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여만 가는 기아사태엔 「정치권의 마법」도 별무 소용인가.부도유예협약 적용 한달을 넘기고도 방향을 잡지 못한채 표류하고있는 기아문제의 수습에 정치권이 적극 개입했지만 사태 해결의 조짐은 보이지 않고 있다. 김선홍회장의 퇴진여부와 관련,정부와 채권은행단은 여전히 강경한 입장인데다 기아측도 버티기 작전으로맞서 사태해결의 확실한 실마리는 잡히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양측이 팽팽한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는 사이에 정치권이 본격적으로 끼여든 것은 지난 14일. 이회창 신한국당 대표는 이날 기아자동차 소하리 공장을 전격 방문, 사태 수습의 의지를 표명했다. 그는김선홍회장과 직원들에게 『기아문제는 임직원 스스로 해결해야 하며 제3자가 들어와 풀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제3자 인수에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또 『기아가 최선을 다해 자구노력을 한다면 당 차원에서 적극 지원할 것이며 채권단에도 기아그룹회생을 위해 노력해줄 것을 촉구하겠다』고 약속했다.기아그룹 입장에선 장마 끝에 비친 한줄기 햇빛과도 같은 언급이었다. 게다가 이대표가 이미 그의 경제브레인인 서상목의원을 통해임창렬통상산업부장관과 김선홍회장의 만남을 주선하고 「김회장의조건부 사퇴」라는 중재안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일각에선「뭔가 풀리는게 아니냐」는 희망섞인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그러나 그것은 단지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기아그룹측은 이대표의중재안에도 불구 김회장의 절대 사퇴불가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김회장의 사퇴의사 표명을 주변의 경영진들이 극구 만류했다는얘기도 들린다. 또 정부와 채권단쪽에선 오히려 정치권의 개입에거부감을 내비쳤다. 이대표의 기아방문 직후 김인호경제수석은 『기아경영진은 정치권에 기대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강경식 부총리겸 재정경제원 장관도 『기아사태는 채권단이 알아서해결할 문제로 정치적으로 풀 수는 없다』면서 「경제논리대로의해법」을 강조했다. 채권은행단 역시 『김선홍회장의 사퇴각서와노조의 감원동의 없이는 어떤 지원도 있을수 없다』는 기존 입장을재차 확인했다.◆ 이대표 언행 다분히 ‘정치적’사실 이대표의 정치적 개입이 얽힐대로 얽힌 기아사태를 쾌도난마처럼 풀어 나갈 것으로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대표의 언행은 다분히 「정치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들의 병역파동으로 인한 실점을 만회하고 야권후보 난립 상황에서 집권당의 유일한 후보라는 이미지를 부각시키려는 의도였다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게다가 기아사태이후 삼성그룹과의 유착설이 꼬리를 문 것도그를 소하리 공장으로 향하지 않을 수 없게 했다는 관측도 있다.어쨌든 문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버렸다. 김선홍회장의 경영권포기와 노조의 무조건적인 감원 동의각서 제출을 둘러싼 채권단과기아그룹간의 대결구도로 회귀한 것이다. 그 두가지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 한 긴급자금을 대줄 수 없다는 채권단과 김회장의 퇴진은제3자 매각을 위한 음모라고 주장하는 기아측이 한치의 양보도 없이 맞서 있는 사태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결국 내달말 부도유예기간 만료시한을 향해 대안도 없이 굴러가고있는 기아사태의 해법은 채권단과 기아그룹이란 당사자들이 스스로풀어야할 숙제로 남았다. 이회창 대표의 기아자동차 방문은 기아사태 해결에 정치권의 「제3자 개입」이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만을 확인시켜준 결과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