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와 대우가 기아그룹을 인수할 수도 있다.』기아그룹이 부도위기에 몰리면서 수없이 떠돌고 있는 루머 가운데삼성의 시나리오설과 함께 가장 그럴듯하게 흘러다니는 소문이다.급기야 정세영 현대자동차명예회장과 김우중 대우그룹회장이 제주도에서 만나 현대는 기아그룹의 승용차부문을, 대우그룹은 상용차부문을 각각 나눠 인수하기로 합의까지 했다는 소문마저 나돌고 있다. 일부에서는 정세영회장 김우중회장 김선홍기아그룹회장이 기아특수강의 공동경영에 합의한 자리에서 기아그룹이 3자에게 인수될위기에 놓일 경우 현대와 대우가 기아를 공동인수해 포드가 마쓰다를 경영하는 방식으로 운영해보자는 합의가 있었다는 설도 나오고있다.먼저 정세영회장과 김우중회장의 합의설을 살펴보자. 정명예회장과김회장이 제주도에서 만난 것은 사실이다. 지난달 25일 제주 호텔신라에서 열린 전경련 하계세미나에서 정명예회장과 김회장은 만찬을 가진뒤 술자리로 옮겨 밤 11시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나 이자리에는 두사람만 있었던게 아니다. 하계세미나에 참석했던 다른재계관계자들도 자리를 함께해 기아그룹을 서로 나눠 갖자는 중요한 이야기를 할 분위기는 아니었다. 양사 관계자들도 이같은 루머를 확인해달라는 요청에 그저 웃어버릴 정도다.◆ 현대, 제철이냐 기아냐 선택 기로에기아특수강 공동운영에 합의한 자리에서 기아그룹의 공동인수 얘기가 나왔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정세영명예회장 김우중회장 김선홍회장은 이 합의를 한자리에 모여 한 것이 아니다. 김선홍회장이 우선 호텔롯데에서 정세영명예회장을 만나 의견일치를 본후 김선홍회장만 힐튼호텔로 자리를 옮겨 김우중회장과의 합의를 끌어낸 것이다. 따라서 김선홍회장이 정세영명예회장 김우중회장과 각각 만난자리에서 최악의 경우 기아그룹의 인수를 제의했을지는 모르지만세사람이 함께 모여 합의 절차를 갖지는 않았을 것이라는게 일반적인 해석이다.그러면 왜 이같은 루머가 신빙성있게 떠 다니고 있는 것일까. 답은간단하다. 기아그룹의 인수 가능성을 묻는 기자들에게 현대나 대우모두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기아를 삼성에 넘기는 것만은 막겠다』는게 이들의 공식 입장이어서다. 기아를 인수하고 안하고를 떠나서 삼성이 기아를 인수하는 것을 막기 위해 어떤 형태로든 기아의 경영권 방어에 도움을 주든지 아니면 어쩔수없을 경우 인수도 배제할수는 없지 않겠느냐는 분위기다. 이미 기아그룹의 부도유예협약 적용 직전 기아자동차와 기산이 발행한 전환사채(CB)를 현대와 대우가 전량 인수한 것이나 기아특수강의공동경영에 합의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협력업체에 대한 지원도 마찬가지다. 기아그룹의 협력업체들이 쓰러지면 현대 대우의 생산라인도 가동을 중단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게 된다. 기아자동차와 아시아자동차의 1차 협력업체 5백82개 가운데 현대 기아 쌍용등에도 공동으로 납품을 하고 있는 업체는 모두4백44개. 이들의 부도는 현대 대우에도 직격탄이 될 수밖에 없다.물론 협력업체 지원이 자신들을 위한 일이지만 현대와 대우의 기본마인드는 기아를 위기에서 벗어나게 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채권단이 기아그룹에 부도유예조치를 하면서 자금을 지원 않기로 함에 따라 현대 대우의 지원은 기아에 엄청난 도움이 되고 있다.현대나 대우가 이처럼 기아의 「보호」 내지 「불가피할 경우 인수」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는 것은 삼성이 기아를 인수했을 경우의파장이 걷잡을수 없는 상태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대우경제연구소의 자료에 따르면 삼성이 기아자동차를 인수할 경우단기적으로 삼성이 현대 다음으로 국내 2위에 올라서며 중장기적으로는 국내 시장 1위의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하고 있다. 연구소가 이처럼 전망하고 있는 것은 삼성의 자금력과 계열사의 지원으로판매력과 기업이미지 측면에서 현대나 대우보다 우월할 것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기아의 스포티지, 아시아의 록스타등 성장성이 높은 RV(레저용 자동차)측면을 강화하고 현재 기아가 구축해놓은 해외수출기반과 현지생산체제를 확대하면 1위의 가능성은더욱 높아진다는 분석이다. 이같은 연구소의 분석은 이미 업계가 모두 공통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부분이다. 그만큼 기아그룹의 기술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대로서는 승용차부문을 인수해 별도 디비전으로 확보, 삼성을 방어하고 대우는 상용차부문을 인수해 지금은 갖고 있지 않은RV와 중소형 상용차 쪽을 강화한다는게 루머의 골자다. 더욱이 현대는 삼성이 매출 13조원 규모의 기아그룹을 인수할 경우 적어도10년간은 재계 순위에서 2위로 밀려나 있을 수밖에 없다는데 크게긴장하고 있다.그렇다면 현대와 대우가 기아그룹을 인수할 여력은 있는가. 정몽규현대자동차회장은 『지금으로서 부채 9조의 기업을 인수한다는 것은 현대나 삼성 모두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현대는 특히 제철사업 진출에 주력하고 있는만큼 추가로 기아를 인수해야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꿈에도 그리던 제철사업을 해야하는지 기아가 삼성에 넘어가는 일을 막기 위해 기아를 인수해야 할지는 무척이나 어려운 결정이다. 두가지를 모두 한다는것은 불가능하다. 대우그룹도 기아를 인수하는 것은 어렵다. 현재해외사업에 들어가는 자금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물론 지금 현대 대우 모두 기아의 인수를 적극 추진한다는 루머는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삼성이 기아를 먹는 것을 보고만 있지는않겠다』는 것만큼은 현대나 대우 모두 감추지 않고 있는 기본전략이다.★ 삼성자동차의 고민 / 경제성 갖추려면 기업인수 필수『삼성그룹은 기아그룹을 인수하려 하는가.』이 질문에 대한 답은 『물론』이다. 삼성그룹이 기아그룹 인수의도가 없다고 공식 부인하고 있지만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거의 없다. 그만큼 삼성자동차는 자생력을 갖기에는 수많은 어려움에 부딪쳐 있다. 다른 자동차메이커를 인수해 기술과 생산시설을단숨에 확보하지 못할 경우 자동차사업을 걷어치우거나 아예 그룹의 살림까지 망칠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삼성자동차는 지난해까지 부산공장에만 2조원을 털어넣었다. 올연말까지는 1조원이 추가로 들어간다. 그러고도 고작 연산 12만대의중형승용차 생산능력만을 확보할 뿐이다. 나머지 판매부문 애프터서비스부문 등에 대한 투자는 제외된 숫자다.삼성은 지금 두가지 딜레마에 빠져 있다.우선 자동차업체로 살아남으려면 연산 2백만대의 생산능력을 확보해야 한다는게 세계 자동차업계의 대세라는 점이다. 삼성도 살아남기 위한 증설계획은 있으나 국내업계의 심각한 공급과잉 상태는 당분간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어떤 논리로도 증설의 타당성을 뒷받침할수 없다는게 첫번째 고민이다.두번째는 기술이 없다는 점이다. 삼성은 닛산으로부터 중형승용차인 세피로를 받아 삼성모델로 만들고 있다. 그러나 이 차종이후 개발차종에 대한 논의가 이견을 보이고 있는데다 설비도입에서도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소형승용차나 대형승용차에 대한 결정도 내려지지 않아 당초계획인 99년 신차종 투입계획은 2000년 이후로 지연이 불가피한 상태다. 유럽메이커와는 미니밴등 RV 도입협상을 벌여왔으나 이 또한 결렬된 상태다.첫해야 차를 파는데 문제가 없겠지만 국산화와 독자모델 개발에는닛산과의 이견으로 기술습득에는 어려움이 생길 수밖에 없다. 더욱이 높은 기술료 지출로 차값을 높일 수밖에 없다는 점도 부담이다.따라서 삼성은 기술과 생산차종 생산시설을 단숨에 채울 수 있는기업인수합병(M&A)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