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상품은 해외에서 중가내지 중고가제품으로 취급을 받는게 일반적이다. 아무리 좋은 기술과 디자인으로 만들어도 최고급제품으로인정받기는 어렵다. 메이드인 코리아라는 국가브랜드 문제도 있고개별기업의 상표력 역시 미국 일본 유럽등 선진국 제품에 비해 떨어지기 때문이다.영창악기의 신디사이저는 이런 측면에서 예외다. 미국의 맨해턴 등번화가의 악기전문점에서 판매되는 영창악기의 신디사이저 「K2500」의 소비자가는 6천달러에 달한다. 일본의 세계적인 악기업체인야마하나 가와이 그리고 롤랜드제품이 5천~5천5백달러를 받는 것과비교해 5백~1천달러가 비싼 것이다. 뿐만 아니라 스티비 원더나 빌리 조엘 등 세계적인 팝아티스트 가운데 상당수가 영창의 신디사이저로 연주를 한다. 특히 스티비 원더는 한국을 방문, 영창악기에서직접 신디사이저 2대를 구입했고 96년 애틀랜타 올림픽 폐막식에선전세계 10억명이 넘는 사람이 시청하는 가운데 이 악기로 연주를하기도 했다.영창악기는 연간 약 1억달러의 악기를 수출하는데 이중 7천만달러가 전자악기이다. 그리고 전자악기중 주력제품이 신디사이저이다.이 제품은 미국내 시장점유율 2위를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쿼즈와일 인수로 사업다각화 성공신디사이저는 2백여가지 악기의 소리를 원음과 거의 같게 재현하는악기의 마술사. 1대로 오케스트라처럼 연주할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원하는 소리를 합성해 재생할 수도 있다. 예컨대 바람소리 말발굽소리와 각종 효과음등. 따라서 선진국을 중심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으며 연간 40%이상씩 수요가 늘고 있는 유망상품이기도 하다.영창이 이 분야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은 미국 인공지능분야의 천재로 불리는 쿼즈와일박사가 세운 쿼즈와일사가 마케팅실패로 경영난에 봉착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부터.쿼즈와일은 신디사이저의 핵심부품인 음원칩기술을 갖고 있는 업체이다. 이때부터 쿼즈와일 인수를 둘러싸고 일본 등과 치열한 경쟁에 들어갔다. 일본은 이미 세계전자악기 시장의 80%를 장악하고 있는 거인. 반면 영창악기는 이제막 전자악기 시장으로 품목을 다각화하려는 걸음마단계의 업체였다. 하지만 영창은 치밀한 노력끝에91년 쿼즈와일을 인수하는데 성공했고 이 회사를 발판으로 신디사이저를 개발, 세계시장을 주름잡게 된 것이다. 신디사이저는 세계적인 악기박람회인 미국 남(NAMM)쇼에서 베스트제품으로 선정되기도 했다.영창은 신디사이저 외에도 몇가지 기념비적인 기록을 갖고 있는 업체이다. 우선 세계 최대 피아노메이커이다. 연간 생산능력이 14만대에 달해 2위인 야마하의 12만대보다도 2만대가 더 많다. 이같은생산능력은 세계의 연간 피아노 생산량 50만대의 28%에 해당한다.또 하나는 세계 80여개국에 수출할 정도로 다양한 지역에 악기를내보내고 있다는 점이다. 미주 동남아 유럽은 물론 중동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영창의 제품이 안나가는 곳이 없을 정도이다. 영창이 광고출연을 금기시하고 있는 오스트리아 빈소년합창단과 최초로광고교섭에 성공한 것도 이들 합창단의 연습실에서 사용하는 피아노가 바로 영창 제품이었기에 가능했다.이밖에 고유브랜드만을 고집하는 것도 영창의 특징이다. 영창(YOUNG CHANG)은 서양인들이 제대로 발음하기 까다로운 소리이다. 「영챙」이나 「융챙」정도로 소리내기 쉽다. 어찌보면 국제화하고는거리가 먼 상호요, 브랜드이지만 영창은 첫 수출을 시작한지 30년가까이 이 브랜드를 고집하며 세계시장을 누비고 있다.영창악기를 이끄는 사령탑은 손흥율사장. 그는 몇가지 독특한 특징을 갖고 있다. 우선 그의 별명이 이색적이다. 별명은 「초프」. 흐루시초프에서 따온 것이다. 무식할 정도로 밀어붙이는 스타일에서유래한 것이다.또 일반 경영자들처럼 상대나 공대출신이 아니라 공병대출신이다.육군 공병 중령으로 예편할 때까지 20년 가까이 도로를 닦고 막사를 지으며 다리를 건설해왔다.그뒤 70년대초 영창에 업무과장으로 입사한뒤 공병 주특기를 최대한 살려 공장건설을 진두지휘했다. 가장 효율적인 레이아웃에서 설비도입 가동에 이르기까지 영창이 건설한 서울 대림동공장과 인천의 3개공장(지금은 2개로 통합)엔 그의 손을 거쳐가지 않은게 없다. 당시로서는 남들이 미처 생각지 못한 자동화설비투자에도 관심을 쏟아 생산인력을 대폭 줄일 수 있었다.◆ 보스턴 소재 연구소, 전자악기 집중 연구91년 전무로 퇴사한뒤 김재섭회장을 비롯한 임원진의 강력한 권유로 6년만에 사장으로 컴백한 것도 흔치 않은 일이다. 97년초 영창은 어려움을 겪었다. 96년에는 적자를 기록, 회사분위기가 우울했다.그는 97년 5월 사장으로 복귀, 불도저와 같은 저력으로 강력한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조직을 통폐합하고 공장을 통합하는등 군살빼기에 나섰다. 잔업을 없애는등 감량경영을 실시했다. 그렇다고 강제적으로 감원을 한 것은 아니다. 전환배치 소사장제등 다양한 방법으로 리스트럭처링을 실시한 것.이같은 노력에 힘입어 97년엔 흑자로 돌아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손사장은 앞으로도 영창이 나아갈 길은 악기 외길이라고 단언한다.한우물을 파야 개발력 기술력 생산력 등이 세계 정상에 올라 국제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다만 어쿠스틱 피아노는 성장에 한계가 있는만큼 전자악기분야를강화, 21세기 성장의 주역으로 삼는다는 구상이다. 현재 영창의 어쿠스틱대 전자악기의 비중은 7대3 정도로 어쿠스틱이 앞서고 있다.하지만 전자악기의 빠른 성장세를 감안할 때 수년내 이 비율이 역전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미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선 전자악기가 휠씬 잘 팔리는 등 전자악기 전성시대를 맞고 있다.전자악기는 생산력보다는 기술력에서 경쟁력이 판가름난다. 이런측면에서 영창이 미국 보스톤에 보유하고 있는 전자악기연구소는보배이다. 여기선 45명의 석박사급 고급두뇌가 전자악기 분야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를 하고 있다. 전자악기의 핵심부품은 반도체칩이고 이에 대한 정교한 설계가 악기의 성능을 좌우한다. 여기서 개발된 칩기술은 곧바로 한국으로 이전돼 제품생산에 투입된다. 손사장은 특유의 추진력을 전자악기 개발에 투입하고 있는 것이다.또 하나 힘쓰는 부분은 글로벌생산체제구축. 이미 어쿠스틱 피아노는 중국 천진에서도 생산하고 있는데 중국공장 제품의 생산성과 품질을 높여 최단시간내 한국산에 버금가는 제품으로 육성시킨다는복안이다. 이를 위해 수십명의 기술진을 현지에 파견, 지도에 나서고 있다. 3천9백20만달러가 투입된 중국 공장은 연산 6만대의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어 중국내수 부족분 8만대를 커버할수 있는 큰 규모이다. 영창의 제품은 중국시장에서 현지 제품보다 2배정도 고가로 판매되고 있다.올해 우리나이로 72세인 그는 나이보다 훨씬 젊게 보이며 건강도아주 좋은 편이다. 군대생활에서 몸에 익은 규칙적인 생활과 적극적인 도전정신이 젊음을 유지시키는지 모른다.「온세상에 울리는 맑고 고운 소리…」라는 귀에 익은 광고음악을바탕으로 이미 어쿠스틱 피아노분야에서 세계정상에 올라선 영창이21세기 전자악기 분야에서도 정상을 확고히 지킬수 있을지 그의 행보가 관심을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