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화·틈새시장 공략 등 통해 자생력 키워 나가야

지난 9일 부산유통업계의 대부로 자처해온 김정태 태화백화점 회장이 투신자살한 뒤로 부산뿐만 아니라 지방유통업계는 공멸의 위기감이 증폭되고 있다.국내의 대형유통자본들이 대거 지방공략을 적극화하고 외국계유통회사들도 지방포격을 시작했다. 그동안 지방시장 갈라먹기로 손쉽게 영업을 하던 지방토착백화점들이 시장을 조금씩 빼앗겼고 경쟁력이 없는 이들은 경영악화에 시달려야 했다. 태화백화점 김회장은자살이란 극단적 방법으로 경쟁에서 스스로 물러난 것에 다름아니다.지방유통업체들이 서울지역대형백화점과 유통업체의 남진정책에 밀려 영업기반을 잃게된 원인은 유통시장의 대외개방이 제공했다. 지난 95년 서울의 대형백화점과 유통업체는 96년부터 시작되는 유통시장개방으로 외국의 대형업체가 몰려들 것에 대비해 전국에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다점포화전략에 기치를 올렸다. 그래서 부산 대구광주 대전 등 지방대형도시를 파고들기 시작했다. 국내 대형업체로서도 살기 위한 자구책이었다.남진정책의 최전선은 제2의 도시 부산으로 선택됐다. 현대백화점과롯데백화점은 95년 8월과 12월 부산서면지역에 1만평규모의 초대형백화점을 세워 시장공략을 시작했다. 1년여만에 서울의 일류백화점인 이들은 부산백화점시장의 50%가량을 나누어 가져갔다. 부산지역백화점의 터줏대감을 자처하던 태화백화점은 방어작전을 폈다. 지난해 8월 본관옆에 신관을 신축해 4천평이던 매장면적을 두배로 늘렸다. 또 북구 덕천동에 2호점 건립을 추진했다. 서울대형업체에맞서기 위해서는 일단 덩치를 불려야 한다는 경영판단을 내린 것이다.그러나 대형백화점에서 고급스런 상품과 양질의 서비스로 고객을다루는 노하우를 갖고 있는 롯데나 현대백화점을 따라갈수는 없었다. 여기다 과다한 투자비용으로 자금난을 견디지 못해 결국 법정관리를 신청하게 됐고 법정관리의 수용여부가 불투명해지자 김회장은 자살하는 길을 택하게 됐다.◆ 태화백화점, 덩치부풀리기식 부실경영이 문제지방토착백화점 오너의 투신자살을 놓고 해당지역인 부산만이 아니라 다른 지방에서도 모두 서울의 대형유통기업이 결국 지방상공인을 자살로 몰아갔다고 해석하고 있다. 부산지역의 경우로 한정하면『현대백화점과 롯데백화점 너 때문이야』라는 분위기다. 지역상공인들은 물론 지방언론도 마찬가지 해석을 달고 있다. 그러나 이런해석이 과연 실체적 진실에 대한 정확한 진단인가.진단결과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태화측의 책임도 있다는것이다. 이의를 다는 사람들은 바로 같은지역에 있는 유통업계 사람들이다.우선 태화백화점의 대응전략이 과연 올바른 것이었느냐에 대한 의문이다. 첫째 유통에서 가장 중요한 컨셉(CONCEPT)의 부족이다.대형화가 그냥 건물을 하나 더 지어서 매장면적을 넓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태화백화점 신관은 구관과 바로 붙어있는 것이 아니라 다리로 연결된 별도의 건물이다. 따라서 한 매장으로 보지 않는다. 조그만 백화점 두개가 가까이 있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이는 신관개장이후 태화백화점의 매출이 늘지 않았다는데서도 입증된다.여기다 건물의 형태도 문제다. 신관은 주차공간확보를 위해지상8층에 지하10층의 잠수함건물을 지은 것도 컨셉부족으로 지적된다. 지하 몇층까지 차를 끌고가야만 하는 백화점을 누가 찾아가겠느냐는 지적이다.그러나 이런 백화점운영에 관한 기술이나 컨셉부족보다 무리한 투자를 가장 직접적인 실책으로 지적한다. 태화백화점은 별특징도 없는 신관을 짓기 위해 1천억원에 가까운 자금을 쏟아부었다. 이 자금중 약8백억원이 단기자금이었다. 경영위기를 스스로 부른 것이라는 얘기다. 이런 덩치부풀리기식 부실경영이 결국 오너를 죽음으로까지 몰고갔다는게 부산지역 유통업계의 솔직한 분석이다.부산토착유통업체의 한 최고경영자는 『1천억원의 돈이면 대형할인점 3개를 지을수 있는 돈이다. 부산의 어떤 백화점도 고급백화점을운영해 본적이 없다. 덩치만 키운다고 되는게 아니다. 자기가 살아남을수 있는 길을 택했어야 했다. 자존심을 내세워 현대 롯데 등거인들과 바로 맞서려했던 태화백화점 경영진의 전략부재가 낳은소산이다』라고 뼈아픈 지적을 했다.물론 태화백화점의 법정관리신청과 김회장의 죽음의 원인을 전적으로 태화백화점 경영진의 실책으로만 몰수는 없다. 부산에 롯데와현대백화점이 진출하지 않았더라면 태화백화점은 오늘도 여전히 태평성대를 구가하면 부산최고의 백화점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또 태화백화점 보고 『백화점시장에 롯데와 현대같은 거인이나타났으니 그동안 해오던 백화점은 집어치우고 다른 길로 살길을찾아보라』고 하는 것은 『안방은 내놓고 곁방으로 물러나라』는꼴이라는 반박도 나올수 있다.그러나 기업의 경영환경은 항상 변하는 것이다. 자신이 해오던 업종은 이 지역에서는 항상 내것이라는 의식이 문제라는 것이다. 어차피 유통시장은 외국기업에까지 개방됐고 이제 전면적인 경쟁체제로 들어섰다. 자본력과 인력 노하우가 뛰어난 대재벌그룹이나 외국기업에 맞서 싸우라고 하는 것이 공정한 경쟁이냐는 원론적 반박도있을수 있다. 하지만 피할수 없는 현실이 돼버렸다. 다윗이 거인골리앗과 싸울때 힘으로 밀어부치지않고 지혜로 싸워 이겼듯이 지방의 소형유통업체들도 자신이 살길을 찾아야만한다. 차별화 틈새시장공략 협력화 합병을 통한 대형화 등이 그것이다. 부산지역에는이미 「마이웨이」를 찾는 유통업체들이 생겨났다.세원백화점은 백화점을 증축하는 것으로 전략을 잡았다. 단순한 대형화가 아니라 롯데 현대가 몰려있는 서면을 벗어나 동래지역의 상권을 장악하기 위한 지역밀착형 대형화다. 또 『부산의 백화점들이문화시설 등이 부족한 점을 감안해 레포츠 수영장 극장 등 전생활문화공간을 갖추어 차별화할 계획』이라는게 이회사 조봉신부장의말이다. 광안리에 있는 중간규모의 신세화백화점은 매장면적이 2천2백40평에 불과하다. 그래서 대형화는 아예 포기했다. 대신 현대롯데같은 도심형 백화점이 아닌 지역백화점의 컨셉을 가진 부도심형백화점을 지향하고 있다. 그래서 그동안 강점으로 지적된 식품을강화해 여기서 수익을 내기로 했다. 동네상권이다보니 식품을 사러오는 주부고객을 주타깃으로 하겠다는 얘기다. 현재 식품이 전체매출에서 35%를 차지하고 있고 특히 식품은 요즘같은 불경기에는 경기를 덜타서 적응력을 높여준다는 것이다.◆ 대형업체 탓하기 보다 생존전략 찾아야슈퍼마켓을 주로 운영하던 농심가는 서울과 외국유통업체의 진출에대비해 일찌감치 할인점으로 방향을 잡았다. 95년 26개이던 슈퍼마켓을 15개로 줄이고 대신 메가마켓이란 부산지역 최초의 대형할인점을 세웠다. 실적은 예상외로 좋았다. 지난해 세전이익이 86억원으로 투자비(부지비용제외) 40억원을 1년만에 건졌다. 올해는1백억원 가량의 이익을 기대하고 있다. 또 최근에는 24시간 영업을시작하고 나서 매출이 30%이상 오르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부산지역에 30개의 슈퍼마켓을 운영하고 있는 서원유통도 특화전략으로유통개방의 물결을 맞이하고 있다. 지역밀착형 중소규모 생필품할인점이 그것이다. 이미 31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이처럼 지방업체들은 유통시장의 대내외개방에 대응하기 위해 살길을 찾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아직도 남아있는 지역주의적 잔재가기업들의 이런 변신노력을 게을리하게하는 원인을 제공한다는데 있다. 광주의 경우 금남로와 충장로 지하상가연합회는 롯데백화점의입성을 저지해달라는 탄원서를 시청에 제출했다. 부산시는 대형점포를 규제하는 일본의 대점법을 연구하러 공무원을 부랴부랴 파견했다.그러나 이런 폐쇄적인 움직임이 결국은 지역경제를 더 죽이는 꼴이라는 지적도 만만치않다. 부산상공회의소 유통분과위원장을 맡고있는 서원유통의 이원길사장은 『지방상공인들이 지역중소기업활성화대책이나 주장하고 있어서는 지역의 경제발전은 없다』고 단언한다. 부산의 경우 교통난 부지난 자금난 3난을 극복하기 위해 홍콩이나 싱가포르처럼 제조업보다 관광 상업도시로 전환발전시켜야 한다고 제안했다.부산지역에 진출한 롯데나 현대백화점은 부산상공인과 언론이 마치침략군이나 되는 것처럼 취급하는데 대해 섭섭함을 감추지 못하고있다. 세계화하자며 외국기업도 유치하는 마당에 같은 국내기업을마치 적군취급하는 분위기가 곤혹스럽다는 것이다. 외국기업이 왔을 때는 그럼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이냐고 지역정서를 강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있다.롯데나 현대백화점은 자신들이 부산에 진출한 이후에 중소형 지역백화점밖에 모르던 부산시민들에게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했고지역중소업체를 입점시키는 등 지역경제가 더 활성화됐다고 주장한다.서울의 대형업체가 지방에 엄청난 자금과 인력을 쏟아부으며 시장을 공략하는 것은 지방기업으로서는 엄청난 시련일 수밖에 없다.유통업체만이 아니다. 모든 업종이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런 움직임은 철저한 자본의 논리고 대형자본으로서도 생존을 위한 것이다. 이런 흐름을 지역정서에 편승해 거꾸로 돌릴 수는 없는게 현실이다.따라서 지역유통업체나 지역기업이 사는 길은 자신들만이 할수 있는 독특한 영역을 찾는 것이다. 그래야 제2의 태화백화점같은 불행을 막을수 있다는 지적이다. 『약육강식의 법칙이 작용되는 정글에서도 사자나 호랑이만 사는게 아니라 톰슨가젤도 토끼도 다 같이사는건 이들이 나름대로 생존법을 터득했기 때문이다』(손광익 롯데부산면세점장)라는 비유를 단지 승자의 자기정당화로만 볼수 없는 것도 바로 이런 점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