야무야다.다른 하나는 외부문제로 객관적인 신용평가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한국신용평가, 한국기업평가, 한국신용정보 등 3개 신용평가기관이 기업체 평가를 하고 있으나 무용지물로 취급받고 있다. 높은 등급을 받은 기업들의 부도가 속출하고 있는 탓이다. 신용평가등급을 이용하는 종합금융이나 증권사들은 이를 「참고」만 할뿐 의사결정의 잣대로 여기지는 않고 있다.수신계수 위주의 양(量)경영도 시급히 지양해야 할 유산이다. 은행 증권 등의 임직원 평가잣대중 제일 중요한 것이 누가 예금(약정)을 많이 끌어왔느냐는 것이다. 다소 무리를 하더라도 예금을유치하면 유능한 은행원이고 금융의 본류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은행원은 앞뒤가 꽉막힌 사람으로 통한다.이런 수신위주 경영은 여러가지 부조리의 온상이 되고 있다. 가장큰게 꺾기와 대출커미션이다. 꺾기란 대출을 해주면서 강제적으로일정부분을 예금으로 되받는 것이다. 『예금할 돈이 있으면 왜 대출을 받느냐』는 항의는 『할당된 예금을 채우기 위해 불가피하다』는 변명에 질 수밖에 없다. 대출커미션을 대출금의 일정비율(통상 2% 내외)을 사례비로 받는 것. 이는 임원의 줄잡기 로비자금으로, 직원들의 수신유치를 위한 활동비로 이용된다. 검은 돈과의은밀한 거래도 수신위주 경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개혁적 차원에서 「긴급명령」을 동원하면서까지 금융실명제가 실시됐음에도5·6공의 잔여자금과 김현철씨의 「통치자금」이 은행창구를 버젓이 드나들었다.하루빨리 벗어던져야 할 것으로 집단이기주의도 있다. 「기업어음(CP)을 연12%이하로는 매입하지 않겠다(?)」는 은행신탁의 최근 「결의」는 집단이기주의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금리가 높아기업의 금융비용이 높아지고 결국에는 부도를 내고 쓰러지든 말든나만 잘되면 그만이라는 식이다. 업무영역을 둘러싼 은행·증권·보험감독원과 각 금융기관의 밥그릇싸움도 마찬가지다. 금융개혁을해야 한다는 총론은 염불하듯 외면서도 막상 어떻게 해야 하느냐에들어가선 자기몫 챙기기에 여념이 없다. 「내돈은 내돈이고 네돈도내돈이다」라는 놀부심보 때문에 영역조정은 항상 흐지부지되기 일쑤였다. 지난 82년부터 시작된 금융산업개편이 아직도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금융기관의 경영투명성이 확보되지 않고 있는 것도 문제다. 유가증권평가손이 엄청나고 사실상 부실채권이 많을 경우 「금융기관의안정성」을 이유로 감독기관이 나서서 「분식」해준다. 은행감독원이 법정관리에 들어간 한양에 대한 대출금을 부실채권에서 제외하도록 「묵인」해준 것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96년부터 유가증권평가손을 50% 반영토록 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증권감독원은 이를그대로 시행할 경우 증권사 대부분이 엄청난 적자를 낼 것이라는증권사의 「엄살」에 슬그머니 발을 뺐다.연초부터 한국경제를 엄동설한에 빠뜨렸던 한보사태는 우리 금융이얼마나 난장판인지를 그대로 보여줬다. 충분한 사업성 검토없이 「몸통」의 지시대로 6조원이 넘는 돈이 부실의 항아리로 흘러들어갔다. 산업은행이 3천억원을 넣으면 조흥은행이 뒤따르고,서울 상업외환은행도 가만히 있지 못했다. 목줄을 쥐고 있는 그분들의 뜻을거스르기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셈이다. 그분들과 몇몇 은행관계자들이 누이좋고 매부좋은 식으로 「떡고물」을 챙길 때 금융기관은 멍들어갔고 한국경제도 크게 출렁거렸다. 우리나라 은행들이 해외에서 돈을 빌릴 때 내는 이자가 평소보다 두배이상 높아지고 외국은행들이 한국은행들의 「부도」를 우려해 대출금을 회수,한국은행이 외화자금을 긴급히 지원할 정도였다.◆ 국내은행 부도 우려 외국은행 대출금 회수문민정부는 드디어 이런 금융관행을 단숨에 뜯어고치기 위해 「금융개혁」방안을 잇달아 발표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 크게 기대를거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문민정부 출범이후 금융규제완화와자율화를 통해 선진금융제도를 정착시킨다고 4년내내 떠들었어도바뀐게 그다지 눈에 뜨이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쓸데없는 규제가 새로 생기는 경우도 적지 않다.부도방지협약이 대표적인 예다. 정부의 직접적인 개입없이 금융기관의 자율적 협의로 부도를 막겠다는 「선의」에도 불구하고 이는또다른 관치금융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진로가 첫번째로 부도방지협약 대상으로 선정된 뒤 외국에서의 한국평가가 더욱 악화된 것은 당연했다. 주가가 떨어지면 안정책을 마련한다고 부산떨다 오를라 싶으면 각종 진정책을 쏟아붓는다든지, 투신사들의 주식운용에직접 개입하는 것도 마찬가지다.소리없이 강하다. 얼마전부터 모자동차회사의 선전문구로 등장해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말이다. 추상적인 것을 탈피해 확실한 장점을 내세워 이미지를 강하게 전달하고 있다는 점에서 광고효과도뛰어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잘못된 금융관행을 개선하고자 하는정부의 노력은 이와 정반대다. 요란스럽게 떠들기만 하고 실속은거의 없다. 「빈수레가 더 요란하다」는 속담이 그대로 맞아 떨어질 때가 많다.금융은 유리와 같다.(재정경제원 C국장) 속까지 그대로 드러나보일 정도로 투명하고 자칫 잘못하면 깨지기도 쉽다. 무책임하게내던질 수도 없지만 언제까지 끌어안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그럴듯한 구호를 내세우기에 앞서 올바른 금융관행을 정착시키고자하는 의식개혁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은 언제나 타당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