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요나라! 일본주식회사」.미국이 샴페인을 터뜨리고 있다. 드디어 미국식 경제 모델의 우월성이 입증됐다며 「축사」를 쓰기에 바쁘다. 「월가(미국의 증권가)가 이겼다」(월 스트리트저널)는게 「축사」의 요지. 한마디로「일본을 배우자」는 입장에서 「우리를 배우라」는 입장으로 급선회했다.축제 분위기에 휩싸인 미국에 반해 일본은 의기소침하다. 80년대중반 「제 2의 진주만 기습」이라며 미국을 떨게 만들었던 「일본식 경영」의 도도함은 간 곳 없고 마치 「제 2의 패전」이라도 당한 듯 「자성」의 모습이다. 미국식 경영의 득세를 바라보는 일본의 대체적인 반응은 「장점을 인정하지만 미국식 경영이 1백% 옳은것은 아니다」라는 것이다. 가다타 데츠야 일본 경제단체연합회(경단연) 기업지배구조 특별위원회 위원장은 『미국 경영의 장점인 합리성과 투명성을 받아들이는 한편 (미국식의) 단기적인 이익과 주주 편향의 경영을 지양하는 방향으로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일본의 경제 주간지인 닛케이 비즈니스도 최근호에서 「미국형도 일본형도 아닌 새로운 경영을 스스로 만들어나가야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식 경영이 대세이긴 하지만 미국식을 그대로 따를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현대경제사회연구원의 임동춘 경영분석 실장은 『미국식 경영과 일본식 경영의 가장 큰 차이점 중의 하나는 사업 자금을 어디에서 조달하느냐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미국의 경우 자금이 주로 직접금융시장인 주식시장에서 조달되다 보니 상장된 기업이 유망하면주가가 올라 자금이 쉽게 모이고 장래가 없으면 가차없이 빠져나가버린다. 자금이 투자자의 이익에 따라 빨리 모이고 빨리 흩어진다.직접자금시장에 의존하다 보니 경영에 대한 주주의 영향력은 강력하다. 『이른바 「주주(Share-holder)자본주의」로 명명될만큼 주주의 이익을 강조하다 보니 단기 순익 극대화에 치중한다.』(현대경제사회연구원 임실장) 경제 상황이 극도로 악화됐던 92년을 제외하곤 ROE(Return on Equity; 주주자본이익률)가 채권수익률 보다쭉 높았던 이유도 ROE를 올리지 못하면 주주들이 반발하기 때문이다. 주주의 간섭을 받는 대신 기업의 경영은 주주에 의해 철저하게감시된다. 경영 투명성이 유지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다.직접금융시장이 발달한 미국과 달리 일본은 은행 대출에 주로 의존하는 간접금융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다. 일단 돈이 은행으로 모인뒤 은행에서 기업을 심사, 대출을 해주는 방식이다. 한국개발연구원의 유승민 연구위원은 『일본의 경우 금융기관이 미약한 자본시장의 기능을 대체하고 있는만큼 주거래 은행의 역할이 중요하며 기업의 사업자금도 거의 은행 차입금에 의존하고 있다』고 말한다.자금조달방식에서 보면 우리나라는 미국보다는 일본에 가까운 셈이다.◆ 미국, 주주가 기업경영 철저 감시자금조달방식이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와 일본이 근본적으로 차이가 나는 까닭은 일본에서는 은행이 경영 감시자의 역할을나름대로 수행해왔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은행이 경영 심사를 제대로 해오지 못했다는데 있다. 일본과 한국의 이런 차이는 두 가지뿌리에 근원한다. 첫째는 소유구조의 차이이고 둘째는 정경유착의정도 차이다. 우선 첫째로 우리의 경우 기업 주식의 대부분을 오너와 그 친인척 및 계열사가 보유하고 있다. 개인 투자자가 전체 주주의 34.3%를 차지하지만 개인 투자자의 절반이상이 오너와 그 관계자라는게 대우증권 강상무의 설명이다. 주주의 20.6%는 법인 투자가인데 이 경우도 대부분이 계열사라고 덧붙인다. 결국 대주주가존재하면서 소유권과 함께 경영권을 장악하고 있다.일본은 우리와 달리 소유와 경영이 분리돼 있다. 제2차 세계대전후 맥아더 장군에 의해 재벌이 해체되면서 주식이 법인 투자가에게로 분산돼 대주주가 거의 사라졌다. 이때 기업끼리 서로의 주식을교환하다 보니 기업간에 주식 상호 보유가 이뤄지면서 링(Ring)식의 소유구조를 형성하게 됐다. 대주주가 없어진 결과 소유와 경영이 자연스레 분리되면서 전문경영인 체제가 도입됐다. 대신 『일본은 기업 주주 대부분이 순수한 투자자가 아니라 관련 회사이기 때문에 미국과 달리 주주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고 다음 후계자 승계도 현재의 사장이 임명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대우증권 강창희상무)한국과 일본이 다른 두번째 이유는 우리의 경우 자금을 조달하는데있어 정치권의 외압이 일본보다 더 컸다는데 있다. 일본에서도 정경유착이 문제점으로 지적돼 오긴 했지만 은행이 나름대로 경영에대한 감시 기능을 수행해왔다는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은행 대출은 공공연한 정치적 외압에 의해 좌우됐다. 경영자는 은행의 눈치를 보기 이전에 정치권의 눈치부터 살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소액주주는 경영자의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우리나라의 ROE가 단 한번도 회사채수익률을 넘지 않았다는것은 한국식 경영이 얼마나 주주들의 이익을 무시하는 방식인가를보여주는 대목이다.미국식 경영과 일본식 경영은 노동시장에서도 크게 차이가 난다.널리 알려진 대로 미국은 해고가 자유롭고 능력에 따라 급여를 지급하는 방식인데 반해 일본과 우리나라는 종신고용제와 연공서열제를 채택하고 있다.일본식 경영은 90년대 초반까지 미국에 위협을 가하며 승승장구했다. 80년대 중반 미국은 「일본이 몰려온다」며 호들갑이었다. 도요타를 앞세운 일본 자동차들이 미국 시장에 대대적인 공략을 감행하면서 미국에서는 「일본식 경영」에 대한 연구가 붐을 이뤘다.그로부터 불과 10여년 남짓 흘렀고 이제 미·일 경제관계는 완전히「역전」된 듯한 느낌이다. 도대체 왜일까.이진 항공대 교수는 지난해 연말 <한국경제신문 designtimesp=7619>에 기고한 글에서미국이 현재의 승리를 쟁취한 이유는 『미국 경제가 중후장대의 자본화 중심에서 경박단소의 정보화 중심으로 급속히 이행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교수는 이 글에서 『우리는 흔히 일본식 경박단소를 축소지향적 귀재로 칭송하면서 그 모델을 따라갔지만 일본은 축소지향이 결코 아니며 경박단소는 더구나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대우증권의 강상무도 『지금까지 일본 경제가 강세였던 것은 조선 자동차 등 중후장대형 산업이 전체 산업발전의 중추적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조선이나 자동차 등과 같이대규모 장기투자가 필요한 산업에서는 단기 이익에 민감하고 노동력 움직임이 많은 미국식 경영보다 은행에 의해 자금이 필요한 곳에 배분되고 노동력이 한 곳에 오래 머물러 있는 일본식 경영이 유리했다』는 설명이다.◆ 한국 정치적 외압, 일본보다 컸다그러나 이제는 경영환경이 변했다. 공산주의권의 몰락으로 자본주의 시장에 뛰어든 경쟁자가 많아졌을 뿐만 아니라 제품의 생명이급격히 짧아졌다. 경쟁에서 이기고 급변하는 신제품 사이클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스피드(속도)」가 중요하다. 「자금과노동력을 효율적으로 모아 경제 전체에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미국형 자본주의」(닛케이 비즈니스)가 절대적으로 유리하다.경영의 내용과 방법은 시대와 환경에 따라 크게 변한다. 얼마전만해도 우리는 물론 미국까지도 「일본」을 닮자고 하지 않았던가.그런 의미에서 <닛케이 비즈니스 designtimesp=7626>가 「탈일본·초미국」형 경영을제안하며 제시한 「21세기에 장수하는 기업의 조건」은 참조할만하다. 우리도 미국과 일본을 좇아가기에만 급급할 것이 아니라 모방하는 한편으로 극미·극일할 수 있는 「신한국적 경영」에 대한 모색을 시도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