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프랑스에서는 장기적인 불황의 여파로 공영 전당국이 서민들로부터 인기를 얻고 있다. 파리 시립은행이라 불리는 전당국은 담보저당 대출전문 금융기관이다. 공영이라는 성격만 제외하면 한국의 전당포와 기능이 흡사하다. 앙시엥레짐(구체제) 시대였던 1777년 몽 드 피에테(자비의 언덕)란 이름으로 설립됐으니 무려 2백20년의 장구한 역사를 자랑한다.전당포라는 성격상 파리시립은행은 출발 당시부터 서민과 밀접한연관관계를 맺고 있다. 18세기 중반 당시 서민들은 왕실 재정의 고갈로 인한 무거운 세금 부담과 함께 악덕 사채업자들의 농간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공영 전당국 탄생의 배경이다. 연 1백20%라는 고리대금에 짓눌려 결국 빈민으로 전락하고 마는 서민층을 보호할 목적으로 연리 10% 담보대출을 하는 시립은행이 생겨난것이다. 또 프랑스 혁명 전후, 파리코뮌, 양차 세계대전 등 정치적사회적 혼란으로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시립은행을 찾는 서민의 수는 대폭 늘어나곤 했다.◆ 물품의 7%는 경매 처리이번에도 사정은 똑같다. 70∼80년대 한때 주춤했던 시립은행 이용자수가 최근 몇년간 다시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1980년대중반에 시작된 불경기가 지속되면서 전체 노동인구의 13%가 실업자라는 프랑스의 사회 현상을 잘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시립은행을찾는 하루 평균 고객수는 약 7백명. 이들이 주로 맡기는 전당물품은 보석류, 고급시계, 금은제 식기세트, 그림과 조각품, 유산으로물려받은 가구류와 괘종시계 등 고가의 골동품 등이다.이 은행창구에서는 절대로 대출 요청고객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특정 번호를 이용한다. 이는 순간적인 경제적 어려움이나 사적인이유로 급히 돈이 필요해 은행을 찾는 고객을 익명으로 보호하자는것이다. 저당 품목당 대출 액수는 차후 공개경매시장에서 매각될가격의 50%선에서 결정된다. 평균 대출금액은 3천5백프랑(한화로 1백만원 정도)이고 최저 대출액은 2백프랑으로 규정되어 있다. 98년현재 대출금리는 7.5%이고 기간은 1년. 그러나 채무자가 원할 때는언제라도 대출금 상환이 가능하다. 또 이자를 매달 정확하게 지불하는 우수 고객에 한해서는 1년 단위로 대출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반면 유행이나 기술의 발전으로 제품가치가 쉽게 떨어지는 컴퓨터, 가전제품은 1년 이상 대출을 연장할 수 없다. 현재 가장 오랫동안 저장된 물품은 레이스로 장식된 실크 파라솔로 47년째 전당국 물품보관소에서 잠을 자고 있다.시립은행 총무국에 따르면 공개 처분되는 물품은 7%선 정도. 이 7%의 저당품 처분을 위한 경매장이 주 3∼4일간 공영전당국 중앙홀에서 열린다. 경매에 부쳐지는 물건은 골동품 가구에서부터 그림, 모피 외투, 크리스탈 컵, 중동산 양탄자까지 두루 망라하고 있어 그야말로 만물상을 연상케한다.이 가운데 가장 인기를 끄는 경매는 금은 장신구와 보석류로서 이런 물품의 경매시장이 열리는 매주 목요일과 금요일 아침에는 유명브랜드의 보석을 값싸게 구입하려는 보석 전문수집가와 호기심 많은 일반인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운이 좋으면 유명 보석 세공업체가 디자인한 진주 목걸이를 1천 프랑에 구입할 수 있다. 그러나 카르티에, 부슈롱같은 세계적 명성을 자랑하는 업체의 순금 또는 다이아몬드가 장식된 시계 등은 미리 경매 두달전에 제품 카탈로그에소개된다.특별히 구매의사가 없는 관광객들도 고색창연한 파리 시립은행건물방문을 즐긴다. 건축예술학적 미를 자랑하는 시립은행은 전통이 잘보존된 파리 한복판의 마래지구에 위치하고 있어 관광명소로도 인기가 높다. 그러나 고객의 신분보장 규칙을 철저히 지키기 위해 은행건물내 사진 촬영은 금지되어 있다.