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기업 기아차가 어디로 굴러갈지 헤매는 모습이다. 전임직원이하나가 돼 자구노력을 펼치고 있지만 상황은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않고 있다. 그룹 총수인 김선홍 회장 역시 백방으로 뛰고 있지만아직 뚜렷한 성과물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정부와 채권은행단으로부터 거센 퇴진압력을 받으며 막다른 골목에 내몰리고 있다. 기아의 앞날이 극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누가 기아를죽였는가.기아는 부도유예 이후 아이러니컬하게도 국민들로부터 이전보다 더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본사에는 연일 격려전화와 편지, 팩스 등이 쇄도하고 있다. 어려움을 이기고 반드시 재기해 국민기업으로거듭나라는 얘기가 주류를 이룬다. 평소 기아의 대외적인 이미지가국민들에게 상당히 친근하게 각인돼 있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진로나 대농이 부도유예 처분을 받았을 때와는 사뭇 다른 광경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부도유예 이전기아가 보여왔던 행태에 대해 상당한 비판을 가하는 모습이다. 회사꼴이 망가진 데에는 경영진의 판단미스와 내부갈등이 결정적인역할을 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기아에 대한각종 루머가 난무, 금융권에 위기감을 불어넣음으로써 결정타를 날린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기아차 위기의 실체가 바로 이런 것들이란 설명이다.경영진의 무리한 경영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기아는 그동안 자동차전문그룹을 지향하면서도 꾸준히 영토를 확장해왔다. 특히 건설사인 기산과 특수강업체인 기아특수강을 새식구로 맞으면서다른 재벌그룹과 마찬가지로 선단식으로 그룹을 이끌었다. 이 때문에 그동안 그룹 주변에서는 다른 업종에 너무 기웃거리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었다. 게다가 두 회사는 기아 내부적으로 돈먹는 하마라는 불명예스러운 타이틀을 갖고 있었다. 다른 계열사에서 벌어 두 회사의 적자를 메우는데 급급했다는 인상을주고 있는 것이다.◆ 기산·기아특수강은 ‘돈 먹는 하마’기아의 핵심인 기아차의 경우 지난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70억원의 흑자를 기록했으나 이번에 도매값으로 같이 곤경에 처해 있다.기아부실의 주범으로 꼽히는 기아특수강만 봐도 지난해 그룹 전체적자의 68%에 달하는 8백79억원의 엄청난 적자를 기록했다. 게다가은행부채만 1조원이 넘어 금융비용만 연간 1천억원이 넘는 상황이다. 기산도 총부채가 무려 1조3천억원에 이르고 적자가 누적되는등 재무상태가 상당히 취약한 실정이다. 기아특수강과 마찬가지로은행권에 이자로만 연간 1천억원이 훨씬 넘는 돈을 내야하는 실정이다.기아 임직원들 사이의 내부갈등도 그룹 전체를 위기로 내모는데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기아차를 보더라도 노조의 힘이워낙 강하다보니 노사대립이 자주 빚어지고 경영진들 사이에도 파가 갈리어 회사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는 얘기다. 특히 노사대립은 해마다 똑같은 형태로 반복되며 그때마다 회사의 발목을 잡았다는 후문이다. 여기에다 이따금씩 생산직과 관리직 사원들이 사소한 문제로 충돌을 빚는 노-노대립도 벌어져 경영진을 난처하게 만들었다.기아차노조는 산업계에서 강성이라는 이미지를 줄 정도로 세다는평가를 받아왔다. 전임자만 무려 60여명에 이르고 국내 노동계에서도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다. 물론 회사에서의 발언권도 강했다. 경영진이 계획을 세워 무슨 일을 하려해도 노조가 반대하면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는 것이 그룹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또파업도 잦아 최근 몇해 동안 해마다 생산라인을 떠났었다. 지난해6월에도 임금 및 단체협상이 결렬, 보름간 파업이 계속되면서 피해액만 3천2백여억원을 기록했다. 여기에다 때로 노-노갈등을 일으켜경영진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지난해의 경우 관리직사원이 노조원에게 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 회사 전체가 어수선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당시 기아차는 생산직과 관리직 직원들끼리험악한 상황까지 연출하며 한치의 양보도 없는 파워게임을 벌였다.◆ 경영진 의견 달라 크레도스 디자인 5번 바꿔경영진 사이의 갈등도 문제라는 지적이 많았다. 해마다 인사철만되면 일반 직원들 사이에 저 사람은 ○○○라인이라는 식의 얘기가나돌아 당사자는 물론 인사권을 가진 최고경영진을 난처하게 만들었다. 특히 일부 임원들에 대해서는 주류와 비주류 등의 용어들이동원돼 성향을 분석하는 경우마저 있었다. 확실한 오너가 회장으로있는 다른 그룹에서는 감히 있을 수 없는 일이 자주 벌어졌던 것이다. 상황이 이쯤되면서 인사가 있을 때만 되면 승진에서 탈락하는임원들이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토로하는 장면을 어렵지 않게 볼수있었다는 후문이다.이밖에 업계 일각에서는 자동차개발에 일관성이 없었던 경영진의판단도 비판 받아 마땅하다는 의견을 개진한다. 경영진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보다는 각자의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적지않아 업무를 추진하는데 혼선이 자주 발생했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중형승용차 크레도스는 무려 5번이나 디자인이 바뀐 끝에 지금의 모습으로 태어났다는 설명이다. 맨먼저 냈던 아이디어가 결재를 거치면서주요 경영진의 뜻에 따라 여러 차례 수정되는 바람에 경제적으로나시간적으로 큰 손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경영권 포기 여부 / 사면초과 김선종 회장김선홍 기아그룹 회장은 요즘도 예전과 다름없이 여의도에 있는 본사 사무실로 출근해 일을 본다. 얼핏 보면 전에 비해 달라진 것이없는듯이 느껴진다. 하지만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이는 얼굴 구석구석에는 근심이 가득하다. 한 측근은 최근 들어 김회장의 얼굴이 많이 상했다며 자신의 퇴진문제와 관련해 크게 고심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정부와 채권단이 한목소리로 김회장이 책임을지고 물러나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그를 더욱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지금 단계에서 김회장의 진퇴를 섣불리 판단하기란 매우 어렵다.채권단과 기아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채권단이 즉각 퇴진을 주장하고 있지만 기아 임직원들은 결사반대 입장이다. 김회장이 물러나면 기아호가 곧바로 3자에게 인수될 것이라고믿는 까닭이다. 협력업체 임직원들 역시 끝까지 운명을 같이 하자고 주장하고 있다.하지만 주변상황이 자꾸 김회장의 입지를 위축시키고 있는 느낌이다. 업계에서는 선택의 시기만을 남겨놓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우세한 실정이다. 특히 채권단이 부도유예기간으로 결정한2개월 안에 기아를 정상화시키기가 극히 어려운 상황이라 어쩔 수없이 물러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지금의 위기를 타개할 특별한 대비책이 마련되지 않는한 기아의 홀로서기는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며 그런 면에서 김회장이 벼랑 끝에몰려있는 느낌이라고 말했다.물론 김회장은 채권단의 퇴진요구를 그렇게 쉽게 받아들이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다. 물러나더라도 회사를 정상화시킨 다음 자신이 알아서 결정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특히 그는 기아를 특정그룹에인수시키려 한다는 시나리오설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고 있는 눈치다.그러나 이런 김회장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업계에서는 그가 결단을내릴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의견이 날이 갈수록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김회장의 퇴진문제가 어떻게 결말이 날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